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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00)화 (100/208)

NIS의 천재 스파이 (100)

그녀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보이려고 내심 안간힘을 썼다.

‘이상한 티를 내서는 안 돼! 꼬투리 잡힐 일은 무조건 피해야 해!’

이정선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며 긴장의 줄을 놓지 않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김양호와 두 남자에게 이상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그녀 나름 매우 애썼다.

그러는 동안.

박정희와 김양호가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았다.

이정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상당히 긴장한 박정희다.

이상한 느낌을 받거나 낌새가 이상하면 김양호는 언제든지 대상자를 평양으로 보낼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다들 김양호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

그 권한 덕분에 김양호는 뒤로 꽤 상납을 받아 챙긴다. 그로 인해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에 쇼핑몰에 올 수 있는 것이다.

식당 종업원인 박정희와 이정선이 쇼핑몰에 올 수 있는 건, 종종 식당에 온 한국 손님들이 건네주는 팁 덕분이다. 모으면 상당한 금액이라 가끔 그 돈으로 화장품을 사려고 지금처럼 쇼핑몰을 찾는다.

멀찍이 떨어진 모 점포에 서 있는 안용국.

진열된 상품들을 보는 척하며 이정선, 박정희, 김양호와 그 일행을 힐금거렸다.

‘이런!’

안용국은 심중 매우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김양호와 함께 서 있는 두 남자.

그들의 왼쪽 가슴에 달린 김일성 배지.

입은 인민복.

북한 사람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혹시……?’

김양호와 두 남자가 이정선을 잡으러 온 것은 아닌지.

안용국은 의심했다.

그 때문에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며 혼란스러워했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단은…….’

안용국은 꺼낸 폰으로 대기 중인, 고용한 이들에게 재차 연락했다.

빨리 계획을 중지해야 한다!

안용국은 매우 다급한 눈빛을 띠었다.

‘정선아…….’

마음속으로 이정선을 부르며 걱정했다.

그녀가 끌려가지 않을까?

안용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정 안 되면!’

안용국은 최악의 경우.

이정선이 김양호와 두 남자에게 끌려가게 된다면 고용한 이들과 함께 그들을 덮쳐, 이정선을 구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잠시 뒤.

김양호와 두 남자는 박정희, 이정선과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갔다.

안용국은 그 광경에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우우.”

다행이다.

이정선이 끌려가지 않았다.

안용국이 안심하며 손을 들었다.

이마를 쓸어 넘기는 안용국의 손에 상당한 양의 땀이 묻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손에 묻은 땀이 긴장의 강도를 무언으로 말하는 것 같다.

안용국은 박정희와 나란히 걸어가며 은근슬쩍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보는 이정선을 바라보았다.

‘정선아…….’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뛰어가 이정선의 손을 낚아채어 그대로 달아나고 싶다.

하지만 그럴 경우.

얼마 가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 것이다. 북한의 악랄함을 굳이 말하면 입만 아프다.

탈북자들을 어떻게 잡는지, 어떻게 다루는지, 훤히 아는 안용국이다.

이정선과 사귀기 시작하며 그 나름 북한과 탈북자들에 관해 알아보고 공부했다.

안용국은 시야에서 멀어지는 박정희와 이정선을 바라보며 이를 힘주어 악물었다.

빠득!

그는 결연한 눈빛을 번쩍였다.

‘반드시!’

이정선을 기필코 탈북 시키겠다.

안용국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프놈펜 외곽 외국인 주거지.

치안 때문에 무장 보안 요원들이 24시간 상주한다.

주거지 좌측 경계에 위치한 주택.

천장에서 완만하게 팬이 돌아가고 어디선가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중앙에 있는 테이블 앞에 선 차은성이 고개를 숙였다.

프놈펜 지도.

차은성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새.

조영국, 신일권, 최라경, 이창희가 테이블 주변에 서서 지도와 차은성을 번갈아 보았다.

“신일권.”

차은성이 부르자.

“네, 팀장.”

신일권이 대답했다.

“오늘부터 넌 북한 대사관을 마크해.”

차은성의 말에 신일권이 흠칫했다.

“북한 대사관을 말입니까?”

신일권의 반문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 대사관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그리고 이상하다 싶으면 즉각 보고하고. 불필요한 상황이나 충돌은 무조건 피해.”

차은성이 말하며 팀원들을 둘러봤다.

“다들 이번 임무에 관해 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드러나는 일은 없어야 해. 만에 하나 이번 일에 회사가 개입했다고 북한 애들이 생각하는 순간!”

“…….”

“자칫하면 서로 피를 보는 유혈 충돌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차은성이 팀원들을 한 사람씩 마주 보며 다그치듯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차은성은 조영국을 돌아봤다.

“선배.”

“말만 해.”

“프놈펜 경찰을 마크해 주십시오. 그들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OK.”

조영국이 대답하자 차은성은 최라경을 돌아보았다.

“최라경.”

“네.”

“넌 북한 식당을 마크해. 절대 널 드러내서는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차은성이 이창희를 돌아봤다.

“이창희.”

“네. 팀장.”

“여기서 팀원들과 통신 및 연락. 그리고 백업을 맡아…… 그 외에 장비들을 챙기고 세팅하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유사시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

“네.”

이창희의 대답에 차은성이 재차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난 일이 있어 잠시 외출할 거야.”

차은성의 말에 팀원들이 흠칫했다.

“일 때문이니깐 알려고 하지 마!”

차은성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고.

차은성은 조영국을 돌아봤다.

“선배. 잠시 저 좀 보시죠.”

조영국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여 초 후.

차은성은 조영국과 함께 창가에 나란히 섰다.

창 너머로 잔디가 깔린 넓은 뜰이 보인다.

차은성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조영국에게 대충 설명했다.

만약의 경우.

자신의 부재 시, 조영국이 팀원들을 통솔 및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다.

조영국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야?”

“글쎄요. 회사에서는 절대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북한 애들을 자극하여 서로 총질하는 상황만큼은…….”

“그런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지. 그런데 MOI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조영국이 캄보디아 정보부를 입에 올렸다.

“가능하면 그들과 얽히지 않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은 우리가 아닌 안용국이 사랑하는 연인 이정선과 함께 탈북 하는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야…….”

차은성의 말에 조영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무슨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박태웅 수석. 제정신이야?”

조영국이 화냈다.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 박태웅이 그림을 원했다.

차은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이어.

조영국에게 말했다.

“목소리 낮추세요. 선배.”

그러곤 아이스커피를 두어 모금 마셨다.

“이제 곧 선겁니다. 여당이나 정부에서 뭔가 이슈를 만들어 선거를 유리하게…….”

차은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영국이 노골적으로 싫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차라리 영화를 찍으라고 그래. 우리가 여당이나 정부의 선거용 이슈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냐고?”

항의조로 말했다.

조영국의 성난 음성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 역시 하기 싫다. 하지만 박영광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안용국과 이정선.

두 남녀가 무사히 탈북에 성공해서 앞으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

차은성은 조영국에게 그 점을 말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우리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선배.”

“하지만…… 자칫 일이 틀어지면.”

조영국은 우려했다.

작전 지역이 다른 곳도 아닌 캄보디아의 프놈펜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남북 동시 수교국이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입김이 강한 나라다.

70~80년데 불교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캄보디아의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었던 시아누크.

그는 김일성과 매우 각별했다.

의형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캄보디아와 북한은 매우 가깝다.

일례로.

1966년 북한 권투 선수 김귀하가 캄보디아 주재 일본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그런 김귀하를 북한으로 강제송환 시켰다.

김귀하가 그 후 어떻게 되었을지, 말하나 마나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생겼을 때. 캄보디아는 한국보다는 북한에 치우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때문에 조영국은 불안했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안용국이야 한국 국적이고 대국 건설 직원이니 크게 다칠 일은 없겠지만. 이정선은 달라.”

조영국의 말에 차은성이 말했다.

“압니다. 최악의 경우 이정선은 북한으로 송환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번 작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공해야 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조영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몇몇 살이 접히며 주름이 나타났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한마디로 말해 지옥이다.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고 수감된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100명이 정치범 수용소로 들어가면 99명이 시체가 되고 남은 1명이 오늘내일한다.

극악하고 악랄하며 사람을 서서히 죽어 가게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다.

오죽하면 지금은 사라진 KGB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두고.

“시베리아 유형소보다 더 지독해.”

라고 말했을까?

조영국이 손에 쥔 아이스커피를 한꺼번에 다 마시고 종이컵을 창가에 내려놨다.

그러곤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더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내 경험상 이런 작전은 돌발적인 변수가 너무 많아. 아닌 말로, 우리를 노출시키지 않고 작전을 성공시켜야 해. 우리 손발을 다 묶어 놓고 뭔 작전의 성공을 바라는 건지!”

조영국이 불만을 피력했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천천히 뒤돌아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조영국이 차은성을 돌아보며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불길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    *    *

노을이 드리워진 도심 공원.

차은성은 벤치에 앉아 주변 풍경을 음미하듯 둘러보았다.

왼쪽.

화교인 장춰린이 앉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죽림방주 화용진의 각별한 당부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가능하면 차은성에게 적극 협력해 주려 하였다.

그런데 차은성이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것을 부탁했다.

그 때문에 장춰린은 심중 혼란스러웠다.

“어렵겠습니까?”

차은성이 정면을 바라보며 장춰린에게 물었다.

그러자 장춰린이 차은성을 곁눈질했다.

“돈을 얼마나 쓸 생각이십니까?”

“필요한 만큼!”

장춰린의 물음에 차은성이 거리낌 없이 즉답했다.

“부탁하신 것을 충족하려면 못해도 미화 30만 달러는 필요합니다.”

“그럼, 40만 달러! 어떻습니까?”

차은성의 말에 장춰린이 놀라 홱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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