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서로 모든 걸 쏟아 내자 (3)
‘이걸로 끝났군.’
김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갈환이 반응하는 것보다 김진우의 움직임이 더 빨랐고, 김진우의 검은 서민혁의 오른팔을 완벽히 날려 버렸다.
서민혁이 사용하는 간장과 막야는 서로 동시에 사용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간장과 막야 하나만 써서는 SS랭크 무기 중에서도 하위권 수준이다.
그러니 한쪽 팔을 잃어버린 서민혁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
하지만 김진우는 위화감을 느꼈다.
한쪽 팔이 날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서민혁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심지어 피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
서민혁의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흘러내렸다.
사람 몸만큼의 부피를 지닌… 물이 되어서.
“이게 어떻게 된…….”
바로 그때 김진우의 측면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압!”
콰앙!
김진우가 보유한 SS랭크 장비 ‘아테나의 반지’가 자동으로 반응, 방어막을 생성했다.
모든 종류의 기습을 막아 주는 아테나의 반지 덕분에 공격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예상 이상의 충격이 느껴졌다.
“아메노하바키리?”
일본의 보물이었던 SS랭크 무기, 아메노하바키리.
그걸 제갈환이 들고 있었다.
“서민혁 헌터에게서 빌렸죠……!”
제갈환이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아론다이트와 아메노하바키리가 부딪히면서 불꽃이 튀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김진우 길드장?”
김진우는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서민혁과 제갈환을 습격하려 했는데 서민혁은 가짜였다.
서민혁 본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제갈환이 서민혁의 무기를 들고 김진우에게 달려들고 있다.
“이번에는 당신이 함정에 빠진 겁니다!”
“…….”
제갈환의 말을 듣고.
김진우는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요. 함정이란 말이죠.”
서민혁과 제갈환은 이 7번 무한서고에서 김진우가 자기들을 습격할 거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민혁은 제갈환을 김진우한테 맡기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렇다면 서민혁 헌터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기습하려는 게 아니라면, 서민혁의 노림수는 하나뿐일 것이다.
“김 팀장과 윤 팀장에게 갔겠군요.”
“날카로우시군요, 김진우 길드장!”
“그러면 부국장님의 역할은… 제 발을 묶어 놓고 시간을 끄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갈환이 빠른 속도로 공격을 펼쳤다.
지난번 7번 무한서고에서 봤을 때보다 몸놀림이 더 좋다.
“부국장님, 당신 실력으로 저를 잡아 놓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동안 책상 앞에 앉아만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그동안 개인 훈련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서고관리국 일을 하면서 감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전 전성기 때처럼 빠르면서 정교한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부국장님.”
김진우는 아론다이트로 제갈환의 공격을 막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저보다 뛰어났던 건 2년 전까지의 얘기입니다.”
“뭐라고요?”
“그동안 당신이 서고관리국에서 머무르면서 힘을 기르는 걸 게을리 했던 사이… 저는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죠.”
그렇게 말하면서 김진우는 다시 한번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까 그 힘……!”
제갈환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그게 뭡니까? 마법입니까?”
“마법? 그건 아닙니다. 마법 같은 힘이긴 합니다만.”
그렇다.
마법 같은 힘이긴 하지만 마법은 아니다.
무한서고의 진정한 콘텐츠인 마법하고는 비교할 게 못 된다.
“하지만 이걸 손에 넣으면서… 마법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죠.”
“대체 무슨……!”
“당신은 결코 대적할 수 없습니다, 부국장님.”
김진우의 몸에서는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김진우는 그 불꽃을 두른 채…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
쉬익!
김진우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민첩에 특화된 헌터였던 제갈환조차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야말로 신속(神速)의 영역.
압도적인 속도로 뻗어 나온 아론다이트에 의해, 제갈환이 들고 있던 아메노하바키리가 튕겨져 나갔다.
“이걸로 끝입니다.”
“커, 헉!”
번개처럼 꽂아 넣은 왼쪽 주먹이 제갈환의 몸통 정중앙에 꽂혔다.
초고속의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지는 제갈환.
그 앞에서 김진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고위 지성체의 힘은… 평범한 헌터가 대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갈환은 이걸로 제압했다.
이제 남은 건… 다시 돌아가서 서민혁을 제압하는 것뿐이다.
* * *
“크억!”
“으윽……!”
김태호와 윤혜원이 땅을 구르며 신음했다.
크루세이더 길드의 2인자와 3인자는 S급 헌터의 스탯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덤벼들었다. 하지만 서민혁한테는 역부족이었다.
“움직이지 마.”
“크윽!”
“아악!”
서민혁은 김태호와 윤혜원의 팔다리를 부러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들은 포션을 꺼내서 부상을 치료하지도 못할 것이다.
“서, 서민혁, 씨, 살려 주세요…….”
윤혜원이 신음하면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제, 제가 서민혁 씨 섭섭하게 해 드린 적 없잖아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럴 필요 없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예, 예전에 박준형 팀장이나 남궁준 부대표가 서민혁 씨를 노린 건 인정해요. 하지만 그 사람들 다 죽었잖아요. 지금 저희하고는 관계가 없다고요.”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지 그래?”
서민혁은 코웃음을 쳤다.
“너희가 여기서 나를 제물로 삼으려고 했던 거 알고 있어. 저 마법진에 던져 놓고 말이지.”
“오, 오해예요. 저건 그냥…….”
“그리고… 김태호.”
지목당한 김태호가 몸을 움찔했다.
“모하메드 하산에게 나를 암살해 달라고 의뢰한 거, 알고 있어.”
“뭐, 뭐라고?”
“솔직히 그때는 나도 깜짝 놀랐어. 뭐 서로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말이야.”
“그 자식이……!”
모하메드 하산이 자기를 배신한 걸 깨닫고 김태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희들은 할 말이 없을 거야.”
“윽…….”
“김태호, 윤혜원, 나는 너희들의 본성을 알고 있어. 겉으로는 모범적인 길드인 척 엄청 이미지 관리를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길드들보다 썩어 빠진 놈들이지.”
서민혁은 거침없이 말했다.
“그동안 나는 너희들 뒷조사를 했어. 조성조, 제갈환과 함께 말이야.”
“그렇다면…….”
“그래, 제갈환도 너희 음모를 알고 있었어.”
“……!”
“너희는 예전부터 제갈환을 죽이고 싶어 했지. 김태호를 제갈환 자리에 앉혀서 서고관리국을 장악하려고 말이야.”
김태호와 윤혜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크루세이더 길드 중에서도 김진우와 김태호, 윤혜원 정도만 알고 있는 기밀이다.
그걸 서민혁이 떠들어 대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김태호 그리고 윤혜원.”
서민혁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죗값을 치를 생각이 있나?”
“죗값?”
“무, 무슨 소리예요?”
“김진우와 너희들이 저지른 온갖 악행들을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비는 거야. 그리고 법적인 처벌을 받는 거지.”
서민혁의 말을 듣고 김태호와 윤혜원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너희들은 목숨을 건질 수도 있을 거야.”
“모, 목숨을……?”
“웃기지 마라!”
김태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꿈 깨시지, 서민혁!”
“그래?”
“이제 곧 대표님이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오실 거다! 그리고 너를 짓밟아 주겠지!”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김태호가 계속 소리쳤다.
“너야말로 용서를 빌게 될 거다, 서민혁!”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윤혜원은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어차피 김태호랑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이제 곧 너희는 후회하게 될 거야.”
“뭐라고?”
“지금 너희들이 한 선택을, 그리고 지금까지 김진우를 따랐던 것을 말이지.”
바로 그때.
서민혁은 강렬한 기운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너희 보스가 왔군.”
“……!”
동쪽 루트로 이어진 문에서 김진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 손에는 아론다이트를 들고 있었고… 반대편 손에는 축 늘어진 제갈환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대표님!”
“대, 대표님, 살려 주세요!”
김태호와 윤혜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들에게는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오로지 서민혁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서민혁 헌터.”
김진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감쪽같이 저를 속였군요.”
“완벽했죠?”
“네, 도대체 무슨 아이템을 사용한 겁니까?”
“영업 비밀입니다.”
이번에 서민혁은 김진우를 속이기 위해 새로운 마법을 사용했다.
김진우가 빌려준 마도서를 읽고 습득한… 환영마법을.
‘환영마법… 이름 그대로 환영을 만들어 내는 마법이지.’
서민혁은 환영마법에다가 물의 정령인 운디네까지 조합했다.
김진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서민혁이 만들어 낸 환영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김진우 길드장.”
서민혁은 제갈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본성을 숨길 생각이 없으신가 보군요.”
“본성?”
“제갈환 부국장님을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신 걸 보니까 말입니다.”
“아, 이거 말이군요.”
김진우는 태현한 표정으로 제갈환을 치켜들었다.
“갑자기 저한테 달려들어서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반격할 수밖에 없었지요.”
“방금 한 말을 취소하겠습니다. 여전히 가식적이군요.”
“가식적? 제가 말입니까?”
“됐습니다. 어쨌든 부국장님을 놔주시죠.”
“흠,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미소를 짓는 김진우를 보면서 서민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하죠.”
“어떻게 말이죠?”
“서로 교환하는 겁니다. 저는 여기 있는 김태호와 윤혜원을 넘겨줄 테니, 그쪽에서는 부국장님을 넘겨주시죠.”
“흠…….”
김진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군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진우가 제갈환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천천히 서민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
서민혁도 입을 다문 채 움직였다.
중간에 서로 마주쳤지만 김진우도 서민혁도 무기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부국장님, 정신 차리세요.”
“윽…….”
서민혁은 제갈환에게 S랭크 포션을 하나 먹였다.
그러자 제갈환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떴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오래 끌지 못했…….”
“괜찮습니다.”
미안해하는 제갈환 앞에서 서민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세팅은 끝났습니다.”
* * *
김태호와 윤혜원은 자기한테 다가오는 김진우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대, 대표님!”
“김 팀장도 윤 팀장도, 많이들 다치셨군요.”
김진우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서민혁이 강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두 분이 서민혁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김태호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서 윤혜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 대표님, 죄송하지만 포션 좀…….”
“포션?”
“팔이 부러져서, 인벤토리에서 상처 치료 포션을 꺼낼 수 없어요. 그러니 대표님이…….”
그 목소리를 듣고 김태호도 고개를 치켜들었다.
김진우가 포션으로 회복시켜 주면 다시금 싸움에 나설 수 있다.
김진우를 중심으로 김태호와 윤혜원이 보좌하며 싸운다면, 서민혁과 제갈환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해야 합니까?”
“…네?”
김태호는 귀를 의심했다.
윤혜원도 허를 찔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 팀장, 윤 팀장, 지금은 무척 중요한 순간입니다.”
“네, 그렇긴 하지만…….”
“제가 마법을 손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렸습니다. 여러분을 도와주면 어떻게 마법을 얻으란 말입니까.”
“대, 대표님, 그러니까 힘을 합쳐서 저들을 쓰러뜨려야죠. 그러니 저희부터 회복시켜 주셔야…….”
“이해력이 부족하시군요.”
김진우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분이 제물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네?”
“대표님……?”
그 순간.
김태호와 윤혜원은 자신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김진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두른 칼날이…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아, 어, 어째서……”
“대, 대표, 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팔이 부러진 김태호와 윤혜원은 목을 부여잡을 수도 없었다.
“서민혁 혹은 제갈환을 쓰려고 했는데… 여러분을 제물로 바치는 수밖에 없겠군요.”
“대, 대표, 님…….”
“저, 저는…….”
“그동안 저를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김진우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 작별이군요. 여러분의 도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아까 서민혁은 말했다.
김태호와 윤혜원은 이제 곧 자기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김진우를 따랐던 것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
“……!”
김태호는 울부짖으려 했다. 윤혜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하고 공포하는 것밖에 없었다.
서민혁이 경고했던 대로 모든 것을 후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