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위업을 달성하라 (4)
“고오오오!”
몸통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야마타노오로치는 계속해서 저항했다.
심장이 터졌을 텐데 잘 버티고 있었다. 어쩌면 심장도 여덟 개일지도 모른다.
“……!”
서민혁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공격력 수치 1,221의 아론다이트.
거기에 흑강의 기운을 코팅하면 그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고오오오오!!”
칼을 한 번 휘두르자,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 하나가 날아갔다.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명색이 유사 용종이라 껍질이 두꺼울 텐데, 마치 두부 자르듯이 잘라 버릴 수 있었다.
‘일단 하나 잡았군.’
‘일곱 개 남았습니다!’
데이모스와 대화를 나누며 서민혁은 다시 한번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야마타노오로치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피하려 했지만, 아론다이트의 칼끝이 아래턱을 꿰뚫어 버렸다.
‘하나 더 잡았군. 이제 여섯 남았나.’
서민혁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마타노오로치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민혁이 집어 던진 아론다이트가 머리 하나의 정수리에 꽂혔다.
‘세 개째. 다섯 남았다.’
무기를 던져버렸지만, 서민혁은 맨손이 아니었다.
아까 공중에 던져 놓았던 간장과 막야를 전자마법으로 다시 회수했기 때문이다.
서민혁은 질풍처럼 움직였고, 간장과 막야가 X 자를 그리며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 하나를 파괴했다.
‘네 개를 잡았으니 네 개 남았군. 딱 절반이다.’
서민혁은 공중에서 몸을 틀면서 움직였다.
전자마법을 사용해 팔다리를 강제적으로 움직이면서, 근처에 있던 야마타노오로치의 목을 찢어발겼다.
‘이제 다섯 잡았다. 세 개만 더 잡으면 된다.’
팔두(八頭)에서 삼두(三頭)로 줄어든 야마타노오로치가 어떻게든 반격을 하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여덟 개의 꼬리를 사용해 반격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서민혁은 자기를 덮치려던 꼬리를 발판 삼아 도약, 가까이 있던 야마타노오로치 머리의 뒤통수에 간장과 막야를 꽂아 넣었다.
‘이제 두 개 남았다!’
꽉 박혀 버린 간장과 막야에서 손을 떼고, 서민혁은 아론다이트를 다시 회수했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 하나를 향해 아론다이트를 휘둘러, 그 두개골을 분쇄했다.
‘마지막 하나!’
그 순간, 서민혁의 사각에서 마지막 남은 머리가 쇄도해 왔다.
서민혁을 집어삼키기 위해 크게 벌린 입에서는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래쪽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칼날이 있었다.
방금 전에 몸통에 박혔던 아메노하바키리였다.
“고오오오오?!”
야마타노오로치의 아래턱에 박힌 아메노하바키리.
서민혁은 몸을 틀어 그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괴력 구현.’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아래턱에 꽂힌 아메노하바키리를 휘둘러 목까지 갈라 버린다.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면서 야마타노오로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덟 개, 완료했군.’
데이모스의 짤막한 목소리와 함께, 야마타노오로치의 마지막 머리가 축 처졌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꼬리들조차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야마타노오로치를 처치했습니다.]
[80억 크레딧을 획득했습니다.]
윈도우를 확인하고 서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80억이라니 예상했던 것 이상의 보수다.
하지만 머리 하나에 10억이라 생각하니 그럭저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훌륭했다, 계약자여.’
‘이 정도는 해야죠. 그런데…….’
‘왜 그러지?’
서민혁은 잠시 야마타노오로치를 응시했다.
이놈은 화이트 드래곤처럼 특별한 소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시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뭐지?’
인벤토리에서 위저드 로드를 꺼냈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시체병 생성.”
짤막하게 중얼거린 순간.
야마타노오로치의 시체가 들썩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시체병 생성.”
쿠웅!
아까보다 더 크게 들썩였지만, 역시 그걸로 끝이었다.
“…….”
하지만 서민혁은 낙담하지 않았다.
예전에 스켈레톤 위저드를 되살리기 위해 사령체 재생을 연달아 썼을 때와 마찬가지다.
두 번의 실패 경험을 쌓았다. 이건 세 번째 시도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산이 된다.
“시체병 생성.”
쿠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 야마타노오로치의 시체.
여덟 개의 머리가 모조리 손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꿈틀거리며 활동을 재개했다.
‘미쳤구나, 계약자여.’
‘저도 조금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거대한 괴수까지 좀비로 만들 수 있다니, 사령마법도 정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것 같았다.
“음… 어떻게 해야 하나.”
야마타노오로치가 그나마 멀쩡한 머리 하나를 치켜들고 다가왔다.
명령을 내리라는 듯한 태도였지만, 두개골이 쪼개져서 그 내용물이 엿보여서 조금 징그러웠다.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 다 짓이겨 버려. 다만 인간들한테는 절대로 피해가 안 가게 해.”
“고오오…….”
아까 거인들한테 내렸던 것과 비슷한 명령을 내리자, 야마타노오로치는 혀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을 발생시키며 몬스터 사냥을 위해 출발했다.
* * *
“저, 저게 뭐야?”
“야마타노오로치? 근데…….”
“머, 머리가 왜 저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던 일본 헌터들은 숲속에서 나타난 괴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덟 개의 머리와 꼬리를 지닌 야마타노오로치처럼 보였는데, 멀쩡한 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어, 어쨌든 도망쳐!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그, 그래! 일단 물러서자고!”
“잠시만요!”
스즈무라 마츠리는 주위 헌터들을 제지했다.
“잘 보세요! 몬스터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뭐, 뭐라고요?”
“어… 정말이네?”
야마타노오로치는 그 거대한 몸집을 이용해 주위 몬스터들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거인형 몬스터들도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하던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몬스터들끼리 내분이 발생했나?”
“그런 게 어딨어? 다른 때라면 몬스터들끼리 영역 다툼도 하지만, 브레이크 퀘스트에서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여러 헌터들이 당황해하면서 떠들어댔다.
“이거 아무래도…….”
“스즈무라 씨, 뭔가 눈치챈 건가요?”
“서민혁 씨가 뭔가 한 것 같아요.”
“서, 서민혁 씨가?”
스즈무라도 근거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서민혁 씨는 정말로 우리들의 구세주였던 거예요, 여러분.”
“스즈무라 씨…….”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지만, 서민혁 씨가 저 괴물을 지배한 거예요.”
“괴물을… 지배한다고요?”
스즈무라의 추측을 듣고 다들 황당해했다.
“스, 스즈무라 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래요. 이게 무슨 게임인 줄 아세요? 몬스터를 어떻게 조종해요?”
“게다가 저 야마타노오로치는 좀비가 된 것 같은데, 서민혁이 무슨 네크로맨서입니까?”
“서민혁 혼자 무슨 판타지 웹소설 주인공인가요? 나 혼자 네크로맨서?”
여러 헌터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맞다는 것을.
“어쨌든 여러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요.”
스즈무라가 창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위험한 몬스터들은 이미 서민혁 씨가 많이 해치워 줬어요! 그리고 좀비 몬스터들도 저희를 도와준다면, 나머지 몬스터들도 충분히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브레이크다운을 막아 내자!”
지칠 대로 지쳐 있던 헌터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서민혁 씨의 뒤를 따릅시다! 전원 돌격……!”
“오오오!”
기합 소리를 지르며, 헌터들이 몬스터들을 향해 돌격을 시작했다.
* * *
타임리미트가 점점 다가오자, 퀘스트 필드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대부분 철수했다.
그 대신 완전 무장을 한 자위대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2년 전의 선례를 생각하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그들 중 대다수가 사망할 것이다.
내부의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재래식 병기로 무장한 자위대로는 대처하기 어렵다.
“…….”
조성조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주위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남아 있는 기자들 몇 명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왜 아무도 안 나오지?”
“몇 명은 도망쳐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설마, 안에서 전멸한 건가?”
처음 서민혁이 나타났을 때는 다들 열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시민들의 피난도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조, 조성조 씨.”
그때 공안조사청의 사토야마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안쪽 상황, 알 수 있습니까?”
“글쎄요.”
“저희 헌터 요원을 들여보냈는데, 나오지 않아서…….”
“안에서 같이 싸우고 있나 보죠.”
조성조의 일본어 실력은 그리 좋지 않다.
짤막하게 대꾸하며 조성조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퀘스트 필드는 푸른빛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 안에 존재하는 넓은 공간에서… 서민혁이 브레이크 퀘스트를 공략 중일 것이다.
“이제 브레이크다운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아아!”
사토야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그러다가 다급히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이, 이제는 더 이상 못 기다려!”
“뭐 하려는 겁니까?”
“이곳을 벗어나는 거요! 안전한 곳까지!”
조성조는 팔을 뻗어 사토야마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그리고 한국어로 내뱉었다.
“마지막까지 추하게 구네.”
“이, 이거 놔!”
사토야마가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은퇴하긴 했지만 조성조는 여전히 S급 헌터의 근력을 보유하고 있다.
헌터도 아닌 늙은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조성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저거나 보쇼.”
“뭐, 뭐?”
조성조가 손가락질한 방향.
푸른색 장막으로 둘러싸인 퀘스트 필드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
온몸에 피칠갑을 한 일본 헌터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그중에는 내부 상황을 확인하러 들어갔던 공안조사청의 헌터 요원들도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브레이크 퀘스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위대와 기자들에게서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선두에 서있던 스즈무라는 대답하지 않고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 뒤에서… 상처 하나 없는 서민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서민혁?”
“왜 저리 깔끔해?”
“안에서 싸우기는 한 거야?”
당황해하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서민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서민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레이크 퀘스트는 클리어되었습니다.”
그 순간.
헌터들의 배후에 있던 필드가 소멸되었다.
필드 내부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 시체들도, 무한서고의 잔해도 남기지 않은 채… 아무런 흔적도 없이.
“……!”
처음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다들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직후.
“와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죽음을 각오하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자위대 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를 쳤고,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저, 정말로… 브레이크 퀘스트를 클리어한 건가? 브레이크다운을 막아 낸 건가?”
사토야마가 부들부들 떨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성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했다, 민혁아.’
2년 전에 조성조도 도쿄에서 싸웠지만, 그때는 이미 브레이크다운이 발생한 뒤였다.
조성조가 칸자키 등의 협력을 받아 야마타노오로치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이미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민혁은 브레이크다운을 완전히 막아 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는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엄청난 위업이었다.
‘자 그러면…….’
조성조는 남아 있던 캔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너의 위업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조성조는 빈 캔을 근처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