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서로 모든 걸 쏟아 내자 (5)
김진우는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원래 국립대 교수였으며, 거대 정당과 인맥이 있어 정치권에 진출한 인물이었다.
정치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권력욕과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김진우도 그런 아버지를 빼닮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김진우에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교수로서 명성을 날리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정계에 진출하는 것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따로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김진우는 법대에 진학했다.
아버지처럼 교수가 되거나 아니면 판검사가 될 생각이었다.
그 뒤에 적당히 나이를 먹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계로 진출한다는 게 김진우의 막연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해 버렸다.
무한서고가 나타나면서 헌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무한서고에 완전히 매료된 김진우는 법조계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고 헌터계로 뛰어들었다.
아버지와는 절연했다. 헌터가 되는 걸 반대했기 때문이다.
김진우는 헌터로서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헌터들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어 무한서고 바깥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갤럭티카 길드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산되는 걸 보면서, 김진우는 헌터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크루세이더 길드를 만든 김진우는 점차 세력을 키워 갔다.
그 과정에서 도노반을 알게 되었고,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동지가 되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아드레스티아와 계약하여 다른 헌터들과 차별화된 힘을 얻었다.
그러나 김진우는 계속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세계적 혼란에서 다른 나라 길드들을 제치고 패권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서고에서 나오는 마도서를 해석하여 마법을 손에 넣어야 한다.
암흑마법, 생체마법, 사령마법, 정령마법, 전자마법 등… 마도서에서는 온갖 마법을 습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진우는 서민혁을 반드시 꺾어야 했다.
마법을 손에 넣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
* * *
“하아앗!”
김진우는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현재 김진우의 근력 스탯은 +275.
파워로 유명했던 일본의 SS급 헌터 하야마를 가볍게 능가하는 수치다.
물론 세상에는 200대 초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드레스티아의 힘을 더하면!’
지금 김진우의 팔다리에 깃들고 있는 푸른 기운.
이것은 김진우가 계약한 고차원 지성체 ‘아드레스티아’가 부여해 주는 힘이다.
이 기운은 김진우의 육체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특히 속도를 빠르게 해 준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더 큰 충격을 준다.
콰아앙!
아론다이트가 간장 및 막야와 충돌했다.
주위에 충격파가 발생해 콜로세움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서민혁은 김진우의 공격을 막아 냈다.
온몸에 검은 기운을 두른 채.
“그래, 당신도 그랬던 거군요.”
김진우는 비로소 이해했다.
서민혁이 왜 이렇게 빠르게 강해진 건지.
“당신도 아드레스티아처럼 절대적인 존재와 계약한 거군요.”
“…….”
“그 존재는 이름이 뭡니까?”
김진우의 질문을 듣고, 서민혁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데이모스.”
“데이모스… 적군의 패배를 상징하는 그리스 신과 같은 이름이군요.”
멋진 이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김진우는 다시 한번 공격을 펼쳤다.
“어떤 힘을 부여해 주는지, 저한테 보여 주시죠!”
쾅! 콰쾅!
칼과 칼이 부딪치는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민혁은 쌍칼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김진우의 공격을 막아 냈다.
아직까지 아론다이트는 서민혁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파워도 스피드도 거의 호각.
하지만 김진우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아무리 파워나 스피드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이 훨씬 우월하다고.
“오오옷!”
김진우는 페이크를 섞어 서민혁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렸다.
그 틈을 이용해 아론다이트를 두 손으로 잡고 강하게 휘둘렀다.
충격과 함께 서민혁이 밀려 나가는 걸 알 수 있었다.
“큭……!”
서민혁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진우는 쫓아가서 몰아세우지 않았다.
모처럼의 기회다. 비슷한 힘을 지닌 상대와의 싸움을 더 오래 즐겨 보고 싶었다.
‘그래, 서민혁 정도면 내 스파링 상대로 딱 맞지.’
김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아론다이트를 치켜들었다.
덤벼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서민혁을 도발했다.
“…….”
한편 서민혁은 입술을 깨문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김진우.”
“뭐죠?”
“왜 자꾸 회피하지?”
회피?
김진우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김진우는 딱히 공격을 피해 다니고 있지 않다. 서민혁이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않는데 뭘 회피하란 말인가.
“너는 자꾸 한 가지 사실에서 회피하고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너도 이제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마도 언어를 해석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요?”
김진우는 불쾌감을 느꼈다.
본인도 이해하기 힘든 불쾌감이었다.
“이봐, 김진우.”
“…….”
“혹시 아직도… 자기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 순간.
서민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체불명의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
반사적으로 아론다이트를 옆으로 휘둘렀다.
오랜 실전 경험 없이는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측면으로 접근한 서민혁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속도를……?!’
서민혁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김진우는 아론다이트를 이용해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서민혁의 공격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윽……!”
이번에는 김진우가 신음 소리를 낼 차례였다.
재정비를 위해 거리를 벌리려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아론다이트를 휘둘러 서민혁의 접근을 막은 뒤 후방으로 크게 도약했다.
숨을 고르며 다시 자세를 취하려 했을 때.
“샐러맨더, 실프.”
서민혁이 손을 치켜든 순간.
화염의 폭풍이 김진우를 덮쳤다.
“……!”
김진우는 얼굴을 보호하면서 다급히 몸을 피했다.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SS랭크 방어구 덕분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머리카락 일부분이 불타 버렸다.
“서민혁, 지금 공격은 대체…….”
몸에서 불을 털어 내면서 김진우는 서민혁을 노려봤다.
“무슨 아이템을 쓴 거지?”
“그러니까, 현실 도피하지 말라고.”
서민혁이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건 아이템이 아니야.”
“그러면, 뭐인 거지?”
“뭐겠어?”
그럴 리가 없다.
이 남자는 그동안 대단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건 각종 아이템 그리고 데이모스라는 초월자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아무리 이 남자가 마도 언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해도, 그럴 리가…….
“이건 마법이야.”
“말도 안 돼……!”
김진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것을, 이미 예전에 획득해서 활용하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민혁……!”
미친 듯이 포효하면서, 김진우는 서민혁에게 달려들었다.
* * *
돌진해 오는 김진우를 보면서 서민혁은 냉정히 현재 상태를 분석했다.
‘김진우의 기초 스탯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
현재 서민혁의 스탯은 근력 +160, 체력 +140, 민첩 +140, 감각 +140, 마력 +180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진우의 스탯은 마력을 제외하면 전부 +200 이상인 것으로 보였다.
역시 그동안 남들 앞에서는 진짜 능력치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데이모스의 흑강을 이용하듯이, 김진우도 아드레스티아의 힘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어.’
고차원 지성체의 가호는 서로 동급.
아드레스티아가 부여해 주는 푸른 기운은 스피드에 특화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종합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생체마법이 있지.’
서민혁은 신속 구현, 괴력 구현 등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실프의 힘까지 빌릴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김진우와 나의 육체 능력은 호각.’
김진우와 서민혁의 칼날이 다시 한번 맞붙었다.
SS랭크 무기가 서로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겼다.
힘겨루기는… 호각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김진우가 훨씬 앞선다.’
김진우가 칼날을 회전시키면서 서민혁의 칼날을 튕겨 냈다.
이어서 김진우는 몸을 비틀면서 서민혁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동안 실전 경험을 많이 쌓았고 조성조한테 코치도 받았지만, 아직은 한참 못 미쳐.’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김진우는 분명 대단한 헌터다.
지금까지 만나온 위세호, 하야마 같은 SS급 헌터를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한테는…….
‘마법이 있다.’
파직!
전기가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민혁의 팔이 초고속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옆구리를 노리던 아론다이트를 튕겨 내 버렸다.
“어떻게……?!”
김진우가 경악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한번 파직 소리가 나면서 서민혁의 팔이 사출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전에도 했었잖아.”
아까도 서민혁은 갑자기 속도를 높여 김진우를 몰아세웠다.
“네가 빌려준 ‘마도전자기학 입문’으로 습득한 힘이야.”
“뭐, 뭐라고?”
“전자마법이라고 하지.”
전자기장을 제어하는 전자마법.
서민혁은 모하메드를 상대할 때 무기를 원격 조종하는 용도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자마법은 그런 이기어검술을 펼칠 때만 쓰는 게 아니다.
자신의 팔다리를 가속시키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마법, 전자기장 제어 3단계.’
서민혁은 다시 한번 팔을 가속시켰다.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팔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관절에 무리가 생길 수 있는 움직임이었지만, 생체마법을 습득한 서민혁한테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크윽……!”
마침내 김진우가 처음으로 피를 흘렸다.
팔을 보호하고 있던 방어구가 찢겨져 나간 것이다.
“아까 제갈환 옆에 있던 건 환영마법으로 만든 내 분신이었지. 그것도 네가 빌려준 마도서를 읽고 익힌 거야.”
“서, 서민혁……!”
“그리고 이건 정령마법.”
“……!”
샐러맨더와 실프가 자율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샐러맨더가 불꽃을 만들면 실프가 바람의 힘으로 날려 주는 것이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파이어볼에 김진우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아까 좀비들을 만든 건 사령마법이고… 또 뭐가 있더라.”
“크으윽!”
“그래, 내가 초보 때부터 스탯 이상의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건 생체마법 덕분이었지.”
서민혁은 냉담하게 말했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마법은, 내가 예전부터 쓰고 있었어.”
“……!”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김진우.
그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서민혁에 대한 분노, 질투, 그밖의 온갖 감정이 뒤섞인 표정.
그런 격렬한 감정에 반응했는지, 김진우의 몸에 두르고 있던 푸른색 기운이 갑자기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서민혁……!”
김진우가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총동원해 반격했다.
서민혁의 방어를 무너뜨리고 빈틈을 찔렀다.
아론다이트의 칼끝이 서민혁의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니……?!”
아론다이트의 칼끝은 중간에 막혔다.
실버스미스 길드가 만들어 준 S랭크 방어구 ‘드래곤스케일 슈트’.
드래곤 비늘을 기초 소재로 사용한 SS랭크 수준의 방어력을 지닌 갑옷.
여기다가 서민혁이 흑강의 기운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이건 서민혁이 일부러 김진우가 그쪽을 공격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
서민혁이 좌우에서 휘두른 간장과 막야에 의해 김진우의 양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