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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68)

“의외로 맛있는데. 계산은 네가 해라.”

“예에?”

차은성이 반문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

“돈 많잖아.”

“삼촌…….”

차은성이 바닥에 깔듯이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

“…….”

“그럼, 그동안 네가 작전 중에 빼돌린 자금에 관해 위에 다 보고할까?”

“정말이지!”

차은성이 성난 눈빛을 띠며 박영광을 쏘아봤다.

박영광이 히죽 웃더니.

“조심해.”

주의를 주었다.

“내가 알 정도면 다른 누구라도 알 수 있어.”

“엄청 치사하신 거 아시죠?”

차은성의 물음에.

“뭘?”

박영광이 태연히 대꾸했다.

“정말!”

차은성이 서운한 어조로 말했다.

“매번 작전할 때마다 관련 자금을…… 장비가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

“마! 회사 돈 없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아, 진짜 너무하시네. 일을 시키셨으면 돈을 주셔야죠.”

차은성이 엄청 답답하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그사이.

박영광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차은성이 한 소리 했다.

“안주발 그만 세우세요. 그리고 소주 천천히 마시세요.”

“…….”

“삼촌이 다 계산할 거면 몰라도. 아니면 이제 그만…….”

박영광이 말을 쏟아 내는 차은성을 보았다.

이이가 없네!

라는 표정을 짓더니.

“치사해서 안 먹어!”

말과 함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어?”

차은성이 박영광을 올려다봤다.

“어디 가세요.”

“화장실.”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그만 픽 웃고 말았다.

잠시 뒤.

화장실을 다녀온 박영광이 차은성을 설득했다.

결국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망할 놈!”

“…….”

“이왕 맡는 거, 기분 좋게 맡음 어디 덧나냐? 응!”

박영광의 투덜거림에 차은성이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다시 팀원을 모으고 그들을 교육시켜 아르티펙스를 되살리려면 적잖은 시일이 필요하다.

모든 교육 과정이 끝난 후에도 현장 적응 훈련을 또 받아야 한다.

정예 요원들이 아쉬운 점이 그와 같다. 키우는 데는 시간과 돈이 엄청 들어가는데. 그들이 죽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국외 작전 중에 죽는 요원들이 태반인데, 자신의 팀원들은 국내에서 죽었다.

다들 작전이 끝났다고, 국내에 돌아왔다고 마음을 놓고 방심하고 있을 때. 마담 화이트에게 그만 당하고 말았다.

그 일만 생각하면 차은성은 속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주체하기 너무 힘들었다. 해서 애써 죽은 팀원들을 잊으려 노력하는 한편. 시먼스 부국장의 행방을 개인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런데 아직 성과가 없다.

*    *    *

몇 달 후. 초여름.

한성 그룹 사옥 27층의 엘리베이터가 좌우로 열렸다.

띠링.

복도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서른 안팎의 정장 여인이 좌로 돌았다.

한성 전자 동남아 영업전략 팀 총괄 팀장이자 차장인 한승미.

그녀는 복도를 걸어가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45분.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당한 출근 시간대다.

*    *    *

자동 유리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한승미의 시야 가득히 영업전략 팀의 사무실이 들어왔다.

서른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꽤 컸다. 칸막이로 정연하게 각 개인의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출근한 직원은 일고여덟 명 남짓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한 한승미를 보고는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봤다. 이내 한승미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나오셨습니까? 차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셨습니까?”

직원들의 인사에 한승미는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녀는 좌로 돌아서며 벽에 접한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    *    *

한승미가 칸막이가 쳐진 책상에 이르러 의자에 앉자, 비서 겸 보좌 역할을 하는 여직원 김수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한승미가 늘 즐겨 마시는 모 브랜드의 커피를 내려놨다.

“고마워.”

의자에 앉은 한승미가 김수나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김수나가 살짝 웃으며 대답하자 한승미가 손을 뻗었다.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컵을 쥐며 물었다.

“2팀 사람들 요즘 어때?”

“언제나 똑같죠, 뭐. 출퇴근이 아주 지들 맘대로예요. 들쭉날쭉! ……그리고 무슨 작당을 하는지, 지들끼리 회의실에 모여 쑥덕대다가 회의가 끝나면 곧장 외근 나가 버려요.”

대답하는 김수나에게서 불만이 보인다. 그녀가 이렇게 불만을 내보일 정도라면 다른 직원들 역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승미는 살며시 아미를 찌푸렸다. 그러자 몇몇 주름이 잡혔다.

한승미는 커피를 마시며 2팀을 생각했다.

부친 한우종 한성 그룹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언질을 받았다.

노터치!

일절 간섭 및 관여를 하지 마라!

혜택이라고 보기보다는 특권에 가까운 후의였다.

한승미는 2팀이 혹 부친 한우종 회장의 사람들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렇지 않다면 후의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부친의 당부가 있어 이제까지 2팀을 내버려 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한승미의 이목 역할을 하는 김수나는 2팀의 동향을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은근 우려라는 감정을 내보였다.

“1팀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같이 일하는 것을 무척 싫어해요. 차장님.”

김수나가 직원들의 동향을 입에 올렸다. 그녀가 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한승미가 슬쩍 김수나에게 맞장구를 쳐 줬다.

“흠. 그래.”

“네. 2팀이 무슨 특별한 혜택을 누리는 것 같잖아요. 저 역시 2팀 사람들이 영 눈에 거슬려요.”

“…….”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저희 전략 팀에 속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

“차장님.”

“…….”

“2팀 사람들. 아직까지 차장님께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요.”

한승미가 마시던 컵을 앉은 책상에 내려놨다.

“아무리 독자적인 팀 운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팀장인 차은성 씨가 적어도 한 번쯤은 차장님께 업무에 관해 보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아무리 회장님께서 각별히 아끼고 챙기시는 팀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안하무인이에요.”

김수나가 은근 한 번쯤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음을 돌려 말했다.

한승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2팀 뒤에 있을 부친 한우종 회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에게 남몰래 2팀에 관해 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수나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도 명색이 상사다. 자신이 1, 2팀을 총괄하는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업무에 관한 보고가 없었다. 이는 명백한 무시다.

한승미가 마음을 다잡았다.

“일 시작하죠.”

김수나에게 말했다.

“아, 네에.”

김수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제 봤던 베트남 유통망에 관한 보고서. 가져다줘요.”

“네에.”

김수나가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한승미는 앞에 놓여 있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모니터를 세웠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2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틀림없어!’

한승미는 심중 중얼거리며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부친 한우종 한성 그룹 회장이 2팀에 모종의, 아주 은밀한 업무를 맡겼을 것이다. 그러니 일절 관여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당부한 것이다. 하여 그동안 모른 척했지만. 김수나의 말처럼 한 번쯤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직장 상사인데, 2팀장 차은성을 지금까지 딱 두 번 봤다. 본 시간도 채 1분이 넘지 않는다.

은근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2팀장 차은성의 태도가 상당히 눈에 거슬리지만, 부친을 보아 꾹꾹 눌러 참으며 짐짓 모른 체해 왔다.

‘아버지를 믿고 너무 나대!’

한승미가 컵을 쥐고 입으로 가져가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간!’

벼르며 한승미가 머릿속에서 차은성 팀장과 2팀을 지우려 했다. 이제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다.

회장 딸이 아닌 한 사람의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 때문에 한승미는 뭔가 주목받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적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런 심적 압박을 겉으로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둘 뿐이다.

*    *    *

닷새 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한편에 정장 차림의 이들이 서 있었다.

한조 투금 사장 한상구를 필두로 임원들과 몇몇 부장.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초조해했다.

한상구 사장이 뒤돌아봤다.

“조 실장.”

“네.”

한조 투금 비서실장 조동엽이 재빨리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도착 시간. 확실해?”

한상구 사장이 미덥지 않다는 투로 묻자.

“확실합니다. 사장님.”

조동엽 실장이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혹시나 싶어 두 번 세 번 탑승객 명단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안 나와?”

한상구가 짜증 냈다.

“예정 시간이 10분이나 지났어.”

“사장님. 일행이 꽤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국이 다소 지연되는 모양입니다.”

“젠장!”

한상구 사장이 대놓고 짜증 냈다.

“명색이 사장인데. 내가 공항까지 마중 나와야 하다니. 염병!”

한상구 사장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그러자 한상구 사장의 우측, 바로 뒤에 서 있는 정병옥 전무가 돌아봤다.

“사장님.”

그의 부름에 한상구 사장이 돌아봤다.

“무려 30조나 저희 한조 투금에 예치한 VVIP입니다. 게다가 월가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앨리게이터 펀드의 시니어 디렉텁니다.”

“끄으응.”

한상구 사장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예치 자금이 어마어마하다. 그중 1%만 이익으로 떨어져도 3조다. 그러니 사장이 이렇게 공항까지 마중을 나올 수밖에 없다.

정병옥 전무가 뒤에 서 있는 이들을 힐금거리며 한상구 회장에게 나직이 말했다.

“사장님은 저희 한조 투금의 대표이사십니다.”

정병옥 전무가 에둘러 말했다.

좀 대표답게!

못 알아들을 한상구 사장이 아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정병옥 전무를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죽은 부친이 무슨 알 박기처럼 한조 투금에 박아 놓은 최측근이다. 그 때문에 한조 투금 내에서 정병옥 전무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현재 일종의 스승인 경영 고문으로 한상구 사장을 보좌 중이다.

“아, 저기 나옵니다.”

조동엽 실장이 말하며 오른손 검지로 일단의 외국인을 가리켰다.

*    *    *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무슨 패션모델 같은 모습으로 걷는 여인.

에나 니켈슨.

앨리게이터 펀드 내에서 발군의 투자 감각과 일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디렉터다. 그 때문에 이번 한국 투자의 전권을 위임받았고. 총괄 책임자로서 자신의 팀을 이끌고 지금 입국했다.

또각또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속도로 걷는 에나 니켈슨 뒤에서 일단의 앨리게이터 직원이 걷고 있었다.

에나 니켈슨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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