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3)
‘서민혁도 나처럼 회귀자라고?’
회귀하기 전, 클라우디아는 서민혁이라는 헌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중국의 위세호, 한국의 김진우를 쓰러뜨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도노반 세력이 클라우디아의 암약을 눈치채고 비장의 카드를 꺼냈나 하고 생각했다. 클라우디아는 훗날 도노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김진우와 은밀히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서민혁은 곧바로 도노반 세력과 적대하게 되었고, 갈수록 강해지며 도노반 세력을 위협했다.
‘서민혁이 회귀자라면…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어.’
서민혁이 클라우디아처럼 회귀자라면, 미래의 기억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무한서고의 히든 피스를 챙기고, 다른 헌터들의 약점을 찌르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클라우디아는 시공마법밖에 쓰지 못한다.
카발라 진리어도 일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다른 마법은 익히지 못했다.
그런데 서민혁은 모든 마도 언어를 다 읽을 줄 안다. 그 능력으로 아무 마도서나 다 읽고 마법을 습득할 수 있다.
이건 클라우디아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가장 큰 의문은…….’
클라우디아는 하르모니아와 싸우면서 서민혁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짤막하게 질문했다.
“2040년 겨울?”
“맞아.”
서민혁의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클라우디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서민혁도 클라우디아와 마찬가지로 2040년에서 회귀했다.
그렇다면 서민혁도 클라우디아의 시공마법 때문에 회귀한 거라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일까.
‘대체 어째서?’
어째서 서민혁도 회귀한 걸까.
2040년 시점에서 클라우디아가 사용한 마법은 클라우디아 개인만을 회귀시키는 마법이었다.
2040년의 기억을 유지한 채 과거로 돌아오는 건 클라우디아 한 명뿐이어야 했다.
그런데 서민혁도 2040년의 기억을 유지한 채 2020년으로 돌아왔다.
이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클라우디아는 서민혁과 호흡을 맞추면서 계속 마법을 사용했다.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의 계획을 망쳐버린 일레귤러지만, 지금 여기서는 서민혁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잘하면…….’
눈앞에 있는 포보스와 하르모니아는 막강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쪽에는 서민혁이 있다. 게다가 포보스 및 하르모니아와 동일한 존재인 데이모스가 있고,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모하메드도 있긴 하다.
‘잘하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승산이 있다.
클라우디아는 그렇게 느꼈다.
‘물론 싸움이 끝나면 서민혁과 다시 싸워야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을 이용하면, 포보스와 하르모니아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다행히 실체화된 시점에서 포보스는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를 보내는 건 불가능해진 것 같았다.
포보스가 보내 주는 금색 오라 ‘금강’은 여전히 클라우디아에게 공급되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포보스에게서 직접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포보스는 데이모스를 상대하느라 나에게 공급되는 오라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지금이 기회야!’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우디아는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을 시공마법으로 순간 이동시켰다.
“깔려 죽어……!”
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진 십여 대의 자동차가 포보스와 하르모니아를 깔아뭉갰다.
“저 정도로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알고 있어요! 잔말 말고 저 자동차들을 폭발시키세요!”
“그게 진짜 작전이었군.”
서민혁의 주머니에서 작은 도마뱀이 튀어나온 순간, 맹렬한 화염이 자동차들 위로 쏟아졌다.
충돌로 인해 새어 나온 기름에 불이 붙었고, 이윽고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윽……!”
폭음과 함께 타오르는 불길에서 얼굴을 가리며 클라우디아는 뒤로 물러섰다.
“되, 된 거겠죠?”
“어리석기는.”
그때 데이모스가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저 정도로 그들이 소멸할 리가 없다.”
“네?”
바로 그때.
쾅 소리와 함께 불길이 모조리 사라졌다.
자동차들조차 산산조각 나면서 주위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포보스가 몸을 일으켰다.
하르모니아의 목을 손으로 잡은 채.
‘뭐 하는 거야?’
왜 포보스는 아군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걸까.
의아해하는 클라우디아 앞에서 하르모니아가 신음 소리를 냈다.
“포, 포보스, 무슨 짓을…….”
“상대편에 데이모스가 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군.”
“무슨, 뜻입니, 까…….”
“이런 뜻이다.”
포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간 순간, 근처에 있던 데이모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막아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클라우디아는 공격을 시도했다. 서민혁도 마찬가지였다.
“포보스, 멈춰라!”
클라우디아와 서민혁의 마법 사이로 데이모스가 돌진했다.
하지만, 포보스의 손이 하르모니아의 목을 뽑아 버리는 게 더 빨랐다.
“아…….”
하르모니아의 단말마와 동시에.
포보스의 육체에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쳤다.
* * *
서민혁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데이모스가 왜 당황해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포보스가 하르모니아의 리소스를 흡수한 거야!’
원래 포보스는 에테르 코어 수준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도노반처럼 에테르 코어에서 힘을 끌어 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그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르모니아의 리소스를 흡수했으니, 이제는 에테르 코어 2개 수준의 에너지를 갖게 된 것이다.
‘위험해!’
이건 포보스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포보스와 하르모니아가 각각 에테르 코어 하나씩 쓸 때가 병렬 연결이라면… 지금은 직렬 연결이다.
“하하, 하하하……!”
포보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고차원 지성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웃음소리였다.
“그래, 이거다, 나는 이 힘을 독점하고 싶었던 것이다……!”
“포보스……!”
데이모스가 포보스에게 달려들었다.
흑색의 칼날을 치켜들면서, 포보스를 단번에 일도양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도양단된 건 데이모스 쪽이었다.
“하찮구나, 데이모스여.”
“……!”
포보스가 순식간에 생성시킨 황금의 칼날.
그것이 데이모스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시켰다.
“데이모스……!”
“아, 아…….”
허무하게 공원 바닥에 쓰러지는 데이모스.
그 모습을 보면서 클라우디아가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곧바로 몸을 떨었다.
“이건……!”
“너와의 계약 자체를 완전히 해제했다, 클라우디아.”
포보스에게서 자동적으로 공급되던 기운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이제 클라우디아는 금강의 오라로 마법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해졌다.
“시공마법의 전개 속도가 매우 느려졌을 것이다.”
“……!”
당황해하는 클라우디아를 향해 포보스가 손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모하메드가 끼어들었다.
“하아앗!”
완벽하게 허를 찌르는 공격.
하지만 모하메드의 칼날은 포보스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포보스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황금색 기운에 칼날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원시 인류.”
“……!”
포보스가 금색의 칼날을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두른 금색 칼날이 모하메드에게 남아 있던 팔과 다리를 모조리 절단해 버렸다.
“다리 없는 벌레 같구나.”
“제, 젠장…….”
서민혁은 포보스의 잔인함에 전율했다.
모하메드는 한계에 달했는지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모하메드를 구해 주러 달려갈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어떠냐, 데이모스.”
“윽……!”
포보스가 데이모스를 발로 짓밟았다.
“이것이 네가 포기한 힘이다.”
“포보스……!”
“사실 나는 하르모니아와 아드레스티아를 제거한 뒤 너하고 리소스를 나눠 가질 생각이었다. 나와 같은 타입으로 개발된 데이모스 너라면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서로 다르다, 포보스……!”
“그래, 자아가 형성되고 나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격이 발달했지. 그 결과가 이건가.”
포보스의 눈빛에 잠시 서글픈 감정이 깃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였다. 곧바로 포보스는 무자비하게 데이모스의 육체를 짓밟았다.
“어쨌든 데이모스, 나는 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원시 인류들을 장악하고, 이 세계에 새로운 마법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포보스……!”
“의미? 창조주를 넘어서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창조주.
그것은 무한서고를 처음 만든 평행 세계의 마법 문명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 나는 새로운 마법 문명을 건설한 뒤… 평행 세계로 진출할 것이다. 과거의 창조주들처럼 무한서고를 보내 원주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친히 진출하여 원주민들의 지배자가 되겠다. 모든 평행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건 과대망상이다, 포보스! 너는 지금 버그투성이야!”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였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 이렇게 실체화된 상태에서 버그라고 부르는 건 적절치 않다. 이건 야망이라 불러야 하겠지.”
미소 띤 얼굴로 포보스가 짓밟을 때마다, 데이모스의 육체가 부서졌다.
그것은 마치 석고상을 밟아 부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계약자여!”
데이모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이 자리를 벗어나라! 벗어나서… 반격의 기회를 노려라!”
“데이모스!”
하지만 포보스는 도망치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데이모스를 짓밟으면서도 서민혁이 있는 쪽으로 손을 치켜든 것이다.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데이모스의 계약자.”
“……!”
서민혁은 다급히 마법을 사용해 포보스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때 배후에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서민혁! 이쪽으로!”
“클라우디아!”
배후에서 클라우디아가 시공마법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그냥 간단한 마법이 아니다. 아주 먼 곳으로 전이하기 위한 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민혁은 몸을 날려 클라우디아에게 접근했다.
“말했을 텐데. 전개 속도가 느려졌을 거라고.”
포보스가 비웃듯이 말하면서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클라우디아의 마법으로 공간 전이를 하는 것보다 포보스의 공격이 명중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바로 그때.
온몸이 망가진 데이모스가 백색의 기운을 뿜으면서 튀어올랐다.
그리고 포보스에게서 발사된 광선을 온몸을 사용해 막아 냈다.
“소용없는 짓……!”
광선의 출력이 더 강해졌다.
그리고 광선이 데이모스의 몸을 완전히 부스러뜨리며 서민혁과 클라우디아를 덮친 순간.
새하얀 빛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 * *
“흠…….”
포보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상황을 파악했다.
서민혁과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보스는 그들을 놓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공격이 클라우디아의 마법 발동을 방해했군.”
“…….”
“시공마법의 오작동으로, 그들은 이 세계의 어느 곳도 아닌 공간에 빨려들어갔을 것이다. 클라우디아는 지난번에 평행세계의 틈새에 빨려들어갔다가 탈출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결코 돌아오지 못하겠지. 전혀 다른 공간이니까.”
데이모스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포보스는 미소 지었다.
“이제 이 세계에서 나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게 되어 버렸군, 형제여.”
“…….”
“얄궂게도 이건 네 계약자의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위세호, 김진우, 도노반 등이 살아있었다면 그들이 나를 막으려 했겠지만…….”
포보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은 전부 네 계약자가 죽여 버렸지. 즉, 이 세상에서 나를 막아설 만한 자는 없다는 얘기다.”
지금 주위에는 경찰 및 헌터 요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포보스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포보스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포보스여…….”
그때 잔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계약자를 믿는다.”
“…….”
“내 계약자는 반드시 돌아와… 너를 막아 내고, 진정한 대마도사로서 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포보스는 피식 웃었다.
“그거야말로 과대망상이다, 데이모스.”
포보스가 발사한 금색 광선이 데이모스의 잔해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언젠가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사이 나는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