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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160화 (160/200)

160화 황금 여명회 (1)

클라우디아의 저택 뒤뜰에는 넓은 연습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자고라키스는 연습용 곤봉을 집어 들었다. 본래 자고라키스는 SS급의 곤봉인 ‘올리브 나무 곤봉’을 사용하는 헌터다.

‘헤라클레스가 쓰던 곤봉으로 모든 적을 두들겨 패는 헌터였지.’

기억을 되새기면서 서민혁은 연습용 검을 집어 들었다.

연습장 구석에서는 리히슈타이너, 슈미트, 스네이더르 그리고 키아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말해 두지만, 서민혁.”

자고라키스가 곤봉을 가볍게 휘두르며 말했다.

“나는 네가 마법 덕분에 잘나가는 거라 생각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니 마법만 깨부술 수 있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닌 거지.”

코웃음을 치면서 자고라키스가 손을 까닥거렸다.

“덤벼 봐. 마법 쓰면서 말이야.”

“그러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서민혁은 처음에는 마법 없이 자고라키스와 싸워 볼 생각이었다.

서민혁도 이제는 근체민감 합계 +1,000이고, 마법 빼고 싸워도 충분히 해볼 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고라키스가 저렇게 말하는 이상… 마법을 안 쓰면 오히려 실례가 될 것이다.

“좋아, 시작하지.”

자고라키스가 자세를 취했다.

곤봉 하나를 들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파고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SS급 수준이라던 키아라의 말이 사실이었군.’

유럽 헌터가 홀대받고 있는 거라는 키아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자고라키스가 엔터프라이즈 길드 소속이었다면 이미 SS급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기본 스펙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단련을 하면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은 헌터야.’

서민혁은 자고라키스가 훌륭한 헌터라 느꼈다.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 상대해 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간다!”

자고라키스가 먼저 움직였다.

곤봉을 치켜들고 서민혁에게 돌진해 왔다.

그 무서운 돌격 앞에서, 서민혁은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 * *

“헉!”

자고라키스는 벌떡 일어났다.

자기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깜박였다.

“뭐가 어떻게 된…….”

“정신이 드십니까?”

동양인 청년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자고라키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냈다.

“내가… 당한 건가?”

“그렇습니다, 자고라키스.”

옆에 서 있던 슈미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속공이었습니다. 서민혁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당신을 기절시켰습니다.”

“……!”

자고라키스는 망연자실했다.

쟁쟁한 SS급 헌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패배하다니…….

“자고라키스 씨, 괜찮으십니까?”

“이 자식…….”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 서민혁을 노려보며, 자고라키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정도로 대단하다면 말을 했어야지!”

“네?”

“젠장! 꼴사납게 되었군!”

자고라키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민혁이 내밀었던 손을 맞잡았다.

“서민혁, 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자고라키스 씨…….”

“하지만 너무 방심하지는 마. 언젠가 네 공략법을 찾아낼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서민혁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슈미트가 연습용 창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스네이더르도 후닥닥 달려가 연습용 검을 들고 왔다.

“나하고도 한판 붙자고!”

“…키아라 씨, 원래 황금 여명회는 이런 분위기입니까?”

“아니요, 평소에는 이러지 않은데…….”

서민혁이 고개를 돌리고 묻자, 지켜보던 키아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군요.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슈미트가 자세를 잡았다.

다시금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분위기가 좋네요.”

창문을 통해 뒤뜰을 내려다보며 클라우디아가 중얼거렸다.

“다들 금방 친해질 것 같네요.”

“세 사람 전부 순수한 성격의 청년들입니다. 서민혁이 실력을 보여 줬으니 존중해 줄 수밖에 없겠죠.”

“프랑스의 플라티니가 미국에서 죽어서 다행이네요. 그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되지는 않았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옆에서 리히슈타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티니는 도노반을 막겠다고 미국으로 달려갔다가 곤살레스에게 당했다.

“그러면 호흡도 잘 맞겠네요.”

“클라우디아, 그렇다면…….”

“헝가리의 무한서고에서 SS랭크 보스 퀘스트가 나타난 것 같아요. 거기에 투입하도록 하죠.”

“SS랭크!”

S랭크는 흔하고, S+랭크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SS랭크는 지금까지 5년 동안 세 번밖에 없었다.

“리히슈타이너, 당신이 저 네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 보도록 하세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클라우디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서민혁 혼자서도 가능할 거예요.”

* * *

“SS랭크 보스 퀘스트라니…….”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한바탕 대련을 한 뒤, 서민혁은 리히슈타이너에게서 SS랭크 보스 퀘스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중앙 유럽 여러 국가의 연합 길드인 수도회 길드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퇴했다고 하더군요.”

S+랭크 퀘스트는 과거에도 몇 번 도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SS랭크는 아예 처음이었다.

“SS랭크는 어느 정도 난이도지? S+랭크는 S급 헌터 4명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 난이도였잖아?”

“그런 건 없습니다. SS랭크는 지금까지 세 번밖에 없었으니까, 아직 정보가 부족하죠.”

“작년에 발생한 SS랭크 퀘스트는 엔터프라이즈 길드에서 클리어했는데… 미스터 도노반이 최정예 부대를 이끌고 갔는데도 큰 피해를 입었었지.”

자고라키스와 슈미트, 스네이더르가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여기 있는 다섯 명이서 들어갈 겁니다.”

“다섯 명이서…….”

그렇다면 SS급 헌터 두 명, S급 헌터 세 명이 들어가는 셈이다.

자고라키스와 슈미트, 스네이더르는 S급에서도 최상위권이니 사실상 SS급 다섯 명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질문 있습니다.”

“네.”

“클라우디아는 안 들어가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클라우디아는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일단 SS급이니 전투력은 일반적인 S급 이상일 텐데요.”

클라우디아는 전투력이 아니라 회복 능력 때문에 SS급으로 인정받은 거지만, 그래도 S급의 스탯은 갖고 있을 것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헌터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안 됩니다. 클라우디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밀라노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서민혁은 더 이상 해당 부분에 대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클라우디아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뭔가 있어.’

회귀하기 전, 클라우디아는 매우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현시점에서도 그 본성은 똑같다는 걸, 서민혁은 이미 확인해 둔 상태였다.

‘거래를 했으니 시키는 대로 싸워 주기는 하겠지만, 방심하면 안 돼.’

어쨌든 리히슈타이너, 자고라키스, 슈미트, 스네이더르와 함께 싸우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SS랭크 퀘스트는 클리어하고 오겠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 * *

SS랭크 보스 퀘스트가 나타난 헝가리의 무한서고는 지옥을 연상케 하는 지하 공간 필드였다.

한국에서 황충평이 이런 필드를 공략하다가 죽음의 기운에 중독되어 몇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했었다.

“어이, 서민혁!”

몰려드는 스켈레톤 무리를 나무 곤봉으로 박살 내면서 자고라키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9시 방향에 좀비들이 몰려드는 것 같아! 네 마법으로 쓸어버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리히슈타이너, 자고라키스, 슈미트, 스네이더르는 몰려드는 스켈레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이동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 공격이 가능한 서민혁이 가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럼 다녀오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몸 조심해!”

슈미트와 스네이더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약했다.

실프의 힘을 빌려 공중을 날면서, 멀리 보이는 좀비 무리를 향해 샐러맨더의 화염을 날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부탁해.”

주머니에서 얼굴을 내민 샐러맨더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서민혁은 좀비 무리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와 아스칼론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신성 속성의 대미지를 추가해 주는 이 두 검이라면…….’

두 장검을 양손에 들고, 생체마법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 올렸다.

‘언데드는 다 쓸어버릴 수 있지.’

오른손의 엑스칼리버를 휘두른 순간, 좀비 열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왼손의 아스칼론을 휘두른 순간, 좀비 아홉 마리가 동시에 박살 났다.

스치기만 해도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로 좀비의 몸이 터져 나가기 때문에, 두 자루의 장검을 동시에 휘두르는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볼까.’

서민혁은 계속해서 좀비들을 쓰러뜨리며 전진했다.

아군에게서 멀어지는 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서민혁의 시야에 책이 꽉 채워져 있는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한서고 특유의 ‘똑같은 책만 꽂혀 있는 책장’이었다.

‘데이모스 님, 그러고 보니 책장에 책이 한 종류만 꽂혀 있는 것도 시스템 오류입니까?’

‘날카롭군.’

데이모스에게 질문을 던지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는 다양한 책이 꽂혀 있었다. 그중에서 무한서고 공략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콘텐츠였지.’

‘그런데 오류가 생겨서 쓸모없는 책은 다 없어지고 한 가지 책으로만 채워지게 된 거군요.’

‘그렇다.’

대부분의 오류는 공략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었지만, 이것만큼은 서민혁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여러 가지 책들이 꽂혀 있었다면 그 중에서 공략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내느라 매번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도움이 되는 책이 숨겨져 있다는 것 자체를 눈치 못 챘을 수도 있다.

‘하긴 매번 볼 때마다 이상하긴 했어.’

똑같은 책만 꽂혀 있는 책장들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게 시스템 오류였을 줄이야.

‘어디 보자…….’

서민혁은 전자마법으로 번개를 날려 주위 좀비들을 쓸어버린 뒤,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제목은 ‘안개의 세계’라고 되어 있었다.

‘추상적인 제목인데…….’

한쪽 손으로는 마법을 날리면서 서민혁은 책을 후다닥 훑어봤다.

이미 수도회 길드의 생존자를 통해 SS랭크 보스 퀘스트의 정보를 손에 넣은 상태이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였군.’

서민혁은 빠르게 내용을 파악한 뒤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꽂아 놨던 엑스칼리버를 잡고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일도양단했다.

‘SS랭크 보스… 생각보다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든지 공략법을 알면 길이 열리는 법.

그리고 서민혁은 그걸 알아내는 능력이 세상 어느 헌터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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