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2)
그사이 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서른 초반의 여비서가 들어왔다. 손에 봉투를 쥔 그녀가 책상에 이르자.
“뭐야?”
시몬스가 다소 짜증스럽게 물었다.
“네에. 서울 지부에서 외교 행낭편으로 국무부를 통해…….”
“책상에 놔둬.”
“네에.”
여비서가 대답과 함께 봉투를 내려놨다. 이어 뒤돌아섰다.
잠시 뒤, 문이 닫혔다.
시몬스 부국장은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
책상에 놓인 봉투.
―일급비밀!
겉면에 붉은 스탬프로 그렇게 찍혀 있었다.
* * *
벨기에 아흔트 구. 2차선 도로를 몇몇 차량이 지나쳤다.
도로 좌측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
뒷좌석 우측에 앉은 차은성이 창밖을 돌아봤다.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낡은 유럽식 아파트.
“확실해?”
묻자.
운전석에 앉아 있는 김아름이 돌아봤다.
“확실해요. CIA 안가예요. 현재 상주하는 요원은 모두 일곱 명이고 1층에 한 명, 2층에 두 명, 3층에 네 명이 있어요.”
“으음.”
차은성이 침음을 흘렸다.
좋지 않다.
대낮에 CIA 안가를 친다는 것은 이만저만 큰 부담이 아니다.
차은성의 옆에 앉은 노태준이 말했다.
“잘못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지?”
차은성보다 연상이고 선배다.
차은성이 돌아봤다.
“압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접선하기 전에 민들레가 CIA에 잡힌 이상, 도리 없습니다.”
“휴우.”
노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회사에서 승인 안 받았지?”
“형님은 승인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노태준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떨어질 리가 없다.
“나중에 회사에서 아주 왕지랄 할 텐데.”
걱정스러운 노태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합니다.”
차은성이 고집을 부렸다.
“알았다. 죽으나 사나 우린 한 팀이니깐.”
노태준이 말하며 손을 들더니 상의에서 콜트를 꺼냈다. 이어 소음기를 꺼내더니 빙빙 돌려 총구에 끼웠다.
끼릭, 끼릭.
* * *
김아름이 실내 미러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요, 팀장.”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노태준처럼 소음기를 끼운 콜트를 상의에 집어넣더니 차 문을 열었다.
덜컥.
밖으로 나가며 차은성이 슬쩍 김아름을 보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차를 문 앞에 대기시켜 둬.”
“네에.”
김아름이 어쩔 수 없다 듯이 대답했다.
차은성과 노태준이 출입문 앞에 섰다.
“초인종 누를까?”
“초인종은 무슨!”
말과 함께 차은성이 손잡이를 잡더니 옆으로 돌렸다. 그러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노태준이 차은성의 행동에 황당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또라이 자식!’
CIA 안가에 들어가는데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가 없는 차은성이다.
배짱이 보통 두둑한 것이 아니다.
* * *
출입문 우측.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던 노인이 열리는 문에 흠칫했다. 문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출입자를 확인하여 비상시 알리는 역할을 맡은 노인이다.
노인이 급히 신문을 옆으로 집어 던지고 앉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노인의 행동보다 차은성이 한발 빨랐다. 가차 없이 총구를 겨냥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퓻.
정확히 노인의 이마에 명중했다.
털썩.
노인이 쓰러지는 사이, 차은성이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으로 걸어갔다.
서둘러야 한다. 노인이 쓰러지는 소리를 2층에 있는 CIA 요원들이 들었을지 모른다.
노태준이 차은성을 바짝 따라붙었다. 그는 소음기를 장착한 콜트를 들어 2층을 겨눴다.
* * *
바람처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는 차은성이 눈에 보이는 두 백인에게 콜트를 겨눴다.
두 백인이 어느새 손에 쥔 권총을 차은성에게 내밀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다.
차은성이 한발 느린 상황이다. 그 때문에 차은성의 얼굴이 사색으로 급변했다.
당한다!
그때.
퓨, 퓻.
노태준이 두 백인을 사살했다. 놀라운 속사였다.
차은성이 노태준을 돌아봤다.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짓는 노태준.
차은성이 고개를 까닥인 후 급히 2층으로 뛰었다.
노태준이 그런 차은성을 서둘러 따라붙었다.
* * *
콰앙!
방문을 걷어찬 차은성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퓻.
우측에 있던 CIA 요원을 사살하고 방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요원이 급히 총을 꺼냈다.
그사이, 뒤이어 들어선 노태준이 다른 요원을 향해 돌아섰다.
퓻.
정확히 요원의 이마에 총탄이 박혔다.
털썩.
요원이 쓰러지고 차은성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좌로!”
말하며 차은성이 우로 뛰었다.
다다.
노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콜트를 얼굴 높이로 들며 재빨리 좌로 돌아섰다. 누구든지 눈에 띄는 즉시 사살할 작정인 모양이다.
천천히 걸음을 떼는 노태준이 바짝 긴장한 눈빛을 띠었다.
* * *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중년인.
조영국.
의자 뒤로 돌려진 양 손목과 두 다리를 타이가 조이고 있다.
네 걸음 어름의 거리를 두고 양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CIA 요원이 거친 숨을 쉬었다.
“헉, 헉. 지독한!”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다.
* * *
조영국의 좌측. 다섯 걸음 어름 떨어진 곳.
푸드 수레 앞에 다른 요원이 서 있었다. 요원은 잔에 커피를 따랐다.
쪼르르.
이어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응?”
요원이 멈칫했다.
거친 숨을 쉬던 요원이 멈칫한 동료를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소리?”
요원이 짜증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게…….”
손에 잔을 쥔 요원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콰앙!
문이 활짝 열리며 차은성이 난입했다.
퓻…… 퓻.
눈부시도록 빠른 연속 동작이었다.
잔을 든 요원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넣고 앞으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좌로 틀었다.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차은성.
* * *
소매를 걷어 올린 요원이, 직면한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그가 허리 뒤춤에서 총을 꺼내려는데.
* * *
퓻.
차은성이 그의 심장에 총탄을 박아 넣었다.
털썩, 쿠웅.
차은성에게 당한 두 요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차은성은 급히 일어났다. 양손으로 총을 쥐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클리어!”
짧게 외친 차은성이 의자에 앉은 조영국을 돌아봤다.
* * *
잠시 뒤.
찰싹, 찰싹.
차은성이 조영국의 뺨을 서너 번 때렸다.
“민들레, 민들레!”
“으으…….”
조영국이 신음하며 고개를 들더니 힘없이 눈을 깜빡였다.
“약물에 당했어.”
방문 쪽에 서 있는, 주위를 경계하던 노태준이 돌아보았다.
“서둘러!”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차은성이 대답하며 나이프를 꺼냈다. 그러곤 조영국의 팔다리를 죈 타이를 툭툭 끊었다.
* * *
경각 후.
끼익.
출입문이 열렸다.
좌우에서 조영국을 부축한 차은성과 노태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급히 앞에 있는 승용차로 다가갔다.
삽시간에 조영국을 태우고. 차은성과 노태준이 뒷좌석에 앉았다.
타, 탕.
문이 닫히자마자.
부우우웅.
차가 출발했다.
이내 차는 도로를 주행하며, 스쳐 지나가는 다른 차량들 사이로 사라졌다.
* * *
몇십 분 후.
정장을 입은 마흔 중반의 흑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저마다의 일을 보는 사복 및 정복 경관들. 그들 중 한 사람이 흑인을 보았다.
“오셨습니까? 담당관님.”
“제레미. 어떻게 된 거야?”
아흔트 구 담당관 윌킨스가 물었다.
“보시다시피.”
“당했다?”
윌킨스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그는 제레미에게 은근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사복 경관 제레미가 주위를 둘러봤다. 이어 윌킨스를 바라보며.
“흠흠.”
헛기침했다.
제레미는 눈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듣는 귀가 너무 많다!
윌킨스가 눈을 반짝이더니 좌로 돌아섰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윌킨스와 제레미가 창가에 나란히 섰다.
속삭이듯.
제레미가 낮게 말했다.
“……이웃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신고를 받고…… 아마도 이곳을 습격한 놈들이 신고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두 일곱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죽인 이들이 정확하게 이마와 심장에 총탄을…… 사격 실력이 정말 끝내주는…… 죽은 일곱 명에게서 미국 여권이 나왔습니다. 현재 미국 대사관에 알려 알아보는 중입니다만,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레미가 주위를 훔쳐봤다.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 윌킨스가 어리둥절해했다.
“……수색 과정에서 나온 것들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여기가 CIA 세이프티 하우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제레미가 윌킨스를 봤다.
“CIA!”
윌킨스가 깜짝 놀랐다.
“쉿! 담당관님.”
제레미가 주위를 둘러보며 재빨리 주의를 주었다.
“이런. 미친!”
윌킨스가 화냈다.
대낮에 CIA 세이프티 하우스를 쳤다?
브뤼셀에서 타국 정보 요원들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제레미가 이어 말했다.
“모른 척하십시오.”
“그걸 말이라고 해?”
“저희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벨기에 경찰을 무시하는 거잖아.”
“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담당관님.”
제레미의 말에 윌킨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위에서 보나 마나 사건을 덮고 침묵하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윌킨스가 제레미에게 물었다.
“누굴 것 같아?”
“네?”
제레미가 어리둥절한 어조로 반문했다.
“CIA 세이프티 하우스를 습격해서 요원을 일곱 명이나 죽인 간 큰 인간들이 누구일 것 같으냐고?”
윌킨스의 물음에 제레미가 어이없다는 기색을 지었다.
“담당관님.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윌킨스가 피식 웃더니.
“주변 CCTV 카메라나 교통관제 시스템 영상에 뭐 잡힌 거 없어? ……명색이 세이프티 하우스라면 몰래 감추어진 보안 카메라 같은 것이 있을 거 아냐?”
물었다.
그러자 제레미가 눈을 반짝였다.
“현재 입수해서 분석 중입니다.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런데 하우스 내에서 누군가를 약물로 고문한 흔적이 있습니다.”
“고문?”
“네. 아마도 정보를 알아내려고…… 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세이프티 하우스에 뛰어들어……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장하겠군!”
윌킨스가 성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에게 제레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담당관님.”
“…….”
“얼마 전에 말입니다.”
제레미가 3팀의 사고를 언급했다.
“한국 상사원들이라고 하는데…… 검시를 맡았던 검시관의 말에 따르면…… CIA와 한국 NIS 사이에 뭔가 일이 터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윌킨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 역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까?
의심이 들어 윌킨스가 물었다.
“확실해?”
“제 사견입니다.”
제레미가 한발 뒤로 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말하고 나서는 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다.
“입조심해.”
윌킨스가 주의를 주었다.
“네에.”
제레미가 대답하자 윌킨스가 뒤돌아봤다.
다수의 사복 경관과 정복 경관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다들 각자 맡은 일로 무척 분주했다.
* * *
도로를 주행 중인 대형 트레일러 내부.
각종 첨단 기기가 그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