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기본기 연습 좀 하려고 (1)
휙, 휘리릭, 퍽!
연이어 펼쳐진 조성조의 공격을 얻어맞고, 서민혁은 입에서 숨을 토해냈다.
잘 막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온 칼끝이 서민혁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진짜 무기였으면, 내가 죽었을 거야.’
지금 서민혁은 조성조와 가볍게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둘 다 연습용 검을 장비하고 싸우는 중이었는데, 조성조는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 통증 때문에 하체에도 힘을 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조가 펼친 3연격은 서민혁의 방어를 모조리 흐트러뜨린 뒤 정확히 왼쪽 가슴에 꽂혔다.
“흠… 대충 알겠어.”
연습용 검을 거둬들이며 조성조가 입을 열었다.
“너는 확실히 기본기가 허술해.”
“…알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니, 이 얘기는 관두지.”
발목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조성조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말했다.
“검도나 다른 무술 같은 것도 배운 적 없지?”
“정식으로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어.”
서민혁은 그 누구에게도 정식으로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에 한정하자면 조성조가 서민혁의 첫 번째 스승이다.
“너는 누군가한테 기초부터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어. 실전을 통해서 전투 기술을 향상시켜 왔지.”
“맞아.”
“그게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기본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 허술한 부분이 생겨. 이걸 보강해야 해.”
조성조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기본기는 그냥 단순하고 쉬운 움직임이어서 기본기인 게 아니야. 무기와 육체를 쓰는 방법을 골고루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련해야하는 기술들이야.”
“…….”
“평소 격투기나 무술을 하던 사람들이 헌터로 전향했을 때 유리한 게 이 부분이지. 그런 사람들은 도장에서 기본기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물론 지금 서민혁이 따로 격투기나 무술을 배울 수는 없다.
지금 서민혁이 배워야 할 건 헌터들을 위한 전투술이다.
“헌터들의 전투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알고 있지?”
“그래, 미국식하고 중국식이지.”
미국식과 중국식.
이게 세계의 양대 유파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미스터 도노반으로 유명한 서양식 전투술은, 기본적으로 복싱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워. 경쾌한 스텝으로 상대방과의 거리와 위치를 조절하면서, 치고 빠지며 상대방의 체력을 깎거나 강하게 압박해서 결정적 한 방을 날리는 거지.”
도노반은 헌터가 되기 전에 복싱 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노반이 정립한 서양식 헌터 전투술은 복싱을 연상케 하는 개념이 많다.
“한편 우리나라 대룡방 등이 많이 쓰는 중국식 전투술은… 영춘권 등 일부 중국 무술하고 비슷하지. 빠른 발놀림과 손놀림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내고 방어는 무너뜨리면서, 자기 무기에 특화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걸 중요시해.”
일반적으로 중국 무술은 서양식 격투기에 비해 실전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헌터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맨손이 아니라 각종 무기를 손에 들고 싸우고, 능력치 보너스가 있기 때문에 무협소설에 나오는 고수들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내가 이 정도 길이가 되는 검을 들고 오우거와 싸운다고 치자.”
그렇게 말하며 조성조가 연습용 검을 치켜들었다.
“미국식이라면 오우거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회를 보다가 달려들어서 검을 휘두를 거야. 치고 빠지면서 그렇게 대미지를 주겠지.”
“…….”
“그렇게 대미지를 누적시키다가, 저놈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싶으면 달려들어서 강력한 한방.”
조성조는 연습용 검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휘두르며 예시를 보여 줬다.
“한편 중국식이라면… 일단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좁히겠지. 오우거는 당연히 나를 잡아서 찢어발기려 하겠지만, 이 칼을 현란하게 휘둘러서 튕겨 내 버릴 거야.”
“…….”
“그렇게 오우거의 자세를 무너뜨리며 빈틈을 만든 뒤, 급소에 푹.”
이번에는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 사실 서로 통하는 부분도 많고 말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처음 기본기를 수련할 때는 미국식이냐 중국식이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해. 기본 동작들부터 연습해야 하거든.”
미국식과 중국식.
어느 쪽 기초를 배울 것인가.
“너는 어느 쪽으로 배웠지?”
“나는 양쪽 다 배웠어. 그리고 양쪽 다 잘하고.”
“…….”
한때 한국 최고의 S급 헌터라 불렸던 남자다운,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그럼 나도 그렇게 할게.”
“뭐?”
“양쪽 다 해 본다고.”
조성조가 말한 대로,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양쪽 다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으로 가겠다고 정해 놓지 말고, 양쪽 다 배우는 게 옳을 것이다.
스승이 될 조성조도 그렇게 했다고 하니까.
“안 될까?”
“…이 자식.”
조성조가 피식 웃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
“너는 야심이 강한 놈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조성조가 구석에 놓아 둔 파일에서 프린트를 꺼냈다.
“이거, 내가 만들어 놓은 연습 메뉴야. 이걸 매일 해.”
“…잠깐, 이걸 매일 다 하라고?”
서민혁은 조성조가 내민 프린트를 훑어보고 깜짝 놀랐다.
연습량이 어마어마했다.
“그건 미국식 기본기 훈련이야. 중국식 기본기 훈련은 뒤쪽에 있어.”
“…그러면 연습량이 두 배잖아.”
“둘 다 한다며? 그러면 두 배로 해야지.”
“이렇게 하면 너무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은데…….”
“그런 건 일반인들 얘기지. 우리는 헌터잖아.”
조성조가 씩 웃었다.
“포션 빨면서 열심히 운동하자고.”
“거참…….”
서민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여기서 주춤할 수는 없다.
“일단 네가 시키는 대로 기본기 연습, 열심히 해 볼게.”
“그래, 기본기를 제대로 몸에 익히면…….”
조성조가 씩 웃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내 전용 기술을 전수해 줄 테니까.”
* * *
미국 상공.
국내선 항공기 일등석에 앉아, 김진우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표님.”
영어로 된 페이퍼백을 읽으며 독서를 하고 있었을 때, 옆 좌석에서 김태호가 말을 걸어왔다.
“박준형한테 맡겨 둬도 괜찮겠습니까?”
“어떤 걸 얘기하는 거죠?”
“서민혁 말입니다.”
현재 서민혁 영입은 박준형이 담당하고 있는 상태다.
윤혜원이 부상으로 입원해 있고, 길드장인 김진우와 1팀장인 김태호가 출장중이니 자연히 박준형이 총책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박준형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한번 감정이 상하면 바로 급발진을 합니다.”
“…….”
“자기 마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금방 폭력적인 성격을 드러내죠.”
김태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서민혁도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박준형과 서민혁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네?”
“둘이 싸워서 살아남는 쪽을 크루세이더가 취하면 되지요.”
여전히 페이퍼백에 시선을 향한 채, 김진우가 말했다.
“박준형과 서민혁이 싸워서 박준형이 이긴다면… 서민혁은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그런 인물을 굳이 영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반대로 서민혁이 이긴다면, 서민혁은 정말로 대단한 헌터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때는 박준형의 잘못을 사과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면 되는 거죠.”
“대, 대표님.”
김진우의 말을 듣고, 김태호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박준형은 우리 크루세이더 길드 사람입니다. 충돌이 발생하면… 서민혁 입장에서는 크루세이더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충돌을 거치면서 친분이 생기는 일도 있는 법이죠.”
“대표님, 그건…….”
“그리고 제 감입니다만, 그런 일이 생겨도 서민혁 헌터의 감정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겁니다.”
“네?”
“윤혜원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
김태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군, 진우.”
“아……!”
앞쪽 좌석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백금색 머리카락을 지닌 백인이었다.
“태호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잖아.”
“김태호 팀장은 제 말을 이해 못해도 묵묵히 따라주니까 별 상관없습니다, 미스터 도노반.”
미스터 도노반.
미국을 대표하는 SS급 헌터.
그가 김진우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얘기하던 그… 서민혁이라고 했나? 그 헌터가 요즘 네 관심사인가 보지?”
“네, 그렇습니다.”
김진우가 페이퍼백을 덮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우리들의 동료가 될 수도 있는 남자입니다. 되도록 제 곁에 두고 육성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 * *
하루 일과를 마치니,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너무 늦은 시간에 시작해서 그래. 다음에는 아침부터 시작하자고.”
서민혁은 조성조와 대화를 나누며 사무실 불을 껐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퇴근시킨 상태였다.
“민혁아, 이대로 집에 갈 거야?”
“뭔데?”
“우리 한 잔만 하고 가자.”
“…….”
회귀하기 전에도 조성조는 기분이 좋으면 이런 제안을 하곤 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똑같은 것 같아서 서민혁은 피식 웃었다.
“넌 평소 어디서 마시는데?”
“혼자 마실 때는 저기 보이는 호텔 바.”
조성조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호텔을 가리켰다.
“그건 좀 그렇고, 이 주변에서 마시자.”
“근처 호프집이라도 가자고?”
“아니.”
서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청계천 옆에서 마시자.”
“그것도 좋지.”
그런 대화를 나누며 서민혁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왜 안 눌러?”
“성조야.”
“뭔데?”
“오늘 우리 사무실에 다른 헌터들 오기로 되어 있었어?”
“무슨 소리야?”
“그래, 이 시간에 다른 헌터들이 찾아올 리 없지.”
서민혁은 엘리베이터가 10층으로 올라오고 있는 걸 보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엘리베이터와 함께… 다섯 개의 마력 반응도 올라오고 있었다.
‘일반인들보다 살짝 강한 마력 반응… 헌터들이야.’
다른 층으로 가는 놈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 불이 꺼진 시간에 맞춰서 올라오는 걸 보면, 이 10층이 목표일 것이다.
‘뭐하는 놈들일까.’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설마 박준형이 벌써부터 보복을 시작한 건가?’
헌터들은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서민혁과 조성조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이유로 보복하려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다만 느껴지는 마력 반응을 보니 박준형 본인은 없는 것 같았다.
‘경고인가? 아니, 탐색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쪽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면, 칼을 든 팔을 꺾어 주면 된다.
“성조야. 잠깐 물러서 있어.”
“왜 그러는데?”
조성조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그런 조성조를 사무실 쪽으로 밀치면서, 서민혁은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기본기 연습 좀 하려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흉기를 손에 든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