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이제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될 것이다 (2)
포보스.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공포’의 신이 갖고 있던 이름이기도 하다. 특정 상황, 대상 등에 대한 공포심을 의미하는 ‘포비아’라는 단어는 이 포보스에서 비롯되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 세계의 신화 속 존재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지는 포보스 자신도 모른다. 남아 있는 데이터에는 관련 정보가 없다.
하지만 포보스는 자기 이름이 이쪽 세계에서 ‘공포’를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인류가 두려워하는 절대적 존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때 보이나, 나의 사도여.”
포보스는 자기 뒤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하르모니아의 계약자였던… 모하메드 하산에게.
“나는 너희 원시 인류들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인가?”
그 질문에 모하메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째서 나를 살려 준 거지?”
“그걸 이제야 묻는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국까지 끌고 왔잖아.”
“그래, 그랬었지.”
포보스는 키득키득 웃었다.
모하메드 말대로, 포보스는 모하메드를 한국으로 끌고 왔다.
절단되었던 사지까지 재생시킨 상태로.
“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사도여.”
“…….”
“이 세계를 지배하려면 현지 협력자가 필요하지. 그래서 사정을 잘 아는 너를 선택한 거다.”
“내가 순순히 협력해 줄 거라 생각하나?”
“너는 네 아내를 구원하는 게 소원이었지?”
포보스의 말을 듣고 모하메드가 흠칫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과거의 아내를 이곳으로 소환해 주마.”
“뭐, 라고?”
“시공을 조작하여, 죽기 직전의 네 아내만 현재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 그런 게 가능한가?”
“물론이지. 나는 초월적 존재니까.”
거짓말이다.
그런 짓을 하면 모하메드의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과거가 사라진다. 그 이후의 모하메드의 행동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이 시공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포보스는 그동안 수많은 평행 세계를 여행했기 때문에 시공의 법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하메드의 소원을 이루는 방법은 아예 세계 전체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포보스는 그런 걸 해줄 생각이 없었다.
“좋다, 아니, 좋습니다.”
“이제야 태도가 마음에 드는군.”
머리를 숙이는 모하메드를 보면서 포보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포보스 님.”
“뭐냐.”
“대체 왜 한국으로 온 것입니까?”
“데이모스의 마지막 경고가 신경 쓰여서 말이다.”
“네?”
“데이모스는 자기 계약자가 돌아올 거라고 했지.”
“서민혁 말입니까?”
“그래.”
포보스는 데이모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는 없었다.
서민혁이 클라우디아와 협력해서 돌아올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0%에 가깝겠지만 결코 0%는 아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대비해 놓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 세계에 왕성을 건설해야 한다. 앞으로 세계를 통치하려면 중심지가 필요하니까.”
“서민혁 때문에 그 장소를 한국으로 선택한 겁니까?”
“그렇지. 나는 데이모스의 계약자를 여기서 맞이할 생각이다. 여기가 놈의 고향이니까.”
“…….”
“나는 이 나라를 지배하고 요새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놈이 절망에 휩싸이는 모습을 볼 것이다.”
“서민혁이 많이 동요하겠군요.”
“그렇지. 이곳에는 놈의 가족이나 친구도 있을 테니까.”
“…….”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위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몬스터들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포보스에게 완전히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어떻게 불러낸 겁니까?”
“브레이크다운을 발생시켰다. 이곳에서는 대략 다섯 개 정도 가능하더군.”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지.”
원리는 클라우디아가 시간을 가속시켜 브레이크다운을 발생시킨 것과 똑같다.
하지만 포보스는 클라우디아와는 달리 여러 개의 무한서고를 동시에 브레이크다운시킬 수 있었다.
“나는 시공마법 자체는 사용할 수 없지만, 내가 갖고 있는 막대한 권능을 사용해 시공에 간섭할 수 있다.”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하군요.”
“나도 이런 힘을 보유하게 된 건 처음이라, 다양하게 시도를 해 보는 중이다.”
포보스가 손에 넣은 힘은 단순한 마력 같은 게 아니다.
마력으로 환산하자면 에테르 코어 2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포보스에게 권능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본래 마도 대전에서 우승한 대마도사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 수 있도록 부여되는 특전이다.
“현재 나에게는 많은 기능이 인스톨된 상태다.”
“인스톨…….”
“이것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세계뿐만 아니라 전 우주, 모든 평행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겠지.”
“대단한 이야기군요.”
“물론, 지금의 나는…….”
포보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치켜들었다.
“이 나라를 지배할 정도의 역량밖에 없지만 말이다.”
포보스가 손을 치켜드는 것에 연동하여, 모든 몬스터들이 오와 열을 맞췄다.
백만 대군 앞에 선 황제 같은 모습으로, 포보스는 이 나라의 모든 전자기기에 간섭했다.
“들어라, 이 나라의 인간들이여.”
* * *
“나는 고차원 지성체 포보스, 너희들이 헌터라고 부르는 자들을 지켜보고 있던 초월적 존재다.”
조성조와 제갈환은 침을 삼키면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CS컴퍼니에서는 광화문 방면을 내다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 서있는 포보스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 고차원 지성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다 알 수 있었다.
조성조와 제갈환의 핸드폰에서 멋대로 포보스의 목소리를 중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믿고 의지하던 헌터들은 이미 대다수가 숙청되었다. 그 서민혁조차, 내가 시공의 틈새로 날려 보냈다.”
“……!”
조성조도 제갈환도 동시에 숨을 삼켰다.
서민혁이 시공의 틈새로 날아갔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인간들이여, 너희는 불운한 존재다. 본래 무한서고는 너희들의 문명을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축복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에러로 인해 너희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포보스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접 너희들을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너희들에게 직접 마법을 가르쳐, 너희들을 원시 인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거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직접 듣고 있는 조성조와 제갈환은 느낄 수 있었다.
저 포보스라는 존재는 그 정도로 거만하게 굴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는 먼저 서민혁의 나라였던 이 나라를 지배하기로 하였다. 헛된 저항은 하지 말고, 나에게 복종하도록 하라.”
그렇게 말한 뒤, 포보스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순순히 복종할 리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이크다운으로 해방시킨 몬스터들을 이용하여…….”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조성조와 제갈환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너희들을 유린하기로 하였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은 아니었다.
포보스 앞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가 일제히 발을 굴렀기 때문이다.
그것은 놈이 저 몬스터들을 완전히 통솔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이었다.
“1시간 뒤부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포보스의 통보는 그걸로 끝났다.
조성조는 전율하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놈…….”
“어떻게 저런 놈이…….”
최근 서민혁이 정보를 공유해 줬기 때문에, 조성조와 제갈환도 고차원 지성체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고차원 지성체가 나타나서 인류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 미증유의 재앙이군요.”
제갈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저놈도 말했지만, 실력 있는 헌터들이 대부분 죽었습니다. 저놈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 주요 길드의 길드장들도 최근 클라우디아에게 당했다.
포보스는 물론이고 몬스터들을 막을 전력도 없다.
“서민혁 헌터가 없는 이상,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아니야.”
“네?”
“저놈은 서민혁을 죽였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시공의 틈새로 날려보냈다고 했지. 그러니 서민혁이 살아 돌아올 수도 있어.”
“……!”
조성조의 말을 듣고 제갈환이 숨을 삼켰다.
“생각해 봐. 저놈이 많고 많은 나라 중에서 굳이 한국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은 이유가 뭘까?”
“이곳이 서민혁 헌터의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저놈도 서민혁을 경계하고 있는 거야. 언젠가 서민혁이 돌아와서 자기한테 덤벼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이 나라 전체가 서민혁에 대한 인질인 거야.”
“아……!”
“아마 저놈은 서민혁의 가족들부터 노리겠지. 아까 보니까 놈은 모하메드 하산까지 데리고 있더라고.”
그동안 서민혁의 가족들을 노리는 자들이 있긴 했다.
대룡방 길드 등이 지켜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럴 때가 아니야.”
“어떻게 하시려고요?”
“서민혁의 가족들을 보호해야 해.”
조성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은 서민혁뿐이야. 서민혁이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을 보호해야 해.”
“그러면…….”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며 조성조는 제갈환을 재촉했다.
하지만 제갈환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그 역할은 조성조 씨한테 맡기겠습니다.”
“뭐?”
“1시간 뒤에 저 몬스터들이 국민들을 유린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걸 막겠습니다.”
“……!”
조성조는 눈을 크게 떴다.
“야, 제갈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
“허태웅도 없고 황충평도 없고 윤미래도 없어!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전력이 약화된 상태인데 어떻게 저걸 막는다고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은 없다.
하지만 제갈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고관리국 부국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갈환 너…….”
“사람들이 죽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승산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조성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제갈환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 녀석, 어쩌면…….’
약혼자가 브레이크다운에 휘말려서 죽은 날 이후, 제갈환은 이런 날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뒤, 약혼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제갈환.”
“네.”
“CS컴퍼니와 계약한 헌터들, 전부 소집할게. 일단 최대한 부대를 만들어 봐.”
“알겠습니다. 길드들하고도 상의해서 전력을 갖춰 보죠.”
“…서민혁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에는, 나도 합류할 테니까.”
“네, 기다리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했다.
조성조는 제갈환과 작별 인사를 하고 회사를 뛰쳐나갔다.
서민혁의 가족들이 있는 주상 복합으로 빨리 가야 했다.
* * *
“포보스 님.”
“왜 그러나, 나의 사도여.”
한국의 군대 및 헌터들이 주위로 집결하는 걸 감지하고 있던 포보스에게, 모하메드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서민혁의 가족들은 제가 확보하겠습니다. 제가 나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안 그래도 너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포보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나는 너에게 내 힘을 부여하고 있는 상태다. 가서 서민혁의 가족들을 확보해라.”
“네, 포보스 님.”
모하메드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광화문 광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