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작전에 참가해주셨으면 합니다 (2)
“저는 특정 길드와 함께 할 생각이 없습니다.”
서민혁이 입에 담은 말은, 각 대표들의 말을 완전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아, 아니, 서민혁…… 길드에 들어오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일시적으로 같이 공략하자는 얘기야. 물론 그러다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그냥…….”
“조용히 좀 하세요, 천 팀장님.”
천지원의 말을 가로막으며 황미연이 말했다.
“서민혁 씨가 특정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길드장도 그 부분을 최대한 존중하라고 지시를 내리셨고요.”
“…….”
“특정 길드에 협력하는 것에 서민혁 씨가 부담을 느끼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방금 북두성 길드처럼 대놓고 눈치 주는 길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내가 뭘…….”
천지원이 억울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서민혁 씨, 때로는 다른 헌터들과 협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솔로 플레이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서민혁은 한쪽 손을 들면서 말했다.
“오해 마셨으면 합니다. 다른 길드랑 어울리는 게 싫다는 건 아니니까요.”
“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를 전제로 하고 작전을 세우지 말아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
의아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민혁은 제갈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일단, 부국장님.”
“네, 서민혁 헌터.”
“이번 작전은 제가 S급 헌터로서 다른 길드와 협력하는 걸 전제로 세워졌습니다.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민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S급 헌터가 아닙니다.”
“네?”
“저는 A급 헌터입니다. 근체민감 합계 270에 불과합니다.”
“……!”
제갈환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합계 270이라고요?”
“나보다 낮잖아?”
“어떻게 그런…….”
서민혁의 폭탄 발언에 다들 당황해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서민혁 헌터. 그러면 S급 헌터인 사마윤을 어떻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조사받을 때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니 그래도…….”
“아무래도 저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 것 같군요.”
서민혁은 커피를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명의 A급 헌터로서라면 참가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존재를 고려하면서 작전을 세우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서민혁 헌터…….”
“어떻게 할지 정해지면 연락 주시죠.”
그렇게 말을 남긴 뒤, 서민혁은 곧바로 라운지에서 나갔다.
뒤에서 제갈환이 불러댔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 * *
라운지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S급이 아니라고? 정말로?”
“사실일까요? 믿기 어렵네요.”
“근체민감 합계 270으로 사마윤을 잡아? 말이 안 되는데.”
천지원과 황미연, 허태웅이 각자 의견을 냈다.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A급은 아닐 것 같았는데.”
“저희 할아버지도 S급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어요.”
“그래,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때 침묵을 지키던 김진우가 입을 열었다.
“저는 믿고 싶군요.”
“뭐?”
“네?”
“김진우, 그게 무슨 소리지?”
김진우는 커피잔을 손에 든 채 미소를 지었다.
“굳이 거짓말을 해서 어쩌겠습니까?”
“그건…….”
“서민혁 헌터 입장에서는 자기 실력을 숨겨서 이득 될 게 없습니다.”
김진우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었다.
자기 스테이터스를 축소신고해 봤자 남들한테 얕잡아 보일뿐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대우받기 위해 부풀리는 경우는 있어도, 실제보다 낮게 얘기하고 다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일에 참가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마지막에 한 얘기를 들으면 서민혁 헌터는 이번 일에 참가할 생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자기를 중심으로 작전을 세우는 건 부담스럽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냥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개 헌터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게 해달라는 거죠.”
“그게 싫으면 그냥 이번 작전에서 빼달라는 건가요?”
“그렇지요.”
김진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오히려 저는 더 납득이 되었습니다.”
“네?”
“서민혁 헌터는 아직 경력이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S급의 스탯을 획득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죠.”
“그건…… 그렇죠.”
“만약 서민혁 헌터가 정말로 S급의 스탯을 갖고 있었다면, 저는 경력을 속이고 있다고 의심했을 겁니다.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판단했겠죠.”
다들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A급이었다고? 이것 참, 내가 아주 큰 착각을 했네.”
“그러게요. 분명 S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그래, 조금 실망이야.”
“어라, 다들 저하고는 반대로 생각하시나 보군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김진우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A급 헌터인 게 뭐가 어떻습니까?”
“네? 그야……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다는 얘기잖아요.”
“발상을 전환하시죠, 황미연 부길드장.”
김진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민혁 헌터는 A급의 스탯인 상태에서도…… 저렇게나 강한 겁니다.”
“……!”
김진우의 말을 듣고, 다들 흠칫했다.
자신들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서민혁 헌터가 왜 저렇게 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기초 육체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났던 건지, 우리가 잘 모르는 엄청난 무기나 아이템을 갖고 있는 건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김진우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서민혁 헌터가 더 많은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S급의 스탯을 획득하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요?”
“……!”
“두렵군요. 동시에 기대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진우는 제갈환에게 시선을 향했다.
“부국장님, 서민혁 헌터는 한국 헌터계의 큰 자산입니다.”
“길드장님…….”
“한국 헌터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서민혁 헌터를 이번 작전에 참가시켰으면 합니다.”
김진우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에게 경험을 쌓게 해줍시다.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가 될 겁니다.”
* * *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1층으로 내려가면서, 서민혁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A급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내 평가가 떨어질 일은 없어.’
적어도 김진우나 제갈환은 서민혁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할 것이다.
A급 스탯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S급에 준하는 활약을 한다는 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들은 예전보다 서민혁을 더욱 탐내게 될 것이다.
결국 서민혁은 자신이 A급이라는 걸 밝히는 것으로 자기 몸값을 더 올렸다.
‘각 길드 대표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김진우가 주도해서 나를 작전에 참가시키려 할 거야.’
그냥 서민혁을 빼고 진행하자는 목소리가 나와도, 김진우라면 서민혁을 참전시키려 할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뛰어난 감각을 지닌 남자니까.
‘내가 원하는 건 프리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데……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어.’
7번 무한서고를 공략한다면 서민혁도 꼭 참가하고 싶었다.
그곳에는 에테르 코어 말고도 좋은 보상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길드들과 함께 움직이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해.’
제갈환과 길드 대표들이 그걸 허용해줄까.
이건 예상하기 어려웠다.
“……?”
1층으로 내려온 서민혁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이다.
‘김민철 교수님…….’
기초 마도어를 해독하여 마도해석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낸 사람.
회귀하기 전에 서민혁이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이 로비 라운지에 앉아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건강하시군.’
김민철 교수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여러 가지 문제를 겪으면서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저 여자…….’
김민철 교수와 마주앉아있는 20대 후반의 여자.
서민혁은 저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한동안 함께 해석학을 공부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해석학자가 아니다.
그녀는 헌터였다.
‘윤혜원.’
크루세이더 길드의 공략2팀 팀장, 윤혜원.
그녀의 모습을 보고 서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여자가…… 교수님을 등쳐먹은 선봉장이었지.’
크루세이더 길드는 김민철의 주된 후원자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크루세이더 길드는 김민철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크루세이더 길드는 경쟁자들한테 가짜 정보를 퍼뜨려왔다. 그 작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김민철의 이름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민철이 해독한 내용이라고 은밀히 유포된 가짜 정보에 속아 국내외의 여러 길드가 피해를 봤고, 김민철의 평가는 땅에 떨어졌다. 자기는 무관하다고 항변해도 오해는 잘 풀리지 않았다.
크루세이더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루세이더 길드는 자기들도 김민철의 엉터리 해석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김민철을 비난했다.
세상 사람들은 김민철이 마도해석학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자 가짜 정보를 팔아먹기 시작했다고 떠들어댔고…… 그 오해는 김민철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기초 마도어 번역 어플의 저작권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고 계셨는데…… 그런 일까지 터져서 한계에 도달하신 거지.’
그 일을 주도한 것이 바로 저기 있는 윤혜원 팀장이었다.
물론 위에서 지시한 건…… 성인군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김진우 길드장이지만 말이다.
“…….”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서민혁 헌터.”
“네, 부국장님.”
“길드 대표들하고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제갈환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민혁 헌터는 특정 부대에 소속되는 일 없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황 봐서 자유롭게 움직여주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프리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참가해주시는 겁니까?”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건 서민혁이 원했던 결과다.
통화를 마친 뒤 서민혁은 주머니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
그리고 말없이 로비 라운지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윤혜원이 서민혁을 알아보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혹시 서민혁 씨 아니신가요?”
“맞습니다만…….”
“안녕하세요. 크루세이더 길드의 윤혜원이라고 합니다.”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윤혜원이 명함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보 헌터를 알아봐주시다니 놀랍군요.”
“에이, 요새 헌터들 중에서 서민혁 씨를 모르는 사람은 어디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윤혜원이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아까 말씀드린 그 서민혁 씨예요.”
“아…… 반갑습니다. 김민철이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대학 교수 같은 인상의 남자.
김민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민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민철 교수님.”
서민혁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예전부터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 아시나요?”
“그럼요.”
복잡한 심정을 감추면서 서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마도해석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셨군요. 허허, 반갑군요.”
김민철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윤혜원이 끼어들었다.
“서민혁 씨, 혹시 위에서 회의 끝나서 내려오신 건가요? 괜찮으시다면 잠깐…….”
“죄송하지만, 갈 곳이 있어서요.”
윤혜원은 서민혁과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그럼 교수님,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앗, 서민혁 씨……!”
윤혜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서민혁은 호텔 로비를 떠났다.
‘윤혜원, 그리고 김진우…….’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적(敵).
그들과 전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야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