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19)
Persistence Hunting
“외부에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우리 경찰의 치부를 수사하는 일이야.”
“…….”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홍 팀장.”
임범철 국장이 홍은주 팀장을 돌아봤다.
“네.”
홍은주 팀장이 짧게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그 모습에 임범철 국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차은성은 임범철 국장과 홍은주 팀장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복국을 먹고 소주를 마시며 식사를 계속했다.
후릅…… 우물우물.
홍은주 팀장은 그런 차은성을 힐긋거리며 내심 어이없어했다.
‘도대체…….’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 * *
며칠 후, 삼청동 모 카페.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차은성, 이창희.
스윽.
차은성이 외장 하드를 내밀었다.
이창희가 받아 챙기며 주변을 힐긋거렸다.
“언제까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 보겠습니다.”
“작전을 끝내고 쉬고 있었을 텐데. 개인적인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럼.”
이창희가 말과 함께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곤 경계의 눈으로 주변을 힐긋거리며 카페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차은성은 천천히 컵을 들었다.
그러곤 두어 모금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눈길을 끄는 이나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거나 신경을 자극하는 이는 없었다.
카페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차은성은 감시와 미행하는 자가 없는지 심중 유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감찰실이 신경 쓰였다.
NIS 관련 업무나 오퍼레이션이 아닌데.
경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에 자신이 관여한 것을 감찰실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 보안 규정을 어겼다고 자신을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감찰실에 자신의 행적이나 이번 일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으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침음을 흘리며 천천히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재원 순경 살인 사건에 관한 보안이 뚫려 살인자나 그와 관련이 있는 자가 자신을 감시 및 미행하고 있는지 않는지.
차은성은 심중 주의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 * *
며칠이 지났다.
한강 공원 한편에 위치한 주차장.
심야라 주위는 매우 어두웠다. 주차 공간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런데 한 대의 세단이 구석진 자리에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실내 미등 등.
모든 빛이 꺼진 차내에서 제법 밝은 휴대폰 빛이 어른거렸다.
조수석에 앉은 홍은주.
그녀의 바로 뒤에 앉은 임범철 국장.
두 남녀는 공히 똑같이 폰을 가로로 보고 있었다.
폰의 액정을 가득 메운 동영상.
1, 2초의 영상들을 깨끗이 처리하여 화질을 되살리고 꼼꼼하게 문맥을 잇듯 편집한 동영상.
해당 영상의 하단에는 영화 자막처럼 지문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영상에 나온 이들이 뭐라 말하는지 알고자.
그들의 입 모양을 읽는 독순술을 이용. 예의 지문을 달았다.
덕분에 영상의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은성은 임범철 국장의 옆에 앉아,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며칠 전 이창희에게 부탁했던 동영상이다.
의외로 영상을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냈다.
이윽고.
모든 영상을 다 본 임범철 국장이 폰을 끄고 상의에 넣더니.
“휴우우우.”
깊은 시름이 담긴 긴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가 우리 경찰이 이렇게까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차은성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임범철 국장을 돌아봤다.
“전재원 순경의 상사와 동료들의 소환 조사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소재지를 속히 파악. 그 두 사람을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임범철 국장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전재원 순경의 상사와 동료도 동료지만. 영상에서 서장이 언급되었네. 그도 소환 조사해야 해.”
“그럼 보안이 문제가 될 겁니다만.”
차은성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재원 순경의 상사와 동료들을 소환하는 것을 기자들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네.”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
각 언론사는 일선 경찰서마다 출입 기자를 두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수십여 명이다.
그들이 일선 경찰서 교통과에서 다수의 경찰이 경찰청에 소환당한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당장 경찰청 출입 기자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보안은 그 순간 와르르 무너진다.
차은성과 임범철 국장이 해당 상황을 염려하는 사이.
홍은주 팀장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이쯤에서 공개수사로 전환하는 것을 한번 고려해…….”
차은성이 급히 홍은주 팀장의 말을 끊었다.
“안 됩니다!”
단호했다.
홍은주 팀장이 움칫하고. 임범철 국장이 차은성과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차은성이 재빨리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겨우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우린 아직 이번 일의 전후 상황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공개수사로 전환했다가 핵심 용의자들이 국외로 도주하거나 잠적한다면 자칫 모든 수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차은성이 말을 멈추며 임범철 국장을 돌아봤다.
그러자 임범철 국장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경찰만 오물을 몽땅 다 뒤집어쓰겠지. 그리고 온 국민의 비난 속에서 난 사직할 수밖에 없을 테고. 이번 일에 나선 우리 정보국 직원들은 아마 강등 내지는 좌천을 당하겠지.”
“맞습니다!”
차은성이 눈을 반짝이더니 임범철 국장에게 말했다.
“그들을 경찰청으로 소환 조사한다면 기자들의 이목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영장 청구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애로점이 적잖을 겁니다.”
“하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저희 쪽에서 맡겠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움찔하는 사이.
“안 됩니다! 국장님!”
홍은주 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임범철 국장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죄를 지었어도 우리 경찰입니다. 저희가 아닌 다른 기관 사람들이 손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강경했다.
은근 경찰의 자존심과 위신. 그리고 명예와 같은 것을 들먹이는 눈치다.
차은성이 가만히 홍은주 팀장을 바라보았다.
“보안을 유지하며 이번 일을 신속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주도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정황을 모두 다! ……최대한 빨리! ……우리가 파악해야 한다는 겁니다.”
차은성이 임범철 국장을 돌아보며 무언의 동의를 구했다.
“휴우우우.”
임범철 국장이 재차 한숨을 쉬더니.
“맞는 말이야.”
라고 말하며 홍은주 팀장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을 우리에게 가져온 것이…… 그러니 맡기고. 본격적인 공조를 모색해 보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데.”
임범철 국장은 넌지시 말하며 홍은주 팀장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 한편으로 NIS 2차장 선우종을 생각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선우종과 자리를 한번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홍은주 팀장이 고분고분하게 차은성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범철 국장이 차은성에게 동의한 이상, 홍은주 팀장의 반대는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몇 번 고집을 부리다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심야의 한강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동영상을 생각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고리타분할 정도로 원칙과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한 순경이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다.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차은성은 답답했다.
“휴우우우.”
한숨을 쉬며 거듭 생각했다.
비록 경찰의 최말단인 일개 순경에 불과하지만. 민중의 지팡이라는 본분을 지키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상사나 동료들의 부패에 눈을 감고 자신의 손을 아주 조금만 더럽혔더라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우우.”
차은성이 한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순간.
타타탁.
우측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은성이 소리에 멈칫 서더니 돌아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한승희.
야간 조깅 중이었던 모양이다.
몸에 착 달라붙은 스포티한 복장과 허리에 착용한 레포츠용 혁대.
혁대에는 이런저런 사이즈의 작은 주머니가 몇 달려 있었다.
한승희가 서 있는 차은성을 지나치더니.
채 1미터에 못 미치는 거리를 두고 뒤돌아섰다.
그녀는 차은성을 마주 보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차은성이 그녀를 보곤 피식 웃었다.
여기서 다시금 한승희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차은성이 툭 던지듯 한승희에게 말을 건넸다.
“턱뼈와 엉덩이뼈는 괜찮습니까?”
그러자 한승희가 서더니 성난 표정을 지었다.
“아파요.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어어엄처어어엉 아파요!”
통증을 강조했다.
순간.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나이답지 않게 장난스럽게 말하는 한승희.
그녀의 말과 행동이 차은성의 웃음을 자아냈다.
무슨 속셈인지…….
“차 실장님!”
한승희가 웃는 차은성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웃는 것이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쏘리.”
차은성이 대꾸하며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차은성과 한승희가 나란히 산책로를 걸었다.
“집이 근처예요?”
한승희의 물음에 차은성이 대꾸했다.
“아니요.”
“그런데 이 시간에 웬 산책이에요?”
한승희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간혹 머리가 복잡하면 지금처럼 혼자서 산책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차은성이 적당히 둘러댔다.
“보기보다는 센티멘털한 성격인가 보네요.”
한승희의 말에 차은성이 실소했다.
“흣.”
한승희가 그런 차은성을 힐금거리더니 말했다.
“어때요?”
차은성은 말없이 묵묵히 걸음을 떼며 한승희를 돌아봤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일전의 일도 있고 하니 우리 집에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하고 갈래요?”
“지금 시간에 말입니까?”
차은성이 다소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싫어요?”
한승희가 묻자.
“그것이 아니라,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방문하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차은성의 대꾸에.
“호호호.”
한승희가 잠깐 웃더니 물었다.
“뭘 상상하는 거예요?”
민망함에.
차은성이 급히 말했다.
“상상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구요.”
한승희가 싱긋 웃더니 뜻밖의 것을 언급했다.
“한성 그룹…… 2팀장!”
순간.
“흑!”
차은성이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한승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놀람이란 감정을 내보이고 말았다.
더불어 당황이란 감정도…….
한승희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더니 차은성에게 돌아섰다.
그러곤 빤히 바라보았다.
“참 이상하죠.”
“…….”
“라센느 실장이 어느 한순간 한성 그룹 회장 직속의…… 2팀의 팀장이 되었다가 얼마 있지 않아 퇴사하고. 그와 거의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앨리게이터 펀드가 돌연…….”
이어지는 한승희의 말에 차은성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크게 헛바람을 삼켰다.
“헉!”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