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3)
[대악마의 유희]
* 퀘스트 랭크: S+
* 퀘스트 내용: 침입자를 유린하려 하는 아크데몬 ‘코스토스’를 처치하라.
* 클리어 보상: 100억 크레딧, ‘대악마의 대검’, 봉인 마도서 획득.
* 특별 보상: 5분 이내에 아크데몬 ‘코스토스’를 처치할 경우 ‘대악마의 뿔’ 획득.
# 본 퀘스트는 탐색자에 의해 클리어된 시점에서 소멸됨.
# 본 퀘스트는 퀘스트 진행 중에 탐색자가 퀘스트 구역을 이탈하는 행위, 다른 탐색자가 퀘스트 구역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음.
윈도우에 표시된 보스 퀘스트 내용을 보니 압박감이 느껴졌다.
‘S+랭크 퀘스트라니.’
최고 난이도인 SS랭크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적인 S랭크 퀘스트와는 차별화된 난이도인 게 S+랭크 퀘스트다.
S+랭크 퀘스트는 S급 헌터를 4명 이상 투입해서 공략한다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었다.
‘게다가 클리어 보상이 100억?’
보상으로 100억 크레딧이나 주는 건 처음이었다.
다만 이게 합당한 금액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클리어 보상이 보스의 난이도에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1억 짜리 몬스터 100마리를 잡는 게 더 쉬울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업화의 단검을 허리띠에 꽂았다.
그리고 그 대신 인벤토리에서 서머너 로드를 꺼냈다.
‘남들 앞에서 지팡이로 마법 쓰는 건 피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제갈환과 황미연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게 더 먼저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까득 이를 갈았다.
* * *
“아악!”
“부길드장님!”
아크데몬의 공격을 받고 나가떨어지는 황미연을 보면서 제갈환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황미연을 부축하거나 치료해 줄 여유는 없었다.
곧바로 아크데몬의 공격이 제갈환에게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크윽!”
콰쾅!
제갈환이 있던 자리에 번개가 쏟아졌다.
그래도 가까스로 피할 수는 있었다.
‘번개를 발생시키기 직전, 아크데몬의 눈에서 빛이 번쩍해! 그걸 보면서 피한다면……!’
번개는 빛의 속도로 떨어진다.
하지만 아크데몬이 표적을 조준하고 발사하는 속도는 그 정도가 아니다.
덕분에 제갈환은 아슬아슬하게 아크데몬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번개 마법이 이 녀석의 주무기인가?’
제갈환은 살짝 승산이 있다고 느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아크데몬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이대로 접근해서 허를 찌르면 아크데몬에게 대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서민혁 헌터가 뭘 준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서민혁은 후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특수한 장비를 꺼내서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같이 싸우자고 설득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혹시 공포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걸까.
‘선배 헌터로서, 서고관리국의 공무원으로서… 내가 해야 해!’
서민혁을 이번 작전에 끌어들인 건 제갈환이다.
그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제갈환은 목숨을 걸고 저 아크데몬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윽……!”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제갈환의 어깨를 스쳤다.
S랭크 방어구인 ‘불멸의 정장’ 덕분에 온몸이 감전되는 일은 없었지만,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버텨야 돼!’
포션을 꺼낼 시간도 없었다.
제갈환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아크데몬에게 접근했다.
아크데몬은 계속해서 번개를 떨어뜨리며 제갈환을 공격했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웬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상태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것과 맞춰, 제갈환은 땅을 굴렀다.
‘지금이다!’
마치 공격에 맞은 것처럼 땅을 구른 건 의도적이었다.
아크데몬을 방심시키면서, 인벤토리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 위한 것이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면서 제갈환은 꺼내든 물건을 전력으로 투척했다.
“……!”
그것은 무한서고에서 종종 발견되는,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템이었다.
제갈환이 던진 것은 일종의 섬광탄이다. 사용하면 강렬한 섬광이 발생해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빛은 아니다. 신성력이 담긴 빛이기 때문에 언데드 몬스터 같은 놈들은 이 빛에 노출만 되어도 녹아내린다.
구슬 같은 형태를 지닌 이 ‘심판의 보주’야말로, 7번 무한서고 공략을 위해 서고관리국에서 특별히 준비한 아이템이었다.
‘물론 아크데몬이 이것 하나로 죽지는 않을 터……!’
제갈환은 눈을 감은 채 달려 나갔다.
아크데몬이 이 빛에 주춤한 사이, 신속하게 접근하여 S랭크 무기인 ‘달의 시미터’로 목을 쳐낼 생각이었다.
이것도 신성력을 지닌 무기이기 때문에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
눈을 감은 채 소리 없이 도약했다.
아크데몬이 방어 자세를 취하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제갈환의 공격은 확실히 아크데몬에게 닿을 수…….
“커헉!”
닿을 수 없었다.
배후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제갈환의 등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아, 윽……?”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땅에 쓰러지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칼……?’
제갈환의 등에 꽂혔던 물건이 저절로 뽑혀서 하늘을 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2미터에 달하는 대검이었다.
그런데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더니 아크데몬의 손으로 향했다.
‘칼이… 저절로 움직여?’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이기어검술을 떠올렸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크데몬은 번개를 떨어뜨리는 마법 말고도 저 대검을 사용한 공격도 하는 것 같았다.
‘저렇게 자율적으로 날아다니는 검이라면… 내 기습 같은 건 아무 의미 없었던 거군…….’
제갈환은 패배감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아크데몬이 대검을 치켜들면서 쿵쿵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자기 손으로 제갈환의 목을 치려는 것 같았다.
‘이걸로 끝인가…….’
체념하면서 제갈환은 시선을 돌렸다.
서민혁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곧바로 제갈환은 숨을 삼켰다.
“서민혁 헌터……?”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저런 걸 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서민혁은 마치 마법사가 들고 있을 듯한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딱히 게임 속 마법사처럼 공격 마법을 날리려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배후에는… 열 자루의 불꽃의 검이 전개되어 있었다.
그동안 서민혁이 휘두르던 업화의 단검보다 훨씬 더 장대하고, 신성해 보이는 화염검을.
* * *
그동안 아크데몬은 이쪽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제갈환의 재빠른 움직임에 대응하느라 바빠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굳이 방해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
서민혁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비로소 아크데몬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눈이 번쩍하면서 번개가 쏟아졌다.
콰콰쾅!
하지만 서민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이미 제갈환이 피하는 방법을 다 보여 줬기 때문에, 그걸 흉내내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실프가 공중에서 번개가 떨어지려 하는 기척까지 감지해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제갈환보다 민첩성이 떨어지는 서민혁도 번개 마법을 피할 수 있었다.
“…….”
아크데몬의 표정이 살짝 변화했다.
불쾌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재미있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크데몬은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하늘로 던졌다.
대검은 하늘에서 복잡한 궤도를 그리면서 서민혁 쪽으로 쇄도해 왔다.
서민혁의 정면을 노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직각으로 방향 전환해서 좌측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민혁은 아크데몬의 번개 공격을 경계하기 위해 정면만을 보고 있었다.
“서민혁 헌터!”
제갈환의 절규가 들렸다.
하지만 대검이 서민혁의 몸에 꽂히는 일은 없었다.
파앙!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대검이 공중에서 튕겨져 나갔다.
예전에 50번 무한서고에서 리저드맨 어보미네이션을 쓰러뜨리고 얻었던 S랭크 장비… ‘아리엘 블레스’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바람의 자연력을 응축한 방벽으로 원거리 공격을 자동 방어하는 효과… 정령 마법의 레벨이 오르면서 그 능력을 더 확실하게 파악하게 되었지.’
대검이 이리 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서민혁을 공격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낼 뿐 전부 다 튕겨져 나갔다.
아리엘 블레스는 최대 여섯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 칼 한 자루가 아무리 공격해 들어와 봤자 결코 뚫지 못한다.
‘정말이지 사기 장비야.’
칠악(七惡) 중 한 명인 SS급 헌터 케빈 레이 한센이 즐겨 쓰던 장비.
이게 있는 이상, 서민혁은 원거리 물리 공격을 완벽히 막아낼 수 있다.
“……?”
아크데몬은 서민혁이 어떻게 자기 공격을 막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공격이 계속 먹히지 않자 답답했는지 자기 칼을 다시 회수했다.
그리고 대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이 안 먹히니까, 근거리 공격으로 승부를 낼 생각이겠지.’
사실 아크데몬의 육체 능력은 평균적인 S급 헌터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
아무리 서민혁이 생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접근전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서민혁은 마력기관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했다.
그리고 지금 등 뒤에서 떠다니고 있는 화염의 검에 의식을 집중했다.
“……!”
아크데몬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위압감을 발산하며, 땅이 흔들릴 정도로 거칠게.
그 돌격을 보면서 서민혁은 딱히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사출.”
그저 짧게 읊조렸을 뿐이다.
그 순간, 미리 실프가 응축시켜 놨던 바람의 자연력이 해방되었다.
파아아앙!
굉음과 함께 사출되는 화염의 검.
하지만 아크데몬은 평범한 잔챙이들하고는 다르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검을 보고서도 맨손으로 받아치려 했다.
마치 날벌레를 공중에서 후려치는 것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그렇게는 안 되지.’
콰콰쾅!
폭음이 들렸고, 아크데몬이 제 자리에서 움찔했다.
허를 찔린 표정으로 아크데몬이 자기 손바닥을 확인했다.
지금 아크데몬의 손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화염 마법… 플레임 스피어 같은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건 그냥 샐러맨더의 화염을 응축한 게 아니다.
그동안 화산의 단검이나 업화의 단검에 검기를 둘렀던 것처럼, 실체검에다가 화염을 응축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기반이 된 건 A랭크 무기인 성자의 보검… 예전에 대룡방의 원무정과 싸웠을 때 그 부하들이 들고 왔던 신성 속성 무기들이다.
조성조에게 전부 처분해 달라고 부탁했었지만, 이걸 한꺼번에 처분하면 의심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잠시 보류했었다.
그 이후 서민혁도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7번 무한서고로 데몬 사냥을 나간다고 해서 전부 들고 온 것이다.
‘그러니까, 신성 속성과 화염 속성의 조화라는 거야.’
평범하게 성자의 보검을 투척해 봤자 아크데몬에게는 별다른 대미지를 주지 못한다.
샐러맨더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 파이어 블래스트를 날려도 아크데몬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조합하여, 실프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사출한다면… 아크데몬이 주춤할 정도의 대미지를 줄 수 있다.
‘고작 한 방 먹이는 걸로는 부족하겠지만… 열 번 연속으로 먹여 주면 어떻게 될까.’
아크데몬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대검을 치켜들고, 땅을 박차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민혁이 보기에는 너무 느렸다.
‘내 칼들이 더 빠르니까.’
나머지 아홉 개의 화염검이 일제히 사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