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원하는 게 뭡니까 (3)
지난번 브래들리, 알티도어 때하고는 국민들의 반응이 달랐다.
클라우디아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아이돌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치유 능력을 지닌 헌터라는 점은 그녀에게 헌터답지 않은 독특한 개성을 부여했다.
한국에서도 그 인기는 매우 높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팬이 많다.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여아용 장난감까지 출시되고 있을 정도지.’
다만, 클라우디아의 가장 큰 지지층은 역시 젊은 남성이었다.
클라우디아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실제 나이보다 앳된 얼굴을 지녀 청순가련한 매력이 넘쳐흘렀다.
그녀의 사진을 표지로 삼은 남성 잡지는 즉각 매진되어 여러 번 증쇄를 했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좀 안 좋은데.’
서민혁과 데이트를 하고 싶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클라우디아가 내뱉은 폭탄 발언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오빠, 갑자기 한국에서 오빠 안티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은데…….”
“그런 거 보지 마라…….”
여동생의 떨떠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 서민혁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여론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역대 최고로 욕을 먹고 있네.’
그동안 인터넷에서 서민혁을 욕하는 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서민혁이 매스컴에 주목받을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런 것도 줄어들었다.
한국에 브레이크다운이 발생하는 걸 막아 내고, 도노반을 쓰러뜨려 미국까지 구원한 이후부터는 안티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무슨 말로 까 봤자 서민혁이 이룩한 거대한 업적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 클라우디아의 폭탄 발언 이후로 다시 엄청난 악플이 쏟아지게 되었다.
‘뉴스 댓글도 난리고… 이걸 어쩐다.’
서민혁에 대한 인신공격이 인터넷상에서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헌터로서의 행보 때문에 욕먹는 거라면 별 상관없다. 서민혁이 스스로 취한 행동 때문에 욕을 먹는 거니까 그냥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욕을 먹다니 너무 억울했다.
“오빠, 혹시 몰라서 하는 얘기인데 인터넷에 함부로 입장 발표 같은 거 하지 마.”
“…안 해.”
동생의 조언을 듣고 서민혁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오빠, 클라우디아랑 데이트할 거야?”
“말했잖아. 클라우디아하고는 그냥 비즈니스 때문에 만나는 거라고. 데이트 운운한 건 그냥 농담이야.”
“어쨌든 만나는 건 만나는 거네.”
“둘이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같이 있을 거야.”
“나 이탈리아 사람이 새언니인 건 좀 싫은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 좋은데, 이왕이면 한국 사람하고 결혼해.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서은하는 휙 가 버렸다.
“별 쓸데없는 참견을…….”
서민혁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클라우디아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
서민혁과의 면담은 내일 오전으로 잡혀 있는 상태다.
‘골치 아프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클라우디아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 * *
서울 중구에 위치한 5성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
그곳에서 클라우디아는 하품을 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은 자극적인 나라네요. 덕분에 온몸에 피로가 쌓인 것 같아요.”
“편히 쉬십시오, 클라우디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 건 스위스의 리히슈타이너였다.
그는 등급만 따지자면 클라우디아와 똑같은 SS랭크이지만, 클라우디아에게 충성을 바치며 심복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리히슈타이너, 서민혁 쪽에서는 아직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거죠?”
“네, CS컴퍼니 쪽에서 내일 면담을 확인하는 연락이 왔을 뿐입니다.”
“흐음, 이렇게 공개적으로 구애했는데 이런 쌀쌀맞은 태도라니 너무하네요.”
클라우디아는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리히슈타이너, 만약 당신이 저한테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저는 이미 마흔이 넘은 남자입니다. 클라우디아 같은 젊은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아 봤자 당혹스러울 뿐이지요.”
“지금보다 열 살 젊었다면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환희하면서 최고의 데이트 플랜을 준비하기 시작했겠죠.”
“그래요. 그게 정상이죠. 근데 서민혁은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요?”
“서민혁은 매우 냉정한 인물입니다. 섣불리 대응해 봤자 자기한테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미없는 남자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클라우디아는 넓은 유리창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 추운 날씨 탓에 유리창에 생긴 물기를 이용해, 서민혁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럼 재미있게 만들어 줘야죠.”
“클라우디아…….”
“그 남자가 제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유리창에 쓴 서민혁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내일 서민혁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기대돼요.”
* * *
다음 날.
서민혁은 클라우디아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호텔에 부속되어 있는 영빈관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이제 완전히 겨울이네.”
“그러게.”
호텔 직원에게 발렛 주차를 맡긴 뒤, 서민혁은 먼저 도착해 있던 조성조와 함께 영빈관 쪽으로 향했다.
“경비가 좀 삼엄하네. 브래들리와 알티도어 때하고는 다른 느낌이야.”
“클라우디아는 좀 특별한 존재니까 그렇지. 로마 교황이 다리를 저는 걸 고쳐준 이후로 그 여자는 정말로 성녀가 되었어.”
“성녀라…….”
클라우디아는 치유 능력을 지닌 헌터다.
상처 치유 포션을 복용하는 것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인체를 치료한다고 알려져 있다.
포션으로 치료할 때하고 가장 큰 차이점은… 오래전에 생긴 부상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성조의 다리도 고쳐 줄 수 있을 거야.’
서민혁은 슬쩍 조성조의 걸음걸이를 살폈다.
여전히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2년 전에 입은 부상을 현장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생긴 후유증이다.
‘문제는 어떻게 얘기를 꺼내느냐는 건데.’
클라우디아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서민혁에게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얘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빈관에 들어서자, 보안 담당자들이 서민혁을 안내했다.
그러자 한옥 스타일의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정원이 나타났다. 원래는 결혼식 등 연회를 위해 사용되는 공간이라 한다.
그곳에 클라우디아가 리히슈타이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서민혁 씨.”
클라우디아는 소문대로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금발을 단정하게 땋아 올린 모습을 보니 마치 여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공주님 같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한 차례 인사를 나눈 뒤, 서민혁은 조성조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다 퇴실했고, 룸 안에는 네 사람만 남아있었다.
“그러면… 서민혁 씨.”
클라우디아가 웃으면서 옆에 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한 가지 해 놓을 게 있어요.”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 안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라이브러리 건틀릿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장비 좀 꺼낼게요.”
“……?”
건틀릿을 조작해서 그녀가 꺼낸 물건.
그 모습을 보고 서민혁도 조성조도 숨을 삼켰다.
“제가 사용하는 SS랭크 장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예요.”
“……!”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그것은 뱀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지팡이 형상의 장비였다.
물론 무기는 아니다. 공격력 수치가 있는 무기를 인벤토리에서 꺼내려면 무한서고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저건 무기가 아니라… 마도 보조기구야.’
직접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건 평범한 지팡이가 아니라 마법 사용을 모조하는 역할을 하는 마도 보조기구였다.
“자, 그러면… 조성조 씨.”
“네?”
“잠시 실례할게요.”
당황해하는 조성조 앞에서 클라우디아가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지팡이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
서민혁은 알 수 있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력이… 조성조의 하체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조성조 씨, 일어나 보세요.”
“크, 클라우디아 씨, 이건…….”
“어서 일어나 보세요.”
조성조가 몸을 떨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말도 안 돼…….”
경악.
조성조의 얼굴에는 오로지 그 감정밖에 없었다.
“성조야.”
“민혁아, 나, 나 지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조성조를 보면서, 서민혁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에 휩싸였다.
정말로… 조성조의 다리가 치료되었단 말인가?
“조성조 씨.”
클라우디아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제자리걸음만 해서 뭘 알겠어요. 여기 공간도 넓으니까 한번 뛰어 보세요.”
“아, 알겠습니다.”
조성조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
눈앞에서 조성조의 모습이 사라졌다.
‘빠르다……!’
조성조는 그냥 뜀박질을 한 게 아니었다.
바닥을 차고, 근처 건물의 벽을 차고, 공중에서 몸을 돌리면서 3차원적으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펼쳤다.
SS급 헌터인 서민혁이 봐도 충분히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성조야, 너…….”
“아프지 않은 것 같아. 조금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 설마 정말로…….”
움직임을 멈춘 조성조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조성조 씨, 그냥 바깥에 다녀오세요. 아무래도 여기도 너무 좁은 것 같네요.”
클라우디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산이라고 했던가요? 마침 옆에 산도 있으니 한바탕 뛰고 와도 되겠네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1시간 안에는 돌아오셔야 해요.”
“……!”
조성조가 서민혁을 쳐다봤다.
서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저 없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성조가 저렇게 민첩했구나.’
서민혁은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서 조성조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서민혁이었다. 회귀하기 전에 10년 넘게 친구로서 함께했기 때문이다.
조성조가 다시금 헌터로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서민혁은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런 표정도 지으시는군요, 서민혁 씨.”
바로 그때.
클라우디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서민혁의 귀에 들어왔다.
“기쁜 일일 텐데, 왜 그렇게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는 건가요?”
“…아닙니다.”
서민혁은 고개를 숙이며 클라우디아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1시간이면 끝나니까, 그 전에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네?”
귀를 의심했다.
1시간이면 끝난다?
“시간제한이 있어요. 1시간만 지나면 조성조 씨의 다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영구적으로 회복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민혁 씨.”
클라우디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유지하며 계속 말했다.
“그렇게 쉽게 사람을 고칠 수 있다면, 저도 보다 많은 사람을 고치고 다녔을 거예요. 하지만 제 치료 능력에는 여러 모로 제한이 있어요.”
“…….”
“조성조 씨의 다리를 완전히 고쳐 주는 건… 저한테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클라우디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민혁에게 다가와 눈을 맞췄다.
“어때요, 서민혁 씨.”
“…….”
“제가 조성조 씨를 완전히 고쳐 주는 게 좋을까요?”
서민혁은 입을 다문 채 클라우디아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민혁의 기억 속에 있는 ‘칠악의 정점’ 클라우디아와… 눈앞에 있는 ‘성녀’ 클라우디아는 완전히 같은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원하는 게 뭡니까.”
“후후, 서민혁 씨.”
클라우디아가 분홍색 입술로 미소 지었다.
“그래요, 그런 표정이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