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47)
차은성이 돌아서며 우형광을 불렀다.
“형광아, 형광아.”
“네, 팀장.”
이어폰에서 우형광의 대답이 들렸다.
“북한 애들이 움직였다. 태준 선배는 C포인트로 이동 중이고.”
“알겠습니다. 카메라 세팅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에 C포인트로 이동. 태준 선배와 합류하겠습니다. 팀장.”
“알았다.”
차은성이 통화를 끝내고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팀장.”
김아름이 뒤돌아봤다.
“영상은?”
“잘 들어와요. 다만 카메라 서너 개의 각도를 좀 조절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형광이가 마지막 점검 중이니깐 서둘러.”
“네에. 팀장.”
김아름이 대답하며 고개를 바로 했다.
차은성은 손에 쥔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테이블 화면을 보았다.
전체 화면이 비라디스 빌딩과 주변 영상으로 꽉 찼다.
* * *
몇 시간 후. 비라디스 빌딩 인근 옥상.
노태준이 고화질의 스마트 망원경으로 아래를 보았다.
연이어 급정지하는 다섯 대의 차량.
이내 차 문이 거의 동시에 열리며 건장한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쯧쯧.”
노태준이 혀를 찼다.
“스타일 봐라. 아직도 쌍팔년도 방식이야.”
중얼거리는 사이,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노태준이 흠칫하더니 급히 망원경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사이.
“접니다. 형광이.”
우형광이 빠르게 말했다.
노태준이 멈칫하더니 어느새 상의에 집어넣은 오른손을 빼냈다.
“휴우우. 너 이 자식. 기척을 좀 내.”
“죄송합니다. 작전에 들어가면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는 게 습관이 돼서…….”
“됐어.”
노태준이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옆을 돌아봤다.
“젠장.”
아까운 망원경이 어디 부서진 곳이 없어야 할 텐데.
* * *
잠시 뒤.
타타타…… 타타타타탕.
요란한 총성이 들렸다.
* * *
차은성은 이어폰을 통해 총성을 들으며 테이블 화면을 보았다.
김아름이 내부 보안 시스템으로 숨어들어 가, 확보 가능한 영상들을 확보. 테이블 화면으로 돌렸다.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김아름이 급히 키보드를 조작하며 차은성을 불렀다.
“팀장!”
차은성이 김아름을 보았다.
“옥상. 헬기 접근 중이에요.”
“뭐?”
차은성이 깜짝 놀랐다.
“영상 띄워요.”
김아름의 말에 이어 테이블 화면이 바뀌었다.
빌딩 옥상. 헬기 이착륙장.
서너 명의 사내가 의식이 없는 김병두를 질질 끌고 갔다.
그들의 앞쪽에서 헬기가 이착륙장으로 접근 중이다.
“이런!”
예상 밖의 돌발적인 상황이다. 기습을 받은 CIA가 한발 빠르게 김병두를 빼돌리고 있다.
‘그런데?’
차은성이 의문의 눈빛을 띠며 헬기를 보았다. 기습 공격을 받은 직후에 헬기를 불렀다면,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기습 시간에 딱 맞춘 것처럼 이착륙장으로 접근하는 헬기다.
‘혹시?’
차은성은 내부 배신자를 생각했다.
‘가능성이…….’
김병두 영사를 납치하고자 한다면, 김병두 영사의 당일 동선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즉, 북한 영사관 내부에 CIA로 정보를 유출하는 자가 있다!
차은성이 씨익 미소 지었다.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잘하면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였다.
“팀장!”
황민준이 급히 차은성을 불렀다.
차은성이 이내 손을 들어 이어폰에 댔다.
“말해.”
“이상합니다. 미국 대사관에서 무장한 남자들이…… 얼추 30여 명은 넘을 것 같습니다. 다들 급히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그래.”
“이 자식들, 저희 예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준아.”
“네, 팀장.”
“작전 실패다. 복귀해라.”
“네에?”
황민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어조로 반문했다.
“자세한 것은 복귀한 후에 얘기하자.”
“아, 예에. 그럼 복귀하겠습니다.”
“그래.”
차은성은 이어 노태준과 우형광을 불렀다. 그러곤 작전 실패를 말하며 복귀를 지시했다.
노태준과 우형광의 반응은 황민준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연후.
차은성은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팀장.”
김아름이 뒤돌아봤다.
“헬기 추적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으로서는 딱히 추적할 방법이…….”
김아름이 말끝을 흐렸다.
“CIA 쪽에서 급히 헬기를 띄웠을 거야……. 로마 시나 이탈리아 정부 측에 사전에 공지되지 않은 비행일 테니…….”
“팀장. 제 생각에는 CIA 애들이 AISI나 AISE의 협조를 받았을 것 같은데요.”
“아름아. 헬기가 어디에 착륙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
“아름아.”
“그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차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좀 있어요. 팀장.”
“무슨 방법인데?”
김아름이 곤혹스러워했다.
“최대한 흔적이 남지 않게 조치를 취하긴 하겠지만. 그게 조금…….”
“아름아!”
김아름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석유와 광물 자원 탐색을 위해…… 민간 상업 위성 베네토―Ⅲ가 로마와 인근을 곧 지나가요. 적어도 1시간 동안은 로마와 인근을 감시할 수 있어요.”
“그럼.”
“네. 헬기가 1시간 이상 비행하여 위성의 탐색 범위를 벗어나 버리면 저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요. 팀장.”
“확실하게 추적할 수 있어?”
“적어도 1시간 동안은 가능해요.”
“해!”
차은성이 거침없이 지시했다.
“팀장…….”
“괜찮아.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다 내가 책임질 테니깐, 넌 헬기가 어디에 착륙하는지만 알아내.”
“알겠어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할게요.”
“서둘러.”
“네에, 팀장.”
김아름이 대답하며 시선을 바로 했다.
차은성은 고개를 숙여 화면을 보았다.
“제기랄!”
일이 틀어졌다.
북한 애들이 CIA를 기습 공격한 후 퇴각하면.
CIA의 지원 병력이 오기 전에 바트만 컴퍼니에 잠입.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려 했다. 그런데 CIA의 지원 병력이 이미 대사관을 출발했다. 그 때문에 정보를 확보할 시간의 갭이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차은성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바트만 컴퍼니 내에 양질의 고급 정보가 상당수 있을 텐데. 그걸 눈앞에서 빤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니.
차은성은 속이 쓰렸다.
* * *
다음 날. 바티칸 미술관 레스토랑.
차은성이 피자를 앞에 두고 먹으며 콜라를 마셨다.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장소라 제법 붐볐다.
잠시 뒤.
이혜란이 좌측에서 걸어오더니 맞은편에 이르러 의자에 털썩 앉았다.
“훗.”
이혜란이 앞에 있는 것을 보곤 조소하듯 웃었다.
그녀가 올 줄 알고 차은성이 콜라와 그녀 몫의 스테이크를 미리 주문했다.
이혜란은 주변을 경계하며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관련 교육을 받았는지, 의외로 그녀의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없던데.”
이혜란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차은성을 쏘아봤다.
속였다!
오해하는 것 같아, 차은성이 씹던 피자를 삼키며 말했다.
“헬기!”
이혜란이 움찔했다.
바트만 컴퍼니를 기습했을 때, 헬기가 옥상에서 이륙했었다.
“놓쳤다?”
“간발로.”
이혜란이 신경질적으로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다시 알아봐 줄 수 있겠죠?”
이혜란의 말에 차은성이 잔을 들어 콜라를 두어 모금 마셨다. 연후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호의지만, 두 번째는 좀 그렇군요.”
“대가를 내놔라?”
차은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챈 이혜란이다.
“…….”
“휴전선의 긴장이 완화되었으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이젠 다르다.”
이혜란이 적대적인 어조로 낮게 말했다.
“이역만리 타향입니다.”
“…….”
“모든 것이 여의치 않죠.”
“…….”
“시간이 필요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이혜란이 움찔했다.
“헬기가 어디로 이동, 착륙했는지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
“늦어도 5시간 안에 문자메시지로 알려 드리죠.”
이혜란이 씹던 고기를 삼키고 잔을 들었다.
꿀꺽꿀꺽.
콜라를 무슨 물처럼 마시는 그녀다.
탁.
잔을 내려놓으며 이혜란이 말했다.
“대가.”
“…….”
“말해요.”
“뭐, 나중에. 그쪽 도움이 필요해 연락하면 한 번만 도와주는 조건! 어떻습니까?”
“흥!”
이혜란이 코웃음 쳤다.
“빚을 지우겠다!”
“이 바닥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곳이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혹 압니까? 북에서 날 죽이려고 할 때, 그쪽을 통해서 한 번만 봐 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
“협상 창구가 되어 달라?”
“그쪽에 무리가 가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혜란이 말없이 차은성을 쏘아보더니 다시 고기를 한 점 입에 쏙 넣었다. 그러곤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피자를 먹으며 가만히 이혜란을 지켜봤다.
‘후후.’
백두 혈통을 전담 관리한다. 그러니 언제고 한 번은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호위총국 박조윤 중위.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이면 자신을 죽이려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와신상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북과 관련하여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일종의 보험으로 말이다.
* * *
그날 저녁 로마 모 아파트.
차은성, 김아름,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에는 햄버거와 빵. 그리고 콜라가 놓여 있었다.
“아, 또!”
우형광이 짜증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리며 테이블 왼편에 앉은 차은성을 돌아봤다.
“팀장.”
손에 든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차은성이 우형광을 보았다.
“한식당에 가서 밥과 김치찌개 좀 먹으면 안 됩니까?”
햄버거, 빵에 지친 모양이다. 하긴 며칠 동안 내내 햄버거와 빵으로 배를 채웠으니 따뜻한 밥과 김치찌개가 당길 것이다.
하지만…….
차은성이 베어 문 햄버거를 씹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안 돼!”
“팀장…….”
우형광이 울 것 같은 어조로 차은성을 불렀다.
“아서!”
김아름이 콜라를 마시며 우형광을 보았다.
“……위에 남아 있는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로 국적을 파악할 수도 있다는 거, 몰라!”
김아름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민준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지난 며칠 동안 계속 햄버거와 빵으로 배를 채우려니 이젠 목으로 안 넘어간다.”
황민준이 지쳤음을 에둘러 말하며 슬쩍 노태준을 보았다. 무언의 도움을 청하는 황민준이다.
알아챈 노태준이 차은성을 보았다.
“햇반이나 김치찌개 파우치 같은 것을 사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차은성이 노태준을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됩니다!
노태준이 황민준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다.
그러자 황민준이 차은성을 보았다.
“티임…….”
말하려는데.
“팔자 편한 소리 하지 마라!”
차은성이 예의 단호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작전에 들어가면 한국과 연관된 모든 것이 금지라는 걸 알잖아!”
다들 침묵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한국과 연관된 모든 것을 멀리해야 한다. 심지어는 음식까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신경 쓰였을까?
노태준이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CIA 애들 말인데.”
차은성을 비롯하여 팀원들이 노태준을 바라보았다.
“왜 여태까지 김병두를 국외로 빼돌리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
노태준이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