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누가 건방지게 구는 겁니까 (3)
‘저 남자는 고차원 지성체 중 하나인 에뉘오와 계약한 놈이다.’
괴물로 변한 곤살레스와 대치하고 있자, 데이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뉘오는 네가 자기 계약자를 죽일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계약자가 사망하면 마도 대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그렇기 때문에 계약자를 살리기 위해 저런 모습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저 남자는 저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군요.’
곤살레스는 추한 외모로 변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상태에 당황스러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서민혁……!”
곤살레스가 두꺼워진 팔로 아스칼론을 휘둘렀다.
그 풍압에 주위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서민혁 씨! 조심하세요!”
키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서민혁은 주저 없이 곤살레스에게 접근했다.
곤살레스가 전광석화 같은 공격을 펼친 순간, 전자마법으로 진짜 번개를 곤살레스의 가슴에 꽂았다.
“크으으윽!”
고통스러워 하는 곤살레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바로 심장이 마비되었겠지만, 데몬 같은 괴물이 된 곤살레스는 잘 버텼다.
하지만 커다란 빈틈이 생겼고, 서민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괴력 구현.’
주먹을 이용해 곤살레스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신경이 지나가는 위치를 정확히 끊어 쳤기 때문에, 곤살레스는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 빠져 아스칼론을 놓쳐 버렸다.
“……!”
당황해하면서 곤살레스는 아스칼론을 집어 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스칼론]
* 랭크: SS
* 공격력: 1,199
* 공격 시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
* 용종 및 유사 용종 공격시 추가 대미지.
# 드래곤을 쓰러뜨린 성인이 사용했다는 명검.
성 게오르기우스가 사용했던 검이라서 그런지, 드래곤 계열 몬스터에게 특화된 검이면서 신성력까지 지니고 있다.
이러면 아메노하바키리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라면… 데몬 같은 괴물이 된 곤살레스에게도 먹힐까?’
고차원 지성체의 계약자가 저런 모습이 되는 건 일종의 오류로 인해 데몬의 특성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성 속성에 약한 부분도 이어받았을까.
“내놔라……!”
자기 검을 빼앗긴 곤살레스가 다급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난무 구현.’
이미 서민혁은 백강의 기운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있는 상태.
난무 구현 마법으로 거의 동시에 십여 번의 공격을 펼쳤다.
공격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자, 곤살레스의 온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곤살레스.
아스칼론으로 만든 상처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살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가 잘 먹혀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유용하겠는데.’
서민혁은 아스칼론을 두 손으로 잡으며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괴력 구현을 사용하면서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내가, 한낱, 동양의 애송이한테…….”
그걸로 끝이었다.
아스칼론이 곤살레스의 목을 베었고, 그 육체가 쿵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괴물의 시체 앞에서 서민혁이 이마의 땀을 닦고 있자, 주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괴물을 해치운 건가?”
“세상에! 정말 놀랍군!”
“동양인 헌터? 설마 서민혁인가?”
“그래, 서민혁 맞아! 미국에서 미스터 도노반의 음모를 저지했다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마법을 습득한 헌터!”
서민혁을 알아본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고맙다! 서민혁!”
“괴물한테서 우리를 지켜 줘서 고마워!”
“당신이 와 줘서 정말 다행이야!”
“멀리서 봤는데 진짜 무시무시한 전투력이군!”
남유럽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광객도 많기 때문일까.
다들 호들갑을 떨면서 서민혁을 치켜세워 줬다.
서민혁이 손을 들고 화답하자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와 악수까지 청했다.
‘이게 바로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라는 거군.’
서민혁은 일일이 응대해 줬다.
그렇게 서민혁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는 사이, 키아라가 프랑스 당국과 연계하여 곤살레스의 시체를 치웠다.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이 놀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걸로 첫 번째 임무는 완수한 건가.’
황금 여명회로서 부여된 첫 번째 임무.
서민혁은 유럽에서의 첫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 *
“곤살레스를 이렇게 금방 쓰러뜨리실 줄은 몰랐어요.”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에서, 키아라가 서민혁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더 고전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습니까?”
“네, 곤살레스는 현 시점에서 유럽 최강의 헌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키아라가 서민혁을 보는 눈빛에 존경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런 곤살레스를 1시간도 안 되어서 처리하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겸손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키아라 씨, 저는 이대로 밀라노 숙소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아니요. 클라우디아 님의 저택으로 갈 겁니다.”
“클라우디아의 저택?”
“황금 여명회의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금 여명회의 멤버들.
키아라의 평가에 의하면 다들 SS급 수준의 헌터라 한다.
“기대되는군요.”
서민혁은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밀라노 외곽에 있는 클라우디아의 저택.
1층에 있는 으리으리한 응접실에는 네 명의 헌터가 앉아 있었다.
“서민혁이 곤살레스를 잡았다고?”
그리스의 S급 헌터인 자고라키스가 하나뿐인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곤살레스를 잡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 아니었어?”
“아닙니다, 자고라키스.”
독일을 대표하는 S급 헌터 슈미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곤살레스를 쓰러뜨린 서민혁을 맞이하여, 황금 여명회에 들어온 것을 정식으로 환영하는 자리입니다.”
“나는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그런 자리라면 참석 안 하겠다고 할 테니까요.”
“하하, 맞는 얘기야.”
옆에서 슈미트에게 맞장구를 쳐 준 건 네덜란드 출신의 S급 헌터인 스네이더르였다.
그는 자고라키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영회 따위에 참석할 시간이 있으면 몬스터라도 한 마리 더 잡겠다고 불참했겠지.”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은데.”
“그건 안 됩니다, 자고라키스.”
구석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제지한 건 스위스의 SS급 헌터 리히슈타이너였다.
클라우디아의 심복으로도 알려진 이 남자야말로 이 황금 여명회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중심인물이었다.
“클라우디아의 지시입니다.”
“흥,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아?”
“자고라키스.”
“말해 두지만 나는 서민혁이라는 놈을 별로 인정하지 않아.”
자고라키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 녀석, 마법이라는 걸 쓴다며?”
“네, 그렇다고 하죠.”
“그동안 마법을 쓰는 헌터는 없었어. 도노반과 곤살레스도 마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당한 거야.”
“그러면…….”
“마법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면, 그 녀석도 지금처럼 활개치고 다니지는 못할 거야.”
마법을 쓰는 헌터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걸 지금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들 서민혁한테 일방적으로 당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만 마련하면 된다.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은 너무 우쭐대고 있어.”
“딱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동양인답게 겸손한 성격 같았습니다.”
“뭘 모르네, 슈미트. 동양인은 겉과 속이 달라.”
편견을 드러내며 자고라키스가 계속 말했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환영회에는 참석해 줄게. 대신 환영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그 녀석을 환영해 줄 생각은 없어.”
“자고라키스, 클라우디아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걱정 말라고, 리히슈타이너. 내가 그 정도 분별도 없을 것 같아?”
자고라키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냥 기선 제압 좀 해 주려는 거야. 일단 여기 오면 가볍게 실력 좀 보여 달라고 하려고.”
“적당히 하시죠.”
리히슈타이너가 한숨을 내쉬자, 슈미트와 스네이더르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바깥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아라 씨가 서민혁 씨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드디어 왔군.”
잠시 후 키아라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황금 여명회의 견습 멤버 같은 존재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키아라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뒤따라 들어온 동양인 남자를 소개시켜 줬다.
“서민혁 씨입니다. 이번에 황금 여명회의 임시 멤버로 초빙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서민혁은 영어로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자고라키스가 혼잣말을 했다.
“실물을 보니 영 부실해 보이네. 체격도 크지 않고, 근육량도 부족해 보여.”
그리스어로 중얼거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유창한 그리스어가 들려왔다.
“이런 체형이지만 근력은 당신에게 뒤지지 않을 겁니다, 자고라키스 씨.”
“……!”
서민혁이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걸 보고 자고라키스는 깜짝 놀랐다.
그리스어를 이렇게 잘하는 외국인을 만날 기회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슈미트가 입을 열었다.
“흠, 독일어도 가능하십니까?”
“그냥 일상 대화가 가능한 정도입니다, 슈미트 씨.”
서민혁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독일어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 옆에서 스네이더르도 네덜란드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네덜란드어도 할 줄 아나?”
“죄송합니다.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습니다, 스네이더르 씨.”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그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발음하고 있는 서민혁을 보면서 스네이더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헌터 되기 전에는 통역관이라도 했었나?”
“대학 다닐 때 어문 쪽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취미로 익힌 겁니다.”
“대단하군!”
여러 나라의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서민혁을 보고 다들 놀라워했다.
다만, 자고라키스만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쯧, 헌터는 전투 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어학 실력으로 인정받아서 뭐 해?”
“자고라키스, 쓸데없는 시비를…….”
“내 말이 틀렸어? 엉?”
리히슈타이너에게 거친 태도를 보이는 자고라키스를 보고, 서민혁이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고라키스 씨.”
“그, 그렇지?”
서민혁이 자기 말에 동의해 줄 거라고는 생각 못한 자고라키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곤봉술의 대가로서 이름 높은 자고라키스 씨 입장에서는, 저 같은 애송이가 황금 여명회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우시겠죠.”
“아,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자고라키스, 아까하고는 말이 다른 것 같은데요.”
“조용히 좀 해!”
옆에서 지적하는 슈미트에게 자고라키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자고라키스 씨, 그래도 저는 여러분들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흐, 흠…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서민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가볍게 실력을 보여 드리면 되겠습니까?”
“……!”
자고라키스가 움찔했다.
아까 서민혁이 오면 가볍게 실력 좀 보여 달라고 하겠다고 자고라키스 본인이 말했었기 때문이다.
“조, 좋아.”
자고라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나하고 대련 한번 해볼까?”
“영광이지요.”
서민혁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서민혁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는 걸 이해하고 리히슈타이너 등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자고라키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