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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72)화 (72/208)

NIS의 천재 스파이 (72)

몇 시간 후.

“네, 네에. 죄송합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여당 당 대표 엄대평이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우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아직 여당 대선 후보가 되지도 못했는데,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엄대평이 일순 성난 인상을 쓰며 거칠게 중얼거렸다.

“조덕재, 이 새끼가!”

최측근인 원내 대표 조덕재가 한조 투금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팔아…….

*    *    *

“흑!”

“…….”

“네, 네에.”

“…….”

“아니, 그게 아니라…… 주, 주의하겠습니다. 네에.”

“…….”

“들어가십시오.”

한미일보 사주 장신구가 사색이 되어 급히 통화를 끝냈다.

*    *    *

금감원장 박만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예에. 들어가십시오.”

죽을 맛이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한조 투금으로부터 받은 뇌물 때문에 엄중 경고를 받았다. 해임과 함께 검찰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    *    *

흔히들 비서실장을 청와대 안방마님이라고 부른다. 대통령을 제외하면 청와대 내에서 사실상 2인자라고 말할 수 있는 비서실장 최대광이.

좌측, 3인용 소파에 앉은 주기호 정책 수석 보좌관을 맹렬하게 질타했다.

“세상이 바뀐 것 모르나? 때가 어느 땐데 뇌물이야.”

“…….”

주기호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최대광 비서실장의 질타를 듣고만 있었다.

‘빌어먹을!’

최대광 비서실장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설마, 그동안 날 감시하고 있었던 것은…….’

덜컥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야. 최대광 실장의 성격상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어. 그렇다면.’

주기호는 한조 투금을 의심했다. 한조 투금에서 로비 정보가 유출되어 최대광 비서실장의 귀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주기호는 심중 확신하며 슬쩍 최대광 비서실장을 보았다.

입에서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촌지도 문제인데, 거기다가 연예인 성 상납이라니. 그게 말이 돼에에에에!”

방방 뛴다. 뻔하다. 청와대로 불똥이 튀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제기랄! 내가 어떻게 청와대에 들어왔는데.’

이제까지 힘겹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돈에 대한 탐욕과 미인이 주는 욕정 때문에.

*    *    *

다음 날 새벽 3시. 구미 한성 전자 공장.

콰앙…… 쾅…… 콰앙.

곳곳에서 화염에 이어 폭음이 들렸다.

“피해.”

“거기로 가지 마아아!”

“아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애애애애애앵.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멀리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    *    *

오전 6시 아침 뉴스.

부스에 앉은 앵커가 간밤에 있었던 각종 사건 사고를 말하고 있었다.

TV 화면 우측 상단에 작은 창이 뜨고 해당 창에서 영상이 돌아갔다.

“……구미의 한성 전자 공장에서 화재로 인한 폭발이…… 각종 반도체 칩 생산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가뜩이나 웨이퍼 대란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반도체 시장이 이번 사고로 인해 적잖은 혼란이 불가피하게…….”

한성 전자 주식을 가진 이들은 장이 열리기 전에 해당 사고를 알게 되었다.

각종 언론 매체가 거의 실시간으로 구미 한성 전자 공장 화재를 전하고 있어 모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장이 열리자마자 한성 전자 주가가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    *    *

와장창.

에나가 정면 벽을 향해 커피 잔을 집어 던졌다. 잔이 벽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지고 파편들이 아래 바닥과 주변 허공으로 마구 튀었다.

“왜에에에?”

에나가 고함쳤다.

조금만 더 주가를 끌어 올린 후 앨리게이터 펀드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일련의 계획에 그만 찬물이 끼얹어지고 말았다.

구미 한성 전자 공장 화재라는 악재 때문에 한성 전자 주가가 썰물처럼 무섭게 빠지는 중이다.

주가를 다시 올리자면 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나가 좌를 돌아봤다.

서 있는 쟈넷.

어떻게 된 거야?

에나가 무언의 눈길로 이유를 물었다.

알아챈 쟈넷이 천천히 입을 뗐다.

“사고는 늘 예측 불허입니다. 그저 운이 나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원론적인 말이었다. 에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말은 왜 지금이냐는 말이야.”

에나가 언성을 높이자 쟈넷이 움찔했다.

“그 말씀은?”

뭔가 느낀 그녀였다.

에나가 심각한 눈빛을 띠었다.

“사고는 늘 일어나는 거야. 문제는 사고가 일어난 타이밍이야. 왜 하필이면 우리가 한성 전자를 노리는 현시점에서! ……주가가 540만 원이라는 초고점을 찍었을 때! ……왜 사고가 일어나는 거냐고?”

에나가 재차 언성을 높이자 쟈넷이 눈을 치떴다.

“혹시?”

“…….”

“한성에서 일부러 사고를 냈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디렉터.”

쟈넷의 물음에 에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마음 한구석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럴 리가 없어요!”

당황했기 때문일까? 쟈넷이 뜻밖에도 말끝에 ‘요’를 붙였다.

에나는 침묵했다.

“…….”

“일부러 사고를 냈다면 한성 그룹에서 우리가 주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디렉터.”

쟈넷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간 보안에 철저히 신경 썼다. 그러니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앨리게이터 펀드가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다.

알고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쟈넷이 그 점을 말하자 에나는 흠칫했다.

“자신의 자산인 공장에 일부러 불을 내면서까지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할 정도로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렉터.”

“…….”

“반도체 생산에 있어 얼마나 큰 타격을 입는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스스로 하겠습니까?”

쟈넷은 에나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하지만 에나는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

“우리가 아닌 한조 투금에서 정보가 유출되었을 수도 있지. 그리고 지금처럼 주가가 단기 폭등하는데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어. 어떤 이유에서, 왜, 어떻게 주가가 단기 이상 폭등 했는지 필히 알려고 할 거야.”

“…….”

“문제는…… 설마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구미 공장에 화재를 내면서까지 주가 방어에 나섰을까, 하는 부분이야.”

에나는 과감해도 너무 과감한 선택에 회의적이었다. 한성 전자에게는 악수나 마찬가지다. 아닌 말로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이가 없는 대응이다.

에나나 쟈넷이나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한성 그룹이나 한성 전자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    *    *

한성 그룹 회장실.

1인용 소파에 앉은 한성 그룹 회장 한우종이 정면의 대형 TV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구미 공장 화재에 대한 뉴스가 방송 중이었다.

“회장님.”

우측 3인용 소파에 앉은 한승미가 돌아봤다. 회사에서 깍듯이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그녀였다. 그런데 일개 차장이 회장실에서 회장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건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한우종 회장이 돌아보자.

“저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승미가 그런 심정을 내보였다.

한우종 회장이 씩 웃었다.

“상대는 30조 원을 동원하는 거대 헤지펀드야. 아마 필요하면 30조 원, 그 이상의 자금도 얼마든지 쏟아붓겠지. 그런 그들을 상대하는데, 한성 전자가 아무 피해가 없을 수 있을까?”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는 한우종 회장은 태연했다. 배짱이 보통 두둑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장을 저리 날리시면 나중에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해요.”

“후후.”

한우종 회장이 실소했다.

“걱정할 것 없어. 이미 생산 라인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깔고, 곧바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두었으니. 아마 한 달 내로 생산이 정상화될 게다.”

“그럼.”

한승미가 뜻밖이라는 눈빛을 띠었다. 관련 대비가 철저히 되어 있음을 몰랐던 그녀다.

한우종 회장이 득의가 묻어나는 어조로 말했다.

“불탄 것은 껍데기뿐이야. 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가시적인 영향은 매우 크지. 주가가 지금 급락 중이니 공장을 날려 먹은 값을 충분히 하는 셈이야.”

한우종 회장이 쾌재의 눈빛을 반짝였다.

“이번 기회에 앨리게이터 펀드를 확실하게 잡아서, 두 번 다시는 헤지펀드들이 우리 한성을 노리지 못하게!”

한우종 회장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야.”

한승미가 몸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전쟁이라면?”

“앨리게이터 펀드가 죽든지, 우리 한성이 죽든지. 둘 중 하나는 거꾸러져야 끝나는 전쟁!”

한우종 회장이 굳건한 어조로 말했다.

한승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부친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전쟁은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

한우종 회장이 다시 TV 화면을 바라보며 전의를 활활 불태웠다.

대한민국 정부가 한성 그룹의 뒤를 받쳐 준다.

‘질 수 없는 전쟁이야!’

한우종 회장은 만면에 활짝 미소 지었다.

*    *    *

한편.

한승미는 TV 화면과 부친 한우종 회장을 번갈아 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살며시 의문이란 감정이 배어 나왔다.

부친의 전의와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한승미였다.

*    *    *

사흘 후.

차은성은 팀원들과 모니터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급등락 중인 한성 전자 주가가 주춤거렸다.

“매수세가 한층 강해졌어요. 팀장.”

주희영이 말하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무표정한 차은성.

“팀장. 한조 투금에서 한성 전자 주식을 추가 매수한다는…….”

“외국인 매수세가 눈에 띄게 증가 중입니다.”

조경태에 이어 류성찬이 말했다.

차은성은 모니터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예상한 바다. 떨어진 주가를 반등시키기 위해 한조 투금을 통해 자금을 대거 푼 앨리게이터 펀드다.

‘슬슬 2단계에 들어가 볼까? 훗훗.’

구미 공장 화재 정도로 앨리게이터 펀드가 포기할 리 없다.

‘니들은 갯벌에 들어와 있는 거야.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지는 갯벌에.’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    *    *

잠시 뒤.

―2단계. 시작해 주십시오.

차은성이 박영광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이내 응답 메시지가 들어왔다.

―OK!

차은성은 폰을 집어넣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곧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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