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69)
다들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한눈에 봐도 비즈니스맨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냄새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 * *
입국장 곳곳에서 다수의 눈동자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나 니켈슨과 그녀의 일행. 그리고 한조 투금의 이들.
그들은 서로 만나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연후.
한조 투금의 이들이 에나 니켈슨과 그녀의 일행들을 안내했다.
다들 공항 밖으로 향했다.
눈동자의 주인들 중 몇이 그들을 따라붙었다.
* * *
입국장 우측.
꽤 떨어진 기둥 뒤에 차은성이 서 있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공항 밖으로 향하는 그들을 흘겨봤다.
“무리하게 붙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줘.”
“네.”
선임 요원이자 팀원인 류성찬이 대답했다.
“어설프게 따라붙었다가 눈치라도 채면!”
차은성이 말을 멈추며 매서운 눈빛을 번득였다.
심상치 않다.
어딘가 모르게 엄격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풍긴다.
류성찬이 그새 움찔하더니 급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믿겠다. 실망시키지 마라.”
“네.”
류성찬의 대답을 뒤로하고 차은성이 좌를 돌아봤다.
‘악연이군. 하필이면 한조 그룹 계열사인 한조 투금이야.’
심중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 * *
한참 후. 한조 시그너스 호텔 로열층.
에나 니켈슨이 거실로 들어서며 낮게 말했다.
“살펴봐.”
“네.”
수행 비서 격의 쟈넷이 대답하며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로건, 샘, 찰스 등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연후.
그들은 로열층 곳곳으로 흩어져 이 잡듯이 살피고 또 살폈다. 도청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 * *
한편.
에나 니켈슨이 창가에 서서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둘러보았다.
“쟈넷.”
“네.”
쟈넷이 대답과 함께 재빨리 에나의 우측으로 다가와 섰다.
“공항에서 따라붙은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봐.”
“네. 그렇지 않아도 대사관 쪽에 그들의 영상을 이미 보냈습니다. 조만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치 남자처럼 말하는 쟈넷이었다. 그녀의 대답에 에나가 흐릿하게 미소 짓더니 주의를 주듯 말했다.
“우리의 서울 출장이 외부로 드러나서는 안 돼!”
“물론입니다. 디렉터. 한조 투금에도 이미 단단히 말해 두었습니다. 이번 투자에 있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보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파트너사를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잘했어. 그리고 뉴욕에…….”
에나가 돌아보며 귀엣말로 두런두런 말하기 시작하자, 쟈넷이 재빨리 한 걸음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두 여인은 속삭이듯 모종의 밀담을 주고받았다.
* * *
일주일 후. 경영전략 팀 2회의실.
전면 벽에 설치된 70인치 모니터 우측.
주희영이 서서 모니터를 보며 브리핑을 이어 나갔다.
U자 형태의 테이블 중앙에 차은성이. 좌우에 류성찬, 조경태를 포함, 10여 명의 남녀가 나누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 모니터를 보며 주희영의 말을 경청했다.
“……현재 한조 투금의 대관 로비는 정병옥 전무를 중심으로 조동엽 비서실장과 임기복 법무 팀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희영이 사무적으로 말하며 손에 든 리모컨으로 모니터의 영상을 바꿨다.
“한조 투금의 대관 로비는 청와대의 정책 수석 보좌관, 기재부 장관, 여당 원내 대표 등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특히 원내 대표의 경우……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으로 유력하게 부상 중인 현 여당 당 대표의 브레인이자 최측근으로…… 자칫 대권 구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
“그 외에 한미일보 사주와 TBC 사장 등 전에 없이 언론 매체들과 최근 빈번하게 회동 중입니다.”
주희영의 말에 차은성이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다.
“금감원이 빠진 것 같은데…….”
주희영이 일순 흠칫하더니.
“죄송합니다.”
머리를 숙였다. 깜빡한 모양이다.
차은성이 말없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마음에 너무 안 든다.
다들 경제 쪽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을지 몰라도, 필드에서는 그야말로 갓난아이처럼 미숙하기 짝이 없다.
미행을 맡겨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명령을 내린 자신이 도리어 불안을 느낄 정도다.
물론 자신과 팀원들의 팀워크가 아직 제대로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진 않지만.
노태준과 김아름을 포함한 이전의 팀원과 비교하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 정도로 현 팀원들이 눈에 차지 않는다.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난다.
현 팀원들이 내근직이다 보니 필드 요원과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NIS 요원이라면 미행과 같은 기본적인 것은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랐고, 차은성은 심중 매우 답답했다. 현 팀원들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차은성이 주희영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경태.”
“네.”
좌측에 앉은 조경태가 돌아봤다.
“에나 니켈슨. 지금 어느 호텔에 묵고 있어?”
“네. 한조 그룹 계열사인 한조 시그너스 호텔 로열층 전체를 쓰고 있습니다.”
“해당 호텔에 대한 조치는?”
“네. 호텔의 협조를 받아…….”
조경태의 말에 차은성이 움찔했다.
“협조?”
“네. 호텔의 협조를 받아 도청 및 감청 장치를…….”
차은성이 조경태를 돌아봤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 흉험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희번덕였다.
조경태는 영문 몰라 하며 눈을 깜빡였다.
“지금 장난해?”
차은성이 바닥에 깔릴 것 같은 매우 낮은 어조로 말했다. 화났음을 모를 수 없다.
삽시.
“…….”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이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차은성은 조경태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2011년 2월!”
“…….”
“소공동 롯데 호텔 1961호.”
“…….”
“작전 시행 6분 만에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에게 발각당한 남자 둘, 여자 하나.”
조경태가 흠칫했다.
NIS 역사상 역대급 개망신 사례다. 더욱이 세계 언론 매체에 쫘악 퍼져 전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NIS가 과거 KCIA로 불리던 시절.
소련 KGB도 KCIA의 악명은 알아줬다.
그런데 NIS는 악명은커녕, 전 세계 정보기관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살기 띤 눈으로 조경태를 바라볼 뿐.
차은성의 시선에, 더는 눈을 마주 볼 수 없는지 조경태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한심하다!
치은성은 조경태를 보며 예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NIS 요원으로서 기본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답답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한조 시그너스 호텔이 한조 투금과 함께 한조 그룹 계열사인데, 호텔에 도·감청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다니. 생각이란 것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휴우우우우!
* * *
얼마 후. 카페테리아.
자판기 좌측 대형 유리벽 앞에 차은성이 서 있었다.
벌컥벌컥.
콜라를 마시며 차은성이 갑갑한 마음을 풀려 했다.
현 팀원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연일 짜증이 난다. 하고 싶지 않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
차은성은 자신에게 일을 맡긴 박영광을 생각했다.
아마도 죽은 전 팀원들을 빨리 잊으라고.
일에 몰두하라고.
덜컥.
자신에게 현 팀을 맡긴 것 같은데. 문제는 팀원들이 기대 이하라는 것이다.
“음.”
스트레스로 인한 흡연 욕구를 콜라를 마시며 달래는 차은성.
한조 시그너스 호텔에 의해 자신과 팀에 관한 것이 한조 투금에 알려졌을 것이다. 하면, 에나 니켈슨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금방이다.
조경태의 멍청한 짓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팀이 노출되었고, 이제까지 지켜 온 보안에 큰 구멍이 뚫려 버렸다. 자칫 일이 꼬여 버리면…….
차은성이 험상궂기 짝이 없는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이내 차은성이 묵직한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그러자.
“차 팀장님.”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차은성이 뒤돌아보았다.
왼손에 결재판을 든 한승미.
“잠깐 저와 대화 좀 하시죠.”
한승미의 말에 차은성이 뒤돌아서며 물었다.
“무슨 말을…….”
한승미가 눈짓으로 옆에 있는 둥근 테이블을 가리켰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엎친 데 덮쳤다는 말이, 딱 지금 쓰일 것 같다.
맞은편에 앉은 한승미.
상사로서의 대접을 요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관해 알아야겠다. 그러니 사흘마다 보고해라.
기가 막힌 차은성이 아무 말 하지 않자, 한승미가 2팀의 팀원들의 출퇴근과 외근을 입에 올렸다.
“팀원들에 대한 통제가 너무 느슨해요. 그 때문에 지금 1팀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요. 그러니 팀원들의 출퇴근과 외근을 좀 더 타이트하게…….”
차은성은 말없이, 매우 신경질적으로 콜라를 마셨다. 이어 한승미를 바라보며 노골적으로 짜증 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성난 목소리였다.
그러자 한승미가 아미를 찡그렸다.
“차 팀장님!”
차은성에게 지지 않겠다고 말하듯 언성을 높였다.
“가서.”
“…….”
“회장님 허락부터 받아 오시죠?”
“뭐라고요!”
한승미가 발끈했다.
“우리 팀은 그저 소속이 영업전략 팀일 뿐!”
“…….”
“업무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업무 체계 역시 다릅니다. 그러니 어쭙잖은 상사 노릇을 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차은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뜩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짜증이 한가득인데, 한승미가 거기에다가 불을 지른다.
“차 팀장님. 지금 내가 상사라는 것을 알고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한승미가 화난 어조로 말했다.
차은성이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제 팀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아울러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한승미 차장님은 제 상사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뭐라고요!”
한승미가 뾰족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차은성이 스트레스를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치고 말았다.
“좀!”
이어 한승미를 쏘아보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 좀 내버려 둬. 당신이 아니더라도 난 힘들다고. 그러니깐 제발 내 앞에서 그렇게 깐죽거리지 말고 눈에 띄지도 마!”
차은성이 언성을 높이자 한승미가 주춤거렸다.
사람을 다수 죽여 본 차은성이다. 그런 차은성의 서슬을 한승미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대번에 밀리며 은근 겁먹은 한승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황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한눈에 보인다.
차은성에게 뭐라 한 소리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화가 나긴 하는데, 그 화를 대놓고 쏟아 내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
한승미가 심중 어쩔 줄을 모르던 그때.
“어머! 차 실장님.”
누군가가 차은성과 한승미가 마주 보며 앉은 테이블로 걸어왔다.
저벅저벅.
차은성과 한승미가 돌아봤다.
걸어오는 한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