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SS급보다 높으면 뭡니까 (3)
‘이렇게 빨랐을 줄이야!’
위세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서민혁의 속도는 확실히 위세호의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유운청 등의 S급 헌터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S급 헌터 수준의 얘기.
SS급 헌터가 스탯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SS급 헌터들은 일반 S급 헌터들을 훨씬 능가하는 스탯을 지니고 있다.
위세호는 서민혁을 스피드로 찍어 누를 자신이 있었다.
“……!”
실제로 서민혁은 위세호의 기습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뿜어져 나온 검은 불꽃이 위세호를 주춤하게 했다.
‘뭐지?’
화염 공격을 하는 몬스터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화염 속성을 지닌 마법 무기도 많이 접해 봤다.
하지만 이런 검은 불꽃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경계해야 한다.’
위세호가 경계하고 있는 사이, 시커먼 불꽃은 점차 잦아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응축되었다.
서민혁의 몸 전체에.
“자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궁금합니까?”
서민혁의 몸 위를 맴돌던 검은 불꽃은 어느새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위세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이 서민혁에게 흡수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보시죠.”
그 순간, 서민혁이 땅을 박차고 움직였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막야의 모습을 확인하고 위세호도 간장을 치켜들었다.
간장과 막야, 서로 쌍이 되는 부부검이 충돌했다.
“……!”
파아앗!
주위에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간장과 막야는 서로 동급의 무기다. 그 공격력에 차이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이터스의 스탯이 더 뛰어난 위세호가 우세해야 한다.
하지만.
“윽……!”
밀려 나갔다.
근력이 +200을 넘어가는 위세호가 밀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경악하는 위세호를 향해 서민혁이 쇄도해 들어왔다.
공기를 가르며 파고들어 오는 막야.
위세호는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위세호의 민첩성 그리고 전투 기술은 이 정도 공격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윽……!”
다시 한번 밀려 나갔다.
제대로 받아칠 수 없었다.
서민혁의 근력 스탯이 +200을 상회한단 말인가?
‘아니다!’
위세호는 곧바로 부정했다.
서민혁의 근력이 그렇게 높을 리 없다.
지난번에 싸우는 걸 봤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서민혁!”
“그 질문에…….”
서민혁이 다시 한번 칼을 휘둘렀다.
그 칼날이 위세호의 소매를 스치자, 도복형 방어구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제가 대답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서민혁……!”
위세호는 눈을 치켜떴다.
서민혁은 더 이상 ‘몇 수 아래’의 헌터가 아니었다.
* * *
‘싸우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구나, 서민혁.’
데이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서민혁에게 대꾸할 여유는 없었다.
생체마법을 제어하면서… 데이모스가 부여해 준 가호도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가호로 너에게 흑강(黑剛)의 기운이 부여되었다.’
흑강.
그것이 타우로스 팰러딘이 뿜어내던 검은색 불꽃의 정식 명칭이다.
지금 흑강의 기운은 서민혁의 피부 표면을 코팅하고 있는 상태다.
마치 검기처럼.
‘흑강은 네 공격력, 방어력, 민첩성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네 마력은 전혀 소비되지 않는다. 물론, 제어는 네 스스로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건 생체마법하고는 다르다.
생체마법은 서민혁의 육체 자체에 영향을 끼쳐 능력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건 서민혁의 육체 외측에서 작용한다. 마치 강화외골격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놀랍구나.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말이다.’
데이모스의 말대로, 서민혁은 이 힘을 능숙하게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건 그동안 서민혁이 다른 마법을 활용해서 검기나 호신강기 등을 만드는 걸 여러 번 해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우로스 팰러딘처럼 검은색 불꽃을 계속해서 뿜어내는 게 아니라, 육체 표면에 압축시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서민혁이 여러 마도서를 접하면서 노력해 왔던 것들이… 전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대방의 역량은 너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계약자여, 내 힘을 부여받은 네 힘이라면 분명히…….’
‘죄송하지만 조금 조용히 해 주십시오.’
‘뭐라고?’
‘집중이 안 됩니다.’
‘…응원해 주고 있는 건데 말이다.’
데이모스가 살짝 풀죽은 것 같은 목소리를 냈는데, 기분 탓일까.
“정말로, 정말로 대단하구나, 서민혁……!”
그때 위세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네를 후계자로 삼고 싶었네!”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그동안 나는 내 뒤를 이을 놈을 찾고 있었으니까!”
지난번에 유운청에게 들었다.
사해방은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헌터를 찾고 있다고 한다.
사해방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여, SS급 헌터조차 뛰어넘는 ‘규격 외’의 헌터를 만들어 낼 계획이라는 것 같았다.
“이제야 확신이 가는군! 자네야말로 내가 찾던 그 인재야!”
“기쁘신가 보군요.”
“그렇고 말고!”
위세호의 간장이 날카롭게 파고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치명상을 입게 되는 SS급 무기다.
서민혁은 정신을 집중하며 막야로 받아쳤다.
“하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하군!”
“어째서죠?”
“그런 인재를… 내 손으로 쓰러뜨려야 하니까!”
그 순간, 위세호의 움직임이 변화했다.
직선적인 움직임에서 곡선적인 움직임으로 바뀌면서, 서민혁의 공격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건……!’
들어 본 적이 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힘으로 맞받아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 무효화시키는 기술.
중국식 헌터 전투술의 대부인 위세호다운 묘기였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반항한 놈을 살려 둘 수는 없지!”
“제멋대로이시군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서민혁은 마음속으로 위세호의 말에 동의했다.
서민혁도 위세호를 살려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한국 헌터계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숨통을 끊어야 한다.’
위세호는 서민혁의 공격을 거의 다 흘려내고 있다.
서민혁의 공격력이 더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고, 정면에서 힘과 힘을 격돌시키는 걸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술만큼은 위세호가 명백한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확신했다.
나머지는 전부 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승리에 대한 집념조차.
“……!”
앞으로 더 파고들었다.
신속 구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방어도 고려하지 않은 자세로, 최대 속도로 파고들었다.
“이 녀석……!”
푸욱!
위세호의 칼날이 서민혁의 팔뚝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깊지 않다. 서민혁이 미리 그쪽으로 마력을 집중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특정 부위에 마력을 집중시켜 방어력을 극대화시켰구나!’
데이모스의 감탄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꾸해 줄 여유는 없었다.
팔의 근육이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민혁은 막야를 휘둘렀다.
“크윽!”
촤악!
위세호의 어깨에서 가슴까지, 도복형 방어구가 찢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역시 치명상은 아니다. 서민혁은 두 번째 공격을 펼쳤다.
“소용없다!”
이번에도 위세호가 공격을 막아 냈다.
서민혁의 힘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칼날이 맞부딪친 순간.
그동안 서민혁이 아껴 두었던 또 하나의 5레벨 생체마법이 작렬했다.
‘괴력(怪力) 구현.’
5레벨에서 개방되는 생체마법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최고의 속도를 내게 해 주는 신속 구현.
다른 하나는… 순간적으로 최대의 근력을 내게 해 주는 괴력 구현.
“……!”
전신의 근육이 한계까지, 아니, 한계를 초월해서 팽창.
위세호의 간장과 충돌한 막야에 순간적으로 막대한 힘을 쏟아붓는다.
절묘한 기술로 서민혁의 힘을 흘려보내려 했던 위세호였지만, 서민혁에게서 뿜어져 나온 폭발적인 괴력에는 기술조차 의미가 없었다.
“으윽!”
결국, 위세호도 힘으로 받아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손목인지 팔뚝인지 위세호한테서 콰직 하는 소리가 났다. 아마 골절되었을 것이다.
‘해치워라, 계약자여.’
그 순간, 서민혁의 육체를 감싸고 있던 마력이 모조리 막야로 이동했다.
궁극의 공격력을 획득한 막야가 부부검 간장을 완전히 튕겨 내고, 위세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
칼날이 방어구를 찢어발기고, 그 밑에 있던 가슴을 갈랐다.
SS급 헌터 위세호가 치명상을 입은 순간이었다.
* * *
“결과적으로…….”
피비린내가 나는 밀림에서 노인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은 거군.”
“…….”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위세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마 SS급 헌터의 체력 수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고 포션도 먹을 수 없다.
이제 곧 숨을 거둘 것이다.
“자네였어.”
“…….”
“자네가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야. SS급을 넘어설 수 있는 재능… 그걸 지닌 헌터인 거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위세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좀 더 일찍 만났어야 했어. 그래서… 확실히 내 사람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의미 없는 생각입니다.”
“내 제자로… 삼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만약 일치감치 위세호의 제자가 되었다면, 서민혁은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의미 없는 상상이지만 말이다.
“내 손으로 직접… SS급을 초월한 헌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뭐지……?”
“SS급보다 높으면 뭡니까? SSS급입니까?”
“규격 외… EX급이지.”
“…EX급.”
그럴 듯했다.
무한서고의 퀘스트나 아이템에도 EX랭크가 존재하니까.
“나는… 내 욕심만으로 EX급 헌터를 육성하려 했던 게 아니다…….”
“그건 무슨 뜻이죠?”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김진우도 한국에 돌아올 테니까…….”
김진우.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걸까.
“위세호 님, 크루세이더 길드는 제 적입니다.”
“…그랬던 건가.”
“김진우한테 뭐가 있는 겁니까? 알려 주시죠.”
“내가 알려 주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하군…….”
위세호가 힘겨운 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이것만 기억해 둬라… 그놈들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인간의 영역?”
“크윽…….”
위세호는 거의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꼭… SS급을 초월한 헌터가 되어야 한다, 서민혁…….”
“…….”
“나를 이겼으니, 이미 초월했다고 봐도 되겠지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위세호는 숨을 거뒀다.
헌터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국의 거물이… 헌터가 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신인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
승리자에게는 전리품을 챙길 권한이 있다.
서민혁은 위세호 곁으로 다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을 회수했다.
[간장]
* 랭크: SS
* 공격력: 421
* 막야와 조합 시 특수 효과 발동.
# 고대의 명장이 만든 전설적인 무기의 현대적 재현품. 부부검인 막야와 조합하였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간장과 막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두 자루의 검.
이제 그 힘이 서민혁의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