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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46)화 (46/208)

NIS의 천재 스파이 (46)

미션 로마

픽.

박영광이 담배를 피우며 실소했다.

“필리핀 건으로 VIP가 너희들을 아주 잘 본 모양이다. 그러니 이번 일, 최대한 빨리 끝내!”

“…….”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한 애들이 군사 충돌을 야기하고도 남을 도발을 서슴없이 자행할지도 모르니깐.”

“…….”

“전처럼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언론이 마구 떠들어 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국민들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우리도 상응하는 군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어. 그랬다가 자칫 상황이 삼천포로 빠지는 날에는…….”

“…….”

“전쟁이다!”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한 당황을 얼굴 가득 떠올리며 눈동자를 한껏 부릅떴다.

*    *    *

사흘 후 로마.

신호등에 붉은 등이 들어오자, 도로를 주행하던 차들이 하나둘 서기 시작했다.

바아아앙.

한 대의 오토바이가 정차한 차들 사이를 휘, 휘이익 지나쳤다. 오토바이는 그리 오래지 않아 정지선에서 세 번째에 정차한 차량에 이르렀다.

바람처럼.

해당 차량의 좌측을 지나갔다.

순간.

휙.

무엇인가가 던져졌다. 도로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튀며 차량의 밑으로 쏙 사라졌다.

작은 원반.

무엇에 이끌리는 듯.

원반이 튀듯이 솟구치더니.

철컥.

차체 바닥에 붙었다. 거의 동시에.

빠아아앙.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높아졌다. 해당 배기음에, 차체 바닥에 원반이 달라붙는 소리가 묻혔다.

차량 운전석에 앉은 중년인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쯧.”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았다.

*    *    *

도심을 맴도는 대형 트레일러.

“발신기 부착 완료.”

귀에 낀 이어폰에서 들린 황민준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 모니터에 로마 시내 지도가 떠 있었다.

“아름아.”

차은성이 김아름을 불렀다.

“네. 잠시만요.”

김아름의 대답에 이어, 차은성이 내려다보는 지도에서 일순 작은 깜빡임이 나타났다. 깜빡임은 꽤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차은성이 고개를 들며 우를 돌아봤다.

“선배.”

“잡았어. 추적 중이야.”

콘솔 앞에 앉아 있는 노태준의 대답에 차은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씨익.

흡족한 눈치다.

*    *    *

얼마 후.

깜빡임이 한 장소에 고정. 움직이지 않았다.

차은성은 오른손 검지로 해당 장소를 터치했다.

툭.

그러자 해당 장소가 확대되었다. 차은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구심의 눈빛을 띠었다.

“아름아.”

“네, 팀장.”

“확인해 봐.”

“예.”

김아름이 모니터에 앉아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내.

“비라디스 빌딩이에요.”

“해당 빌딩에 미국과 연관된 것이 뭐가 있지?”

“8층에. 바트만 컴퍼니라고. 소스 전문 수입 회사의 로마 지사가 있어요. 소유는 앨버트 바트만이고요.”

“그 외에 다른 사무실이나 회사는?”

“없어요. 좌다 이탈리아 관련 회사나 사무실이에요.”

“흠.”

차은성이 테이블 화면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어 노태준을 돌아봤다.

“선배?”

“가까이 접근하긴 어려워. 레이더 수신 신호가 잡혀. 자칫 무리하게 접근시켰다가는 저쪽에서 알아챌 거야.”

“아무래도 우리가 찾던 곳이 맞는 것 같은데요.”

김아름이 말했다.

“드론을 뒤로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빼세요. 자칫 들키면 곤란해져요.”

“OK.”

노태준이 말과 함께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으음.”

차은성이 신음하며 다시 테이블 화면을 보았다.

*    *    *

다음 날 바티칸 미술관.

뚜벅뚜벅.

낮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림을 보며 서 있는 차은성.

한 여성이 차은성의 왼쪽으로 다가와 섰다.

“그림이 어때요?”

“그림, 볼 줄 모릅니다.”

순간.

“푸흡.”

여성이 어이없다는 짧은 웃음을 흘렸다.

차은성이 그림을 보며 말했다.

“차은성이라고 합니다.”

“이혜란이라고 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예요. 남조선 동무와 이렇게 나란히 서 있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혜란의 말에 차은성이 상의에서 카드 봉투를 꺼내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는 다른 이들이 없었다.

차은성이 이혜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혜란이 봉투를 받아 상의에 집어넣었다.

“뭐죠?”

“김병두 영사가 억류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입니다.”

차은성의 말에 이혜란이 움칫했다.

“뜻밖이네요.”

“…….”

“남조선 NIS가 우리를 도우려고 하다니.”

이혜란이 은근 의심스럽다는 속내를 밝혔다.

“뭐, 지금은 한반도 기를 휘날려야 할 때라서 말입니다.”

“한반도 기라…….”

이혜란이 중얼거렸다.

차은성이 그녀를 돌아보며 달갑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사실은 우리가 이번 일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쪽에서 전 휴전선에 걸쳐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바람에…… 뭐, 쉽게 말해 겁먹어서 이러는 겁니다.”

이혜란이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고 말하진 않겠어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평양에 우린 이번 일과 무관하니 휴전선의 긴장을 좀 낮춰 달라고 말이나 잘해 주십시오.”

“그쪽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평양에 보고는 하죠. 그 이후는 내 소관 밖이에요.”

“우리와 미국의 관계를 알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식으로 평양에 보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차은성의 말에 이혜란이 흠칫했다.

“무슨 말이에요?”

이혜란의 물음에.

“어?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몰랐던 모양이군요.”

차은성이 의외라는 어조로 말했다. 당황한 이혜란은 뭐라 말하지 못했다. 꽤 충격을 받은 눈치다.

“CIA가 오래전부터 그쪽의 비밀 자금을 추적해 온 건 아시죠?”

“CIA가 공화국과 전쟁을 하자! 이거로군요.”

이혜란이 섬뜩한 느낌의 눈빛을 띠었다. 아무래도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아 차은성이 서둘러 말했다.

“CIA가 그런 수를 놓을 정도로 어리석은 기관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죠?”

이혜란이 물었다.

차은성이 미소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는 이혜란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그러니까 시먼슨가 시커먼슨가 뭔가 하는 작자가, 지 살자고 공화국을 건드렸다! 그 말인가요?”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사람이, 어디 앞뒤를 냉정하게 가립니까?”

“일단 살고 보자!”

“그렇죠. 그게 사람 아닙니까?”

차은성의 말에 이혜란이 대꾸하듯 말했다.

“달리 할 말이 있나요?”

“없습니다. 다만.”

“다만.”

“우리가 도움을 주었다는 것과 CIA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은 그쪽만 알고 있었으면 합니다.”

“미제의 괴뢰 국가답네요.”

“끄응. 꼭 그렇게 도움을 준 사람의 속을 긁어야겠습니까?”

“사실이니까요.”

이혜란이 말과 함께 옆으로 돌아섰다.

“나만 알고 있도록 하죠.”

차은성이 돌아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이혜란이 빠르게 걸어가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차은성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씨익.

미소 지었다.

‘일단 돌은 던져 놨고.’

오더 중 하나는 해결했다.

북에 관련 정보를 흘려 휴전선의 군사적 긴장도를 낮춘다. 그리고 북과 CIA를 충돌하게 만든다.

문득.

벨기에 작전 당시 박영광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이 바닥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차은성은 한숨 쉬었다.

“휴우.”

군사 긴장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럼 박영광이 우려하는 전쟁이란 최악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은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이어 벽에 걸린 그림을 봤다. 뭔 그림인지 모르겠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종교화 같긴 한데. 그림에 관해 아는 것이 있어야지 뭐라 아는 척이라도 하지.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만물박사는 아니지.”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있고, 아는 것이 있으면 모르는 것 역시 있다.

저벅저벅.

차은성이 천천히 걸어가는 발소리가 관람실 허공에 공허하게 울렸다.

*    *    *

이틀 후. 비라디스 빌딩 인근 이면 도로가.

“음.”

차은성이 침음을 흘리며 테이블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좌우로 벌려 테이블을 쥔 양손에 공연히 힘이 들어갔다.

저벅저벅.

김아름이 좌로 걸어와 서더니 종이컵을 슥 내밀었다.

“팀장.”

차은성이 돌아보더니 픽 웃었다.

“또 커피야?”

“잠을 쫓는 데 커피가 최고죠. 에너지 드링크는 후유증이 너무 남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뒀어요.”

말장난을 하는 김아름이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주려는 것임을 안다.

차은성이 허리를 펴며 눈짓으로 노태준을 가리켰다.

한 잔 가져다줘.

김아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노태준이 커피를 홀짝이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언제 움직일까?”

“글쎄요.”

“바보가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을 텐데…….”

노태준이 말끝을 흐렸다.

맞는 말이다. 움직이는 것은 ‘나 바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차은성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북의 호전성으로 미루어 보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건 알지만. 상대가 CIA야. 일단 CIA와 부딪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냔 말이야?”

“…….”

“아닌 말로, 과거 동서 냉전 시대에 CIA와 KGB가 상대의 첩보 요원들을 필드에서 서로  죽이던 상황의 재판은 아니잖아.”

“북이 그 정도 머리도 없겠습니까?”

“그 정도 머리가 있으면, 중국을 중간에 세워 미국과 접촉. 상황을 풀려고 이미 시도했을 거야.”

“머리가 없다! 그 말입니까? 선배.”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럼?”

“북의 강경파!”

“…….”

“그 자식들은 머리가 아니라 감정에 따라 움직여. 지금이야 누그러졌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데프콘2가 떨어질 정도로 휴전선의 긴장도가 장난이 아니었잖아.”

“흠.”

“틀림없이 이번에도 감정적으로 움직일 거야. 뒤가 어떻게 될지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서 말이지.”

차은성이 노태준에게 뭐라 말하려는데.

“팀장!”

이어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차은성이 흠칫하더니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이어폰에 댔다.

“말해!”

“북한 애들 출발합니다. 모두 5대의 차량에, 동원 인원은 20명 안팎입니다. 목적지는 아마도 비라디스 빌딩 같습니다.”

“알았다.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

“네, 팀장. 그럼.”

황민준의 대답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차은성이 노태준을 보았다.

“북한 애들이 움직였답니다.”

“그래.”

노태준이 급히 손에 쥔 종이컵을 내려놨다. 그러곤 앉은 의자에서 서둘러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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