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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헌터가 된 해석학자-52화 (52/200)

52화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4)

파팟! 쿠쿵! 콰콰쾅!

아크데몬의 몸에 도합 아홉 개의 화염검이 쏟아졌다.

“……!”

아크데몬은 이미 한쪽 손에 대미지를 입은 상태.

멀쩡한 손으로 대검을 들고 화염검을 받아치려 했지만, 그가 튕겨낼 수 있었던 건 두 자루뿐이었다.

나머지 일곱 개의 화염검이 그의 몸을 덮쳤다. 베고 꿰뚫고 터뜨렸다.

“크아아아!”

아크데몬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포효.

하지만 분노가 더 강하다. 아직 무력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접근해서.’

이미 서민혁은 아크데몬의 측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크데몬이 대검을 휘둘러 서민혁을 짓뭉개려 했다. 하지만 화염검이 꽂혀 있어 본래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오오오!”

쿠쿵! 쾅!

방금 전에 아크데몬이 튕겨냈던 두 자루의 화염검.

그것이 실프의 바람을 타고 다시 한 번 아크데몬의 배후를 덮쳤다.

우측 등과 좌측 어깨에 화염검이 꽂히는 걸 확인하고, 서민혁은 마지막 마력을 쥐어짰다.

‘돌격 강화, 순간 가속……!’

막대한 마력이 반응하여 서민혁의 육체 능력을 끌어올린다.

이 힘으로 서민혁이 휘두르는 것은, 아크데몬을 상대로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아껴두었던 무기.

천지원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았던 ‘성기사의 성검’.

성기사의 보검보다 강력한 S랭크 무기에, 서민혁은 화염의 검기를 담았다.

“인간이여……!”

아크데몬이 처음으로 서민혁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판데모니움 혼돈어였다.

하지만 서민혁에게 대꾸해 줄 여력은 없었다.

그저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찰 뿐이다.

푸욱!

검기를 두른 성기사의 성검이 아크데몬의 가슴을 뚫었고.

콰콰쾅!

화염이 폭발하면서, 아크데몬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 * *

‘해치운 건가?’

숨을 헐떡이면서 서민혁은 거리를 벌렸다.

최근 마력 스탯이 +90으로 올랐고, 대마도사의 광휘를 습득하면서 마력의 효율도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민혁은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이래도 죽지 않는다면 좀 가망이 없는데.’

연속된 공격 때문에 샐러맨더와 실프도 지친 것 같았다.

아크데몬이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멀쩡히 싸울 수 있는 존재라면 서민혁에게 승산은 없다.

하지만 지금 아크데몬은 쓰러지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다.

“인간이여.”

바로 그때.

아크데몬이 판데모니움 혼돈어로 서민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선한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구나. 마법을 가르친 스승이 누구냐.”

“스승……?”

서민혁은 허를 찔렸다.

“스승… 없는데.”

“없다고? 독학이란 말인가?”

“책을 보고… 공부했어.”

판데모니움 혼돈어는 익숙하지 않아서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없었다.

“놀랍군. 스승도 없이 마도서만 읽었을 뿐인데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것인가. 전설 속에 나오는 대마도사들을 떠올리게 되는군.”

“대마도사?”

“네 창의적인 마법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아크데몬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위엄이 있었다.

“내 이름은 코스토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서민혁.”

“서민혁, 신비한 분위기의 이름이군.”

한국 사람의 이름은 그들에게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너의 승리다, 서민혁.”

“……!”

아크데몬의 육체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로 만든 성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몸이 가루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의미 없는 살육에 따분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마지막에 너처럼 훌륭한 마법사와 만난 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잠깐만, 코스토스.”

서민혁은 아크데몬의 이름을 불렀다.

말이 통한다면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크루세이더 길드가 어떤 식으로 정보를 넘겼는지, 이 무한서고는 왜 존재하는지, 온갖 것들을.

하지만 서민혁은 판데모니움 혼돈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했고, 시간도 부족했다.

“영광스러운 길을 걸어라, 서민혁이여. 무한서고에는 너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그걸로 끝이었다.

코스토스라는 이름을 지닌 아크데몬은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대악마의 유희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100억 크레딧을 획득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대악마의 대검’을 획득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봉인 마도서를 획득합니다.]

‘결국 특별 보상은 얻지도 못했군.’

아크데몬을 5분 안에 잡으면 ‘대악마의 뿔’이 특별 보상으로 주어진다고 되어 있었다.

저런 거물을 5분 안에 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SS급 헌터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본래 서민혁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마법이든 장비든 뭐 하나만 부족했어도 서민혁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전리품을 회수했다.

[대악마의 대검]

* 랭크: S

* 공격력: 185

# 아크데몬을 위해 준비된 대형검.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설명은 간결하다. 하지만 공격력 수치가 무지막지하게 높다.

‘아까 검이 저절로 날아다니던 건 뭐였지?’

이 대검은 마치 무협소설에 나오는 이기어검술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며 제갈환과 서민혁을 공격했다.

하지만 관련된 설명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무기 자체의 기능이 아니었다는 건가.

‘아크데몬이 쓰는 마법이었던 건가?’

의문을 느끼면서 서민혁은 대악마의 대검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그리고 마도서도 바로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용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저 멀리서 제갈환이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국장님.”

서민혁은 제갈환에게 향했다.

코스토스와 전투를 하는 사이, 제갈환은 S랭크 포션을 복용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상처가 컸기 때문에 10개 이상 사용했을 것이다.

“좀 어떠십니까?”

“상처는 다 아물었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몸 상태가 회복되려면 일주일 이상 휴식을 취해야겠죠.”

“그렇군요.”

“그런데 서민혁 헌터…… 지금 아크데몬과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아뇨.”

서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어랑 비슷한 말투로 떠들어대서 저도 러시아어로 말해 봤는데, 결국 안 통하더라고요.”

“러시아어를 할 줄 아시는 겁니까?”

“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회귀하기 전, 마도 언어 해독의 단서를 얻기 위해 지구상의 주요 언어들은 다 마스터했다.

“그렇군요. 어쨌든 정말 대단하십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방금 펼친 그 공격들은 대체…….”

“이 지팡이의 효과입니다.”

서민혁은 일단 선수를 쳤다.

“아, 그 지팡이… 유럽 쪽에 화염을 발사하는 SS랭크 장비를 쓰는 헌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종류인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것도 SS랭크겠군요.”

제갈환이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도마뱀이랑 요정도 특이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는데 맞습니까?”

“걔네들도 비슷합니다. 어쩌다보니 제 손에 들어왔지요.”

“그랬군요. 그래서…….”

제갈환은 이제 서민혁이 ‘템빨’로 강해진 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런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숨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의 비밀을 아무한테나 떠들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보고 있었다면 입단속을 하기 어려웠을 테고, 큰 소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헌터 업계 전체의 화제가 되면 서민혁의 진짜 힘을 파헤치려 하는 사람도 나온다. 그러면 이게 템빨이 아니라 서민혁 자신의 힘이라는 것도 금방 들통 나게 된다.

하지만 제갈환 한 사람이라면… 최대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국장님, 한 가지 더.”

“왜 그러시죠?”

“특별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보스가 쓰러지면서 슬슬 이 결계도 해제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갈환에게 귀띔해 줘야 하는 것이 있었다.

* * *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그렇군요.”

김진우는 윤혜원과 대화를 나누며 대기하고 있었다.

“제갈환 씨와 서민혁 씨, 황미연 씨가 꽤 분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계 안으로 들어간 헌터들이 전멸하여 보스 퀘스트가 일단락되면 잠시 공간이 일그러졌다가 원상 복귀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미 수십 분이 지났는데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길드 연합은 주위에 있는 데몬들을 완전히 괴멸시킨 상태였다.

“설마 보스를 잡아 버리는 건 아니겠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죠.”

“그렇겠죠?”

“지금까지 발생한 결계형 보스 퀘스트는 전부 S+랭크 이상이었죠. S+랭크 보스 퀘스트는 S급 헌터 4명 이상을 투입하여 공략하는 게 세계적인 상식입니다.”

“S급 헌터인 제갈환 부국장만으로는 부족하겠죠. 서민혁 헌터도 있긴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이건 서민혁을 주목하고 있었던 김진우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7번 무한서고 공략 작전에서 크루세이더의 목표는 제갈환을 죽이는 것이었으니까.

유일한 S급 헌터인 제갈환이 죽으면 서고관리국은 국내 헌터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크루세이더의 김태호 팀장을 꽂아주면 서고관리국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다.

이건 크루세이더 길드의 한국 장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정말로 아깝군요.”

김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팔을 치켜들었다.

마지막 발악으로 덤벼들던 데몬의 머리를 분쇄하면서, 김진우는 계속 말했다.

“꼭 손에 넣고 싶었던 인재였는데 말입니다.”

바로 그때.

전방에서 공간의 일그러짐이 발생했다.

“다 끝났나 보군요. 다른 길드 사람들을 소집해 주세요.”

“네, 길드장님.”

지시를 내린 뒤, 김진우는 손에 묻은 데몬의 체액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하지만 김진우는 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멀쩡한 모습의 서민혁

안경이 깨져 있는 제갈환.

그리고 그들에게 부축 받고 있는 황미연.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를… 잡았다고?”

결계형 보스 퀘스트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어? 어떻게……!”

“세상에! 말도 안 돼!”

“그 인원으로 보스를 잡은 거야?!”

주위에 있던 다른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부길드장님!”

“미연 언니!”

남아 있던 대룡방 길드의 헌터들이 달려오자, 제갈환이 황미연을 그들에게 넘겨줬다.

“포션으로 치료는 했지만, 부상을 입은 지 좀 시간이 지나서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른 헌터들은 전부 사망했습니다. 생존자는 저희뿐입니다.”

“……!”

“제갈환!”

그때 아수라의 허태웅이 목소리를 높이며 제갈환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지?”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보스를 쓰러뜨렸습니다.”

“결계형 보스 퀘스트는 최소 S+랭크 이상이야! 어떻게 너희들만으로 보스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희들이 쓰러뜨린 게 아니지요.”

“뭐라고?’

제갈환이 서민혁에게 시선을 향했다.

“서민혁 헌터 혼자서 쓰러뜨렸습니다.”

“뭐, 뭐라고?”

“서민혁 혼자서?!”

주위 헌터들이 동요했다.

스탯상으로는 A급에 불과하다는 서민혁이 S+랭크의 보스를 쓰러뜨렸다?

“서, 서민혁, 부국장님 얘기가 사실이야?”

이미 북쪽 루트에서 서민혁의 전투력을 봤던 천지원조차,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민혁을 쳐다봤다.

“부국장님이 과장하시는 겁니다. 제가 막타를 친 건 사실이지만, 부국장님과 다른 헌터님들이 목숨 걸고 싸워 준 덕분에 가능했던 겁니다.”

“마, 막타를 친 건 사실이고?”

“그건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서민혁이 고개를 돌렸다.

서민혁의 시선이 향한 건… 김진우였다.

“김진우 길드장님, 보스 퀘스트의 보상은 저와 제갈환 부국장, 황미연 부길드장이 나눠 갖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저희는 보스 퀘스트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으니.”

김진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강한 보스가 나왔을 텐데… 용케도 클리어하셨군요.”

“저희가 클리어해서 불만이신지?”

“그럴 리가요. 오히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한 뒤, 김진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크루세이더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여러분들만 보스 퀘스트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긴 크루세이더가 함께 들어갔다면 희생이 더 적었겠죠.”

말에 뼈가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더 이상 김진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이 서민혁에게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

“대, 대표님.”

옆에서 윤혜원이 귓속말을 했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인데요? 이렇게 되면 저희는…….”

“참으로 흥미롭군요.”

“네?”

윤혜원이 흠칫 놀랐다.

김진우가 눈을 빛내면서 서민혁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헌터들이 서민혁을 둘러싸고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은 희생자가 너무 많았다면서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윤 팀장.”

“네, 대표님.”

“저 남자를 영입해야 합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도록 하세요.”

평소의 포커페이스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김진우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민혁 헌터는 우리 크루세이더의 미래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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