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마음대로 될 거라 생각하나 (1)
콘데라치오는 암흑마법과 신성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아크 데몬이다.
단순히 두 가지 종류의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전개하여 ‘복합 마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콘데라치오가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 마법 문명에서 의도한 것이다. 무한서고의 탐색자들이 어느 정도 마법에 익숙해진 시점에 등장하여, ‘복합 마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로써 배치된 존재인 것이다.
다만, 이쪽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헌터가 마법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콘데라치오는 존재 의의를 사실상 상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콘데라치오는 자기에게 주어진 행동 방침대로 움직였다. 인간들을 깔보면서 복합 마법의 위엄을 보여 주는 존재로서 말이다.
“크으윽!”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눈앞에 나타난 인간 남자가 엄청난 움직임으로 콘데라치오의 한쪽 손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성검을 무기로 사용했는지 상처에는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네놈, 네놈, 네놈……!”
콘데라치오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반대편 손으로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복합 마법을 위주로 싸우는 건 이미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인간 남자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콘데라치오의 머리 하나가 날아갔다.
“커헉!”
머리 하나가 땅을 구르는 모습을 보면서, 콘데라치오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 * *
서민혁은 눈앞의 아크 데몬이 상당히 강력한 개체라는 걸 눈치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마법을 총동원해 최대한 전력을 다해 몰아치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굳이 이럴 때 힘을 아낄 필요는 없어.’
마법을 잘 쓰는 타입의 데몬 같았고, 평소였다면 무슨 마법을 쓰나 궁금해서라도 조금 템포를 늦춰 가며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데몬들 말고도 몬스터들이 많다. 최대한 빨리빨리 해치우는 편이 나았다.
‘서로 다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게 신기하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서민혁이 한쪽 손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그런 광경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한쪽 머리까지 날려 버렸다.
‘그러고 보니 머리가 두 개면 인격이 어떻게 되는 걸까?’
자연계에도 머리가 두 개인 채 태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콘데라치오는 머리 두 개가 같은 인격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궁금하긴 한데…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서민혁은 몸을 낮췄다.
한쪽 머리와 한쪽 손만 남은 콘데라치오의 반격을 피해,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검기로 코팅된 엑스칼리버가 콘데라치오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혼잣말을 하며 쓰러지는 콘데라치오를 보면서, 서민혁은 잠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흉악한 괴물이지만 이놈들도 결국 마법 문명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놈들도 피해자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아직 데몬들이 많이 남았다.
상위 데몬인 데몬 어쌔신, 데몬 글라디에이터 등이 이쪽을 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자기들 우두머리가 쓰러졌는데도 별로 겁먹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덤벼라.”
서민혁은 짤막하게 중얼거리며 엑스칼리버를 치켜들었다.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하니까.”
덤벼드는 데몬들을 향해, 서민혁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 * *
“역시 엄청나군요.”
고개를 치켜들며 제갈환이 중얼거렸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서민혁 헌터는 점점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한계가 없는 놈이야.”
조성조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든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녀석은 마법을 쓰지 못했어도 SS급 헌터가 됐을 인재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기술적으로 미숙할 때부터 그렇게 느꼈죠.”
“특히 감이 좋아.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내는 실력이 뛰어난 편이지.”
“맞습니다. 처음부터 헌터로서 선천적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갈환이 계속 말했다.
“지금 서민혁 헌터가 빠르게 성장하여 순식간에 세계의 정점에 오른 건 마법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법이 없었더라도 서민혁 헌터는 언젠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가 됐을 겁니다.”
“그래, 우리들도 금방 제쳐 버렸겠지.”
조성조와 제갈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원래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던 헌터였다. 하지만 조성조는 부상으로 은퇴했고, 제갈환은 서고관리국에 들어가면서 성장이 더뎌졌다.
그 사이 서민혁이 나타나… 어느새 정점에 올랐다.
“조성조 씨.”
“왜 그래?”
“만약 우리가 계속 최전선에서 헌터로서 싸워 나갔다면… 서민혁 헌터의 경쟁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재미있는 상상이네.”
조성조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제갈환도 약혼자를 잃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성조는 한국 최초의 SS급 헌터가 되었을 테고, 제갈환도 조성조에게 지지 않겠다고 더 노력하여 SS급 헌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서민혁하고도 붙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말이야, 제갈환.”
“네.”
“그런 부질없는 상상은 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있는 현실에서 서민혁 뒤를 쫓아가자고.”
“지금… 말입니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서민혁 헌터가 지금 실력에서 계속 정체된다면 몰라도… 서민혁 헌터도 계속 성장할 테니,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거참, 너무 비관적이네.”
“그러는 조성조 씨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굳이 왜…….”
“목표가 있는 편이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겠어?”
“…….”
조성조는 제갈환을 보면서 웃었다.
“제갈환, 우리는 헌터로서 한 번 죽었었어.”
“…….”
“물론 너는 현장에서 싸우는 일도 많았지만, 예전처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잖아. 그건 관점에 따라서는 헌터로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래서… 다시 태어나자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이왕 다시 태어난 김에 뚜렷한 목표를 갖고 살자고. 아주 크고 높은 목표 말이야.”
“그게 서민혁이라는 거군요.”
“게다가 우리들하고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말이야.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최적이지.”
“…조성조 씨의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제갈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서민혁 헌터를 목표로 삼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그래?”
“네, 너무 높은 목표여서, 계속 올려다보고 있으면 목이 꺾일 것 같거든요.”
“흠… 그러면 나 혼자 목표로 삼지 뭐.”
“그 대신.”
“뭔데?”
“그런 조성조 씨를 뛰어넘는 걸 목표로 삼겠습니다.”
“너…….”
“사실 원점회귀지요. 예전에도 저는 조성조 씨를 뛰어넘는 게 목표였으니까 말입니다.”
미소를 짓는 제갈환을 보면서, 조성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제갈환의 어깨를 쳤다.
“좋아, 우리 둘 다 잘해 보자고.”
“네, 다시 시작해 봅시다.”
“한국에는 서민혁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세상 사람들한테 보여 주잔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조성조는 아론다이트를 치켜들었다. 제갈환도 자기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지금 두 사람은 데몬을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조금도 겁먹지 않고 있었다.
“저쪽에 있는 멍청한 얼굴의 데몬, 그놈을 쓰러뜨리고 돌파구를 열겠어.”
“그럼 저는 그 옆에 있는 트롤을 해치우겠습니다.”
“좋아, 가자!”
“네!”
기합 소리를 내면서 조성조와 제갈환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미 전성기가 끝났다고 평가받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진짜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데몬들을 웬만큼 소탕한 뒤, 서민혁은 가볍게 휴식을 취했다.
숨을 고르면서 전장의 상황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
‘몬스터의 숫자가 많이 줄었어.’
브레이크 필드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중에서 70~80%가 퇴치된 상태다.
이 정도 되면 싸움은 인간 측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서민혁이 빠져도 한국과 러시아 헌터들이 나머지 몬스터들을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무리에서 벗어난 몬스터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소탕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가지에 숨어 있던 몬스터에게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경계 태세가 유지되어야 한다.
‘시가지 상황은 좀 어떨까.’
서민혁은 통신기를 조작해 봤다.
아까부터 잡음이 많아서 시가지 내부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제갈환이 빠졌지만, 한국의 길드장들이 다 가 있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아수라의 허태웅, 대룡방의 황충평, 북두성의 윤미래 등 한국의 주요 헌터들이 시가지 내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러시아 헌터들과 협력하여 시가지로 들어온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는데, 현재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들려. 잡음만 들리네.’
서민혁은 포기하고 통신기를 끄려 했다.
하지만, 서민혁이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 주…….”
지직 소리에 섞여서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윤미래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건…….”
그쪽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서민혁이 달려갈 필요는 없다.
서민혁이 맡은 임무는 시가지 외곽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막는 것이다. 그 임무를 내팽개치고 지금 시가지 내부로 달려가는 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윤미래 쪽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잠깐만…….’
윤미래는 평범한 S급 헌터가 아니다.
고차원 지성체의 계약자이기도 하고, 회귀하기 전에는 ‘칠악’의 일원으로도 꼽혔던 인물이다.
‘설마, 클라우디아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서민혁은 다급히 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 * *
“앗, 앗, 아아……!”
윤미래는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방금 전, 윤미래는 누군가의 기습을 받고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곧바로 되살아났다.
데몬 같은 괴물의 모습이 되어서.
“유, 윤 길드장, 그 모습은…….”
“아, 안 돼! 보지 마세요!”
예전부터 윤미래는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된다는 걸 두려워했었다.
실전을 멀리하고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서민혁의 설득으로 공포심을 극복해 다시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괴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왜요? 보기 좋은데요?”
클라우디아의 잔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에게 사냥당하기 딱 좋은 모습이네요.”
“……!”
허태웅이 이를 악물고 클라우디아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그 자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커헉!”
“허 길드장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클라우디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있는데, 허태웅 혼자 피를 뿜으며 쓰러진 것이다.
마치 투명인간이 공격한 것 같았다.
“은신 장비를 갖춘 헌터가 있는 건가? 그래도 이 정도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황충평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모하메드 하산?”
“……!”
그러고 보니 그 암살자는 클라우디아와 한패였다.
“클라우디아에 모하메드 하산까지… 대체 여기에는 뭐 하러 나타난 거냐?”
“어르신, 목숨이 아깝다면 물러나세요. 제 사냥감은 저쪽에 있는 괴물뿐이니까요.”
“윤미래만 노리고 있는 거라고……?”
윤미래는 숨을 삼켰다.
대체 왜 클라우디아가 자신을 노린단 말인가.
“얌전히 지켜보고 있으세요.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웃기는군.”
황충평이 자신의 S랭크 무기인 ‘황룡언월도’를 치켜들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 정도로 의리 없는 노인네로 보이나?”
“화, 황 길드장님…….”
“정신 똑바로 차려라, 윤미래!”
몸을 떠는 윤미래 앞에서 황충평이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여자가 그런 모습이 되었으니 충격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벌벌 떨고 있을 땐가? 아니지 않나!”
“……!”
“서민혁은 지금 여기에 없네! 우리들 힘으로… 저 사악한 헌터들을 잡아야 해!”
황충평이 소리치는 걸 보고, 클라우디아가 입가를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며 미소 지었다.
“기운찬 노인이시네요. 하지만 너무 기운차서 장례식을 더 일찍 치르게 되실 것 같네요.”
“웃기지 마라, 마녀……!”
땅을 박차고 황충평이 클라우디아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