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40)
미션 마닐라
감찰실의 조사 및 심문은 그들의 악명처럼 지독했다.
사람을 아주 들들 볶아 대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런 한편으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철저히 따져 물으며 사람의 진을 빼 놓았다. 마치 조사 대상자의 바닥을 보겠다는 듯이…….
* * *
철제 의자에 허탈하게 앉은 차은성.
테이블 좌측에 박영광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힐긋.
박영광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급히 입에 콜라를 들이붓는 차은성. 이내 신경질적으로 빈 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18! ……저, 퇴직할랍니다!”
차은성이 엄청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하며 박영광을 보았다.
피식.
박영광이 가볍게 웃으며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
이어 고저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누구 맘대로.”
“삼촌!”
“인마! 공적인 자리야.”
박영광이 입에 담배를 물며 앞을 보았다.
“망할!”
차은성이 재차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뱉으며 성난 눈빛을 띠었다.
박영광이 눈웃음치며 말했다.
“너, 운 좋다!”
순간.
차은성이 눈을 반짝였다.
“오펍니까?”
“그럼 내가 무슨 일로 널 찾아왔겠냐?”
“저, 안 합니다. 안 해요.”
“안 해?”
“네에. 저는 퇴직해서 검찰 조사 받을 테니까요. 감찰실 애들더러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요. 저 퇴직하면 유튜버를 할 겁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이제까지 한 모든 활동을 다 까발려 버릴 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장난 하지 말고.”
박영광이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그러곤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박영광은 마닐라의 고급 주택단지에서 일어난 대규모 납치 사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당 주택단지에는 필리핀 상류층뿐만 아니라 우리 교포와 브루나이, 대만, 인도네시아 등 각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
“너도 알다시피 필리핀 치안, 개판이잖아. 경찰이고 군인이고 부정부패가 심해, 심지어는 경찰이 강도가 되어 관광객들을 터는 마당이니.”
“…….”
“무장 경비원이 한두 명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수의 납치범이 단지 내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야. 게다가 중무장한 채로 말이야.”
“…….”
“……상황이 뭐같이 꼬였어.”
박영광이 엄청 심기 불편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필리핀 놈들. 더럽게 자존심만 세서는…….”
박영광의 설명을 듣는 차은성.
겉으로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내심 실소하고 있었다.
필리핀의 자존심은 그들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웃긴 것은 그 자존심이 일반 국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 상류층만의 자존심일 뿐이라는 것이다.
“각국 사람들이 인질이다 보니 죄다 이 일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어……. 필리핀은 필리핀대로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타국 대테러부대의 필리핀 파견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
“자국 내에서 타국 대테러부대가 활동하는 것이 국가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 것이라는 걸 이해는 하지만, 제 놈들이 해결한 의지도 능력도 없는데……. 아무튼, 도와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자신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있는 주접, 없는 주접 다 떨고 있어.”
박영광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설명을 이었다.
“썩을 대로 썩은 필리핀 경찰 애들이 해결할 수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무장 경비원을 고용하는 그런 고급 주택단지가 생길 리가 있겠냐? 한마디로 말해, 능력은 쥐뿔도 없는 놈이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격이지.”
“…….”
“청와대에서도 머리가 아파 죽으려고 한다. 여론은 뭐같이 떠들어 대지. 국민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이란 망할 것들이 지 잘났다고 마구 떠들어 대지.”
“…….”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필리핀 정부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우리 특임대를 파견할 수가 없어.”
“…….”
“설사 파견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야. 각국에서 자국 특수부대를 필리핀으로 보낼 게 뻔해. 완전 특수부대 짬뽕이 되겠지. 그럼 사공이 넘쳐 나는 배니, 어느 산으로 갈지……. 부지하세월이야.”
박영광이 피우던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어 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결론은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건데.”
“…….”
“인질 구출이다 보니, 아무래도 너희 팀이 나서 줘야겠어.”
“다른 팀은 여전히 각기 임무로 바쁘고, 새로 조직된 3팀은 아직 준비가 덜 됐고?”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고개를 까닥였다.
“니들에게는 잘된 일이지.”
“풋. 잘되긴 뭐가 잘돼요. 보나 마나 갔다 와서 다시 감찰실 조사 받으라고 할 게 뻔한데요. 아닌 말로, 화장실 들어갈 때는 엄청 급하니 통사정하고, 나올 때는 볼일 시원하게 다 봤으니 더는 볼 일이 없어 안면 몰수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잖습니까?”
“니들 돌아와서 감찰실 조사 받을 일은 없을 거야. 그 정도는 커버 쳐 주지.”
박영광의 말이 끝나자마자.
“싫은데요.”
차은성이 오퍼를 거절했다.
순간.
당황한 박영광이 급히 언성을 높였다.
“야아!”
차은성은 차분했다.
‘후후.’
칼자루는 자신과 팀원들이 쥐었다. 내심 쥔 칼을 마음껏 휘둘러 볼 참이다.
차은성이 박영광을 보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장보님.”
“너어…….”
“있을 때는 세상 다시없는 애물단지 취급하며 사람을 아주 뭐같이 갈구다가, 아쉬우면 나라가 어떻고 국민이 어떻고 사탕발림으로 사람을 꾀어서 사지에 밀어 넣고.”
“…….”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이란 발버둥은 다 쳐서 간신히 임무 성공하고 살아 돌아오면, 이건 완전 천덕꾸러기니.”
“…….”
“그런 취급 받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죠.”
“…….”
“이젠 안 할랍니다……. 지쳤어요.”
차은성은 말하며 박영광에게 상체에 이어 오른손을 내밀었다.
“담배 한 개비 주시죠.”
차은성의 말과 태도에 박영광이 당황하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너어…….”
“이제 더는 볼 일도 없을 텐데 쩨쩨하게 굴지 마시고 한 개비만 주십시오.”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오른손을 들더니 뒷목을 잡았다. 그러곤 눈을 감으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혈압 상승!
그런 박영광의 모습에 차은성이 눈웃음쳤다.
씨이익.
* * *
대통령님.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조국을 떠나 멀고 먼 타향에서 맨주먹으로 새로운 삶을 일궜습니다.
……남몰래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먹고살 길이 너무도 막막해 한때는 자살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먹고살 만해졌습니다.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청할 이도! 없습니다.
……조국에!
제가 사랑하는 조국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빕니다.
제발!
제발, 제 가족을 살려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처와 아이들이 그놈들에게 어떤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이 제 잘못인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열심히 산 것 뿐인데. 왜 제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 * *
편지는 구구절절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의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한 사람의 진심이, 가족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가슴에 와닿는다. 하여 숙연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말이 없어진다.
한 가장의 진심에, 안타까움에, 슬픔과 울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편지를 다 읽은 차은성이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러곤 여전히 테이블 좌측에 엉덩이를 걸친 박영광을 보았다.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그러다 진짜! 암 걸려요!”
공연히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마음과 말이 제각각이다.
박영광이 하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돌아봤다.
“할 거지?”
“언 놈이에요?”
“응.”
“주택단지 급습한 놈들이 누구냐고요?”
차은성이 물으며 온몸으로 분노를 발했다.
* * *
박영광이 설명했다.
“로드리게스 리코.”
“스페인계 혼혈인 크리올인데, 마닐라에서 꽤 알아주는 마약 조직 보스로……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로드리게스 조직은 알렌라스 가문의 사병 조직이야.”
박영광은 필리핀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을 언급했다.
필리핀의 각 주마다 해당 주를 대표하는 가문들이 있다. 마르코스, 아키노.
저 유명한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전 필리핀 상원 의원 아키노.
필리핀 상원 의원들 대부분이 각 가문 출신이다.
“문제는 현 필리핀 라울 대통령과 알렌라스 가문 사이가 안 좋다는 거지.”
“그럼…….”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담배를 피우며 대꾸했다.
“명분이 좋잖아. 마약 조직을 치고, 그 조직이 알렌라스 가문의 사병 조직임을 입증하기만 하면?”
“정적 가문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차은성의 반문에 박영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에 의해 궁지에 몰린 로드리게스 조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대규모 인질 사건을 일으킨 거야. 그 때문에 알렌라스 가문은 물론, 대통령도 크게 당황한 눈치야.”
박영광의 설명을 들으며 차은성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검지로 태블릿 화면을 좌로 젖혔다.
마흔 초반 어름으로 보이는 이를 촬영한 다양한 사진이 화면에 떴다.
“그동안 수가 줄긴 했지만, 그래도 조직원이 쉰 명이 넘어.”
“…….”
“현재 필리핀 경찰과 협상 중인데. 인질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사면과 해외 출국을 요구하는 한편, 우리를 비롯한 관련국들에 인질들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어.”
“…….”
“적정한 금액이라면 한번 고려해 볼 수도 있는데. 그 금액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납치된 인질이 총 35명인 데다가 다른 나라들도 관련되어…… 단시일 내로는 결론이 안 나는 아주 답답한 상황이야.”
차은성이 태블릿을 보며 물었다.
“현재 인질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마닐라 동쪽에 있는 다니오라는 빈민촌으로 파악되었는데…… 한마디로 말해 브라질의 악명 높은 파벨라 같은 곳이야. 때문에 현지 필리핀 경찰들도 다니오 내로 들어가기를 꺼려해.”
“…….”
“설사 들어갔다고 해도, 주민들이 로드리게스 패밀리에 적극 협조하는 바람에…… 현지 요원이 몇 잠입했다가 주민들 때문에…… 외지인은 금방 발각되어 버리는…….”
“주민들이 그렇게 로드리게스를 감싸고도는 이유가 뭡니까?”
“로드리게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데다가, 로드리게스가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돈 중 적잖은 돈을 다니오에 뿌려 현지 주민들의 환심을 샀어.”
“한마디로 말해, 돈으로 다니오를 샀다! 그 말이로군요.”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이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외부인이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야. 대단히 폐쇄적인 곳이야.”
“…….”
“마닐라 내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라고나 할까? 게다가 빈민촌이란 특성 때문인지, 동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로처럼 너무 복잡해서 현지 주민이 아니라면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야.”
“…….”
“인질들이 다니오에 있다는 것은 아는데. 어디에 있는지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 들리는 말로는 인질을 분산. 가두어 두었다는…….”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흠칫하며 당황하는 눈빛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