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165화 (165/200)

165화 직접 알아내면 되는 거니까 (3)

시공마법 입문.

그것은 조성조와 김진우 등이 확보하고 있던 마도서 중에는 없었던, 새로운 마법의 마도서였다.

회귀하기 전에도 시공마법이라는 마법은 접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난번 SS급 퀘스트에서 이 마도서를 입수한 뒤, 서민혁은 혼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이 시공마법이야말로, 클라우디아의 비밀이라는 것을.

* * *

리히슈타이너는 빗속을 달리며 서민혁에게서 도망쳤다.

SS랭크의 활인 미스틸테인으로 서민혁을 공격했지만, 서민혁은 모하메드에게서 뺏은 무기를 활용해 리히슈타이너의 공격을 막아 냈다.

모하메드와의 혈전을 치른 이후인데도 불구하고, 서민혁은 조금도 지친 구석이 없었다.

‘니드호그를 쓰러뜨리고 체력 보너스 +50을 얻었다더니…….’

리히슈타이너는 혀를 찼다.

서민혁이 조금이라도 지쳐 있는 상태라면 좋았을 텐데, 이래서는 리히슈타이너가 불리하다.

‘그렇다고 해도……!’

활시위를 연달아 당겼다.

화살을 꺼내 장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화살이 생성되는 무기이기에 가능한 묘기.

시간 간격 없이 거의 동시에 날리는 다섯 개의 화살이 서민혁을 덮쳤다.

“……!”

하지만 그 공격은 서민혁에게 닿지 못했다.

서민혁이 칼을 휘둘러 막아 낸 건 두 개뿐이었다. 나머지 세 개는 공중에서 가로막혔다.

역시 서민혁은 모종의 자동 방어막 같은 걸 전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을 터……!’

리히슈타이너는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승패는 누가 먼저 한계에 달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서민혁의 방어 능력이 한계에 달하는 게 빠른지, 리히슈타이너의 체력이 한계에 달하는 게 빠른지…….

‘실력을 보여 봐라, 서민혁……!’

리히슈타이너의 화살 여섯 개가 동시에 서민혁에게 쇄도했다.

* * *

‘아리엘 블레스가 손상됐어.’

서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원거리 공격을 자동 방어해 줄 거라 믿었던 아리엘 블레스가, SS랭크 무기인 미스틸테인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하긴 아리엘 블레스는 S랭크이니 SS랭크 무기에 파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 서너 번 정도밖에 막지 못할 거야.’

실프에게 지시를 내려서 추가로 압축 공기의 방패를 만들어 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프의 힘을 다른 쪽에 사용하면 리히슈타이너를 쫓을 때 불리하다.

지금 리히슈타이너는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지 비행 능력에 가까운 도약 능력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실프의 힘을 빌리며 쫓아가야 했다.

‘그렇다면…….’

마침 지금은 비가 오고 있다.

주위에 물이 잔뜩 있다는 얘기다.

‘간만에 힘을 빌려야겠군.’

서민혁은 마력 기관을 사용하면서 주위에 의식을 집중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에서… 물의 자연력을 감지한다.

‘나와라, 운디네.’

그 직후.

인어 같은 물고기 꼬리를 지닌 물의 요정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물의 자연력에서 태어난 정령, 운디네였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써먹기 힘들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안 쓰지만, 이럴 때는 유용하지.’

운디네는 비를 타고 공중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영구적인 소환이 아니기 때문에 정령과의 유대감은 낮다. 그러니 일일이 명령을 내려 줘야 한다.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해 줘. 물을 모아서 방패를 만들어 주면 돼. 여러 개 만들어 줘.”

서민혁의 이미지가 잘 전달되었는지, 운디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중에서 헤엄쳤다.

그러자 서민혁 주위에 수십 개의 액체 방패가 생성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좋군.’

운디네가 ‘어때요?’하고 으스대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서민혁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줬다.

곧바로 미스틸테인의 화살이 여러 개 날아 들어왔지만 물의 방패가 모조리 막아 내 줬다.

공격을 막아 낼 때마다 방패가 다 터져 버렸지만, 주위에 잔뜩 있는 빗물로 재생성하면 됐다.

‘리히슈타이너는 내 방어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걸 기대하고 있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서민혁의 마력은 사실상 무한.

방어벽을 생성하기 위한 빗물도 충분히 많다.

‘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게 더 빠를 거다, 리히슈타이너.’

비가 쏟아지는 밀라노 거리를 뛰어다니며, 서민혁은 리히슈타이너를 쫓았다.

* * *

“윽…….”

모하메드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서민혁이 포션을 먹여 주고 갔지만, 워낙 부상이 컸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해서 건틀릿에서 상처 치유 포션과 활력 회복 포션을 꺼냈다.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으니 이제 슬슬 살 것 같았다.

“크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민혁에게 완패했다. 이쪽은 무기까지 들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녀석, 너무 강해졌군.’

사실 모하메드가 마음만 먹으면 서민혁을 죽일 수도 있었다.

화장실에 있을 때 뒤에서 접근해서 숨통을 끊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번에 모하메드가 맡은 임무가 서민혁의 ‘암살’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면대결에서 모하메드가 패배한 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서민혁부터 기습했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으려나.’

서민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남자다.

어떻게든 모하메드의 기습에서 살아남아 반격하여… 모하메드를 쓰러뜨렸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도노반한테 얻어 터졌고, 나도 끝물인가.’

게다가 모하메드는 리히슈타이너에게도 공격을 받았다.

클라우디아의 심복인 리히슈타이너는 모하메드의 아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리히슈타이너가 모하메드를 공격했다는 건, 숨통을 끊어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서민혁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

모하메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모하메드의 역할은 자고라키스, 슈미트, 스네이더르를 죽인 뒤 서민혁을 유인하고 제압하는 것이었다.

서민혁을 유인하는 것까지는 잘 됐지만, 제압하는 것에 실패했다. 게다가 리히슈타이너에게 뒤통수도 막았다.

이 상태에서 클라우디아의 ‘보상’을 얻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힘겹게 옥상에서 내려갔다.

서민혁과 리히슈타이너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고, 일단 아까 술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경찰차가 와 있었다. 시민들도 몰려와 있고 소란이 벌어져 있었다.

모하메드는 그중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어이, 키아라.”

황금 여명회의 준멤버인 키아라가 움찔하며 모하메드를 쳐다봤다.

“다, 당신은…….”

“조용히 들어.”

모하메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자고라키스, 슈미트, 스네이더르… 서민혁이 죽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믿지 마.”

“……!”

그렇다.

모하메드가 그들을 죽인 건, 서민혁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이었다.

“서민혁은 결백해. 이건 음모야.”

“무, 무슨…….”

“죄를 뒤집어씌워서 서민혁을 고립시키려는 거야.”

“그, 그게 무슨 소리죠?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클라우디아의 음모야.”

“……!”

키아라가 눈을 크게 떴다.

“현장을 잘 확인해. 저항한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서민혁을 범인으로 몰아세우겠지만… 결코 아니야.”

“다, 당신, 모하메드 하산이죠? 설마 당신이…….”

“그래, 내가 죽였어.”

그 말을 들은 키아라가 다급히 전투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그녀의 손목을 단번에 붙잡았다.

“관둬. 너는 내 상대가 안 돼.”

“이, 이것 놓으…….”

“그럼 난 이만 가 볼 테니, 현장 처리 좀 해 줘.”

그렇게 말을 남긴 뒤 모하메드는 자리를 떴다.

목적지는 밀라노 외곽에 있는 클라우디아의 저택이었다.

“…….”

한참을 뛰어, 모하메드는 클라우디아의 저택에 도착했다.

클라우디아의 방이 어디쯤에 있을지 확인한 뒤, 몸을 날려 그곳으로 잠입했다.

“클라우디아.”

“어머, 모하메드.’

날씨 때문에 어두침침했지만, 클라우디아는 전등 하나 켜지 않고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있었다.

“비에 젖은 생쥐 같네요. 수건 좀 빌려드릴까요?”

“됐어.”

“제가 신경 쓰여서 하는 말이에요.”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뭐지요?”

“너는 나를 버린 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너한테서 대가를 받을 수 있냐는 얘기야.”

“물론이죠. 당신이 제 의뢰만 제대로 수행해 준다면 저도 약속을 지킬 거예요.”

당연하듯이 말하는 클라우디아를 보면서, 모하메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리히슈타이너가 나를 죽이려 했어.”

“어머, 또 무슨 원한을 사신 거예요?”

“서민혁에게 제압당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이었어. 내 입을 막으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으음, 그건 리히슈타이너에게 물어보셔야죠. 저한테 물어보면 안 되잖아요.”

“클라우디아.”

모하메드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네 수족이 되어서 움직였어.”

“네, 그랬죠.”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네가 시키는 대로 여러 놈들을 처치해 왔어. 도노반 일당의 동지가 되어 스파이 노릇도 했고.”

“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정말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 건가?”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당신이 제 의뢰만 제대로 수행해 준다면 약속을 지킬 거라고.”

“…….”

“모하메드.”

클라우디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생각을 맞춰 볼까요?”

“뭐라고?”

“당신은… 서민혁이 저를 대신해서 당신 소원을 이루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불쌍한 모하메드.”

클라우디아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2년 전에 당신 때문에 살해당한 아내를… 그 가엾은 사람을 서민혁이 되살려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클라우디아!”

모하메드는 이성을 잃었다.

아내의 죽음을 함부로 얘기하는 클라우디아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클라우디아를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정말로, 불쌍한 모하메드.”

“……!”

모하메드가 클라우디아의 목을 붙잡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갑자기 모하메드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의 목을 붙잡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방금 전까지 모하메드가 서 있던 위치로.

“모하메드, 이건 오로지 저만이 할 수 있어요. 서민혁은 결코 할 수 없죠.”

“크, 클라우디아!”

“흔들릴 필요 없어요. 오로지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된답니다.”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 버린 모하메드를 보면서, 클라우디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서민혁은 절대로…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 * *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민혁은 얼굴에서 빗물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대답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

밀라노 뒷골목에 쓰러진 리히슈타이너는 숨을 헐떡이며 서민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도망치던 리히슈타이너는 결국 서민혁에게 따라잡혀 제압당했다.

“클라우디아의 치유 능력 말인데.”

“…….”

“그건 치료마법 같은 게 아니야. 특정 장비에 의한 것도 아니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했던 건 단순한 눈속임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료의 신이라, 그 이름을 따온 마도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걸 보고 무슨 치료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생긴지 2년이 지난 장애를 치료해 주는 마법은 없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

“…….”

“그렇다면 클라우디아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걸까.”

서민혁은 건틀릿에서 마도서를 하나 꺼냈다.

얼마 전에 획득한 ‘시공마법 입문’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게 아니야. 멀쩡한 상태로 시간을 되돌리는 거지.”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었던 조성조의 다리를 고쳐 줄 수 있었던 이유.

클라우디아는 시공마법을 사용하는 존재였다.

“클라우디아가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건 그녀가 순수하게 자애로운 성녀여서가 아니야. 시공마법을 연습해서 숙련도를 올려, 고레벨의 시공마법사가 되기 위해서지.”

시공을 조작하는 시공마법.

그 마법을 이용해, 클라우디아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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