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폭군을 사냥하라 (2)
오크 위저드.
오크 제너럴.
오크 저거너트.
오크 몽크.
특별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이 네 마리를 먼저 해치워야 한다.
그러니 보스인 오크 타이런트 먼저 해치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00여 마리의 오크 로열가드 좀비를 전진시키며, 서민혁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좀비들을 앞으로 내세운 뒤 각개격파할 생각이었다.
“카아아아!”
“그르르륵!
“크르르르!”
“크어어어!”
오크 간부 네 마리도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마법을 쓰는 오크 위저드였다.
“카아아!”
오크 위저드가 지팡이를 치켜든 순간,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오크 좀비 십여 마리가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었고, 오크 제너럴과 오크 저거너트, 오크 몽크가 돌격해 나머지 좀비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위저드가 가장 후방에 있어.’
앞에 있는 놈들부터 쓰러뜨리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서민혁은 그 정석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마법 공격으로 지원해 주는 위저드부터 해치워야 한다!’
서민혁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SS랭크 무기인 막야를 손에 잡은 채 크게 몸을 틀었다.
‘투척 강화!’
오크들 사이로 투척된 막야.
위저드가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그 미간에 정확히 꽂혔다.
막야의 공격력과 서민혁의 투척력이 조합되어, 골치 아픈 마법사를 일격에 처치한 것이다.
‘오크 위저드는 이걸로 처치.’
이걸로 적의 마법 공격은 봉쇄되었다.
서민혁은 즉각 다음 표적을 향해 움직였다.
‘다음은 오크 제너럴!’
칼을 휘두르며 오크 좀비들을 도륙하고 있던 오크 제너럴.
그놈한테 달려들면서 서민혁은 미리 허리에 차고 있었던 업화의 단검을 뽑았다.
“꼬맹아!”
샐러맨더의 힘을 빌려 평소보다 한층 더 강한 불꽃의 검기를 만들었다.
서민혁의 접근에 반응하여 오크 제너럴이 칼을 치켜들었지만, 서민혁은 돌격 강화 마법을 사용하면서 달려들었다.
“……!”
촤악!
붉게 코팅된 단검이 오크 제너럴의 팔뚝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오크 제너럴이 칼을 떨어뜨리며 틈을 보이는 사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그 목을 베어 버렸다.
“그르륵……!”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주저앉는 오크 제너럴.
결국, 치명상을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오크 제너럴도 처치. 다음에는…….’
서민혁이 다음으로 시선을 향한 곳.
거기서는 오크 제너럴보다 큰 몸집을 지닌 괴물이 오크 좀비들을 짓뭉개고 있었다.
“크르르르!”
엄청난 기세로 돌격하여 모든 것을 깔아뭉개는 존재.
그것이 바로 저거너트 클래스다. 다양한 클래스가 출현하는 오크 같은 종족에서는 이런 개체가 태어나기도 한다.
‘잘못 말려들면 죽겠는데.’
서민혁은 불타는 단검을 치켜들고 오크 저거너트를 도발했다.
그러자 오크 저거너트는 온몸의 근육을 부풀리면서 서민혁을 표적으로 삼아 돌진하기 시작했다.
‘투우사라도 된 기분이군.’
좀비들을 짓뭉개며 돌격해 온 오크 저거너트와 충돌하기 직전, 서민혁은 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 옆으로 피했다.
오크 저거너트는 그대로 벽에 격돌하였다. 주위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발생했고, 벽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그 잔해를 털어 내며 오크 저너거트는 다시 방향을 바꿔 돌격하려 했다.
하지만 서민혁은 이미 마법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샐러맨더와 실프의 조합…….’
이미 꺼내 놓았던 위저드 로드를 치켜들었다.
샐러맨더가 만든 거대한 화염 덩어리를, 실프가 발생시킨 폭풍에 실어서 날린다.
파이어 블래스트가 작렬하였고, 오크 저거너트는 화염의 폭풍에 휩싸였다.
‘이걸로 오크 저거너트도 무력화시켰고…….’
그 순간.
오크 좀비들 사이를 뚫고, 날렵한 오크 하나가 서민혁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큭!”
서민혁은 뒤로 밀려 나갔다.
호신강기를 전개해 둔 상태가 아니었다면 뼈 한두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날카롭고 육중한 발차기였다.
‘오크 몽크……!’
간소한 복장을 한 맨손 전투 전문의 오크.
어제 무한서고 내부에서 발견한 책에 의하면, 오크들이 섬기는 신 중에는 무기를 쓰지 말고 육체의 힘만으로 싸우라고 하는 신이 있다고 한다. 그 신을 섬기는 승려들은 저렇게 맨손 격투만 하는 오크 몽크가 된다는 것 같았다.
“……!”
오크 몽크가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격투술하고는 많이 다른 것이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나는 이렇게 재빠른 타입이 가장 상대하기 어렵단 말이지.’
서민혁은 칼을 휘두르면서 오크 몽크의 공격을 받아 냈다.
중국식 전투술의 기초 기술을 활용하여, 오크 몽크가 펼치는 연속 공격을 흘려보냈다.
‘기술도 뛰어나고, 주먹과 발이 엄청나게 단단해. 오크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걸까.’
서민혁은 계속 뒷걸음쳤다.
자기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오크 몽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날렸다.
스트레이트 펀치와 비슷한 동작이었다.
‘턱에 맞기라도 하면 정신을 잃겠는데.’
서민혁은 그걸 피해 몸을 숙였다. 하지만 오크 몽크는 그 동작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로우킥을 날렸다.
“크어어억?!”
하지만 오크 몽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 맨발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밑을 잘 봤어야지.’
방금 서민혁은 왼쪽 팔을 휘둘렀다.
그 손에는… 아까 오크 위저드에게 집어 던졌던 막야가 들려 있었다.
오크 몽크의 공격에서 도망치면서 오크 위저드의 시체 근처까지 이동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이는 척 하면서 막야를 회수한 것이다.
‘오크 몽크의 발이 아무리 단단해도, 막야로 베어 버리면 끝이지.’
발이 다치면 풋워크가 어려워진다. 이건 격투가에게 치명적이다.
서민혁은 미국식 전투술로 전환했다. 치고 빠지기를 하면서 오크 몽크에게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혔다.
‘이걸로… 마무리!’
방어 자세를 취하는 오크 몽크.
하지만 소용없었다.
서민혁은 오크 몽크의 가드를 무너뜨리고, 그 몸통에 치명상을 입혔다.
검붉은 피를 뿜으며 다운되는 오크 몽크를 뒤로하고 서민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라라라……!”
전투가 시작된 시점에서, 오크 좀비 중 절반은 오크 타이런트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 타이런트는 부하들의 호위도 받지 않으며 좀비들을 직접 상대했다.
물량으로 육탄 공세를 하는 오크 좀비들을 상대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때로는 오른손에 든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좀비를 일도양단했고, 때로는 왼쪽 주먹으로 후려쳐서 좀비를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저것이… 오크 타이런트!’
오크 저거너트의 육체에 오크 제너럴의 칼솜씨, 오크 몽크의 격투술을 동시에 갖춘 것 같은 모습.
그 위용은 확실히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라라라!”
그 많던 오크 좀비들은 이제 대여섯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오크 타이런트가 좀비 하나를 찢어발기는 사이, 서민혁은 그 배후로 접근하기로 했다.
‘오크 타이런트에게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져.’
다른 마법사 클래스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어쨌든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싸우다가 마법으로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었다.
‘위저드, 제너럴, 저거너트, 몽크를 다 합친 존재일지도 몰라.’
물론, 그 넷을 합친 것보다 더 위협적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오크 타이런트의 배후를 기습하려 했다.
하지만.
“그라라!”
포효하면서 오크 타이런트가 왼팔을 뒤로 휘둘렀다.
서민혁은 막야를 휘둘러 받아치려 했지만 그 기세가 너무 엄청났다.
오크 타이런트는 왼팔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 커다란 주먹으로 서민혁을 후려쳤다.
“윽……!”
호신강기로도 완벽하게 받아 내지 못했다.
뒤로 튕겨져 나간 서민혁은 벽에 등을 부딪쳤다.
그사이 오크 타이런트는 나머지 좀비들을 짓이긴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라라라…….”
오크 타이런트가 흉포한 미소를 지었다.
오른손에 든 대검을 치켜들면서, 서민혁을 고깃덩이로 만들기 위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렇게 여유로운 태도였기 때문에… 서민혁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암흑마법… 전개.’
막야에 새카만 기운이 깃들었다.
암흑마법의 기운을 응축시킨 칼날을 치켜들어, 오크 타이런트가 내리친 대검을 받아 냈다.
“……?!”
오크 타이런트가 깜짝 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기가 휘두른 대검을 왜소한 인간이 받아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오크 타이런트가 휘두른 대검의 칼날이… 깨져 나간 것이다.
‘근력 강화, 민첩 강화!’
서민혁은 마법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며 반격에 나섰다.
오크 타이런트는 자신의 검으로 막아 내려 했지만,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자기 칼날이 깨져 나갔다.
“하압!”
퍼걱!
마침내 오크 타이런트의 대검이 부러져 버렸다.
서민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순간 가속!’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려, 암흑마법의 검기로 코팅된 막야를 휘둘렀다.
막야의 칼날은 오크 타이런트의 왼팔에 파고들었다. 아까는 큰 대미지를 주지 못했지만, 검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상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
오크 타이런트가 숨을 삼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가속이 유지되고 있는 사이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막야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
첫 번째 공격이 오크 타이런트가 입고 있던 갑옷을 깨부쉈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이 그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순간 가속.”
서민혁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렸다.
검게 물든 막야의 칼날이 꽂히기 직전에, 오크 타이런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서민혁이 반응하는 것보다 먼저, 부러져 버린 칼을 내던진 오른손이 움직였다.
꽉 쥐어진 커다란 주먹이 서민혁의 복부를 직격했다.
“컥……!”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쓰러진 좀비 시체들 위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가볍게 부딪힌 게 아니라 정말로 격돌해 버렸다.
“윽…….”
내장을 다친 것일까.
속에서 피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10억 넘게 준 S랭크 방어구도 박살이 난 상태였다.
‘이 녀석…….’
서민혁은 오크 타이런트를 노려봤다.
방금 전, 저 폭군은 분명히 말했다.
순간 가속이라고, 카발라 진리어를 사용해서.
‘생체마법을… 쓴단 말이야?’
확실히 느꼈다.
서민혁이 평소에 느끼던 것과 똑같이 마력이 움직였다.
3레벨의 생체마법인 순간 가속이 분명했다.
‘오크 위저드처럼 공격 마법을 쓸 줄 알았더니…….’
오크 타이런트는 흉포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왼팔을 늘어뜨린 채, 오른팔만으로 자세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저 엄청난 육체로 능숙하게 격투술을 사용하면서, 생체마법으로 육체 능력까지 끌어올린다?’
서민혁이 그동안 자기보다 스펙이 뛰어난 적들하고도 잘 싸울 수 있었던 건, 생체마법으로 자기 힘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도 생체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우위성도 없어지게 된다.
‘미쳤네, 정말.’
쓴웃음이 나왔다.
설마 여기서 이런 강적이 나올 줄이야.
‘하지만…….’
서민혁은 막야를 꽉 쥐었다.
육중한 바디 블로우에 대미지를 입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입고 있던 방어구가 박살 나면서 충격을 경감시켜 줬다. 호신강기도 대미지를 줄여줬다.
전투력이 크게 저하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왼팔을 다친 저 녀석이 더 불리하지.’
해볼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입에 고인 피를 내뱉었다.
그것이 신호라고 느꼈는지, 오크 타이런트가 짧게 중얼거렸다.
“돌격 강화.”
바닥에 쓰러진 오크들의 살덩이를 짓뭉개며 폭군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