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마음껏 날뛰시면 됩니다 (2)
덜컹덜컹!
포장 상태가 안 좋은 도로를 달리면서 승합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현재 서민혁은 제갈환 등 서고관리국의 헌터 요원들과 함께 북한 땅을 이동 중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건 북한 병사였고, 서민혁 옆자리에도 북한 군부 소속의 헌터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다만, 여기서는 헌터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것 같았다.
‘무한서고 주위라서 그런지, 헌터 관련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길 주변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대부분 헌터를 상대로 장사하는 상인들이었다.
북한 헌터들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개인적으로 전리품 등을 거래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지나다녀도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냥 묵인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브레이크가 발생했으니 이 사람들도 조만간 철수하겠지.’
브레이크 현상이 해결되어 퀘스트 필드가 사라지든, 브레이크다운이 발생하여 몬스터가 뛰쳐나오든… 저 사람들이 장사를 할 수 있는 날은 며칠 안 남았다.
“저기인 것 같군요.”
제갈환이 중얼거리자, 일제히 창문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푸른빛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퀘스트 필드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저 자리에는 무한서고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
‘브레이크 현상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퀘스트 필드가 생성된 거지.’
서민혁과 제갈환 등이 들어가야 하는 곳.
미지의 전장으로 시선을 향하며, 서민혁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 * *
“이쪽입니다.”
북한 측 담당자는 과묵했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고, 때로는 눈빛과 손짓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
필요 이상의 교류를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상부에서 명령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더 편하긴 하지.’
퀘스트 필드 돌입은 북한 측에서 지정한 시간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 필드 앞에는 북한 측 헌터들도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부국장님, 북한 측 전력이 생각보다 충실하네요.”
“그러군요.”
이쪽에 떠넘기고 자기들은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헌터들을 보고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건지, 제법 많은 전력을 투입한 것 같았다.
“협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잘 분담해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귓속말의 내용을 엿들은 건지, 북한쪽 담당자가 이쪽을 째려봤다.
“돌입 시작!”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서민혁은 퀘스트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무한서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넓은 내부 공간이 펼쳐졌다.
‘원래 있던 무한서고 내부와 비슷한 넓이겠지.’
내부에는 무한서고의 잔해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무한서고 건물이 아니라 내부에 있던 구조물들의 잔해다.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폭삭 무너져 버린 도시의 풍경 같았다.
[브레이크]
* 퀘스트 랭크: S
* 퀘스트 내용: 붕괴된 무한서고에서 뛰쳐나가려 하는 몬스터를 필드 발생 168시간 이내에 전부 처치하라.
* 클리어 보상: 감각 보너스 +5 부여.
* 특별 보상: 쓰러뜨린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에 따라 크레딧 획득. 자세한 조건은 아래 참조.
# 본 퀘스트는 모든 몬스터가 처치된 시점에서 종료되며 그 시점에 필드 내부에 있는 모든 탐색자에게 보상을 지급함.
# 본 퀘스트에서 이탈하였다가 재진입했을 경우 몬스터 처치 실적은 리셋됨.
감각 보너스 +5는 반갑다. 안 그래도 러시아에서 감각 스탯은 올리지 못해 아쉬웠던 참이다.
또한 어떤 몬스터를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크레딧이 주어진다. 윈도우를 스크롤해 보니 지금 이곳에는 어떤 몬스터가 몇 마리 남아 있는지, 그놈들을 잡으면 각각 얼마씩 얻을 수 있는지 적혀 있는 표도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여러 절차를 거치느라, 7일 있었던 시간 중에서 10시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빨리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멀리서 엄청난 양의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서민혁 헌터, 알고 계시겠지만 브레이크 이후의 몬스터들은 평소보다 더 흉포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제갈환이 자신의 S랭크 무기인 달의 시미터를 뽑아 들며 말했다.
“자기들이 불리한 것 같다고 주춤하거나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몰려드는 놈들을 다 쓰러뜨려야겠군요.”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계속 사냥하다 보면 언젠가 끝난다.
브레이크 퀘스트는 특별한 기믹도 없고, 아주 심플한 퀘스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 측의 전력이 저 몬스터 웨이브를 견뎌 낼 수 있느냐는 거다.
“서민혁 헌터,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제갈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뜻대로 하시죠. 마음껏 날뛰시면 됩니다.”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서민혁은 진형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이봐!”
북한 쪽에서 다급히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것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힘을 사용해 보고 싶다.
서민혁은 그런 마음으로 북한에 왔다.
‘몬스터들만 있는 곳에서, 나 혼자서 마음껏 싸운다!’
이번에도 서민혁에게 부여된 역할은 프리롤이다.
북한이나 서고관리국에 신경 쓰는 일 없이 마음껏 싸워도 된다.
제갈환이 그렇게 허가해 줬다.
‘지금 몰려드는 적들은 전부 잔챙이… 강력한 몬스터는 더 안쪽에 있을 터.’
잔챙이는 북한 헌터들과 서고관리국에게 맡기고, 서민혁은 고득점을 노릴 수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보스 퀘스트는 예전에 클리어되었기 때문에 보스를 사냥할 일은 없겠지만, 아까 제시된 표만 봐도 이곳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우글우글했다.
‘근력 강화, 민첩 강화, 도약 강화.’
서민혁은 생체마법을 쓰면서 날아올랐다.
몰려드는 고블린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그들의 후방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업화의 단검에서 화염을 발생시켰다.
“키에엑!”
샐러맨더의 힘도 빌렸기 때문에, 그야말로 폭풍 같은 화염이 휘몰아쳤다.
근처의 고블린들을 불태워 죽이면서 서민혁은 질주하기 시작했다.
잔챙이들을 뿌리치고, 강력한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위해.
‘저기 보이는 거대한 성…….’
아마 무한서고 내부에 있던 성일 것이다.
반쯤 무너져 있는 상태지만, 저 안에는 분명 강력한 몬스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놈들이 뛰쳐나가기 전에 서민혁이 직접 찾아간다.
“저, 저거!”
“아주 미쳤구먼!”
무뚝뚝하던 북한 헌터들이 탄성을 지르는 걸 뒤로하고, 서민혁은 홀로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 * *
성 앞까지 도달한 시점에서 서민혁은 막야를 꺼내 들었다.
SS랭크 무기를 손에 쥐니 곧바로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야.’
막강한 마력을 내포하고 있는 SS랭크 무기.
그 힘은 기존 S랭크 무기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었다.
[막야]
* 랭크: SS
* 공격력: 421
* 간장과 조합 시 특수 효과 발동.
# 고대의 명장이 만든 전설적인 무기의 현대적 재현품. 부부검인 간장과 조합하였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공격력 수치가 무려 421.
일반적인 S랭크 무기의 공격력은 100에서 200 사이다.
업화의 단검은 148, 대악마의 대검은 185였다.
그러니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꼬맹아.”
이제는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는 샐러맨더가 주머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서민혁의 머리 옆에 불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다.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
“크르르르!”
“워우우우!”
내부에 들어오려는 서민혁을 막기 위해 성의 경비병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회색 털로 뒤덮인 수인(獸人)이었다.
워울프라 불리는 늑대인간들이다.
‘늑대인간이라고는 해도, 인간 같은 지능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서민혁은 한쪽 손에 막야를 든 채, 다른 손으로는 샐러맨더가 만들어 놓은 화염구를 잡았다.
‘받아라.’
콰아앙!
유사 파이어볼이 날아가며 폭발이 발생했다.
서민혁은 화염구를 연달아 던졌고, 침입자를 막으려던 워울프들은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었다.
“요새 별로 활약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나? 오늘 아주 화력 좋은데?”
샐러맨더에게 말을 걸자 ‘이 정도는 기본이죠.’라고 말하는 듯이 가슴을 폈다.
그러자 때마침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정령과의 유대감이 상승했습니다.]
[정령마법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현재 6레벨입니다.]
정령마법 6레벨!
5레벨에 오른 뒤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조건을 충족한 모양이다.
“꼬맹아.”
서민혁은 웃으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화력 더 올려 보자.”
샐러맨더가 알겠다는 듯이 팔짝 뛰었다.
그러자 새로운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그동안은 주먹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이제는 머리통 크기였다.
그러면서 소요 시간이나 마력 소비량은 큰 차이 없었다.
“좋은데?”
서민혁은 화염구를 투척했다.
아까보다 훨씬 커다란 폭발이 발생하며, 성 입구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게 말을 걸자 샐러맨더가 ‘뭐가 불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무 커서 던지기 힘들어.”
지금까지는 야구공처럼 던지면 됐는데, 이제는 농구공처럼 던져야 한다.
여러모로 불편했다.
“응?”
갑자기 샐러맨더가 팔짝팔짝 뛰더니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다시 주먹 크기의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이건…….”
서민혁은 알 수 있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내포되어 있는 불의 힘은 아까 머리통 크기였을 때하고 똑같다.
샐러맨더가 화염을 압축시켜 서민혁이 던지기 쉬운 크기로 만들어 준 것이다.
“너 꽤 유능하잖아?”
샐러맨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서민혁은 화염구를 다시 던졌다.
방금 전과 똑같은 폭발이 발생해, 남아 있던 워울프들을 전멸시켰다.
“으르르르르!”
바로 그때, 불꽃을 뚫고 달려드는 워울프가 있었다.
온몸에 갑옷을 입고 투구까지 쓴 중장비였다.
몸집도 크고 다른 워울프들보다 확연히 강해 보였다.
‘워울프 챔피언인가?’
상당히 강한 개체다.
거기다가 갑옷까지 껴입었으니 방어력도 상당할 것이다.
실제로 저 늑대인간은 유사 파이어볼의 불꽃을 뚫고 이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다.
“워르르르!”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드는 워울프.
그 손에는 서민혁의 키보다 큰 대검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그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워울프가 공격을 위해 대검을 치켜드는 순간에 맞춰서, 몸을 앞쪽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순간 가속.’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단 한 번의 교차를 끝낸 뒤, 서민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SS랭크 무기인 막야는 워울프 챔피언의 갑옷을 일격에 분쇄하고, 그 속에 있던 심장까지 터뜨려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지는 워울프를 뒤로하고, 서민혁은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본격적인 사냥을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