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35)화 (135/208)

NIS의 천재 스파이 (135)

“그럼 이만 전화 끊겠소.”

“돈…….”

수화기 너머의 이, 룩의 음성은 이어지지 않았다.

돈 파블리코는 귀에서 수화기를 떼어 내려놓았다.

딸깍.

이어.

돈 파블리코는 앉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책상에 놓여 있는 몇몇 사진들.

돈 파블리코가 그중 한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진 속 인물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뜻밖에도 화랑 무공훈장이 달려 있었다.

돈 파블리코가 사진 속 청년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안드레아…….”

뭐라 말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중얼거림이었다.

돈 파블리코는 하염없이 사진을 바라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의미 모를 눈빛을 띠었다.

*    *    *

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 활주로를 벗어나 급상승하는 베트남 항공 303편.

일정 고도까지 급상승한 후, 베트남 항공 303기는 우로 크게 선회하며 기수를 바로 했다. 그러곤 일직선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    *    *

일등석에 앉은 차은성은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여승무원에게 혹 한국 신문이 있는지 물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 항공기에는 한국 신문이 비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콜라를 부탁했다.

그런 다음.

우를 돌아보았다.

항공기 창 너머로 구름들이 둥실 뜬 푸른 하늘이 보인다.

혹시나 싶어 탑승 항공기를 바꿨다.

그리고 미국의 입김이 가장 약하다고 판단되는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갈 생각이다.

“흠.”

차은성은 공항에서 자신을 노린 미구엘과 중개업자인 산토스를 생각했다.

‘누가 날 노리는 걸까?’

자신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는 것을.

공항에서 항공기를 타려고 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으면 절대 자신을 노릴 수 없을 텐데.

‘분명한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누군가에게 노출, 감시받고 있었다는 건데.’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진한 의문을 느꼈다.

그런 한편으로.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하나둘이 아니다. 회사 업무 관계로 원한 관계가 있는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들 중 자신의 행적을 알 만큼 정보력이 탁월한 이들이 누가 있을까?

차은성은 개인은 배제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조직이나 타 국가의 정보기관이라면 모를까?

일개인이 그런 정보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날 상대로 살인 청부업자를 보내려면 살인 청부업계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거나 관련 중개자를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차은성은 눈을 반짝이며 맹렬하게 머리를 돌렸다.

그사이.

여승무원이 앉은 차은성에게 다가와 콜라가 든 유리컵을 내려놓았다.

차은성은 신용카드로 콜라를 계산했다.

이후.

다시 자신을 죽이려고 할 만한 이들을 생각하며 용의 선상에 몇몇 이들과 조직을 올렸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해당 용의자들을 하나둘 지워 나갔다.

‘젠장!’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신경질을 내며 유리컵을 집었다. 그러곤 단숨에 반 정도 콜라를 마신 다음 컵을 내려놓았다.

탁.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개인 용의자가 없었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개인이 아닌 각국 정보기관을 생각했다.

각국 정보기관들.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정보기관이 몇 있다.

그리고…….

‘JK. 시먼스.’

마담 화이트에게 청부. 이전 팀원들을 죽인 그라면 자신을 노릴 만하다.

노태준, 황민준, 김아름, 우형광.

아직도 이전 팀의 팀원들을 기억한다.

‘팀원들을 죽였으면서 팀장인 난 아직까지 죽이지 않았어.’

차은성은 영문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팀원들을 죽였는데, 팀장인 자신을 살려 둔 이유가 뭘까?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차은성은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매우 진한 의문을 느꼈다.

‘이제까지 날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가 이제 와서 날 죽이려고 한다? 앞뒤가 안 맞아.’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유리컵을 집어 남은 콜라를 마셨다.

‘으음. 내가 그동안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걸까?’

차은성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항시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아차, 하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신이고, 필드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숙명이다.

차은성은 빈 컵을 내려놓으며 머릿속을 지우고 박영광과 5국 국장 주철현을 생각했다.

별도의 팀을 꾸려 시먼스의 행방과 소재를 추적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NIS가 추적 중인데도 아직까지 시먼스의 행방이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은…….’

시먼스가 모종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CIA가 그를 보호하는 걸까?’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부국장 월터를 생각했다.

시먼스와 경쟁 관계였고 NIS와 원만한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런 월터 부국장이 시먼스를 보호하거나 도움을 줄 리는 없다.

‘그렇담 뭐지?’

차은성은 답답했다.

국가 단위의 정보 조직이 시먼스를 보호한다면 NIS가 행방이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시먼스의 행방과 소재가 파악이 되었어야 한다.

‘혹시 회사 내부에 아직 파악되지 않는 다른 이중 스파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시먼스를 추적하는 우리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아닐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보통신국장 정재승.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아주 오래전에 시먼스에게 포섭되어 이제까지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었다는 것을.

다수의 극비에 속하는 NIS 내부 정보가 시먼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유출되었다는 것을.

 CIA가 오래전부터 NIS 내부에 협력자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박희오 원장을 포함. 윤희상 1차장이나 선우종 2차장 등 NIS 간부들은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것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

‘그놈의 한미 동맹!’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디들 미국을 혈맹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정재승 국장의 배신!

NIS가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조직을 운영해 왔는지, 단적으로 입증되는 사건이다.

그 바람에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회 정보위에서도 매우 극심하게 NIS를 질타했었다.

박희오 원장의 자리가 위태위태해질 정도로 말이다.

정재승 국장 건으로 NIS와 CIA 사이가 아주 크게 틀어졌다. 한미 간에 중대한 외교 문제가 될 뻔했다.

‘그러고 보니 CIA가 의외로 발 빠르게 대처했어.’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그런 한편으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시먼스 부국장이 돌연 종적을 감추고.

CIA가 시먼스 부국장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알려 오며 심심한 유감을 전달했다.

‘흠. CIA가 그렇게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한미 두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등 국가 전반에 걸쳐 매우 심각한 갈등과 균열이 일어났을지도……. 어쩜. 그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시먼스가 행방을 감췄다면!’

차은성은 CIA가 지금까지 계속 시먼스의 뒤를 봐 주었을 가능성에 관해 생각했다.

‘CIA가 커버를 쳐 줄 정도로 시먼스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차은성은 자문해 보았다.

답은…….

‘아니야. 시먼스는 그렇게 대단한 자가 아니야. 하지만 CIA 부국장인 그가 독단적으로 우리 NIS를 상대로 그런 공작을 할 정도라면 뭔가 있긴 있는 건데…….’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머리가 복잡해.’

이렇다 할 단서나 가설이라도 세울 수 있는 정보가 현재로서는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머리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날 것 같다.

오버 히트!

과열될 것 같다.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커튼이 쳐져 있는 승무원들의 휴식 공간.

수여 초 후.

차은성은 좌석 사이를 지나가던 여승무원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콜라를 주가 주문하며 태블릿 PC나 노트북을 비행 중에 임대,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가능하긴 합니다만 고객님. 다소 고액의 현금을 필요로 합니다만.”

“급한 회사 업무 때문에 서류를 작성하여 메일로 보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승무원의 말에 차은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등석에 한해 제공되는 서비스가 몇 있다.

그중 하나.

일등석 승객에게 간단한 사무나 업무를 볼 수 있게 예의 임대 서비스가 있다.

물론 고가다.

일등석 승객들은 고액의 항공 운임을 기꺼이 지불한 탑승객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갑이 두둑하다는 말이다. 그런 일등석 고객들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어 줌으로써 이익을 최대한 창출하려는 항공사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노트북을 단기 임대할 수 있었다.

하노이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차은성은 노트북을 이용하여 몇 가지 일을 하려 했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여승무원이 건네준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 포털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자신이 미국에 있는 동안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았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각종 인터넷 기사들을 빠르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당 대선 후보 표현태가 낙선했다.

그의 선거 캠프에서 자금을 맡은 허종호 의원은 현재 구속. 기소를 위한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

유력 야당 대선 후보들 중 한 사람인 이시목이 당선인이 되었다.

“흠.”

차은성은 침음을 흘렸다.

전재원 순경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이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인을 바꾸고 말았다.

해당 사건이 없었더라면.

여당 대선 후보인 표현태가 당선인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전재원 순경의 죽음으로 몇몇 사람의 운명이 크게 바뀌고 말았다.

“흠.”

차은성은 재차 침음을 흘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감찰실 소속인 임동일 과장과 정가연 계장이 생각난다.

전재원 순경 사건으로 NIS가 정치에 개입한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감찰실에서 자신을 가만 놔둘 리 없다. 삼촌 박영광이 어느 정도 커버를 쳐 주겠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음…….”

차은성은 다문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침음을 흘렸다.

박희오 원장, 윤희상 1차장, 선우종 2차장을 비롯한 NIS 고위 간부들이 지금쯤이면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

자신들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다들 엄청 불안할 것이다.

박희오 원장은 이미 청와대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당했을 것이다.

아닌 말로.

여당이 박희오 원장을 갈가리 찢어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여당 대권 후보를 물 먹여 낙선하게 만들었으니, 여당 입장에서 보면 박희오 원장은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다.

당선인 이시목의 입장에서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차은성이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