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
미션 브뤼셀
20××년 겨울의 한강.
추운 날씨에 오가는 이들이 몇 없다. 몇 마리 비둘기만이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오갈 뿐이다.
휑한 벤치에 홀로 앉은 장년인.
담배를 피우며 물끄러미 정면의 한강을 바라보았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저벅저벅.
낮은 발소리와 함께 스물 후반 어름의 남자가 나타났다.
* * *
나란히 벤치에 앉은 장년인과 청년.
“줄담배 그렇게 피우시다간 암에 걸리실 겁니다.”
“내 걱정 말고, 넌 어때?”
“저야 잘 지내죠.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청년의 물음에 장년인이 출렁이는 한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브뤼셀에서 문제가 생겼다!”
“브뤼셀에서요?”
“그래.”
“흠.”
“EU 본부와 산하 각 기구가 브뤼셀에 자리를 잡은 후로 예전의 파리처럼 각국 정보기관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마도 아닌 마도가 되어 버렸어. 쯧.”
“그건 저도 압니다. 무슨 문젠데 절 호출하신 겁니까?”
청년의 물음에 장년인이 흘겨봤다.
“분위기 잡는데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냐?”
청년이 빙긋 웃었다.
“아임 쏘리요.”
“망할 자식!”
장년인이 툴툴거리며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 사이는 너도 알다시피 매우 특별해. 이번에 영국에서…… 극비리에 미국이 영국으로 보내던 것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이스라엘 모사드 애들이 중간에서 가로챘어.”
“…….”
“……운 좋게. 벨기에 지부에서 활동하던 코드명 민들레가 가로채긴 했는데…… CIA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벨기에 현지에서 활동하던 요원 셋이 죽고, 민들레는 지금 FS 상태야.”
청년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단절, 고립, 지원 요청 등 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년인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때문에 3팀을 급파했는데…… 이틀 전에 전원 사망했어.”
순간.
번쩍.
청년이 강렬한 눈빛을 띠었다.
“어떤 놈들입니까?”
“휴우우.”
“삼촌!”
청년이 힘주어 부르며 돌아봤다.
장년인이 손에 쥔 담배를 발치에 떨어뜨렸다.
툭.
이어 발로 비벼 끄며 말했다.
“CIA 대외 작전부!”
청년이 순간 움찔했다.
“미친!”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깔끔해. 사고로 얼마나 잘 위장했는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분하다!
장년인이 그 감정을 내색했다.
“FS 상태라면 브뤼셀 지부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겠군요.”
장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CIA 대외 작전부야. 너도 알겠지만, 그 자식들은 하는 일 자체가 구역질이 나.”
세상에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을 전담, 처리하는 이들이 바로 CIA 대외 작전부다.
청년이 눈을 반짝였다.
“혹시…….”
설마라는 감정을 내비쳤다.
그러자 장년인이 답답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 자식들이 지금 현지 지부를 철저히 감시 중이야. 고립된 민들레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거지. 그래서 지부와의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짓거리를 하는 거야.”
“상대가 CIA 대외 작전부라면 민들레가 그 자식들 수중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젭니다. 더욱이 3팀이 당한 상황이라면…….”
청년이 말끝을 흐렸다.
민들레가 절망에 깊이 빠졌을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버틸 힘을 낼 수도 있겠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포자기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맙니까?”
“하루!”
장년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삼촌!”
청년이 땅바닥에 깔릴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장년인을 불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장년인이 대꾸했다.
“초긴급이야.”
수긍하는지 청년이 즉답했다.
“알겠습니다.”
그사이 장년인이 손을 들어 품속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이어 말없이 청년에게 내밀었다.
* * *
경각이란 시간이 지났다.
청년이 카드를 폰에 삽입한 후 앱을 작동. 휴대폰의 액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서른 초반 어름의 중년인. 이렇다 할 외모적 특징이 없다.
필드에서 활동하는 요원의 전형이다.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요원에게 유리하다.
장년인이 말했다.
“코드명 민들레. 이름은 조영국. 내게는 후밴데…… 브뤼셀 지부 소속으로 A급 필드 요원이야.”
“…….”
“한마디로 말해 이대로 죽게 놔두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라는 거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고요?”
“풋.”
장년인이 실소했다.
때로는 요원보다 정보가 최우선시되는 경우가 있다.
코드명 민들레를 구하려는 이유도, 그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다.
장년인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 중국 국안부, 이스라엘 모사드, 영국 MI6, 프랑스 대외 첩보부 등…… 죄다 발정 난 똥개처럼 민들레를 뒤쫓고 있어.”
“…….”
“원래 지들 거였으니깐 미국 애들이 되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사고로 위장하여 우리 애들을…….”
장년인이 분노라는 감정을 내색했다.
그사이 청년이 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장년인을 힐금거렸다.
“이상한데요?”
“뭐가?”
“한미 관계를 염두에 두면…… 미국이 너무 막 나오는 거잖아요. CIA와 접촉은 해 보셨어요.”
“안 해 봤겠냐? 씨알도 안 먹혀.”
장년인의 대꾸에 청년이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방 각국 정보기관 사이에는 속칭 뒷문이라는 것이 있다.
장년인의 말은 해당 뒷문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으음……. 답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짚이는 것이 있어 청년이 물었다.
“대체 민들레가 갖고 있는 게 뭡니까?”
뒷문을 닫아걸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을 민들레가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장년인이 말했다.
“알려고 하지 마라! 모르면 모를수록 안전한 법이니깐.”
“끙.”
청년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 민들레의 수중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장년인이 한강을 바라보며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우리 바닥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고는 하지만! 18!”
장년인이 화난 어조로 재차 중얼거렸다.
“미국이 우리의 혈맹?”
“…….”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장년인이 신경질을 내며 품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다시금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이다.
그러자 청년이 장년인을 만류했다.
“조……옴!”
“신경 꺼. 이 나이에 담배마저 끊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아. 차라리 나더러 죽으라고 그래.”
사나운 어조로 대꾸하는 장년인이었다. 봐하니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 같다.
‘하기야. 요원 셋에, 3팀마저 당했으니.’
보나 마나다.
회사가 진도 8의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뒤집어졌을 것이고 초비상일 것이다.
“처음에 브뤼셀 상황이 상황실을 통해서 들어왔을 때, 다들 충격이 엄청났었어. ……병신들 같으니라고…… 상대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데 지들만 친구로 생각하고 그동안 아주 열심히 헛삽질을 한 셈이지. 국익 앞에서 동맹은 무슨 빌어먹을 동맹!”
감정이 격해진 장년인이다.
“위 대가리들이 그런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잖습니까?”
청년의 말에 장년인이 담배를 피우며 돌아봤다.
“너, 지금 편드는 거냐?”
“워워. 진정하세요, 진정.”
청년이 몸을 돌리며 양손을 가슴으로 들었다가 내렸다.
“콱! 그냥!”
“됐고요. 오퍼나 주세요.”
청년이 몸을 바로 했다.
장년인이 시선을 바로 하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
그러자.
“아, 쫌요!”
청년이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장년인이 소리 없이 살짝 웃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민들레 구출.”
“…….”
“둘째. 리벤지.”
순간 청년이 움찔했다.
의외다.
온몸으로 그런 감정을 내보였다.
“필드 요원이 한두 명 죽은 것이 아니야.”
알아챈 듯 장년인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장이 직접 내려보낸 오더야.”
“역시. 군 장성 출신답네요. 아주 화끈한 성격입니다.”
청년이 웃으며 말하자 장년인이 피식 웃었다.
“화끈한 거 좋아하지 마라. 사장이 자신의 목을 걸고 내린 오더라고.”
“그렇담 일절 흔적을 남기면 안 되겠군요.”
“CIA 대외 작전부 애들. 보복받고 싶으면 흔적 남겨도 돼.”
“그냥 저더러 죽으라고 하시지 그래요.”
“죽으라고 말하면 너 그냥 죽을래?”
“아, 진짜!”
청년의 대꾸에 장년인이 히죽 웃었다.
“흔적 남기지 마라! 사장도 사장이지만 우리 흔적이 남을 경우, 한미 간에 중대한 외교 문제가 되니깐.”
“알겠습니다. 그럼.”
청년이 일어나더니 우로 돌아섰다.
“은성아.”
장년인이 돌아보았다.
그러자 차은성이 뒤돌아봤다.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조심해라. 상대는 CIA 대외 작전부야.”
“훗.”
차은성이 낮게 웃었다.
“우린 아르티펙습니다. 국정원 최고의 팀이라고요.”
자부심이 가득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제발 담배 좀 끊으세요. 진짜 그러다 암이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짜식이. 네가 내 마누라야, 뭐야. 어떻게 된 게 만날 때마다 잔소리야, 잔소리가.”
장년인이 웃으며 신경질 냈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바로 했다.
“저, 가요.”
장년인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걸어가는 차은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차은성이 걸어가며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었다. 그러곤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손짓을 본 장년인이 작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친자식처럼 정이 너무 들어 버렸다.
‘휴우. 내가 잘한 건지 모르겠어. 저 녀석을 끌어들인 것이 과연 옳았는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장년인. 그의 눈이 걸어가는 차은성에게 못 박혀 움직일 줄 몰랐다.
* * *
차은성이 걸어가며 폰을 귀에 댔다.
“나야.”
“…….”
“오퍼레이션이니깐 애들 다 불러!”
“그래.”
차은성이 대꾸하며 귀에서 폰을 뗐다. 연후, 품속에 집어넣었다.
“CIA 대외 작전부라…….”
매우 부담이 되는 상대다.
하지만…….
“전쟁은 니들이 먼저 시작했어.”
나직이 중얼거리며 차은성이 걸음을 재촉했다.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다.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브뤼셀로 이동해야 한다. 그 때문에 바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 * *
이틀 후 버지니아주 랭글리.
대형 유리 창가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귀에 폰을 대고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신병을 확보했다고?”
“…….”
“좋아. 즉시 회수해.”
“…….”
“그래서?”
“…….”
“입을 열지 않는다고?”
“…….”
“네가 어린애야! 내가 일일이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하냐고?”
“…….”
“무조건이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무조건 회수해! 알겠어?”
“…….”
“끊어.”
차갑게 말하며 그가 폰을 귀에서 뗐다.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쉰 중반 어름의 백인.
CIA 부국장 JK. 시몬스가 우측에 있는 문을 돌아봤다.
“네.”
2말하며 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