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9)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청담동 뷰티 살롱 라센느.
다들 바쁘다. 급히 이리저리 종종걸음으로 오갔다.
차은성이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사람을 좀 더 고용하는 게 어때, 형?”
“어머. 그래도 되니?”
차은성의 우측에 서서 반문하는 남자.
변종수.
차은성을 돌아봤다. 그러자 변종수가 급히 말했다.
“안 그래도 은성이 네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어, 얘.”
성 소수자 같다.
차은성이 살며시 웃었다.
“나는 그저 얼굴마담 같은 거라고 몇 번을 말해. 라센느 운영은 형이 알아서 하면 된다고. 다만.”
“적자가 나면 네가 나서고.”
변종수가 차은성의 말을 가로챘다.
차은성이 피식 웃었다.
“형이 아니었음 라센느를 열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차은성의 말에 변종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차은성이 고저가 없는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형의 실력. 운영 노하우. 능력. 사람 관리 등등.”
“…….”
“실질적인 오너는 형이야.”
“은성아.”
“응.”
“너, 진짜로 말이지…….”
변종수가 말끝을 흐렸다.
차은성은 말없이 변종수를 보았다.
“10년만 라센느를 흑자 운영하면, 일정 지분 외에 모든 지분을 네게 넘길 거야.”
변종수의 말에 차은성이 픽 웃었다.
“이보세요, 우리 종수 형님. 고용 계약서 특약란에 내가 분명히 그렇게 적고 사인까지 했는데 아직도 안 믿어지세요.”
변종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 그 빚을 갚고자 자청해서 특약란에 그와 같은 사항을 넣었다.
일순간.
“은성아!”
변종수가 기쁜 나머지 차은성의 가슴에 와락 안기며 양손으로 등을 꽉 당겼다.
순간적인 변종수의 행동에 차은성이 놀라 움찔했다.
“혀, 형.”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종수의 돌연한 행동이었다.
변종수는 차은성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감격에 젖은 어조로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
“형!”
차은성은 변종수를 부르며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부터 다수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차은성을 난처한 상황에서 구한 것은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벨 소리였다.
라센느의 직원들이 오래전부터 차은성과 변종수 사이를 오해하곤 했었다.
방금 전과 같은 광경이 빈번하니 그럴 법도 하지만.
차은성의 성적 취향은 변종수 타입이 아니었다.
* * *
라센느 인근에 위치한 커피숍.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좌측 구석진, 아담한 원형 테이블.
벽을 등지고 차은성이 앉아 있었다.
커피숍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탓에 차은성은 맞은편에 앉은 노태준과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훑었다.
몸에 밴 습관과도 같은 버릇이다.
노태준이 며칠 전 밤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불안해.”
자초지종을 들은 차은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선배.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부성애가 남달라도 너무 남다른 노태준이다.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은 후 혼자서 외동딸을 키웠다.
차은성의 말에.
“야!”
노태준이 언성을 높였다.
차은성이 급히 숍 내부를 둘러보았다.
연후.
노태준을 바라보며 무언의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노태준이 내부를 휙 살펴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너.”
“…….”
“남의 일처럼 그렇게 말할래?”
은근 서운함을 내보이는 노태준이었다.
“선배.”
“…….”
“형수님 그렇게 가시고 혼자 연지를 키우며…… 과민하신 거라고요.”
별것 아닌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차은성이 에돌려 그렇게 말하자.
노태준이 손을 들었다.
그러곤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한 전단지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어 차은성을 향해 전단지를 빙글 돌렸다.
전단지를 본 차은성이 흠칫했다.
전단지 정중앙을 큼지막하게 차지한 몽타주가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전단지 상단에는 현금이 걸려 있었고 하단에는 몽타주 관련 정보 제공을 부탁하는 글이 인쇄되어 있었다.
―여중, 고생을 성폭행하고 질식사시킨 연쇄살인범!
차은성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으며 노태준을 보았다.
“설마?”
노태준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비슷해!”
“…….”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생각했어.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확신이 들어.”
노태준이 말하며 오른손 검지를 들더니 몽타주의 눈을 짚었다.
“눈매가 너무 닮았어. 그리고 풍기는 냄새라고나 할까?”
노태준이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놈 같아.”
“선배…….”
차은성이 말을 흘렸다.
연쇄살인마라고 말해도 될 놈이, 노태준의 딸 연지를 노렸다!
노태준이 확언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나 은성이 너 같은 사람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노태준이 말끝에 힘주며 형형한 안광을 번득였다.
“…….”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노태준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 전에 재교육 받았어. 그런 내 감을 난 믿어!”
노태준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차은성은 고개를 숙여 전단지의 몽타주를 뚫어져라 보았다.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필드에서 활동한 노태준이다. 함께 팀을 이룬 후로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얼마 전 벨기에에서 CIA 세이프티 하우스를 급습했을 때, 노태준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그때 중상을 입었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다.
말없이 생각하는 차은성을 노태준이 불렀다.
“은성아.”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노태준을 보았다.
“선배. 일단!”
“…….”
“알아보도록 하죠.”
“알아본다고? 어떻게?”
노태준의 물음에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 * *
×× 정신과.
복도를 걸어가는 차은성.
저벅저벅.
김아름과 통화 중이었다.
“주변 카메라와 차량 블랙박스 등 영상을 구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모아 봐……. 필요하면 민준이와 형광이에게 연락해서…… 그래. 이번 일은 아름이 네가 보스다, 보스. 훗!”
차은성이 실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
몸에 밴 버릇처럼 항상 미행이나 감시를 신경 썼다.
* * *
“그래.”
“네에. 저도 모르게 과격해지곤 합니다. 제가 나무 감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동안 잠재운, 제 속에 있는…….”
“약은 계속 먹고 있고?”
“그게 정기적으로 먹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래. 일단 약을 정기적으로 먹으면서 증세를 좀 더 보도록 하자. 지금으로서는 증상 관찰밖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으니깐.”
“알겠습니다.”
“약, 얼마나 남았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잘됐네. 갈 때 가지고 가.”
“처방전 없이 막 약을 내줘도 됩니까? 하하하.”
“녀석. 처방전도 요원의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어.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도 마찬가지고.”
“훗.”
* * *
병원을 나왔을 때.
띠리리리.
폰이 울렸다.
차은성이 복도를 걸어가며 폰을 꺼내 귀에 댔다.
“여보세요.”
“저예요.”
김아름이었다.
“말해.”
“뭔가 좀 이상해요, 팀장.”
“뭐가 이상한데?”
“그게요.”
“…….”
“……옥천동으로 지역이 한정된 터라…… 거주자 우선 주차 관련 카메라와 생활 방범 카메라 등…… 태준 선배와 연지가 잡히는데, 말씀하신 그 남자는 없어요! 잡힌 영상이 하나도 없어요!”
김아름의 말에.
우뚝.
복도를 걸어가던 차은성이 걸음을 멈추고 섰다. 순식간에 차은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특정 지역을 한정해서 빠르게 알아본 김아름이다. 그런데 노태준, 연지 부녀가 잡힌 영상이 있는데, 그 남자의 영상이 없다?
차은성은 일순 등줄기를 쭈우욱 훑어 내리는 소름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바르르.
교육받은 요원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이 영상에 잡히지 않았다면!
‘서, 선배의 감이 맞는 거야!’
차은성은 눈을 부릅떴다.
애애애애앵!
머릿속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고 미친 듯이 울린다.
“아름아.”
“네에.”
“태준 선배를 제외하고 민준이와 형광이를 호출해. 너도…… 지급이니깐 1시간 내로 오라고 해.”
“네에. 팀장. 그럼.”
김아름의 말을 끝으로 차은성이 통화를 끝냈다. 폰을 집어넣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심상치 않다!
* * *
1시간 후.
철거지에 있는, 유치권 행사 다툼으로 위장된 오래된 5층 빌딩.
차은성이 좌우를 번갈아 보며 노태준과 연지에 관한 것을 설명했다.
그새.
김아름이 복사한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를 받아 든 황민준과 우형광이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둘은 고개를 숙여 손에 쥔 전단지를 뚫어져라 보았다.
설명이 계속되었다.
“……며칠 전에 연지를 미행했던 놈이…… 몽타주의 그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은성이 힘주어 말하며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을 차례대로 보았다.
“연지를 미행한 것을 보면, 아무대로 범행 대상으로 점찍은 것 같은데. 형광아.”
차은성이 우형광을 보았다.
“네.”
“연지 마크해라.”
“알겠습니다.”
“절대 연지나 태준 선배에게 들켜서는 안 돼!”
“예?”
우형광이 반문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놈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연지를 지키되, 네 존재를 절대 드러내지 말란 말이다. 할 수 있겠지?”
“할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태준 선배가 마음에 걸립니다. 알아채실 것 같은데…….”
우형광이 말끝을 흐리며 불안한 기색을 지었다.
“안 돼!”
차은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다 놈이 알아채면 꼬리를 감추고 꼭꼭 숨어 버릴 게 뻔해. 그럼 피곤해져.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지에 관한 일이야. 태준 선배가 절대 평정을 유지하지 못할 거야. 만에 하나라도 돌발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일이 꼬여! 내 말 알겠지?”
“네에. 잘 알겠습니다, 팀장.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커버해. 등하교, 학원 등 놈이 연지를 지켜보거나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우형광이 눈을 반짝이며 차은성의 말을 경청했다.
연후.
차은성이 황민준을 돌아봤다.
“민준아.”
“네, 팀장.”
“기자나 검찰 수사관으로 위장해서 사건 담당 형사들을 만나 봐라. 놈이 누구인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을 최대한 모아 봐.”
“네, 팀장.”
“어설프게 위장하지 말고 제대로 위장해.”
“네.”
황민준의 대답에 차은성이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민준이 위장을 도와주고…… 혹시 모르니깐 형광이의 몸에 캠을 부착해서…… 놈과 관련된 영상을…… 그리고 검찰, 경찰 데이터 서버 등 관련 정보를…… 필요하면 해킹해. 단! 흔적은 절대 남겨서는 안 돼!”
“걱정 마세요, 팀장. 저, 김아름이라고요.”
자신감에 찬 김아름이어다.
차은성이 소리 없이 실소하더니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을 차례대로 마주 보았다. 그러곤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팀장!”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차은성은 그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 * *
차은성은 인터넷을 뒤졌다.
정체 미상의 사내.
그의 범행과 관련이 있는 신문 기사를 집중 검색했다. 그런 한편으로 관련 정보를 모아 꼼꼼히 보았다.
연후.
세 곳의 범행 현장을 찾았다. 도보로 걸으며 현장과 주변을 둘러봤다.
“으음.”
차은성은 의문을 느꼈다.
범행 장소 주변에는 사람의 왕래가 뜸했다. 방범이나 주차 관련 카메라가 없었다. 차량의 블랙박스 역시 없었다. 철저히 외진 장소였다.
“이상해.”
차은성은 의혹의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 돼!”
차은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는 매우 오래된 주택가.
“사는 주민이 아니면 이런 장소를 모를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외진 곳을 알았을까?”
차은성은 생각했다.
‘범행 장소를 물색하러 다닌 걸까?’
가능성이 있다.
사전에 범행 장소를 알아보고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은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범행 장소를 찾아 선택했다고 해도, 범행 대상자를 해당 장소로 어떻게 데리고 왔을까?
“며칠을 두고 몇몇 범행 대상자를 지켜보면서 선택했을까? 아니면 즉흥적으로 선택하고 해당 범행 장소로 데리고 왔을까?”
차은성은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저벅저벅.
범행 장소 주변을 수여 회 돌아다녔다. 범행 대상을 납치했다면 차량으로 이동했을까? 아니면, 강제로 끌고 왔을까? 해당 과정에서 범행 대상자가 틀림없이 저항했을 텐데.
차은성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나름 답을 찾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