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미치광이 악녀를 잡아야 합니다 (2)
클라우디아의 육체에서 마력이 분출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난번 조성조 때하고는 달랐다. 조성조의 다리를 고쳐 줄 때는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작용하는 마법이어서 더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민혁을 제압하기 위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더 넓은 범위에, 더 신속하게 마법을 적용시켜야 한다. 게다가 적대적인 의도를 갖고 사용하는 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디아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마법을 구성했을 것이다.
“클라우디아.”
하지만.
클라우디아가 사용한 시공마법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놀고만 있었다고 생각했나?”
“……!”
클라우디아가 처음으로 흠칫하면서 틈을 보였다.
그사이 서민혁은 클라우디아를 향해 뛰어들었다.
“어떻게……!”
“시공마법은 확실히 어려운 마법이었어.”
마도서를 입수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서민혁은 아직 시공마법을 습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공마법의 기초 이론 등은 이미 이해한 상태였다.
“지금 내가 시공마법을 쓰지는 못하지만, 마력을 방출하여 시공마법의 성립을 방해하는 건 가능하지.”
“……!”
이미 서민혁은 마력을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
검기를 만들 수도 있고, 호신강기처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시공마법은 매우 고도의 마법이야. 작은 변수 하나만 잘못되어도 실패해 버리지.”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의 시공마법 사용을 눈치챈 순간, 마력의 파장을 날렸다.
서민혁의 마력은 클라우디아의 시공마법에 간섭했고, 시공마법은 발동 자체가 무산되었다.
만약, 클라우디아가 서민혁 이상으로 마력 컨트롤에 능숙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력을 날려 방해한 순간, 자기도 마법을 재구성해 보완하여 시공마법을 무사히 전개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마법 실력은 서민혁보다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디아의 시공마법은 완전히 실패해 버린 것이다.
“네 시공마법은, 나한테는 통하지 않아.”
“…….”
“적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일대일로 싸울 때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에게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가 공격을 펼치려는 순간, 클라우디아 또한 무기를 꺼냈다.
창문의 커튼 뒤에 숨겨 두고 있던 그 무기는… 낫처럼 칼날이 휘어져 있는 검이었다.
‘저건 하르페……!’
하르페.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검 내지는 낫이다.
천공신 우라누스를 거세할 때, 거인 아르고스를 죽일 때, 괴물 메두사를 죽일 때 사용되었다.
무한서고에서는 SS랭크의 무기로 구현되어 있다.
“……!”
서민혁과 클라우디아의 칼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서민혁은 숨을 삼켰다.
전투력은 떨어지는 편이라 평가받곤 했던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냈기 때문이다.
‘생체마법도 쓰고 있는데… 막았어?’
쿵! 쿠웅!
SS랭크 무기가 서로 부딪히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클라우디아는 겉보기에는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서민혁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었다.
‘근력 스탯이 +300은 되는 건가?!’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정말로 거짓으로 가득 찬 여자였군, 클라우디아.”
“당신이 할 말인가요, 서민혁?”
“적어도 너처럼 남들을 완벽하게 기만하지는 않았어.”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걸 숨기고 있었잖아요.”
힘겨루기를 하면서 클라우디아가 미소 지었다.
“서민혁, 당신은 마도 언어를 전부 읽을 줄 알아요. 제 말이 맞죠?”
“그래, 맞아.”
“마도서를 전부 읽을 수 있겠군요. 정말로 부러워요.”
파앙!
칼과 칼이 부딪히면서 발생한 충격파에 서로 뒤로 물러났다.
“저는 시공마법의 마도서를 해석하느라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당신은 그냥 직독직해가 가능했겠군요.”
“그래서 나를 원한 건가? 마도 언어를 알고 있는 나를 꼭두각시로 삼고 싶었나?”
“으음,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요?”
클라우디아의 눈동자가 키아라에게 향했다.
키아라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민혁, 제가 당신의 협력을 원했던 건 사실이에요.”
“정확히 얘기해. 나를 마도서 번역기로 써먹을 생각이었지?”
“흠,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민혁 당신이 자진해서 협력해 주기를 바랐죠.”
“계속 시치미를 뗄 생각이야? 키아라 씨도 슬슬 당신 본성을 눈치챘을 텐데.”
아직도 클라우디아는 다른 사람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걸 꺼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짚어 주지. 너는 나를 곤경에 몰아넣을 생각이었어. 자고라키스, 슈미트, 스네이더르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모하메드와 리히슈타이너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동원해 나를 토벌할 생각이었지.”
“소설 잘 쓰시네요.”
“물론 네 진짜 목적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를 생포해서 가둬 놓고 네 전용 마도서 번역기로 써먹는 거였어. 약물 같은 걸로 세뇌할 생각이었나?”
“세뇌라니요. 제가 그런 무서운 짓을 왜 하나요?”
“나를 완전히 지배하면 마도서 번역 말고도 쓸 만한 곳이 많겠지. 정체를 숨기게 한 채 모하메드처럼 암살자로 써먹어도 되고… 아, 당연히 내 마법 능력도 이용해 먹어야지. 나한테 시공마법을 습득시키면 내 부담도 줄어들 테니까.”
“당신이 시공마법을 익히면 제 부담이 들어드는 건 사실이네요. 힘을 합쳐 시간을 되돌려 많은 사람을 구하면 좋을 것 같아요.”
클라우디아는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너무 끈질겨서, 서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게 한 가지 있어.”
“어떤 걸까요, 서민혁.”
“너는 시공마법의 마도서를 읽었어. 마도 언어를 해석할 수 있었다는 거야.”
“네, 아주 힘들었지만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얘기란 말이지.”
“뭐가 불가능한가요?”
“네가 마도서를 입수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어. 그 시간 안에 마도서를 해독한다는 건 불가능해.”
회귀하기 전, 20년 동안 아무도 마도 언어를 해석하지 못했다. 기초 마도어를 제외하곤 말이다.
김민철 교수처럼 전문 연구자도 아닌 클라우디아가, 어떻게 그렇게 금방 마도서를 해독한 걸까?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거지?”
“그걸 저한테 물으시는 건가요, 서민혁?”
“뭐라고?”
“서민혁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모든 마도 언어를 다 읽을 수 있는 거죠?”
“…….”
“봐요, 서민혁.”
클라우디아가 요사스럽게 웃었다.
“세계 최고의 기만자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라고요.”
“본인도 기만자라는 건 인정하나 보군.”
“말꼬리를 잡지 마세요, 서민혁.”
춤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클라우디아가 공격해 들어왔다.
하르페는 신의 육체를 상처 입히고 괴물의 숨통을 끊은 신검이다. 겉보기에는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형상의 검이지만, 그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당신을 제압하고… 모든 걸 낱낱이 밝히겠어요.”
“누가 할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런가요? 그러면…….”
그 순간.
클라우디아의 육체에서 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계약자여, 조심해라!’
바로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데이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포보스의 힘… 네 백강과 동격인 금강(金鋼)이다!’
클라우디아는 서민혁이 백강을 다루는 것처럼 금색 오라를 자기 육체에 응축시켰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서민혁에게 달려들었다.
“……!”
콰아앙!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격.
서민혁의 육체가 뒤로 밀려났을 정도였다. 예상 이상으로 위력이 뛰어났다.
‘데이모스 님, 이거… 제가 백강을 다루는 것보다 더 능숙하지 않습니까?’
‘으음, 정말 이상하군…….’
데이모스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서민혁이 데이모스의 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건, 마도 언어로 대화하면서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마도 언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서민혁처럼 고차원 지성체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데이모스 님, 포보스는 인간들 말로 대화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기초 마도어로 대화한다든가.’
‘그건 아니다. 언어 모듈은 모든 고차원 지성체가 공통이다. 불가능할 터인데…….’
‘설마 클라우디아가 저처럼 모든 마도 언어를 할 줄 아는 걸까요?’
‘나로서는 알 수 없지…….’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서민혁은 클라우디아를 관찰했다.
방금 데이모스의 말에 의하면 클라우디아는 포보스라는 고차원 지성체와 계약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포보스는… 공포를 상징하는 신이었던가?’
그동안 서민혁은 고차원 지성체에 관련해 조사하면서, 그들이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아레스 관계자들에게서 이름을 따왔다는 걸 알아냈다.
데이모스도 포보스도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이다.
‘데이모스와 쌍둥이이니, 저쪽이 더 우수한 고차원 지성체일 것 같지는 않은데…….’
서민혁은 느낄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사용하는 금강의 기운이 자신의 백강보다 딱히 우수한 건 아니라는 것을.
순전히 클라우디아의 활용 능력이 서민혁보다 더 뛰어날 뿐이다.
대체 클라우디아는 어떻게 저 정도로 능숙해졌을까.
‘실전에서 자주 쓰면서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닐 텐데.’
의문을 느끼면서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에게 맞섰다.
클라우디아의 전투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돌파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샐러맨더와 실프는 아까 모든 힘을 해방해서 써먹을 수 없어. 그렇다면……!’
클라우디아와 칼을 맞부딪친 순간.
열려 있던 창문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운디네……!”
서민혁이 리히슈타이너와 싸우는 도중에 추가로 소환했던 물의 정령, 운디네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
클라우디아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
물줄기가 마치 촉수처럼 자신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하르페를 휘둘러 물줄기를 끊어 내려 하는 클라우디아.
하지만 소용없었다.
말 그대로 칼로 물 베기였으니까.
‘몰아친다.’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에게 달려들었다.
아까 모하메드를 제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환영마법을 사용해 분신을 만들면서.
“이미 한번 봤던 기술 따위……!”
눈앞에서 달려드는 두 명의 서민혁을 보고, 클라우디아는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두 명의 서민혁 중에는 윤곽이 흐릿한 서민혁이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그게 환영이라 생각해 반대편 서민혁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
하지만 그것도 페이크.
클라우디아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서민혁은 전부 다 환영이었다.
일부러 하나만 허술하게 만들어, 클라우디아를 농락한 것이다.
그 사이 서민혁은 환영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고 클라우디아의 측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괴력 구현!’
촤악!
몸 전체를 보호하고 있던 금강의 기운을 뚫고, 서민혁의 칼날이 클라우디아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