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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183화 (183/200)

183화 힘을 너무 많이 쓴 영향이야 (1)

‘□□ □□□□ □□, 계약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에 클라우디아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 연결□□ □□□ □□□□.’

그것은 클라우디아가 계약하고 있는 고차원 지성체, 포보스의 목소리였다.

암흑 공간에 있을 때는 연결이 끊겨서 한 번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지구로 돌아오면서 연결이 복귀된 모양이었다.

‘계약자□, 마법□ 숙련도가 □□□ □□□□. □□□□ □□□?’

‘무슨 말을 하는지… 절반도 못 알아듣겠다고!’

클라우디아는 절규하듯이 대꾸했다.

물론 사용한 언어는 이탈리어어였다.

마도 언어로 대꾸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차원 지성체□ 계약□ 계약자는 □□□□, □□□□□□, □□□□□□. □□□□□ 마도대전이 □□□□□□.’

포보스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그 덕택에 클라우디아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목소리를 낮춰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 없었다.

‘계약자□, 미국으로 □□□□.’

‘미국? 갑자기 왜…….’

‘미국으로 □□ 고차원 지성체□ 계약□ 계약자□ □□□□ 살해□□ □□□□□□ 마도대전□ 시작□□□□□□.’

계속해서 포보스는 엄청난 음량으로 클라우디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끊임없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목소리를 이해하려 했다.

‘혹시 미국으로 가서 브래들리를 잡으라는 거야?’

‘□□, □□□□ 미국□□ □□□□ □ 계약자를 살해□□.’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 그럴 생각이었어. 재촉할 필요는…….’

‘지금 당장 미국□□ □□! 지금 당장 □□□□□□□□!’

‘알겠어! 가겠다고!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입 닥쳐! 젠장……!’

클라우디아는 주먹으로 앞좌석 등받이를 쳤다.

다행히 앞좌석은 비어 있었지만, 옆에 앉아있던 모하메드가 깜짝 놀라 클라우디아를 쳐다봤다.

“대체 무슨 일이지?”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면서 클라우디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빌어먹을…….”

“내 목소리가?”

“당신 목소리가 아니야…….”

“……?”

모하메드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시선을 무시하면서 클라우디아는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하아…….”

클라우디아가 지시를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했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여전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느낌이었다.

“모하메드.”

“어이, 여기서 이름은…….”

“계획을 변경하겠어요. 뉴욕으로 갈 거예요.”

“뉴욕?”

“브래들리한테 갈 거예요.”

“…….”

모하메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진심인가?”

“네, 포보스의 지시예요.”

“설마… 마도대전이 시작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최근 클라우디아는 한국의 윤미래를 죽였다.

이건 훗날 있을 마도대전에 대비해 고차원 지성체와 계약한 헌터들을 해치워놓으라는 포보스의 지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으로 가서 브래들리를 죽이라는 지시는 예전 지시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마도대전이 실제로 시작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신은 걱정할 필요 없잖아요. 하르모니아는 당신과의 계약을 해제해 줄 생각이 있는 것 같으니까.”

“음… 그렇지.”

“당신이 고차원 지성체와의 계약에서 벗어나면 마도대전에서 우리가 직접 싸울 일은 없어요.”

모하메드가 계약한 하르모니아는 다른 고차원 지성체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모하메드를 강제로 괴물로 만들지도 않고, 항상 모하메드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포보스처럼 머릿속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대지도 않는다.

클라우디아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서민혁을 비롯한 계약자들을 모두 죽이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당신이 하르모니아와의 계약을 해제하면 제가 마도대전의 최종 승리자가 되는 거죠.”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유지해 주세요.”

현재 시점에서 남아 있는 고차원 지성체의 계약자는 클라우디아와 모하메드, 서민혁, 브래들리뿐이다.

클라우디아가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이 네 사람이 전부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클라우디아와 서민혁의 손에 죽었다.

“브래들리는 그렇다 쳐도, 서민혁을 상대하려면 맨몸으로는 부족하니까요. 고차원 지성체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싸워야 해요.”

“승산이 있을까.”

모하메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패배해서,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걱정 마세요. 저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믿어 보지…….”

사실 클라우디아도 모하메드가 서민혁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서민혁은 모하메드를 압도하는 전투력을 갖게 되었으니까.

클라우디아는 모하메드를 미끼 정도로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브래들리부터 해치우죠.”

“알겠어.”

브래들리는 미국 뉴욕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브래들리를 도와주러 달려와 줄 만한 실력파 헌터도 없고, 모하메드가 나서면 금방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 * *

“엄마, 나 산책 좀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 밤이니까 차 조심 하고.”

집에서 나오면서 브래들리는 경비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브래들리는 보안이 확실한 고급 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하고는 별개로 경비원을 고용하고 있다. 물론 헌터 출신들이다.

사실 경비원이라기보다는 경호원에 가깝다. 브래들리가 집을 비웠을 때 엄마를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도노반의 의뢰를 받은 모하메드가 나타난 뒤 경비원 숫자를 배로 늘렸다.

그중에는 S급 헌터도 있기 때문에, 만약 모하메드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엄마가 도망칠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모하메드 그 자식… 클라우디아한테 붙었단 말이지.’

모하메드는 한때 브래들리의 아군이었다.

브래들리의 어머니를 습격한 것도 도노반을 속이기 위해 그냥 시늉만 한 거였다. 그 이후에는 서민혁, 브래들리와 함께 도노반과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모하메드는 클라우디아의 협력자가 되어 서민혁과 싸우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서민혁은 아직 안 돌아왔나?’

서민혁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클라우디아와 모하메드를 쫓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은 브래들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서민혁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녀석은 쉽게 죽을 놈이 아니니까…….’

브래들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뭐야. 돌아왔잖아?’

서민혁이 남극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을 확인한 브래들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서민혁은 모하메드나 클라우디아에게 죽을 놈이 아니었다.

‘전화나 해 볼까.’

별생각 없이 브래들리는 서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바로 연결이 되었다.

“서민혁? 살아 있냐?”

“그래, 다행히도.”

“지금 어디야? 한국으로 돌아왔어?”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이야.”

“뭐?”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은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 있는 공항이다.

“어떻게 된 거야? 미국에 볼일 있어?”

“남극에서 한국으로 가려면 중간에 미국에서 환승을 해야 해. 직통편이 없으니까.”

“아, 그 생각을 못 했군. 난 또 미국 왔으면 한번 보자고 할 생각이었지.”

“미안하지만 한국으로 바로 가 봐야 해.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거든.”

“하하, 그렇겠지.”

며칠 동안 행방불명이었으니까,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 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서민혁, 예전에 약속했던 거 잊지 않았지?”

“무슨 약속?”

“너희 엄마 음식 먹여 준다던 거.”

“아, 그랬지. 근데 네가 한국에 와야 먹여 주지.”

“네가 초대를 해 줘야 가지.”

“그런 건가? 그럼 언제든지 와.”

“좋아. 그러면…….”

횡단보도를 건너던 도중, 브래들리는 정체불명의 한기를 느꼈다.

“브래들리?”

“잠깐, 지금…….”

브래들리는 황급히 몸을 비틀었다.

그 직후, 브래들리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 나갔다.

“이건……!”

바닥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지만, 주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하메드……!”

“쯧, 잘 안 되는군.”

아무도 없었던 도로 위에서 모하메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검게 칠한 단검을 들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습격했을 때보다 더 나아졌군. 도노반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실력이 늘어난 건가?”

“너 이 자식…….”

브래들리는 품에 숨겨 놓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평범한 무기지만, 브래들리가 고차원 지성체의 오라를 부여하면 헌터에게도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클라우디아에게 의뢰를 받은 건가? 나를 죽이라고?”

“의뢰, 의뢰라…….”

모하메드가 단검을 까닥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더 이상 의뢰도 뭣도 아니군.”

“뭐라고?”

“나와 클라우디아는 이제 운명 공동체라 할 수 있으니까.”

“뭔 소리인지 모르겠군……!”

브래들리는 나이프를 날렸다.

진홍색 기운을 담은 나이프를 조종해 모하메드의 목을 노렸다.

“흠!”

모하메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프를 쳐냈다.

하지만 브래들리도 이걸로 모하메드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브래들리는 모하메드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알티도어처럼 오라를 주먹에 실어 싸우는 것도 능숙해졌군. 그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건가?”

“나도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

어두운 밤거리에서 벌어지는 공방전.

지난번에는 모하메드가 꽤 많이 봐줬음에도 불구하고 브래들리가 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호각이었다.

“많이 늘었군, 브래들리! 서민혁에게 자극받았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모하메드의 칼이 브래들리의 목덜미를 노린 순간, 아까 던졌던 나이프가 다시 날아와 모하메드의 칼을 쳐냈다.

모하메드가 주춤하면서 빈틈을 보였다.

“HA! 세계 최고의 암살자도 한물갔군!”

브래들리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나이프를 꺼내 날리면서, 오라를 집중시킨 주먹을 다시 한번 날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안타깝네요, 브래들리.”

“……?!”

콰앙!

갑자기 나타난 대형 트럭이 브래들리를 깔아뭉갰다.

아무런 기척 없이 브래들리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모하메드는 어디까지나 미끼였죠. 당신의 주의를 끄는 역할이었어요.”

“너 설마… 클라우디아인가?!”

“네, 맞아요.”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어머.”

브래들리는 트럭을 밀쳐내고 빠져나왔다.

모하메드와 클라우디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리하다. 여기서는 일단 도망쳤다가 기회를 봐서 반격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브래들리의 발을 멈추게 했다.

“어머니를 두고 도망칠 생각인가요, 브래들리?”

“……!”

브래들리는 움찔했다.

엄마는 브래들리에게 가장 큰 약점이었다.

다른 놈들이라면 몰라도 모하메드와 클라우디아가 엄마를 노린다면 경호원들로는 대처할 수 없다.

“클라우디아.”

“뭔가요, 모하메드.”

“가족은 건드리지 마.”

그때 모하메드가 예상치 못한 발언을 했다.

“잠깐만요, 모하메드. 갑자기 무슨…….”

“브래들리는 내가 책임지고 해치울 테니까, 그 가족까지 건드리지는 말자고.”

“의뢰만 받으면 아무나 다 죽이던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러는 거죠?”

“지금 나는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앗!”

브래들리는 다급히 움직였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분위기를 보니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저놈들 상대로 어떻게 이기지……?’

입술을 깨물며 브래들리는 뉴욕의 밤거리를 뛰었다.

* * *

“…….”

서민혁은 스마트폰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나가던 공항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뉴욕행 비행기로 환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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