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103화 (103/200)

103화 누가 누구를 사냥하는가 (4)

‘김진우, 이 자식……!’

칸자키 미카도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가 서민혁을 처치해 줄 거라 기대한 게 아니었어! 오히려 그 반대였던 거야!’

김진우는 사람 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서민혁이 칸자키나 하야마에게 사냥당할 놈이 아니라는 걸 진작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김진우는 서민혁한테 우리를 던져 준 거야. 한번 사냥해 보라고!’

서민혁은 사냥감이 아니었다.

칸자키와 하야마가 사냥감이었던 것이다.

“…….”

지금 서민혁은 입을 다물고 칸자키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을 보면서 칸자키는 공포를 느꼈다.

본래 칸자키는 아무한테나 주눅들 사람이 아니다. SS급 헌터로서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행동해 왔다.

하지만 서민혁 만큼은 예외였다.

+250이 넘는 칸자키의 감각 스탯은 서민혁에게 대들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야마는 둔감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겠지만, 나는 달라!’

칸자키는 느낄 수 있다.

이 남자에게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둡고 깊으면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기운이다.

그걸 감지한 순간, 칸자키는 더 이상 서민혁에게 적대할 생각이 없어졌다.

‘이놈은… SS급 헌터조차 사냥할 수 있는 규격 외의 헌터야!’

여기서 칸자키가 자존심을 챙기면서 대립각을 세우면 바로 서민혁의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헌터들, 중국의 위세호 등과 마찬가지로.

일본 최대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것도, 일본을 대표하는 SS급 헌터라는 것도 지금은 중요치 않았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린 채 칸자키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옆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하야마의 시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죄송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서민혁의 말을 듣고 칸자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야마 씨가 트롤들에게 죽는 걸 막지 못했으니까요.”

“네……?”

“아닙니까?”

“앗, 네!”

칸자키는 다급히 말했다.

“하야마는 트롤들에게 죽었습니다! 서민혁 씨는 하야마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했지만, 트롤들의 기세가 너무 엄청난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하야마는 목숨을 잃은 것이죠!”

“오버하지 마시고.”

“아, 네.”

머쓱해져서 몸을 움츠렸다.

“저는 타케미카즈치와 서로 얼굴 붉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다, 다행이군요.”

“이미 사해방하고도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타케미카즈치하고도 적대하게 된다면… 제가 너무 싸움꾼 같지 않습니까.”

“맞습… 아, 아닙니다.”

“차라리 손을 잡으면 어떻겠습니까?”

“네? 손을… 잡자고요?”

“칸자키 씨.”

서민혁이 칸자키를 지긋이 노려봤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무슨…….”

“칸자키 씨뿐만 아니라, 김진우나 도노반 등이 전 세계적인 브레이크다운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요.”

“……!”

칸자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세계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브레이크다운이 벌어질 때에 대비해, 칸자키와 ‘동지’들은 미리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서민혁은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김진우를 통해서?

“하지만 칸자키 씨, 김진우는 당신을 제거할 생각입니다.”

“그건…….”

“타케미카즈치가 무너지면 크루세이더가 일본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

“김진우는 당신의 동지가 될 수 없습니다, 칸자키 씨.”

안 그래도 김진우를 의심하고 있던 참이다.

서민혁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서민혁은 김진우와 적대하고 있는 건가?

“한 가지 더 알려 드리죠. 김진우는 당신의 약점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네? 약점이요?”

“예를 들어…….”

그리고 서민혁이 꺼낸 얘기는… 칸자키 입장에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얘기들이었다.

* * *

‘제대로 먹혀드는군.’

칸자키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면서, 서민혁은 자기 작전이 먹혀들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몇 년 뒤 일본을 뒤흔들 얘기들이니까 말이야.’

회귀하기 전, 칸자키는 여러 스캔들이 동시에 터져서 몰락했다.

불륜 같은 사생활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살인이나 횡령 등 온갖 불법 행위 등이 드러났다.

서민혁은 그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언급해 줬을 뿐이다.

“김진우 이 자식이… 언제 그런 것까지!’

칸자키가 이를 갈았다.

그러다가 곧바로 서민혁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서, 서민혁 씨, 이 일은…….”

“걱정 마십시오. 김진우도 이런 정보를 함부로 터뜨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칸자키 씨가 김진우와 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친분을 유지하세요.”

“……!”

타케미카즈치 길드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크루세이더 길드와 적대하기 시작하면 부자연스럽다.

“그 상태로… 저에게 정보를 넘겨 주셨으면 합니다.”

“정보… 말입니까?”

“당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

칸자키는 거절할 수 없다.

치명적인 약점들을 알고 있는 건 김진우뿐만이 아니다.

서민혁도 그 약점들을 알고 있는 이상, 칸자키는 서민혁에게 거역할 수 없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뭡니까?”

“동맹의 표시로…….”

서민혁은 땅에 굴러다니고 있던 아메노하바키리를 주워 들었다.

“선물 하나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 *

브레이크 퀘스트는 공략대 진입후 18시간 만에 클리어되었다.

일본에서 온 타케미카즈치 길드에서 사망자 한 명이 나왔을 뿐, 다른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이번 브레이크 퀘스트 클리어는… 한국에서 온 헌터들의 활약이 컸습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칸자키는 이례적으로 한국 헌터들을 칭찬했다.

“특히 서민혁 씨가 없었다면 일본 헌터들도 말레이시아 헌터들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서민혁 씨의 큰 도움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기자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퀘스트 필드 돌입 직전에 한일 양국의 헌터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발생한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퀘스트가 끝나고 나니 일본 헌터들의 수장이 한국 헌터를 찬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희 일본 헌터 중에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단독으로 적진 중앙을 돌파하다가 벌어진 참사였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휘관 역할을 하던 제 책임이…….”

일본을 대표하는 SS급 헌터 중 한 명인 하야마 호쿠토의 죽음은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칸자키가 몬스터들에게 죽은 거라 발표했고, 사람들은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민혁이 최근 위세호를 죽였다는 걸 떠올리고 의구심을 느낀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 * *

“후후…….”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확인한 김진우가 웃음소리를 내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윤혜원이 깜짝 놀랐다.

“대표님, 왜 그러시죠?”

“일본의 하야마 호쿠토가 사망했다더군요.”

“네? 말레이시아에 가 있었던 거 아닌가요?”

“네, 브레이크 퀘스트 중에 몬스터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야마 정도 되는 헌터가… 자, 잠깐만요.”

윤혜원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모양이다.

“설마… 서민혁이?”

“글쎄요. 모르겠군요.”

물론, 김진우는 알고 있다.

칸자키와 하야마를 움직인 건 김진우 본인이니까.

하야마는 서민혁을 치려고 하다가 자기가 당했을 것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김진우는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서민혁은 이미 위세호를 쓰러뜨렸지만, 운이 좋아서 쓰러뜨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야마를 쓰러뜨렸다. 운만으로 SS급 헌터를 두 명이나 쓰러뜨릴 수는 없다.

‘서민혁은 진짜 사냥꾼이야. 사냥감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해치워 버리는 사냥꾼이지.’

진짜 사냥꾼.

진정한 헌터.

김진우가 그동안 계속 갈망했던 존재다.

‘칸자키는 하야마가 쓰러진 시점에서 서민혁의 무서움을 깨닫고 바로 꼬리를 내렸겠지. 나한테 항의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칸자키는 실력도 있고 머리도 좋다.

문제는 은근히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진우는 칸자키가 한 나라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윤혜원 팀장.”

“네, 대표님.”

“오늘 공략은 중지하겠습니다. 돌아가죠.”

“네? 갑자기 그러시면…….”

“김태호 팀장이 알아서 하겠죠. 저희는 다른 곳으로 갑시다.”

“어, 어디로 갈까요?”

“일단…….”

창문 밖 하늘을 내다보면서, 김진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민철 교수한테 가죠.”

* * *

“고생 많았어, 민혁아.”

서민혁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조성조가 몸소 나와 맞이해 줬다.

“지금 한국이 온통 난리야. 서민혁이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헌터의 자존심을 지켜 줬다고 말이지.”

“거창하네.”

“콧대 높은 일본 헌터들이 너한테 고개를 숙였잖아. 이건 열광할 수밖에 없지.”

실제로 공항에 도착해 보니 서민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어서 응대하기가 조금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말이야, 민혁아.”

“뭔데?”

자동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은 조성조가 목소리를 낮추며 질문했다.

“하야마 호쿠토, 혹시 네가 쓰러뜨린 거야?”

“맞아.”

“역시 그랬냐.”

조성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진우가 사주한 거야. 나를 처치해 달라고.”

“뭐, 뭣?!”

“근데 아마 나를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었을 거야. 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겠지.”

“야, 야,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정을 전혀 모르는 조성조가 당황해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김진우하고 무슨 일 있었어?”

“지난번에 나를 호텔 방에 초대하더라고. 그리고 나한테 술을 먹인 뒤 자고 가라고 하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진짜인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조성조를 보면서 서민혁은 피식 웃었다.

‘지금쯤 김진우는 칸자키가 나한테 굴복했다는 걸 눈치챘겠지. 그리고 다음 수를 생각할 거야.’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게 하나 있다.

김진우는 자기 손으로 직접 서민혁을 죽일 생각이 없다.

국내외의 헌터들을 움직여 서민혁을 공격하게 하는 일은 있어도, 본인이 직접 나서서 서민혁을 덮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서민혁에게 접근, 시치미를 떼면서 자기 동지가 되어 달라고 권유할 것이다.

김진우의 본심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김진우가 그렇게 나온다면 서민혁도 상대해 줄 생각이다.

‘계속해서 맞받아쳐 주마, 김진우.’

김진우가 내밀 수 있는 카드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모든 카드를 잃게 되면 김진우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때쯤 되면 모든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야말로 서민혁이 김진우를 쓰러뜨릴 때다.

‘그때를 대비해서, 더욱 강해져야 한다.’

김진우는 데이모스가 경고할 정도로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 김진우를 꺾기 위해서도 서민혁은 더 강해져야 한다.

“일단 러시아 출장 준비 좀 해 줘.”

“러시아?”

“지난번에 소비엣스키 무한서고 갔었잖아. 거기 한 번 더 가려고.”

“그건 금방 처리 가능한데… 왜 굳이?”

“사냥하고 싶은 몬스터가 있어서.”

지난번에 서리거인들을 사냥한 뒤, 서민혁은 다급히 도망쳤다.

멀리서 화이트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걸 봤기 때문이다.

그때는 전혀 상대가 안 되는 적이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시험해 보고 싶은 무기도 있거든.”

“시험해 보고 싶은 무기?”

“그래.”

칸자키에게 신뢰의 상징으로서 ‘선물’받은 SS랭크 무기, 아메노하바키리.

그것을 써먹기 위해 서민혁은 러시아에서 드래곤을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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