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170화 (170/200)

170화 미치광이 악녀를 잡아야 합니다 (3)

“하하…….”

한쪽 팔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클라우디아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민혁, 정말로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군요.”

“…….”

서민혁은 말없이 클라우디아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엄청난 것일 줄이야… 저도 시공마법을 익히기 전에, 모든 마도 언어를 마스터하는 걸 우선했어야 했던 걸까요?”

“너한테는 불가능해.”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하, 그런가요…….”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도 클라우디아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키아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 서민혁 씨! 클라우디아 님을 죽이지 말아 주세요!”

“아아, 키아라…….”

“클라우디아 님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요! 그러니 제발……!”

“후후, 정말로 착한 아이…….”

여전히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은 키아라를 보면서 클라우디아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슬슬 짜증이 나네요.”

“네?”

“멍청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그 순간.

클라우디아의 육체가 서민혁 앞에서 사라졌다.

“……!”

서민혁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클라우디아는 어느새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시공마법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도 조작할 수 있는 마법… 그리고 그 대상이 외부가 아니라 자기 육체라면, 보다 쉽고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죠.”

“클라우디아!”

“서민혁, 아무래도 당신과 싸우느라 마법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마법을 능숙하게 쓰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더 상승한 거겠죠.”

신속하게 움직였다.

클라우디아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어느새 클라우디아는 다른 위치로 이동해 있었다.

마법을 방해하기 위해 마력을 방출했지만 소용없었다. 클라우디아의 말대로 자기 육체에 쓰는 마법이라서 그런 걸까.

“자, 그러면…….”

클라우디아는 아까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모하메드 옆에 가 있었다.

“서민혁, 당신은 정말로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네요.”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가 쓰러진 모하메드의 목덜미를 붙잡은 순간.

두 사람의 몸 전체가 금색 빛에 휩싸였다.

“나중에 다시 만나도록 하죠.”

“……!”

서민혁은 전자마법을 사용해 칼을 날렸다.

그 칼은 클라우디아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지만, 클라우디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당신을 반드시 손에 넣고 말겠어요. 기대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클라우디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클라우디아가 잡고 있던 모하메드도 마찬가지였다.

“크, 클라우디아 님……?”

당황해하는 키아라를 내버려 둔 채 서민혁은 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바깥은 비가 그쳐 있었다.

‘놓쳐 버렸군.’

‘그런가 봅니다.’

아무리 찾아도 클라우디아는 보이지 않았다.

마력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서민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데이모스 님, 아무래도 클라우디아한테 뭔가 있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네, 단순히 마도서를 해독해서 시공마법을 습득했다고 하기에는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해석학자도 아닌 클라우디아가 마도서를 해석해 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김진우도 마도서를 해석해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클라우디아는 시공마법을 배워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마도서를 어떻게 해독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시공마법을 저렇게 능숙하게 쓰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서민혁은 십여 년 후의 클라우디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녀는 치료 능력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헌터였다. 다른 특별한 능력은 없었다.

방금 전에 보여 준 것 같은 고도의 공간 이동 능력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클라우디아는 공간 이동 마법을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더군.’

‘시공마법을 상당히 높은 경지까지 습득했다는 의미입니다.’

서민혁이 보기에, 지금의 클라우디아는 십여 년 후의 클라우디아보다 마법사로서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 같았다.

이건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물론 클라우디아가 철저히 자기 능력을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서민혁이 생각하기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클라우디아가 저런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칠악’으로 악명을 떨칠 때 저 능력도 활용했을 테니까.

세계 각국의 헌터들이 클라우디아를 노리고 있었는데, 저런 유용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계약자여, 단순히 마법의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긴 합니다만…….’

데이모스는 서민혁이 회귀자라는 걸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서민혁이 느끼고 있는 의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어쨌든 클라우디아가 저 정도로 능숙하게 마법을 사용한다면 마도 대전이 발생하는 조건을 만족한 거 아닙니까?’

‘음, 거의 갖춰졌다고 봐야겠지.’

‘고차원 지성체와 계약한 헌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요.’

서민혁.

클라우디아.

모하메드.

브래들리.

윤미래.

일단 지금 파악하고 있는 범위에서는 이렇다.

그중 클라우디아, 모하메드, 브래들리, 윤미래는 훗날 칠악으로 꼽히게 되는 자들이다.

나머지 칠악 중에서 알티모어과 한센은 서민혁이 쓰러뜨렸고, 마지막 한 사람은 이 시점에서는 아직 헌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겠군. 하지만 마도 대전이 시작되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그날이 오는 걸 기다려야겠군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뒤, 서민혁은 고개를 돌렸다.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키아라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키아라 씨.”

“서, 서민혁 씨…….”

그녀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클라우디아를 믿어 보려고 했었는데, 마지막에 클라우디아가 본색을 드러내 버렸다.

클라우디아의 신봉자였던 그녀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저는 어떻게 해야…….”

“키아라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네……?”

“클라우디아를 잡아야 하니까요.”

서민혁은 키아라를 일으켜 세웠다.

“도노반이 쓰러진 지금, 세계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바로 클라우디아입니다.”

“……!”

서민혁은 리히슈타이너를 죽이고 그 기억을 확인했다.

또한 회귀하기 전에 클라우디아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알고 있다.

키아라가 협력해 준다면, 클라우디아의 본성을 세상 사람들에게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 미치광이 악녀를 잡아야 합니다.”

서민혁의 말을 듣고, 키아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 * *

다음 날, 밀라노에서는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탈리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헌터 키아라가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하니, 유럽 각지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기자들은 키아라의 폭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성녀 클라우디아가 이집트의 암살자 모하메드 하산을 고용해 그리스의 자고라키스, 독일의 슈미트, 네덜란드의 스네이더르를 살해했습니다. 그 목표는 유럽의 대표적 헌터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자기 꼭두각시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키아라가 늘어놓는 얘기를 듣고 기자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녀 클라우디아가 그런 짓을 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증거는 이미 확보된 상태입니다.”

서민혁이 리히슈타이너의 기억을 뒤져서 정보를 얻어냈기 때문에, 충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의 심복이었던 스위스의 리히슈타이너도 협력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여기 있는 서민혁에게 쓰러진 상태입니다.”

키아라 옆에는 서민혁도 앉아 있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입을 열어,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키아라의 발언을 보충해 줬다.

“서민혁은 클라우디아를 제압하려 했지만, 현재 클라우디아는 모하메드와 함께 도주 중입니다. 클라우디아가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협력을 요청 드리는 바입니다.”

키아라는 클라우디아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자기 발언을 마무리 지었다.

중간부터 키아라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평소 클라우디아를 존경했던 키아라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클라우디아라는 헌터에 대해서, 몇 가지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키아라의 얘기가 마무리되자, 서민혁이 본격적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서민혁은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밝힐 생각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시공마법이라는 마법을 사용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조작하는 마법입니다.”

생소한 이름에 당혹스러워 하는 기자들 앞에서, 서민혁은 시공마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클라우디아는 시간을 되돌리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는 겁니다.”

그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서민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추측은 할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의 목적은 무한서고가 처음 나타났던 무렵으로 돌아가, 모든 걸 독점하여 그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를 지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황당무계하다고 코웃음 쳤을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스터 도노반이 실제로 그런 걸 추진하고 있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는 도노반 일당의 음모를 예전부터 파악하고 따로 사람을 보내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수하게 도노반 일당의 음모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노하우를 빼내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밖에도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에 관한 얘기를 차례차례 꺼냈다.

그 얘기들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동안 전 세계적인 아이돌이었던 성녀 클라우디아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는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서민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유럽 각국의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클라우디아는 제가 책임지고 막아 내겠습니다.”

많은 기자가 탄성을 지르며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서민혁이 미스터 도노반에 이어 성녀 클라우디아, 아니 악녀 클라우디아를 막아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건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 * *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스키 역.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위한 승강장에서, 클라우디아는 털모자를 뒤집어쓴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서민혁도 참, 너무한 사람이군요.”

“…….”

“사람을 완전히 매장시켜 버렸네요.”

클라우디아 옆에는 모하메드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민혁한테 입은 부상은 말끔히 치료된 상태였다.

아니, 원상 복구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뭐 별 상관없지만요. 어차피 계획도 많이 변경했고.”

“…….”

“마음대로 하라죠.”

클라우디아가 혼자 떠들어 대는 말을 듣고, 옆에 앉아 있던 모하메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우디아.”

“네, 모하메드.”

“정말로 너를 믿어도 되는 건가?”

“물론이죠. 저 말고 누구를 또 믿겠어요?”

“…….”

“그러니 또다시 배신하면 안 돼요. 다음에는 절대로 용납 못하니까.”

모하메드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되돌려 아내를 살려 낸다는 목표가 있는 모하메드는 클라우디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민혁이 말한 대로 클라우디아가 모하메드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클라우디아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왜 서민혁 같은 헌터가 존재하는 걸까요.”

입을 다문 모하메드 옆에서, 클라우디아가 쓰레기통 속에 신문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이거 분명… 새로 생긴 버그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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