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26)화 (126/208)

NIS의 천재 스파이 (126)

첫째.

샌프란시스코.

미국 영토 내에서 작전을 실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굳이 Home Advantage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미국 내에서는 FBI에 밀릴 수밖에 없다.

FBI는 전 세계 어느 정보기관과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는 기관이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KGB도 FBI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FBI를 상대로 미국 내에서 작전을 실행해야 한다. 작전이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둘째.

FBI는 미국 내에서 매우 치밀하고 조밀한 조직망을 갖추고 있다.

미국 내에서 정보 조직망으로 CIA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한편.

박영광이 생각하는 차은성을 가만히 지켜봤다.

‘언제나, 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차은성은 고분고분한 법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콰악 쥐어박고 싶다.

아주 힘껏!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엄청 세게!

*    *    *

창가에 서 있는 중년인.

NIS 감찰실 과장 임동일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이 우중충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비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 먹구름들이 하나 가득 끼었다. 그 때문에 해를 가려 날이 꽤 어둡고 흐리다.

천천히.

임동일이 창틀로 손을 뻗었다.

이내.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입으로 가져가며 서너 번 입김을 불었다.

“후, 후우.”

그런 다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일순.

입안 가득히 씁쓰름한 맛이 확 풍겼다. 동시에 그윽한 커피 향이 코끝에 감돈다.

은근.

심신이 착 가라앉는 것처럼 편안하고 푸근해진다.

그런 한편으로.

날씨 때문인지 살며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임동일은 입에서 머그잔을 떼어, 허리 어름으로 내리며 말했다.

“네에.”

그러자.

덜컥.

문이 열리며 정가연이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창가에 서 있는, 등을 보인 임동일에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이윽고 임동일의 뒤에 이르러 서며 두 걸음 어림의 거리를 두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과장님.”

정가연이 사무적인 어투로 말하자.

“말해.”

임동일 과장이 창밖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러자 정가연이 천천히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아르티펙스 팀이 오퍼레이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감찰 조사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가연의 말에 임동일 과장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박영광 과장님이 참 무던히도 차 팀장을 아끼시는군.”

그럴 줄 알았다!

임동일 과장이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일순.

임동일 과장의 중얼거림을 들은 정가연이 몸을 움찔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님.”

정가연이 부르자.

“됐어, 그만 나가 봐.”

임동일 과장의 말에 정가연이 뭐라 말하려고 망설이더니 이내 질끈 입술을 깨물며 포기하고 말았다.

정가연은 서 있는 임동일 과장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그런 다음.

뒤돌아서더니 곧장 문으로 걸어갔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임동일 과장은 다시 머그잔을 들어 서너 번 입김을 분 다음, 두어 모금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차은성이라…….’

임동일 과장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전재원 순경 사건 외부 유출과 관련하여 감찰 조사 대상자들 중 한 사람이다.

NIS를 해당 사건에 연루시킨 최초 당사자이고.

유성갑 후보의 선거 캠프에 사건의 개요를 흘린 주요 용의자 중 일인이다.

그런 이유로 조사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박영광이 무슨 낌새를 챘는지 아르티펙스 팀을 작전에 전격 투입했다.

오퍼레이션 중인 팀을 불러 조사를 할 수는 없다. 모든 작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작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아마 작전이 끝났을 때는 이미 대선이 끝난 뒤겠지.”

임동일 과장은 커피를 머시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피식 실소하더니 중얼거렸다.

“대선이 끝나고 당선인이 최종 결정되면 전재원 순경 사건의 외부 유출 조사는 유야무야되겠지. 훗.”

임동일 과장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박영광을 생각했다.

대선배다.

자신이 젊었을 때 함께 일한 적도 있다. 그래서 꽤 잘 안다.

임동일 과장은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역시 관록이 어디 가지 않아.”

박영광이 감찰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번 전재원 순경 사건의 외부 유출과 관련하여 어떻게 나올지.

차은성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박영광이 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임동일 과장이 중얼거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보다 한발 빨리 움직이다니. 이거 참.”

감찰실 내부에서 박영광에게 누군가 관련 정보를 전해 주었거나.

박영광이 감찰실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알고 있거나.

아무래도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임동일 과장은 박영광에게 관련 정보를 전한 감찰실 내부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

얼굴과 두 눈동자를 통해 해당 감정을 내보였다.

심중.

박영광보다 한발 늦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수하려 하였다.

꿀꺽, 꿀꺽.

임동일 과장이 다시금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결국 이렇게 되면?”

눈을 반짝였다.

박희오 원장, 1차장 윤희상, 2차장 선우종이 다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보복 인사도 인사지만.

만약 표현태 후보가 낙선하고 야권 대선 후보가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면 NIS 최고 수뇌부와 국장들의 인사가 불가피해진다.

임동일 과장은 느긋하게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쩌면! ……운이 좋다면! ……선우종 2차장은 살아남겠군. 후후. 그 양반 대인 관계가 원만하더니, 이럴 때 신의 한 수가 되는군. 거참.”

임동일 과장이 살며시 웃으며 차은성을 다시 생각했다. 불러 조사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표현태 후보가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면.

전재원 순경 사건을 빌미로 NIS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선 분위기로 봐서는 표현태 후보는 청와대의 주인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것 같다.

후릅.

임동일 과장이 커피를 마시며 야권 유력 대선 후보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마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럼…….’

보복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번 전재원 순경 일을 빌미로 NIS를 감찰하는 상황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고 수뇌부와 국장들에 대한 인사가 단행될 것이다. 해당 인사를 통해 새 대통령이 NIS를 장악하고 싶어 할 테니깐.

임동일 과장이 입에서 머그잔을 뗐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리.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흐르는 물처럼,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을…….”

임동일 과장은 중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투투툭.

창문에 빗방울들이 부딪치며 아주 작은 소리가 몇 울리기 시작했다. 곧 본격적으로 비가 내릴 것 같다.

“흠…….”

임동일 과장은 침음을 흘리며 재차 차은성을 생각했다.

“박 선배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과연 차 팀장도 알고 있을까?”

임동일 과장은 궁금했다.

차은성이 어떻게 생각할지…….

왜 그렇게까지.

박영광이 차은성을 감싸고도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임동일 과장은 무심한 눈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창밖을 가만히 주시했다.

*    *    *

이틀 후, 샌프란시스코 공항.

차은성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9.11 이후.

미국 입국 절차가 엄중 강화되고 엄청 까다로워졌다. 그 바람에 입국 수속에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차은성은 곧바로 공항 터미널을 가로질렀다. 공항버스 탑승구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그런 차은성을 몇 쌍의 눈동자가 뒤따르며 몰래 지켜봤다.

*    *    *

각종 첨단 장비가 즐비한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 상황실.

지부장 하비에 스와레즈가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머리에 쓴 헤드셋을 통해, 공항에서 차은성을 감시, 미행하는 요원들의 생생한 현장 대화가 들렸다.

“C. 버스 탑승 확인.”

“눈치챌지도 몰라. 따라붙지 마. 반복한다. 따라붙지 마라.”

“3팀. 버스. 버스를 따라붙어.”

“4팀. 대기. 반복한다. 대기.”

하비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차은성…….’

의외다.

한국 NIS가 차은성과 아르티펙스 팀을 이번 일에 투입하다니.

‘그만큼! 반드시 세바스찬 박을 빼내겠다는 거겠지. 훗.’

하비에는 내심 실소했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미합중국을 배신한 반역자가 버젓이 국외로 도주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FBI가 허술한 기관이 아니다.

‘반드시!’

하비에는 세바스찬 박의 신병을 반드시 확보하고 말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    *    *

흔히 금문교라 부르는 골든 게이트 브리지, 피셔맨스 워프 등.

차은성은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미행 여부를 살폈다.

역시나…….

‘피곤하군. 역시 만만치가 않아.’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한편으로.

마담 화이트 때문에 알게 된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장 하비에 스와레즈를 생각했다.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긴장해야 하고 유의해야 하는 이다.

어설프게, 섣불리 작전을 실행했다가는 대번에 하비에에게 덜미가 잡힐 것이다.

그는 유능한 요원이자 지부장이니깐.

‘그나저나 미행을 어떻게 따돌린다?’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따라붙은 FBI 요원들을 뿌리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꼬리에 달고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

한참 후.

차은성은 눈에 띈 한 쇼핑몰로 걸어갔다.

감시하던 FBI 요원들이 각기 다른 방향과 거리를 두고 은밀히 차은성을 뒤따랐다.

*    *    *

그리 오래지 않아.

따르릉, 따르릉.

쇼핑몰에서 요란한 화재 경보 벨이 울렸다.

그러자…….

“꺄아악!”

“비, 비켜요!”

“밖으로! 빨리!”

“서둘러!”

쇼핑몰에 있던 이들이 매우 놀라고 당황하여 허둥지둥 쇼핑몰 입구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그 바람에 FBI 요원들이 시야에서 차은성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야?”

“안 보여?”

“빌어먹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빨리! 빨리 찾아!”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무리 지어 떼로 움직였고, 그 바람에 차은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매우 어려웠다.

FBI 요원들은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찾았어?”

“아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염병할!”

“빨리 좀 찾아.”

그들은 차은성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차은성은 보이지 않았다.

*    *    *

지부장 하비에는 머리에 쓴 헤드셋을 벗더니 이내 우로 휙 집어 던졌다.

그러곤 무표정한 얼굴로 성난 눈빛을 희번덕였다.

부하들이 차은성을 놓쳤다!

일순.

“훗.”

하비에가 실소했다.

당연하다는 투다.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대하는 것 같은 다소 어이없는 하비에 지부장이다.

“그래. 이 정도는 해 주어야지. 그래야 내 상대답지.”

하비에 지부장이 가만히 중얼거리며 강한 승부욕의 눈빛을 번쩍였다.

언제고 한 번 정도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 예상대로 차은성이 이제 적으로 자신과 대척점에 섰다.

하비에 지부장은 살며시 입가에 작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러며 은근 들뜬 눈빛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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