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16)
NIS, CSI 팀.
국과수보다 더 뛰어나다. NIS의 빵빵한 예산 지원과 더불어 국과수도 가지지 못한 최첨단 장비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NIS의 각국들 중에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
일명.
국제범죄센터.
그곳을 통하면 얼마든지 각종 분석과 검사가, 최단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
한편.
예서가 차은성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오빠는 뭔가 있어!’
딱히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콕!
찍어 이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예서는 이전부터 오빠 차은성에게 뭔가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동전을 휙휙 날려 개들을 단숨에…….’
예서는 차은성이 개들을 죽였을 때를 상기했다.
영악하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적잖게 영민한 예서였다.
* * *
그날 저녁.
서초구 내곡동 인근에 있는 막걸리집.
드럼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눴다.
테이블에는 각종 반찬과 모듬전 대짜가 놓여 있었다.
막걸리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NIS 국제범죄센터 소속 3팀장 이응천.
맞은편에 앉은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난, 국제범죄센터 담당이야.”
“선배. 내게 빚 있죠?”
“이!”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마주 보며 인상 썼다.
차은성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그러고는 무슨 빚쟁이처럼 독촉했다.
그에 이응천이 고개를 우로 돌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휴우.”
빚을 갚으라고 독촉 아닌 독촉을 하는 차은성.
이응천은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망할!”
“선배. 내가 정식으로 CSI 팀에 의뢰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국장님에게 보고가 올라가. 그럼 귀찮아진다고.”
“그럼, 나는?”
이응천이 차은성에게 물었다.
“선배는 적당히 다른 것들 사이에 끼워 넣어서…… 분석 의뢰할 수 있잖아.”
“이 죽일 놈아!”
“내가 이번 일 절대 안 잊을게.”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차은성이 말했다.
“나중에 선배 부탁!”
이응천이 순간 흠칫했다.
“꼭 들어주면 되잖아.”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은근 반색했다.
“확실히!”
“확실히!”
차은성이 반복하자 이응천이 왼쪽 의자에 있는 보자기를 돌아보았다.
차은성의 설명을 들었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
“선배.”
차은성이 이응천을 불렀다.
그러자 이응천이 마주 보았다.
“알았다. 나도 뭔가 짚이는 것이 있으니 분석을 의뢰해 보마.”
순간.
차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선배!”
“묻지 마!”
이응천이 말했지만 차은성은 못 들은 척하며 물고 늘어졌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있는 거죠? 그렇죠?”
결국.
이응천은 주변을 둘러본 다음.
차은성을 마주 보며 알아듣기 어려운 나직한 목소리로 심중 생각하던 것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우연히…… 러시아 마피아 애들 살인 수법을…… 스프레이로 몰래 대상자의 몸에 흥분제를 분사한 다음.”
“…….”
“……맹견들에게 물려 죽으면 영락없는 사고사로…… 누가 알겠어? 사고사를 위장한 타살이라는 걸 말이야.”
“…….”
“그리고 흥분제 같은 것은 투견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투견들을 투견장으로 들여보내기 전에 흥분제를 주사하여 공격성을 최대한 끌어 올려…….”
“…….”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 사고사를 위장하여 그 교통경찰을 죽였다는 건데……. 러시아 마피아들의 수많은 살인 수법 중 하나를 그놈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이응천이 직업적 관심을 표명하며 궁금하다는 심중을 내비쳤다.
맡은 업무가 국제범죄센터다.
러시아 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시칠리아 마피아 등등.
전 세계에서 한다하는 범죄 조직이 주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응천은 마음 한구석으로 흥미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일반인이 러시아 마피아들의 살인 수법 중 하나를 알 리가 없다.
즉.
그 교통경찰을 죽인 살인자가 어쩌면 평범한 일반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닌 말로.
러시아 마피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부산 초량에 있는 차이나타운 바로 옆에 러시아타운이 있다.
돈과 인맥이 있으면 러시아타운을 통해 총기를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차이나타운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해당 두 타운은 길 하나를 사이에 삼합회와 러시아 마피아와 연결된 두 세력이 대치를 이루는, 부산판 서울 대림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응천이 계속 말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 살인자가 러시아 마피아 쪽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면…….”
이응천이 눈을 반짝였다.
담당 업무와 겹친다.
그리고 국내에서 러시아 마피아 쪽과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는 이가 있다?
조사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사이.
차은성은 이응천이 러시아 마피아의 살인 수법을 언급한 것에 내심 흠칫했다.
자신 역시 살인 수법들 중 몇 개를 안다.
러시아 마피아의 모든 살인 수법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소련 연방 해체 후, 러시아 마피아 조직은 엄청난 속도로 그 수가 불어났다.
현재 각 도시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수를 러시아 정부는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러시아 전 국토를 활동 영역으로 하는 거대 조직 몇을 주시할 뿐이다.
* * *
23시 15분.
한강 둔치.
오가는 이들이 없는 외진 곳에 위치한 간이 주차장에 한 대의 고급 세단이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었다.
차내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임범철 경찰청 정보국장 & 차은성.
제법 오랫동안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음…….”
임범철 국장이 낮은 침음을 흘렸다.
차은성이 언급한 죽은 교통경찰 전재원 순경.
아직 확인되지 않은, 그저 심증일 뿐이지만.
살인자가 러시아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면 보통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죽었다.
“……뭔가에 쫓기듯이 급하게…… 그래서인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어쩌면 단순 사고사가 아니라 고의적인 살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차은성은 말하며 우측에 앉은 임범철 국장을 힐금거렸다.
경찰 내에서 자신이 알고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고위 간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임범철 국장밖에 없다.
그 때문에 연락했고. 지금 이렇게 나란히 뒷좌석에 앉아 전후를 상세히 설명하며 관련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이윽고.
차은성의 설명이 다 끝나자.
“휴우우.”
임범철 국장이 차체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교통순경이라고 해도 경찰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건지!”
임범철 국장은 화냈다.
전재원 순경 사건을 담당한 현직 경찰관에 대한 분노를 보란 듯이 내색했다.
울화가 치밀 정도로 너무 한심하다!
임범철 국장의 감정은 그와 같았다.
차은성이 그런 임범철 국장의 기색을 살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현직 경찰이 살해당했는데.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겠나?”
임범철 국장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우리 경찰이 먼저 인지하고 나섰어야 했는데.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임범철 국장은 매우 민망해했다.
현직 경찰관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자세히 조사해 보지 않고 덜렁 사고사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지어 버렸다.
그런데 차은성이 단순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며, 뒤에 국제적인 범죄 조직이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 왔다.
임범철 국장은 솔직히,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무슨 수를 쓰든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흔한 말로 쪽팔렸다!
한편.
차은성이 말했다.
“일단은 경찰이 갖고 있는 전재원 순경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합니다. 인사 서류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임범철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고 우리 정보국 차원에서도 알아보겠네.”
“제가 나서지 말아 달라고 말하면, 제 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임범철 국장이 흠칫하더니 돌아봤다.
“자네!”
“혹시나 해서 그럽니다.”
“무슨 뜻인가?”
“전재원 순경 주변이나 정보국 내에 부패 경찰관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잖습니까?”
“끄응.”
차은성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정 정보국이 움직이겠다면, 소수의 정예 팀을 꾸리셔서 은밀하게 수사에…… 이번 일은 각별한 보안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국장님.”
차은성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
“그러니…….”
차은성의 제안에 임범철 국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궁금한지 물었다.
“NIS에서 어떻게 전재원 순경의 살인 사건을 알게 된 건가?”
임범철 국장은 사실상 살인 사건으로 단언하고 NIS가 알게 된 경위를 물었다.
차은성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흠칫했다.
아직 NIS는 전재원 순경 사건을 모른다.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과 인연에서 시작된 사건이다.
차은성은 마땅히 말할 핑계가 생각나지 않아 예서가 한 말을 입에 올렸다.
“글쎄요. 아마 억울하게 죽은 전재원 순경의 혼령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엄청 억울했을 겁니다. 동료와 상사가 부인 면전에서 경찰의 수치라고 폭언을…….”
차은성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참담한 심정이다.
경찰청 정보국장으로서.
아니.
한 사람의 경찰관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일단은…….”
차은성은 임범철 국장과 몇 마디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후.
덜컥.
문을 열고 세단에서 내렸다.
그러곤 머리에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는 상의 좌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차은성은 천천히 걸으며 간이 주차장에서 멀어졌다.
서서히.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세단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주차장을 나와 컴컴한 진입로를 저속 주행하기 시작했다.
* * *
야심한 밤.
한강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가는 차은성.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신분 탓에, 하는 일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 버린 버릇과도 같은 경계심.
둘러보는 차은성의 눈에 몇몇 이들이 보였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조깅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벤치에 앉아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방 웃고 떠들었다.
차은성은 걸어가며 러시아 마피아를 생각했다.
만에 하나.
이응천의 짐작대로 러시아 마피아가 죽은 전재원 교통순경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면, 상황이 예상 밖으로 커질 수 있다.
‘어쩌면 NIS 국제범죄센터와 경찰청의 공조가 이루어질지도…….’
차은성은 심중 중얼거리며 전재원 교통순경의 죽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사를 시작해야 할지 실마리를 생각해 보았다.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단서가 없다.
하나 있다면 흥분제!
투견장에서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라면 추적하기가 매우 어려울 텐데.
‘틀림없이 음성적으로 거래될 게 뻔한데.’
차은성은 투견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