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10)화 (110/208)

NIS의 천재 스파이 (110)

코드 89

1등석 앞.

승무원들만의 공간에 비치된, 벽에 걸린 전화의 수화기를 사무장 이요한이 들었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차은성에게 돌아서며 수화기를 내밀었다.

수화기를 받아 든 차은성은 주저 없이 귀에 댔다.

“여보세요.”

“기장 조국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장님.”

“코드 89 발령하신 분 맞으십니까?”

“네.”

“콜 넘버가 어떻게 되십니까?”

차은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77249입니다.”

“…….”

기장이 침묵했다.

차은성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옆에 서 있는 사무장 이요한을 돌아봤다.

빙긋.

살짝 미소 지었다.

사무장 이요한은 굳은 얼굴이었다. 내심 긴장하고 있음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기내에 탈북민이 있다.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태국 공항 경찰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기내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테러범이 아시아나 302편에 탑승해 있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그렇게 허위 신고를 하면 태국 공항 경찰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폭탄의 경우.

탑승한 승객들을 모두 기내에서 내리게 한 후, 기내를 샅샅이 수색. 폭탄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럼.

기내에서 내린 승객들 중 이정선을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낚아채 갈 수도 있다.

테러 용의자로 찍힐 경우.

이정선은 태국 공항 경찰에 의해 강제로 기내에서 내리게 된다.

그리고 태국 공항 경찰에 의해 1차 조사를 받을 것이다.

그때.

북한 대사관에서 외교 경로를 통해 자국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신병 인도를 요구하면.

태국 당국에서는 이정선이 탈북민이라는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북한 대사관으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

이요한은 기내 사무장으로서 그와 같은 상황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코드 89 상황은 그로서는 처음이다. 경험이 없는 관계로 이요한 사무장의 심중 긴장은 생각 외로 매우 크고 강했다.

탑승한 승객. 탈북민 이정선은 무조건 보호해야 하기에.

그녀가 태국 공항 경찰에 의해 기내에서 강제로 끌려 나가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 하기에.

북한 대사관으로 이정선의 신병이 넘어가면 그녀가 100% 죽는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기에.

사무장 이요한은 내심 몸속의 피가 말라 가는 과도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임감으로 해당 긴장감에 대항하며 침착해지려 마음속으로 엄청 노력 중이다.

이윽고.

“확인되었습니다.”

귀에 댄 수화기 너머에서 기장의 다소 흥분한 음성이 들렸다.

그러자 차은성이 말했다.

“기장님.”

“네.”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의 목숨이 기장님께 달려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곧 보안 요원이 찾아뵐 겁니다.”

“네.”

“저희 사무장을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예.”

차은성이 대답하며 귀에서 수화기를 떼어, 옆에 서 있는 사무장 이요한에게 내밀었다.

이요한이 움칫하더니 수화기를 받아 귀에 댔다.

“사무장 이요한입니다.”

“사무장.”

“네, 기장님.”

“지금부터 우리 아시아나 302편은 코드 89 매뉴얼에 따라 비행합니다.”

“네, 기장님.”

“만전을 기해 주세요.”

“네.”

“그리고 기내 보안 요원에게 코드 89 상황을 전달해 주고요.”

“예에. 기장님.”

“그럼.”

기장이 전화를 끊자.

사무장 이요한이 수화기를 벽에 원래 있던 자리로 걸었다.

철컥.

이어.

사무장 이요한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보안 요원이 올 겁니다.”

차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재킹 때문에 기내에는 한두 명의 항공사 보안 요원이 의무적으로 탑승한다.

*    *    *

얼마 후.

보안 요원을 만난 후, 차은성이 다시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팀원들과 안용국, 이정선은 그런 차은성을 보며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    *    *

기장 조국현이 좌측 조종석에 앉은 부기장 정일우를 돌아봤다.

“코드 89 상황은 처음이지?”

“네.”

부기장 정일우는 긴장한 티가 났다.

알아본 기장 조국현이 부기장 정일우를 다독이듯 말했다.

“우린 매뉴얼대로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기장님.”

“탑승 수속 마감 시간이 되자마자 기내 문이 닫힐 거야. 그 즉시 관제탑에 활주로로 이동 신청을 해.”

“네.”

“침착하게만 하면 돼.”

조국현 기장이 웃으며 부기장 정일우를 안심시키려 했다.

*    *    *

정확하게 수속 마감 시간이 되자 승무원들이 신속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승객들에게 이륙하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방송을 하며 이륙 전의 각 단계를 빠르게 밟았다.

그러는 동안.

부기장 정일우는 관제탑과 교신. 활주로 이동을 승인받았다. 아울러 이륙할 활주로를 배정받아, 해당 활주로로 기체를 조종, 이동시켰다.

기장 조국현은 그사이 기체를 서둘러 점검하며 사무장 이요한과 통화했다.

“모든 이륙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장님.”

“OK. 수고했어요. 곧 이륙합니다.”

“네.”

기장 조국현은 통화를 끝내며 관제탑과 교신. 이륙 승인을 받았다.

이내.

아시아나 302편이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주행하기 시작했다.

차츰 속도를 높이더니 이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휴우우.’

차은성은 무사히 이륙이 이루어져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라도 태국 공항 경찰이 기내로 강제 진입하지는 않을까, 내심 무척 걱정하며 불안해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어떻게 생길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나름 이정선의 안전을 생각하여 코드 89를 통보했다.

다행히 걱정하던 해당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고, 아시아나 302편은 무사히 이륙했다.

‘아마 40~50분 내로 태국 영공을 빠져나와 국제 공역으로 들어설 거야. 일단 국제 공역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태국 영공 내에서의 민항기에 대한 관제권은 태국 정부와 태국 민간 항공국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항기가 국제 공역에 들러서면 해당 관제권은 사라진다.

태국에서 아시아나 302편에 회항을 요구해도 국제 공역이라고 대꾸하며 해당 요구를 무시해도 된다.

그리고 한국 영공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한국 정부와 민간 항공국이 해당 민항기에 대한 관제권을 가지게 된다.

*    *    *

아무 일 없이.

아시아나 302편은 태국 영공을 벗어나 국제 공역으로 들어섰다.

사무장 이요한이 찾아와, 주변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막 국제 공역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요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OK!”

차은성이 고함치며 앉은 좌석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사무장 이요한이 흠칫하더니 이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팀원들과 안용국, 이정선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왜 그래요?

다들 무언의 시선으로 물었다.

차은성은 그들을 돌아보며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내.

삐이이이!

조영국이 휘파람을 불며 좋아했다.

“이야아아!”

신일권이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숙였다.

“호호호.”

최라경은 보란 듯이 웃었고, 이정선은 안용국을 돌아봤다.

“오빠!”

“됐어. 이제 다 된 거야.”

안용국은 엄청 기뻐했다.

차은성은 이요한 사무장을 돌아보았다.

“혹 기내에 샴페인 있습니까?”

묻자.

“있습니다!”

사무장 이요한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가 좀…….”

“바로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사무장 이요한이 거듭 웃었다. 그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사이.

주변 1등석 좌석에 앉은 승객들이 차은성과 팀원들. 그리고 안용국, 이정선을 돌아봤다.

―뭔데 기내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다들 그런 심정을 내색했다.

일부 1등석 승객이 승무원들을 불렀다. 그러곤 차은성과 다른 이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항의했다.

승무원들은 그런 1등석 승객에게 뭐라 대답했다.

그러자 1등석 승객이 차은성과 다른 이들을 돌아보더니 더는 항의하지 않았다.

그사이.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은 하늘을 날아갈 듯이 엄청 기뻐했다.

*    *    *

한편.

기뻐하는 이들은 더 있었다.

사무장 이요한을 제외한 승무원들이 만면에 밝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조종실에 있는 기장 조국현과 부기장 정일우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우우.”

이제 긴장이 조금 가시는 것 같다.

기장 조국현과 부기장 정일우가 서로 돌아보더니.

순간.

“하하하하.”

“하하하하.”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기장 조국현과 부기장 정일우가 크게 웃었다.

*    *    *

몇 시간 후.

아시아나 302편은 국제 공역을 빠져나왔다.

몇십 분.

아시아나 302편은 한국 영공으로 들어섰다.

기장 조국현은 낭랑한 목소리로 제주 관제소를 호출했다.

“아시아나 302. 아시아나 302…… 제주 관제소 나와라. 라저.”

치, 치이익.

잡음이 다소 들리더니.

“제주 관제소. 제주 관제소…… 아시아나 302편. 제주 공역으로 들어선 것을 환영한다.”

제주 관제소가 관제권을 가진 공역으로 아시아나 302편이 들어선 것을 알렸다.

―이제부터 관제권을 우리 제주 관제소가 행사하니깐 군소리 말고 우리 지시를 잘 따라라. 응.

그런 의중의 통신이었다.

기장 조국현이 픽 웃더니.

“아시아나 302, 아시아나 302. 제주 관제소 나와라. 라저.”

“제주 관제소. 당소. 제주 관제소. 말하라. 아시아나 302.”

조국현 기장이 부기장 정일우를 힐금거리며 말했다.

“아시아나 302. 아시아나 302…… 코드 89. 통보한다. 반복한다. 코드 89 통보한다.”

“…….”

제주 관제소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눈치다.

기장 조국현이 미소 지으며 다시 제주 관제소를 호출했다.

“제주 관제소, 제주 관제소. 당기 아시아나 302. 인천국제공항까지 항로 우선권을 신청한다. 반복한다. 인천까지 항로 우선권을 신청한다.”

바다에 해로가 있듯 하늘에 항로라는 것이 있다.

해당 항로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공군 전투기의 스크램블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항로 우선권이 승인되면 타 항공기보다 최우선하여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해당 항로의 앞에 타 민항기가 있으면 무조건 항로를 변경.

최우선권을 가진 민항기에게 항로를 양보해 주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처럼 동북아시아의 허브 공항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여 기의 민항기들이 이륙하고 착륙한다.

일테면.

항로는 도로이고, 민항기는 차라고 할까?

도로가 막혀 차들이 정차해 있는 경우.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119 앰뷸런스.

조국현 기장은 아시아나 302편에 그와 같은 우선권을 달라고 제주 관제소에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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