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17)
음성적으로 후다닥 열렸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진다.
그리고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판돈이 오간다.
전형적인 도박!
그렇게 볼 수 있다.
‘마땅한 실마리나 단서가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사를 시작해야 할지……. 이거 참, 난감하네.’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뎠다.
찰나.
척.
걸어가는 차은성의 왼쪽 어깨를 누군가가 잡았다.
차은성은 즉각 반응했다.
의식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대응했다.
왼쪽으로 돌아서며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팔을 낚아챘다.
동시에.
어느새 힘껏 말아 쥔 오른손 주먹으로 상대의 명치를 강하게 끊어 쳤다.
퍽!
이어.
주먹을 활짝 펴며 장근으로 상대의 턱을 강하게 밀어 올렸다.
그런 다음으로.
왼발로 상대의 오른발 뒤꿈치를 아주 세게 걷어찼다.
과당탕.
상대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내.
“아아아아악!”
주변 허공을 갈가리 찢는 듯한 여성의 비명이 터졌다.
순간.
차은성이 당황했다.
“흐윽!”
자신이 공격하고 쓰러뜨린 상대는 다름 아닌 여자였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사장 한승희.
그녀가 왜 야심한 시각에 한강 공원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자신의 어깨를 건드린 건지도…….
* * *
×× 병원 응급실.
침대에 한승희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왼쪽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서서, 손에 쥔 뢴트겐 사진을 형광등에 비춰 보았다.
“……명치에 심하게 멍이 들긴 했지만 그 외에 다른…… 문제는 꽤 선명하게 금이 간 턱뼈와 엉덩이뼈인데…….”
의사를 돌아보는 한승희가 엄청 화난 눈빛을 띠었다.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치료보다는…… 일단 금이 간 뼈가 자연스럽게 다시 붙기를 기다리는 것이…….”
남의 일처럼 말하는 의사였다.
한승희의 화는 의사를 향하지 않았다.
의사의 뒤에 서 있는 차은성을 향했다.
밤에 조깅하다가 우연히 차은성을 보고 불렀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응이 없었다.
자신이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주변에 사람이 몇 있어, 큰 목소리로 차은성을 부르는 것이 주저되었다.
결국.
한승희는 차은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왼쪽 어깨를 잡았다.
설마.
차은성이 그런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상상에 상상도 하지 못한 터라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며,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처럼 엄청 화가 나는 한승희다.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차은성이 그렇게 공격한 것인지…….
한편.
차은성은 의사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내심 움찔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한승희의 엄청 따가운 눈초리가 훤히 느껴진다.
이만저만 곤란한 것이 아니다.
실수인데. 한승희가 이해해 줄 리가 없다.
졸지에 여자를 마구 구타한 치한 내지는 무슨 변태 같은 취급을 받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나누는 의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차은성을 보았다.
차은성이 자신이 그랬노라고 자백하며 순전히 불의의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인 대처였음을 강하게 피력했지만.
요즘 테이트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다 보니 의사가 은근 색안경을 쓰고 차은성을 보았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누워 있는 한승희에게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한 사장님. 저는 한 사장님인 줄 모르고 그만…….”
차은성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모르면 여자를 마구 때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래도 되는가 보죠?”
아니나 다를까?
한승희가 엄청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매우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단단히 열 받은 모양이다.
입이 있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차은성이라.
“죄송합니다. 정말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별안간 누가 제 어깨를 짚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어깨를 짚은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남자였으면 아주 패 죽였겠네요.”
한승희의 성난 말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아무래도 최선일 것 같다.
“왜 말이 없어요?”
“…….”
“제 말이 말 같지도 않다, 뭐 그런 건가요?”
한승희가 전형적인 여자들의 코스를 밟았다.
말하면 말한다고 한 소리.
말이 없으면 말이 없다고 한 소리.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제 말이 안 들려요? 제가 지금 마네킹이나 무슨 석상하고 얘기 중인가요?”
“…….”
차은성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말해도 욕먹고, 말하지 않아도 욕먹는 상황이고 처지다.
그러니 그저 머리를 숙이고 난 죽었습니다, 라고 행동으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승희는 침묵한 차은성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아님.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지.
예의 성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이봐요!”
그 바람에 주변에 있는 이들이 그녀를 돌아보며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그 눈치 때문에 한승희는 차은성에게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저 아는 척했을 뿐인데 턱뼈와 엉덩이뼈에 금이 갔다.
엄청 운이 좋은 한승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차은성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었음을.
여자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 빨라, 한승희가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한승희라, 그녀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낮은 목소리로 차은성을 위협했다.
“여자 폭행죄로…… 경찰을 부를 거예요.”
아주 단단히, 엄청 화가 났음을 모를 수가 없다.
차은성은 다시금 사과하며 병원비를 포함하여 치료비 일체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저!”
“…….”
“돈 많거든요!”
“…….”
“지금 제 앞에서 돈 많다고 자랑하시는 거예요?”
한승희가 버럭 화냈다.
차은성은 일절 말하지 않았다.
정중하게.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라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은성은 거듭거듭 사과했다.
자칫하다가는 NIS 요원이 일반 여성을 폭행했다는 찌라시가 돌 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기분으로는 그랬다.
* * *
무슨 리조트처럼.
한승희가 사는 아파트가 한강 공원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한승희가 야간 조깅이라는 취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차은성은 식탁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았다.
한승희가 싱크대에 서서 뒤돌아보았다.
“커피?”
“아, 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차은성의 말에.
“우리 집에 그런 거 없어요.”
한승희가 딱 잘라 말하더니 한편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걸어갔다.
한승희의 대꾸에 차은성은 무안했다.
‘그럴 거면 왜 물어봐?’
볼멘 목소리로 내심 중얼거리는 사이.
한승희가 컵을 내려놓더니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찰칵.
그러자 이내 커피 머신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이이잉.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한승희가 커피가 든 잔을 가지고 정수기로 가더니.
꾹.
다시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정수기에서 얼음들이 컵으로 떨어졌다.
제빙 기능이 있는 정수기인 듯.
퐁당, 퐁당.
컵에 얼음이 떨어지는 작은 소리가 몇 들렸다.
이내.
한승희가 앉은 차은성의 앞에 컵을 내려놓더니.
“마시고 있어요.”
말과 함께 방으로 걸어갔다.
“고맙습니다.”
차은성은 말하며 컵을 들었다.
몇 모금 커피를 마시는 사이, 한승희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차은성은 한승희의 아파트를 둘러봤다.
상당히 넓다.
못해도 40~50평은 될 것 같다.
사는 이가 여성인 한승희라 그런지.
인테리어가 한눈에 봐도 여성 취향이다. 아기자기하게 꽤 잘 꾸며져 있다.
벽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몇몇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승희가 나름 인테리어 감각이 있는 것 같다.
* * *
잠시 뒤.
방에서 나온 한승희가 커피를 마시는 차은성에게 걸어가더니.
척.
앞에 종이와 볼펜을 내려놓았다.
차은성은 영문을 몰라 한승희와 종이, 펜을 번갈아 보았다.
뭡니까?
무언으로 묻자 한승희가 커피 머신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피해 보상!”
“예?”
차은성이 반문하며 손에 쥔 컵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커피 머신에 컵을 내려놓고 버튼을 누르는 한승희를 바라보았다.
그새.
한승희가 돌아보았다.
“경찰 부를까요? 콩밥 한번 먹어 보시겠어요?”
“아, 아닙니다.”
차은성의 말에 한승희가 커피 머신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적고…… 연도 월일을 기재한 후 이름 쓰고 사인하세요.”
한승희의 말에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앓는 소리를 흘렸다.
‘끄응. 빌어먹을. 어제, 오늘 왜 자꾸 경찰과 엮이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서의 말처럼 무슨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은 일진이다.
사나워도 이렇게 사나울 수가 있는 건지…….
썩을!
* * *
한승희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종이에 받아 적는 차은성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붉으락푸르락.
이만저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한승희는 라센느의 회원을 원했다. 그리고 몇몇 옵션을 요구했다.
라센느는 회원제다.
연회비가 최소 1억 이상이다. 그리고 돈이 있다고 해서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선별하여 회원으로 받는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한승희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경영하는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라센느의 회원으로 만들려 했다.
그에 차은성이 거부하려 했지만.
“아…… 턱이야. 너무 아파서 커피도 못 마시겠네.”
알아챈 듯이.
한승희가 그렇게 말하며 은근 압박을 가했다.
‘아, 놔아!’
차은성은 도리 없었다.
한승희가 원하는 대로 종이에 적고 사인할 수밖에.
그녀가 원하는 피해 보상을 해 줄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호호호.’
한승희는 커피를 마시며 종이에 자신의 말을 적는 차은성을 지켜보았다.
‘잘됐어.’
이제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자 아이돌이나 배우들은 라센느의 풀 케어를 받는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
‘엄청 남는 장사야. 호호호호.’
누가 사업하는 사람 아니라고 할까 봐.
한승희는 커피를 마시며 내심 희희낙락했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한승희의 아파트를 나왔다.
“밤이 늦었으니깐 빨리 돌아가세요.”
한승희가 그렇게 말하고는 냉정하게 문을 쾅! 닫았다.
차은성은 뒤돌아서며 이를 악물었다.
빠득!
속이 터질 것 같다.
한승희에게 자신이 당했음을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칼자루를 쥔 한승희가 칼을 마구 휘둘렀다. 그 칼에 자신이 일방적으로 크게 다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온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 * *
다음 날 아침.
출근한 변종수에게 한승희에 관한 것을 말하며 의논하려 했다.
그런데 말하자마자.
“너, 미쳤니?”
변종수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차은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젯밤의 일을 있는 그대로 다 말했다.
“나더러 콩밥 먹겠느냐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나로서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형. 미안해.”
“…….”
변종수는 침묵했다. 가만히 차은성을 보더니.
“휴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