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18)화 (118/208)

NIS의 천재 스파이 (118)

“은성아.”

“응.”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변종수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 여자.”

“…….”

“너, 천적 같아.”

“천적?”

“그래. 운명적으로 널 잡아먹을 암사마귀.”

“형!”

차은성이 부인하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저번 일!”

변종수의 말에 차은성이 멈칫했다.

“이번 일.”

“…….”

“드림 엔터 사장이 보통 여자가 아니야. 꼬리 아홉 개를 가진, 남자를 홀리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구미호야, 구미호.”

“…….”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여자에게 네가 두 번이나 당해.”

차은성은 변종수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조심해.”

변종수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말이야.”

“형!”

차은성이 변종수를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변종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드림 엔터 건은 은성이 네가 지불해야 해.”

“혀엉…….”

“우리, 돈 계산은 확실히 하자. 응?”

변종수가 냉랭하게 말하며 뒤돌아섰다.

“형!”

차은성이 부르자 변종수가 걸어가며 뒤돌아보았다.

“앞으로 그 여자 조심해. 너 정말 그러다가 그 여자에게 잡아먹히는 수가 있어.”

“…….”

“내가 정말, 은성이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니깐 새겨들어. 그런 여자 잘못 만났다가는 네 인생 종 쳐. 알겠지?”

변종수가 뒤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며 문으로 걸어갔다.

차은성은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뒤젖혔다.

눈에 들어오는 천장.

“제게 왜 이러십니까? 네에.”

차은성이 누군가에게 하소연했다.

*    *    *

오후 4시경.

차은성은 창가에 서서 이응천과 통화 중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

폰 너머에서 이응천이 분석 결과를 말했다.

의외로 매우 빨리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응천이 CSI 팀에 엄청 급하다고 마구 쪼아 댄 모양이다.

“개들의 공격성을 강화하는 약물이…… 옷에 남아 있는 알코올 성분이 의외로 많아. CSI 팀의 말로는 술을 마시며 흘린 것으로 보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고…….”

“…….”

“의도적으로 소주 두 병 정도를 모두 부어야 그 정도 알코올 양이 남을 수 있다고…….”

“…….”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습니다.”

“이 건, 우리에게 토스해.”

“…….”

“은성아.”

“토스할 때 토스하더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도 나름 이리저리 알아봐야 할 게 있습니다.”

“야아아.”

“일단은 선배가 믿을 수 있는…… 수사에 들어가십시오. 이 건은 경찰 쪽과도…….”

“…….”

“압니다만. 이유야 어찌 되었건 현직 경찰관 살해 사건이잖습니까? 경찰 쪽도 나름 배려를 해 줘야 합니다.”

“좋아. 다 좋아. 한 가지만 확실하게 약속해.”

“뭘……?”

“우리에게 토스한다는 거!”

“알겠습니다. 일단은 선배에게 토스. 약속합니다. 하지만 경찰도 어느 정도는 배려해 줘야 한다는 점, 양해해 주셔야 합니다.”

“좋아. 정 안 되면 서로 공조하면 되니깐.”

“네에. 그럼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그래.”

차은성은 이응천과의 통화를 끝내고 상의에 폰을 넣었다.

그러곤 창밖을 바라보며 낮은 침음을 흘렸다.

“음…….”

전재원 순경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해졌다.

“문제는 어떻게 살인자를 추적하느냐인데…….”

차은성은 막막했다.

실마리나 단서가 현재로서는 매우 적고 제한적이다.

임범철 국장에게 부탁한 전재원 순경에 대한 모든 자료가 일단 있어야 할 것 같다.

‘자료들을 뒤지고 살펴보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몇 시간 후.

차은성은 전재원 순경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교차로를 찾았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차은성은 그 말을 염두에 두고 주의 깊게 현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운이 따른다면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차은성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교차로를 한참 동안 돌아다녔다.

열십자의 교차로는 꽤 차량들이 붐볐다.

주변에는 편의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점포들이 있었다.

건널목 어귀에는 전동 카트를 세워 두고 요구르트를 비롯한 음료수를 파는 일명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차은성은 눈에 보이는 점포들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았다.

상당수의 점포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다수 카메라들이 가게 앞만 바라보도록 고정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원하는 영상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음…….”

차은성은 침음을 흘리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응?”

한 차량을 보고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

편의점에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트럭.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상단에 블랙박스가 부착되어 있었다.

부우우웅.

그때 도로에서 버스가 지나갔다.

귀에 들린 소리에 차은성이 돌아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버스용 불법 주차 차량 단속 장치.

일종의 카메라다.

차은성은 버스와 편의점 앞에 주차되어 있는 트럭의 블랙박스를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머릿속에서 번득였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움직이는 차량들.

차은성이 재빨리 도로를 훑어보았다.

“택시…….”

나직이 중얼거렸다.

눈에 다수의 택시가 도로를 오가고 있었다. 택시들 모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다.

이어.

차은성이 도로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최근 거의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가 달려 있다.

만약 전재원 순경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당일 저녁.

도로가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고 해당 차량에 블랙박스가 정상 작동 중이었다면.

혹시…….

영상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1년 365일 내내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버스들 중에 불법 주차 차량 단속용 카메라가 달려 있는 버스가 있다면.

당일 저녁.

교차로를 지나가던 택시들이 있었다면.

편의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면.

차은성은 눈을 반짝이며 교차로에 있는 신호등을 둘러보았다.

신호등 위에는 교통관제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당일 저녁 촬영된 영상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좋다면 아주 짧은 영상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보통 편의점에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트럭은 23시에서 01시 사이에 온다.

물론 특별한 몇몇 경우에 한해 지금처럼 낮에도 오긴 하지만. 해당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차은성은 눈을 반짝였다.

“영상들을 모두 모아 편집한다면…….”

뭔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혼자서 그 모든 영상을 확인하고 수거하려면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린다.

무리다.

자신을 도와줄 다수가 필요하다.

다수의 이들이 각기 버스, 택시, 편의점, 불법 주차 차량 등을 맡아 뛰어 줘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영상들을 모을 수 있다.

필요한 인원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 당장 해당 인원을 자신은 동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당 인원을 동원. 원하는 일을 하도록 움직일 수 있을까?

이응천이 생각나긴 하지만. NIS의 인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풀 경우, 과장이나 국장이 이를 알아채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또.

해당 인원을 동원하려면 보고가 필수다.

“으음……. 결국 임범철 국장밖에 없는 건가?”

경찰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교통관제 시스템을 관제하는 것은 경찰이니깐.

한데.

적잖은 인원수의 경찰이 동원되면 아무래도 보안이…….

차은성은 정보의 누설을 걱정하며 망설였다.

가만히 인도에 서서 도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고심하다가 결국 마음을 정했다.

차은성은 폰을 꺼내 임범철 국장에게 전화했다.

각별히 보안에 신경을 써 달라고 말하며 최대한 빨리 영상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네.”

임범철 국장이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하는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차은성은 폰을 상의에 넣고 다시금 교차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이런 곳을 무단이탈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뭔가 아주 급해서 서두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몇몇 허술한 점이 생긴다.

전재원 순경과 관련된 이번 사건에서 차은성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돌연한 상황을 급히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설프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날 저녁.

경찰청 인근에 있는 ×× 복국집.

앉은뱅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임범철 국장과 차은성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복국을 먹으며 소주를 곁들였다. 그리고 식사와 반주를 하는 와중에,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참 후.

똑, 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임범철 국장이 손에 쥔 수저를 내려놓으며 문을 돌아보았다.

“들어와.”

말하는 것이, 누가 노크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차은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드륵.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수수한 옷차림.

얼핏 보면 OL로 착각할 모습이다.

서른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홍은주.

테이블로 천천히 걸어와 서더니 그녀가 임범철 국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임범철 국장이 미소 짓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네.”

홍은주 경감이 대답하더니, 테이블 좌측 방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임범철 국장이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서로 인사하지.”

임범철 국장의 말에 차은성과 홍은주 경감이 서로 마주 보았다.

“이쪽은 우리 정보국의 몇 안 되는 에이스 중 한 사람인 홍은주 팀장.”

“…….”

“이쪽은 일전에 말한 차은성 팀장.”

임범철 국장이 이미 홍은주에게 차은성에 관해 말한 눈치다.

차은성은 말없이 홍은주 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홍은주 팀장 역시 고개를 까딱였다.

“홍 팀장.”

“네. 국장님.”

“내가 말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네. 팀원들에게 지시하여…… 지금 영상들을 탐문하며 모으는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워낙 범위가 넓어…….”

홍은주 팀장이 말끝을 흐리며 차은성을 힐긋거렸다.

그녀와 팀원들에게 뜻하지 않은 짐이라고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떠안겼다.

그 점을 감안하면 차은성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순 없다.

하지만 임범철 국장에게 들은 설명을 염두에 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교통경찰이라고는 하지만 현직 경찰이 살해당했다. 누가, 왜 죽였는지 필히 알아내야 한다.

홍은주 팀장이 생각하는 사이.

임범철 국장이 물었다.

“전재원 순경의 상사와 동료들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었나?”

“이미 내사에 들어갔습니다만 보안 때문에 아무래도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가 아니야.”

임범철 국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현직 경찰관이 죽었고, 상사와 동료들이 부패 경찰일 가능성이 커.”

“…….”

“어쩌면!”

“동료 경찰관인 전재원 순경의 죽음에 깊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어.”

임범철 국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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