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41)
“자, 잠깐만요.”
박영광이 입에 담배를 물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왜?”
“인질들을 나누어서 가두어 놓았다, 그 말입니까?”
“그래.”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망할!”
매우 거칠게 중얼거렸다.
“은성아.”
“최악입니다!”
차은성이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최악이라고?”
“리코 그 자식. 단순한 마약 밀매 조직 두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응?”
박영광이 어리둥절해했다. 차은성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차은성이 천천히 설명했다.
“아마추어는 인질을 한 장소에 모아 둡니다. 그렇게 하면 인질들을 관리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
“프로들은 인질을 분산해서 가두어 둡니다. 만에 하나, 인질을 구하려고 공격받을 때, 최소한의 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
“또한 인질을 구하기 위해 공격하는 이들에게 다수의 목표를 던져 줌으로써 그들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그 외에 몇몇 다른 이유가 있긴 합니다만.”
차은성이 말끝을 흐렸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넘어선 최악의 인질범이 있다.
차은성이 설명했다.
“……저항할 생각 자체가 없고, 지키지 않아도 도망칠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으며, 유사시 인질을 구하기 위해 공격하는 이들에게 해당 인질을 내밀었을 때, 공격이 즉각 중지할 수밖에 없는…… 대개의 경우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외에 다른 인질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데. 특히 남자가 있을 경우, 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죽여 버립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테러리스트죠.”
“…….”
“로드리게스가 마지막 세 번째 유형, 최악의 테러리스트가 아니길 바랍니다만. 혹시 모르니 로드리게스에 관한 정보를 더 알아보십시오. 그놈은 단순히 마약 밀매를 하는 조직의 보스 정도가 아닙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차은성이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으음.”
박영광이 침음을 흘렸다.
알렌라스 가문의 사병 조직을 이끌던 로드리게스. 차은성의 말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있을지 모른다.
“조사해 보마.”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깊은 밤.
창가에 서 있는 차은성.
오른손에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홀짝이며 창밖 야경을 바라보았다.
“서둘러야 해!”
박영광이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다그쳤다.
상황이 매우 급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인질 구출은 무조건 빨리 끝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작전 성공 확률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 한편으로 인질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움직일 수는 없다.
“으음.”
차은성은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기 마련이지.”
중얼거렸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자면 해당 준비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셋인데.”
차은성이 재차 중얼거렸다.
“인질이 모두 35명. 날 포함한 팀원은 모두 5명. 인원이 부족해. 5명으로 35명을 구출하는 건 불가능해.”
영화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니오에 진입. 인질 구출 후 퇴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엄호해 줄 무장 병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실전 전투 경험이 풍부한 프로들로 구성된…….”
차은성이 재차 중얼거리며 와인 잔을 입에 댔다.
‘게다가 무기와 장비를 현지에서 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차은성의 낯빛이 흐려졌다.
한국에서 외교 행낭편으로 필요한 장비와 무기를 보내면, 필리핀 정부 관계자가 낌새를 챌 수 있다.
대규모 인질 구출 작전에 필요한 장비와 무기들이 어디 한둘일까?
평소와 달리 눈에 띄게 양과 무게가 늘어난 외교 행낭.
필리핀 NCIA, NBI.
그들의 이목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그렇게 되면 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다.
차은성이 입에서 와인 잔을 떼며 좌로 돌아섰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니오 내의 어디에 인질들이 분산, 감금되어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정확한 장소와 해당 장소를 지킬 것이 뻔한 로드리게스의 부하의 수. 무장 상태 등등.
관련 정보가 현재로서는 하나도 확보되어 있지 않다.
차은성이 걸음을 멈추고 서며 와인 잔을 장식장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옆으로 돌아서며 눈에 보이는 3인용 소파로 걸어갔다.
“지금 상태로는 작전에 들어갈 수 없어.”
차은성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여건이 너무 열악하고 정보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대로 작전에 들어가면 100% 실팬데.”
걱정스레 중얼거리며 3인용 소파에 이르러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털썩.
차은성이 고개를 뒤젖히며 천장을 보았다.
“1명이라면 몰라도 35명을 죄다 구출해 내라니. 아무리 우리 팀이 구출 전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작전 난이도가 그야말로 극악인데…….”
차은성은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번 일에서 정말 손을 떼고 싶었다. 이번 일은 대테러 특수부대가 나서야 한다.
팀이 이제까지 해 온 일과는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편지가 신경 쓰인다. 그리고 이제까지 해 왔던 것이 구출이다. 즉, 구출 작전에 있어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팀 아르티펙스다.
회사에서도 그 점을 감안하여 오퍼를 내렸을 것이다.
차은성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다니오를 주 작전 지역으로 한, 대규모 인질 구출 작전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 * *
사흘 후. 마닐라.
차은성을 포함한 아르티펙스 팀원들은 각기 따로 입국했다.
다들 공항을 나와 관광객처럼 마닐라 시내를 두어 번 배회. 미행의 유무를 확인한 후 사전 약속된 포인트로 이동했다.
차은성은 제일 먼저 홍콩 사업가로 위장. 필리핀에 입국했다. 다음 날. 자신의 감시 여부를 살핀 다음, 모종의 경로를 통해 몇몇 사람을 만났다.
* * *
마닐라 교외에 위치한 3층 상가.
“아름아.”
“네, 팀장.”
“영상 들어왔어?”
“네. 방금 들어왔어요.”
“모니터에 띄워 봐.”
“네.”
김아름의 대답에 이어 80인치가 넘는 모니터에 수십여 장의 위성사진이 나타났다.
“휘유우.”
“와우.”
“역시 팀장.”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놀라워했다.
제일 먼저 필리핀에 입국한 차은성이 어떻게 위성사진을 확보했는지, 다들 매우 궁금해했다.
차은성이 눈을 반짝이며 몇몇 사진을 보더니.
“잠깐.”
김아름을 포함한 팀원들이 차은성을 보았다.
“뒤로.”
“네. 팀장.”
김아름이 대답하며 사진을 뒤로 돌렸다.
“그래. 저 부분을 천천히 확대해 봐.”
차은성이 왼손 검지를 들었다. 이어 검지로 모니터 좌측 하단을 가리키며 김아름을 돌아봤다.
“네.”
김아름이 사진을 최대한 끌어당기며 확대했다.
“아름아.”
“네. 팀장.”
“조금 더.”
“팀장. 지금이 최대치예요.”
김아름의 대답에 차은성이 돌아봤다.
“……주변 배경과 맞춰서…… 픽셀이나 화소 단위로 분해해서 재조립해 봐.”
“네.”
김아름이 대답하며 잠깐 조작하더니 이내 모니터에 보다 선명하게 확대된 부분이 나타났다.
그러자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다들 놀란 눈치다.
“죽이네.”
“놈들이 한눈에 다 보이네요.”
“역시 위성이라니깐.”
차은성은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인질이 있으니, 주변에 인질을 감시하는 무장한 부하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위성을 통해 부하들의 수와 무장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 한편으로 무장한 부하들의 위치를 통해 인질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려 하였다.
또한 다니오 밖에서 인질이 있는 장소까지.
최단 시간 내로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이동로를 확보하려 했다.
노태준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어떻게 구했어?”
놀랍다는 어조의 물음이었다.
차은성이 돌아보며 씩 웃었다.
“NZSIS와 GCSB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걔네들이 웬일로요?”
우형광이 끼어들며 묻자.
“걔네들 사람들이 인질 중에 있다고.”
황민준의 말에.
“아, 그렇지.”
우형광이 뒤늦게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차은성이 살며시 웃으며 뭐라 말하려 할 때다.
띠리리리.
폰이 울렸다.
* * *
차은성이 한쪽에서 통화하는 사이,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은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았다.
“잘 기억해 둬. 특히 인질들이 감금되어 있는 장소까지, 최단거리의 진입로와 이동로는 필히 숙지해야 해!”
노태준이 힘주어 말하며 강조했다.
“네.”
황민준과 우형광이 대답하며 스크린에 집중했다.
“으음. 너무 복잡한데요.”
“필리핀 애들, 도시 계획이 뭔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민준과 우형광이 말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모니터에 뜬 다니오.
하나의 거대한 미로를 연상시킨다. 너무 복잡해서 지리에 숙달되려면 적잖게 고생해야 할 것 같다.
* * *
잠시 뒤.
통화를 끝낸 차은성이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에게 걸어가며 김아름을 불렀다.
“아름아.”
“네.”
“브루나이에 연락해서 대기 중인 불렛을 필리핀으로 들어오라고 해.”
“네에. 팀장.”
김아름의 대답에 차은성이 걸으며 노태준을 바라보았다.
“선배.”
“응.”
노태준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잠시만요.”
차은성이 노태준과 따로 얘기를 하려 했다.
* * *
이틀 후. 마닐라 교외 산중.
타타타타타타탕.
총성이 메아리쳤다.
일렬로 선 60여 명이 한창 사격 중이었다.
그들은 여섯 명씩 열 줄로 섰다. 사격하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뒤에 서 이는 두 사람이 지켜봤다.
마흔 중반의 중년인 최관우. 차은성.
“별문제 없는 거 같군요.”
차은성의 말에 최관우가 고개를 까닥였다.
“중고라 몇 군데 손을 좀 봤어.”
“잘하셨어요. 작전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되는 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차은성이 말하며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그사이.
최관우가 차은성을 돌아봤다.
“아무튼, 네 덕분에 사전 체크를 원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은성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씨익.
다들 평소에는 쓰지 않던 중고 총기다. 그 때문에 최소 일천여 발의 총탄을 쏴 봐야 한다. 그래야 총기의 이상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총기 적응 훈련 역시 할 수 있다. 그러자면 다수의 탄환과 남몰래 사격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필수다.
최관우가 물었다.
“그런데 작전은 언제 실행할 거냐?”
“이틀 뒤에 할 생각입니다.”
“위성사진을 보니 진입이 쉽지 않을 것 같던데.”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로드리게스 쪽이 인질을 구출하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강력히 대응할 것이다. 아닌 말로 시가전 아닌 시가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최관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다니오로 잠입하기를 희망했다.
작전에 관한 모든 지휘권이 차은성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