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65화 (65/200)

65화 자비 없는 칼부림과 불타오르는 사원 (2)

소드마스터 입문.

예전 27번 무한서고에서 입수한 마도서 아닌 마도서다.

서민혁은 이 책을 공부해서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불꽃의 검기만 만들어 왔지.’

다만 서민혁은 소드마스터처럼 자기에게 내재된 기운으로 검기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샐러맨더가 발생시킨 화염이나 업화의 단검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을 압축시키는 방법으로 검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마법적인 화염을 검에 깃들게 할 수 있다면… 다른 마법도 검에 깃들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불꽃의 검기 말고도, 새로운 마법의 검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고 서민혁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반복해 왔다.

가장 먼저 시험해 본 건 실프가 발생시키는 바람의 힘을 응축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람은 그 성질 때문에 칼날에 응축시키는 것이 어려웠고, 기껏 응축시켜 봤자 위력을 별로 상승시켜 주지 못했다. 차라리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서 날리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이것저것 시험해 보다가… 결정적인 것을 하나 발견했지.’

지난번 7번 무한서고에서 획득했고, 러시아 원정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해 본 마법.

막강한 위력을 지녔지만 발동 속도가 느리고 명중시키기 어려워 용도가 한정되어 있는 마법.

‘암흑 마법으로… 검기를 만든다.’

러시아의 소비엣스키 무한서고에서도 시험해 봤지만, 암흑 마법은 실전에서 쓰려면 애로사항이 많았다.

일단 발동 속도가 다른 마법에 비해 많이 느렸다. 손이나 지팡이를 치켜들고 상대방을 조준한 다음 몇 초가 지나야 비로소 마법이 전개되었다. 그 사이 상대방이 공격하거나 도망가면 난감해진다.

게다가 마법이 발동되어도 ‘새카만 구멍’이 느릿느릿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제 정신이 박힌 인간이나 몬스터라면 위험하다는 걸 눈치채고 피할 것이다.

서리 거인처럼 몸집이 커서 사각이 많은 적하고 싸울 때라든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표적을 향해 날릴 때라든가… 그런 한정적인 상황이 아니면 써먹기 어려웠다.

‘하지만, 검기로 활용한다면?’

서로 무기를 들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 보자.

그렇게 대치하고 있는 동안 몰래 암흑 마법을 사용해서, 바로 검기로 만들어 무기에 코팅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발동 시간이 긴 것도, 적에게 명중시키기 어려운 것도 문제가 안 된다.

‘그리고, 그 위력은…….’

지금 서민혁의 눈앞에는 박준형이 서 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장검을 들고 서민혁을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서민혁의 검은색 칼날에 고정되어 있다.

‘불꽃의 검기를 훨씬 뛰어넘지.’

서민혁은 바닥을 박차고 움직였다.

민첩 강화와 돌격 강화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일직선으로 박준형과의 거리를 좁힌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성조가 가르쳐 준 미국식 전투술의 기본기대로.

살짝 대각선으로 하여, 위에서 아래로 단검을 휘두른다.

“……!”

콰아앙!

박준형이 방어한 순간,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발생했다.

그 직후 박준형이 흠칫했다. S랭크 무기인 블러드 아밍 소드의 칼날에 흠집이 났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박준형이 경계하면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서민혁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순간 가속.’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려, 거리를 좁힌다.

장검보다는 단검이 유리한 거리로 만들어, 중국식 전투술의 기본기로 박준형의 자세를 흐트러뜨린다.

그리고, 날카로운 공격을 한 번 더.

“윽!”

촤악!

박준형이 장비하고 있던 갑옷에 커다란 상처가 났다.

저것도 분명 S랭크 방어구일 텐데, 마치 종이를 칼로 긁듯이 찢어져 버렸다.

“이런……!”

더 거리를 벌리는 박준형.

서민혁은 더 이상 쫓지 않았다. 순간 가속의 지속 시간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민혁 헌터, 당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박준형이 말했다.

“그 칼에 코팅되어 있는 시커먼 기운, 대체 뭡니까?”

“뭐일 것 같습니까?”

“불꽃의 기운을, 붉은 기운을 코팅해서 쓰는 거 아니었습니까?”

“네, 그동안 그렇게 했었죠.”

“그런데, 오늘은 왜…….”

“박준형 팀장님.”

서민혁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저는 아직 초짜입니다.”

“네?”

“그러니까 성장할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거죠.”

“……!”

박준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얼굴을 보면서 서민혁은 자기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역시 화염 대책을 하고 나온 거군.’

조성조는 박준형이 항상 맞춤 전략을 준비하는 헌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민혁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화염 공격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불꽃의 검기를 쓰는 모습은 크루세이더 길드 놈들도 많이 봤을 테니까.’

크루세이더 길드 정도라면 화염을 완전히 차단하는 장비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부팀장인 박준형이 그걸 들고 나올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 너는 쉬어라, 꼬맹아.’

주머니 속의 샐러맨더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면서 서민혁은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어쩔 겁니까?”

“뭘, 어쩌자는…….”

“계속 할 겁니까? 아니면…….”

서민혁은 짤막하게 물었다.

“무릎 꿇고 사죄할 겁니까?”

“……!”

박준형의 얼굴이 다시금 굳어졌다.

자존심이 강한 놈이다. 도발을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서민혁……!”

박준형이 스텝을 밟으면서 달려들었다.

꽤 흥분한 상태일 텐데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미국식 전투술이군.’

잽을 날리듯이 박준형이 장검을 휘둘렀다.

치고 빠지면서 서민혁을 몰아세웠다.

연속적인 공격으로 서민혁의 힘을 빼려는 속셈일 것이다.

‘저걸 제대로 받아낼 만큼의 기술은 없어.’

복싱에서 가드를 올리고 받아내듯이, 저런 공격을 방어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전투법도 있다.

하지만 현재 서민혁의 실력으로는 박준형의 현란한 공격을 끝까지 받아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서, 무너뜨린다.’

다시 한 번, 순간 가속.

급격히 증폭된 스피드를 이용해 박준형의 공격을 피하고, 그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왼팔을 움직여, 깜짝 놀라는 박준형의 오른팔을 쳐 낸다.

“……!”

다급히 반응하는 박준형.

하지만 서민혁은 단검을 휘둘러 박준형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크윽!”

촤악!

서민혁의 단검이 다시 한 번 박준형의 갑옷을 찢어발겼다.

이번에는 조금 깊었다. 그 안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치명상은 아니다.

‘한 번 더!’

푸욱!

이번에는 찌르기.

시커먼 칼날이 박준형의 어깨에 박혔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박준형을 보며, 서민혁은 다시 한 번 공격을 펼쳤다.

“으윽!”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빗나갔다.

순간 가속의 효과가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준형이 워낙 잘 피했다.

‘역시 크루세이더의 부팀장.’

같은 S급 헌터라고 해도 사마윤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사실에 감탄하면서 서민혁은 박준형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는 미국식 전투술의 정석대로 치고 빠지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 단순한 공격이 언제까지 먹힐 줄 알고……!”

박준형이 피를 흘리면서도 반격했다.

서로의 공격이 스치고 부딪혔다.

“그런 기본기 따위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박준형은 계속해서 계속 검을 휘둘렀다.

이미 박준형은 서민혁이 단조로운 기본기만으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번 팀 애쉬를 상대로 30분 동안 싸우는 모습도, 오늘 이곳에서 중간 보스들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도.

그러니까, 자신의 노련하고 화려한 기술로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자, 잠깐…….”

하지만.

박준형도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자기 몸에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기, 기본기가 아닌가?!”

그렇다.

조성조는 그냥 기본기만 가르치고 끝내지 않았다.

충분히 기본기를 가르쳐 준 뒤, 기본기처럼 보이면서 절묘하게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페이크 기술도 가르쳐 줬다.

한때 한국 최고의 헌터라 불렸던 조성조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기본기처럼 보이는 절기(絶技).

그것이 지금 서민혁의 몸에 이식되어 있는 상태였다.

‘봐라, 성조야.’

휘리릭!

서민혁의 칼날이 바람을 가르며 박준형에게 향했다.

박준형은 그걸 정확히 받아 쳐내려 했다.

‘네 기술이면 한국의 다른 S급 헌터들은 다 발라 버릴 수 있어.’

휘익!

공중에서 미세하게 방향을 바꾼 단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박준형의 칼날을 피해 버렸다.

단검은 빨려 들어가듯이 박준형의 팔뚝에 꽂혔다.

“크윽!”

전완근에 확실히 대미지가 들어갔다.

저 상태로 검을 휘두르는 건 쉽지 않다. 빨리 포션을 먹어야 한다.

물론 그런 틈은 주지 않는다.

‘돌격 강화!’

서민혁은 땅을 박찼다.

본래 돌격 강화를 쓸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돌진력을 이용해 들이받으면, 상대방의 자세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커억!”

촤악! 쉬익!

서민혁의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박준형의 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박준형은 한쪽 무릎을 꿇어 버렸고, 서민혁은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단검을 치켜들었다.

“……!”

그 순간, 박준형이 베테랑 S급 헌터다운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장검을 두 손으로 잡고 서민혁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크으윽!”

힘겨루기.

순수한 근력 수치는 박준형이 더 뛰어나다. 서민혁이 근력 강화를 쓴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방금 한쪽 팔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서민혁의 근력 강화 마법이 끊기면 완전히 밀리게 된다.

그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른다면 서민혁의 몸통이 두 조각날지도 모른다.

“마력 방출.”

“…뭐?”

하지만, 바로 그때.

칼날을 코팅하고 있던 새카만 기운이 일제히 방출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새카만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불꽃은 박준형의 블러드 아밍 소드를 파고들었다. 아니, 갉아먹었다.

“이, 이게 무슨……!”

박준형이 경악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샤아아악!

블러드 아밍 소드를 두 동강 내 버리고, 칼날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불꽃이 박준형을 덮쳤다.

S랭크 갑옷을 완전히 찢어발기고… 박준형의 몸 자체도 찢어발겼다.

“커어억!”

고통스러운 절규가 울려 퍼졌다.

* * *

전투는 종결되었다.

시커먼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칼자루를 잡고 있던 서민혁의 손바닥에 얼얼한 느낌만 남았을 뿐이다.

‘마력을 방출할 때 모습이 불꽃의 검기와 비슷하게 되었어. 내 이미지가 영향을 끼친 걸까?’

소드마스터 입문에 적혀 있던 내용에 따르면, 검기는 검사 자신의 심상(心象)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계속 불꽃의 검기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비슷한 형태로 암흑 마법의 기운을 분출시켰던 걸지도 모른다.

‘하긴 블랙홀이 칼끝에서 뿅 하고 나오면 좀 이상하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박준형을 내려다봤다.

“헉, 헉…….”

박준형은 신음하면서 축 늘어져 있었다.

이대로 가만 놔두면 죽는다. S랭크 포션으로도 치유 불가능한 부상이다.

다만 S랭크 포션을 잔뜩 먹이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고, 병원에 데려가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박준형 부팀장.”

서민혁은 인벤토리에서 S랭크 포션을 꺼냈다.

“사실 내가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말이야.”

“큭, 크윽…….”

“질문하면 대답해 줄 수 있어?”

포션 약병을 박준형의 눈앞에서 흔들면서, 서민혁은 질문을 던졌다.

“뭐부터 물어볼까… 그래.”

박준형은 대답이 없었지만, 서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미국의 SS급 헌터인 미스터 도노반하고 너희 크루세이더는 무슨 관계지?”

“윽……!”

박준형이 흠칫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서로 제휴 관계이긴 하지. 하지만 도노반하고 제휴를 맺고 있는 길드는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아. 그런데 너희는 대체 뭘 믿고 도노반이 내 스승이 되어 줄 거라 장담한 거지?”

“크윽, 윽, 너…….”

“혹시 도노반도 너희 크루세이더와 한통속인 건가?”

미래의 기억을 갖고 회귀하긴 했지만, 서민혁이 크루세이더 길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크루세이더 길드가 그냥 자기들 독단으로 한국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뭔가 더 큰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면… 사태는 서민혁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커지게 된다.

“그래, 이제야, 알겠군…….”

박준형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서민혁 넌… 처음부터, 우리 크루세이더를…….”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어.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꺼, 져…….”

침을 뱉으면서 박준형이 눈을 치켜떴다.

“그냥 죽여, 새끼야… 내가 이번에 독단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대표님을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그래.”

서민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심이 대단하시네.”

“컥!”

업화의 단검이 박준형의 목을 찔렀다.

설마 이렇게 바로 죽여 버릴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박준형은 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완전히 침묵해 버린 박준형을 보면서, 서민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박준형한테 크루세이더 길드의 비밀을 물어보는 건 어려워졌다.

‘그래도.’

하지만.

서민혁은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 왔으니 말이야.’

서민혁은 인벤토리에서 위저드 로드를 꺼냈다.

그동안 서민혁이 연습해 온 건 각종 기본기나 암흑 마법 검기뿐만이 아니니까.

‘지금 나는… 사령 마법 5레벨.’

지난번에 얻은 사령 마법의 심화 마도서.

그걸 정독하면서 습득한 마법을 쓸 때가 왔다.

‘사체 기억 재생.’

위저드 로드로 박준형의 머리를 두드린 순간.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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