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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31)

잠시 뒤.

“어머. 차 실장님 아니세요.”

누군가가 알은체했다.

차은성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서른 후반 어름의 여배우 최희주.

한창 잘나갈 때, 변종수가 그녀를 전담하기도 했었다. 그 인연으로 안면이 조금 있다.

“호호호. 여기서 차 실장님을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아, 예에.”

차은성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언니.”

최희주의 옆에 서 있는 서른 초반의 여성이 최희주를 불렀다. 이어, 눈짓으로 차은성을 가리켰다.

누구야?

무언의 물음에.

“어머. 내 정신 좀 봐.”

최희주가 그녀와 차은성을 번갈아 봤다.

“서로 인사하세요. 이쪽은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한승희 사장님.”

“언니. 직원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사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좀 그렇잖아.”

한승희가 곤혹스러워하며 은근슬쩍 웃었다. 사장으로 누군가에게 소개되는 것이 기분이 좋은 눈치다.

“호호호. 그럼 뭐로 부를까?”

“됐어. 장난 그만 쳐.”

한승희의 말에 최희주가 차은성을 소개했다.

“이쪽은 라센느의 차 실장님. ……일명 연예계의 신의 손으로 불리지……. 차 실장님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담당이 당장 뒤바뀌지. 호호호.”

웃음이 헤픈 최희주였다.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한승희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한승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오빠아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차은성이 돌아보자 한껏 멋을 낸 예서가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    *    *

한승희가 걸어가는 차은성과 예서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예서에게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나?’

한승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정지용을 생각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최희주를 돌아봤다.

“언니.”

“응.”

최희주가 한승희를 쳐다봤다.

“저 사람, 실력이 상당한 모양이야.”

“얘는……. 상당한 정도가 아니야. 그 이상이야. 한마디로 말해 끝내줘! 하지만 엄청 비싸.”

“비싸다고?”

“그래. 다들 차 실장에게 머리와 얼굴은 물론 피부까지 다 맡기고 싶어 하지만. 한두 푼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아. 그 때문에…….”

“흠.”

“왜, 욕심이 나니?”

“응. 우리 드림에서 미는 애들 있잖아.”

“아, 그 3인조 걸 그룹.”

“응. 회사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터라…… 저 사람에게 애들을 맡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서. 너 그러다 회사 말아먹어.”

“그렇게 비싸?”

“얘는, 내가 조금 전에 비싸다고 한 말을 어디로 들었니?”

최희주의 말에.

‘그 정도란 말이지.’

한승희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    *    *

생일 파티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주인공인 조혜선은 꽤 많은 선물을 받았다. 하나하나 선물을 개봉하다가 차은성의 선물 차례가 되었다.

개봉한 조혜선이 목걸이를 보곤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아…….”

“굉장한데, 여보. 보통 목걸이가 아닌 것 같아.”

조혜선의 옆에 서 있는 정병훈이 슬쩍 한마디 하고 나섰다.

그사이.

정의서, 정예서, 최희주, 한승희 등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이 목걸이를 하염없이 쳐다봤다. 그녀들의 눈에서 부러움과 질시의 빛이 어른거렸다.

“엄마. 어서 목에 걸어 봐.”

예서가 말하자 조혜선이 망설였다.

그러자 정병훈이 말했다.

“예서 말대로…….”

“그럴까요.”

조혜선이 살며시 미소 짓더니 목걸이를 들고 이내 목에 찼다.

그때.

한승희가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놀란 눈치다.

옆에 서 있는 최희주가 돌아봤다.

“왜 그래?”

“언니.”

“응.”

“저거 드비어스사 제품이야.”

“뭐!”

놀란 최희주가 급히 조혜선을 돌아봤다.

“틀림없어. 목걸이 끝부분에 있던 문양이……. 그런데 저 목걸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디자인인 것 같은데…….”

한승희가 놀란 어조로 중얼거렸다.

*    *    *

“우아아아! 엄마, 정말 잘 어울려.”

예서가 놀람과 부러움을 담아 말하더니 차은성을 돌아봤다.

“어쭈. 우리 차 실장, 돈 좀 썼는데.”

장난스럽게 말하자.

“예서야.”

정의서가 예서를 돌아보며 주의를 주었다.

예서가 찔끔거리며 정의서의 눈치를 보았다.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언니라서일까. 얼핏 보기에 정의서를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정지용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버지 정병훈과 새어머니 조혜선을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    *    *

“은성아. 고맙다.”

조혜선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조혜선이 움찔거리며 착잡한 눈빛을 띠었다.

눈치를 챈 걸까?

정병훈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자! 여러분, 마음껏 먹고 마십시오.”

“예에에.”

“생신 축하드립니다. 사모님.”

“축하드려요. 사모님.”

사람들이 조혜선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조혜선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차은성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사람들 뒤로 물러났다.

‘됐어.’

이젠 자신이 사라져야 할 때다.

*    *    *

차은성은 저택을 나와 도로를 따라 걸었다. 저택이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차은성이 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아름아.”

“팀장?”

“자다 일어났냐?”

“네.”

“괜찮을까?”

“뭐가요?”

“부탁할 게 있어서…….”

“호호.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그게…… 한조 그룹에서 해상 테크를 상대로 M&A를 건 모양인데. 최대한 자세히, 최대한 빨리, 이면 사정을 알아볼 수 있을까?”

“팀장.”

“응.”

“그게요. 기업 분야가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요. 정보 수집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알아. 네가 할 수 있는 한…….”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조사해 볼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그래. 들어가.”

차은성이 통화를 끝내고 폰을 뗐다. 이어 품속에 집어넣으며 한조 그룹을 생각했다.

‘어머니를 건드리면!’

차은성이 서늘한 눈빛을 띠었다.

자신 때문에 스스로를 정병훈에게 판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를 위협하는 것은 그가 누구든, 무엇이 되었건 일절 용서할 수 없다.

*    *    *

잠시 뒤.

부우우웅.

걸어가는 도로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차은성은 우측으로 붙으며 계속 걸었다.

저벅저벅.

이내 외제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섰다.

끼익.

이어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차 실장님?”

부르는 음성에 차은성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드림…….”

“네. 드림 엔터테인먼트 한승희예요.”

살며시 웃는 게 보기에 좋다.

“그런데 무슨…….”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아닙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버스 정거장이 나옵니다.”

“차 실장님. 여기서 버스 정거장까지 못해도 20분은 걸어야 해요. 정 불편하시다면, 제가 정거장에 내려 드릴게요. 어떠세요?”

한승희의 말에 차은성이 잠깐 생각하더니.

“그럼 정거장까지만 부탁드립니다.”

“네.”

차은성의 대답에 한승희가 활짝 웃었다.

‘됐어.’

심중 쾌재를 불렀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미는 3인조 걸 그룹.

한승희는 의도적으로 접근. 차은성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손만 대면 걸 그룹의 비주얼 담당이 바뀐다는 실력이 진짜라면, 3인조 걸 그룹에게 적잖은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차가 도로를 따라 정속 주행했다.

조수석에 앉은 차은성은 우로 고개를 돌렸다. 차창 밖을 바라봄으로써 한승희와의 대화를 피했다.

호시탐탐.

차은성에게 말을 걸 기회를 엿보는 중인 한승희.

‘뭔 사람이…….’

차은성이 딴 곳을 보고 있고 침묵하고 있어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지, 심중 당황한 그녀다.

침묵이 금이다!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는 것 같은 차은성이었다. 입에 무슨 철통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지 도통 말이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차은성을 힐긋거리며 한승희가 물었다.

“해상 테크 사모님과 아시는 사이세요?”

순간.

차은성이 움찔하더니 한승희를 돌아봤다.

“조금.”

“그래요. 아까 본 목걸이를 차 실장님이 선물하셨다고 예서가 그러던데…….”

“예서를 아십니까?”

“조금요. 걸 그룹이 하고 싶다고, 학교 졸업만 하면 저희 드림에 연습생으로 들어오겠다고 예전부터 하도…….”

차은성은 고개를 우로 돌렸다.

‘끄응.’

예서가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연습생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어머니 속이 많이…….’

심중 중얼거리는데.

“그 목걸이 말인데요. 제가 보기엔 드비어스사 제품인 것 같은데. 어떻게 구매하셨어요?”

“그럭저럭…… 운이 좋았습니다.”

“에이. 운으로 구매하신 것 같지 않던데요.”

“…….”

“제가 좀 아는 것이 있어서요. 그 목걸이. 일반 판매 제품이 아니라 무슨 한정품 같은 거 아니에요?”

“주문 제작품입니다.”

“주문 제작이요?”

“네, 디자인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 드비어스사의 전문 제작 팀에게 의뢰한 겁니다.”

“돈이 많으신가 보네요. 그렇게 하려면…….”

“그런 얘기는 그만하시죠.”

차은성의 말에 한승희가 움찔했다.

“일부러 파티에서 빠져나와 절 따라오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알아챈 차은성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 당황한 한승희였다. 때문에 뭐라 말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차가 정거장에 도착했다.

“저기 세워 주시면 됩니다.”

“차 없으세요?”

당황했기 때문일까? 한승희가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픽.

차은성이 실소하며 정차한 차 문을 열었다.

“딱히 차를 끌고 다닐 일이 없어서요.”

말과 함께 내리더니 차 문을 닫고 곧장 정거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승희가 양손으로 핸들을 쥔 채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묘한 남자란 말이야.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파티에 차를 가져오지도 않고…… 도보로 도로를 따라 내려와 버스를 타는 게 말이 돼……? 그 목걸이! 주문 제작 의뢰 비용이면 차를 서너 대는 충분히 살 수 있을 텐데.”

중얼거리는 한승희의 눈에서 호기심의 빛이 어른거렸다.

*    *    *

사흘 후, 라센느 옥상.

차은성이 홀로 서서 김아름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며…… 중국 웨이퍼 생산업체들이 사실상 휴업 상태에 들어가며 웨이퍼 대란이…… 당분간 해당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에요.”

“…….”

“국내에서 웨이퍼를 생산하는 업체가 3개 사인데, 그중 해상 테크가 가장 생산량이 많아요. 품질도 단연 최고고요. 그 때문에 현재 해상 테크의 주가가 연일 상종가예요. 팀장,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 말해.”

차은성의 말에 김아름이 말을 이었다.

“……한조 반도체가 웨이퍼 대란으로 몇 달 안으로 생산 라인이 올 스톱될 처지에 놓여 있어요. 정부에서 이번 웨이퍼 대란으로 혹시라도 국내 반도체 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을까 우려하여 적극적으로 개입 중인데.”

“…….”

“정부에서…… 해상 테크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한조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돌리려고 했는데.”

“……해상 테크에서.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거래해 온 기존 거래 업체들에게 웨이퍼를 공급해 줄 수 없게 된다면…… 사실상 계약 위반이고. 관련 계약 위약금도 위약금이지만, 기업 신뢰도에 있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고 정부의 웨이퍼 공급 요청을 거절했어요.”

“흠.”

차은성이 침음하며 정병훈을 생각했다.

의외다.

소신이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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