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매뉴얼이 없는데 어쩌라고 (3)
어두운 지하 공간에 앉아, 서민혁은 열심히 마도서를 읽었다.
‘중급 사령마법 심화완성…… 이름만 보면 무슨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 참고서 같긴 한데.’
서민혁이 지난번에 입수했던 사령술사의 교본보다는 확실히 내용이 어렵다.
게다가 책을 만든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약간 설명하는 게 다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아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없었다. 이미 서민혁이 갖고 있는 마법 지식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여기 있는 내용을 다 이해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익히면 된다.’
서민혁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마도서를 읽었다.
의자가 있어서 그나마 편했다. 지난번에 화산지대에서 정령마법 마도서를 읽었을 때는 바닥에 주저앉아 읽느라 살짝 허리가 아팠다.
[사령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사령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건틀릿에서 계속해서 알림이 떴다.
하지만 서민혁은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지난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치켜들었다.
“후우…….”
인벤토리에서 활력 회복 포션을 하나 꺼내서 먹었다.
자기 회복 마법을 써도 되지만, 혹시 모르니 마력을 아껴두고 싶었다.
“좋아, 한번 해볼까.”
샐러맨더를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주고, 실프도 어깨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아까 쓰러뜨렸던…… 스켈레톤 위저드에게 다가갔다.
“…….”
스켈레톤 위저드는 머리가 두 조각이 났고, 다른 뼈다귀도 주위에 흩어진 상태였다.
서민혁은 그걸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마도서 맨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골격도’ 그림을 참고해서.
“좋아.”
뼈를 맞춰놓은 뒤, 서민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조금 틀린 부분도 있을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봐줬으면 한다.
“어디 보자…….”
스켈레톤은 원래 지능이나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해골병사일 뿐이다.
하지만 방금 읽은 중급 사령마법 심화완성에 의하면, 생전의 인격을 보유하고 있는 스켈레톤도 존재한다고 한다.
방금 싸운 해골 마법사처럼 말이다.
‘두뇌가 없는데 어떻게 인격을 유지하고 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생전의 인격은 일종의 고스트라 할 수 있는 정신체가 되어 두개골 안쪽에 스며든다고 한다.
아까 스켈레톤 위저드의 눈구멍 안에서 빛이 보인 것은 바로 그 정신체였던 것이다.
‘지능이 없는 해골 병사들도 약간씩은 생전의 기억이 남아있을 때가 있다고 하던데, 비슷한 원리일까.’
그러고 보니 아까 그 해골 공룡도 마치 자기가 살아있는 육식 공룡인 것처럼 움직였다.
50번 무한서고에서 서민혁이 만든 해골병도 마지막에 서민혁에게 인사를 했었다.
약간의 정신체가 뼈에 남아있었던 걸까.
‘어쨌든…… 이 녀석을 부활시켜야 해.’
두개골이 파괴된 시점에서, 이 해골 마법사의 인격도 파괴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두개골에 스며들었던 정신체는 아직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다.
그걸 되살려야 했다.
“좋아.”
서민혁은 심호흡을 하면서 위저드 로드를 집어 들었다.
마력 효율과 안정성을 향상시켜준다니 도움이 될 것이다.
“해보자.”
생체마법은 레벨마다 쓸 수 있는 마법이 나눠져 있지만, 정령마법이나 사령마법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중급자용 마법서에 실려 있는 고도의 사령마법을…… 아직 2레벨에 불과한 서민혁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사령체 재생.”
이미 활동을 정지한 언데드를 다시 한번 움직이게 만드는 사령마법.
이 마법을 사용한 순간, 바닥에 깔려있던 뼈다귀들이 들썩였다.
“윽!”
머릿속이 찌릿했다.
순식간에 전체 마력의 20%가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나의 마법으로 이 정도 마력이 사라지는 건 처음이었다.
‘내 마력 스탯이 지금 50이니까…… 10 정도 소비하는 건가?’
서민혁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조심스럽게 해골을 살폈다.
하지만 잠깐 들썩였을 뿐, 그걸로 끝이었다.
해골은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실패한 건가?’
사령마법의 이해도는 상승했지만, 아직 2레벨밖에 안 되는 건 사실이다.
너무 고난이도의 마법을 시도한 걸까.
“사령체 재생.”
조심스럽게 마법을 다시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골이 잠시 들썩였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이제 마력은 60%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즉 3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다.
‘3번 안에……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마력도 회복된다.
지난번에 다그다의 반지를 획득한 이후로는 회복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지만 회복되는 걸 기다리고 있으면 스켈레톤 위저드의 정신체가 다 흩어져버릴 것이다.
‘해봐야겠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서민혁은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령체 재생.”
털썩.
이번에도 실패였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고도의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게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사령체 재생.”
털썩.
또다시 실패.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까지에 비해 더 많이 들썩였다.
‘많이 들썩인다고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통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마력이 얼마 안 남았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네 번 실패했다. 다섯 번째도 실패할까?’
서민혁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네 번의 실패 경험을 쌓았다. 이건 다섯 번째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책상 위에서 샐러맨더와 실프가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라고 묻는 듯한 녀석들의 표정을 보면서 서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
정령들의 얼굴을 보니 긴장도 풀렸다.
서민혁은 어깨에 힘을 뺀 채 위저드 로드를 치켜들었다.
“사령체 재생.”
마력이 고갈되었다.
서민혁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마법 연습을 하면서 몇 번 경험해본 적이 있지만, 이 감각은 상당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결과는……?’
머리를 움켜쥐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서민혁은 목격했다.
“……!”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있는 해골.
그것이 몸을 일으키고 서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민혁이 침을 삼키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 그 해골은 천천히 몸을 숙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주인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이.
‘성공이다……!’
서민혁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샐러맨더는 ‘잘 됐네요!’라고 말하는 듯이 팔짝팔짝 뛰고 있었고, 실프는 ‘축하해요!’라고 말하는 듯이 날개를 파닥이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 * *
다시 되살아난 스켈레톤 위저드는 서민혁의 명령을 듣는 충실한 부하가 되어 있었다.
서민혁의 마법으로 부활한 시점에서 일반적인 해골병과 마찬가지로 서민혁의 명령을 따르게 된 것이다.
서민혁은 스켈레톤 위저드에게 데이모스를 소환하기 위한 의식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스켈레톤 위저드는 척척 작업을 시작했다.
‘기억이 제대로 남아있는 건가?’
서민혁이 파괴한지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정신체는 꽤 손상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방법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잘못된 방법으로 의식을 진행한다면 경고문대로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 나한테는 확인하는 방법이 없으니…….’
서민혁 입장에서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스켈레톤 위저드한테 제대로 기억이 남아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스켈레톤 위저드가 준비를 마쳤다.
“…….”
검은색으로 그려진 마법진 중앙을 향해 스켈레톤 위저드가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다가 데이모스의 소환 촉매를 두라는 것 같았다.
서민혁은 조심스럽게 접근해 소환 촉매를 내려놓았다.
“그 다음에는…… 지팡이로 마법진을 두들기라고?”
스켈레톤 위저드의 몸짓을 보면서, 서민혁은 위저드 로드로 마법진을 두들겼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검은 불꽃이 솟구쳤다.
‘된 건가?’
혹시 몰라서 실프를 대기시킨 상태였다.
대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다급히 도망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저 불꽃…… 지난번에 고블린 샤먼을 제물로 바쳤을 때와 비슷해.’
불꽃이 서민혁에게 다가왔다.
깜짝 놀란 실프가 날아와서 서민혁을 보호해주려고 했지만, 서민혁은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그 사이 불꽃이 서민혁을 휘감았고, 마법진 주위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아까 쓰러뜨렸던 본 다이너소어의 잔해.
그 공룡 뼈들이 움직여서, 공중에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카발라 진리어였다.
“인간이여, 또다시 나를 불렀구나…….”
뼈가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글자를 만들었다.
“나는 깊은 어둠과 혼돈의 주인, 네가 힘을 원한다면 도와주도록 하마…….”
지난번하고 비슷한 멘트.
서민혁은 자신이 성공했다는 걸 확신했다.
“너는 매우 높은 적성을 지닌 초월급 인재…… 나는 너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니 네가 진정으로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시련을 내려주마…….”
지난번 적성평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여, 시련을 수행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떠오른 문장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즉답했다.
“수행하겠다.”
지난번보다 능숙해진 발음으로 대답한 순간.
공룡 뼈가 허공에서 커다란 글자를 만들었다.
계약이 성립되었다, 라고.
[고차원 지성체 ‘데이모스’의 시련을 받아들였습니다.]
[계약자의 역량 배양 (1)]
* 퀘스트 랭크: EX
* 퀘스트 내용: 비행 몬스터를 200체 처치하라.
* 클리어 보상: 민첩 보너스 +5 부여.
# 24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가 주어짐.
[계약자의 각성 (2)]
* 퀘스트 랭크: EX
* 퀘스트 내용: 52번 무한서고의 보스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정령마법의 심화 마도서를 습득하라.
* 클리어 보상: 마력 보너스 +40 부여, ‘대마도사의 광휘’ 획득.
# 240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가 주어짐.
“좋았어!”
서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지난번에 데이모스가 지정해준 무한서고에는 정령마법의 마도서가 있었다.
그래서 내심 기대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령마법의 심화 마도서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아주 다 떠먹여주네.”
사실 가장 필요한 건 생체마법이었지만, 정령마법도 좋다.
정령마법도 레벨 4에 도달하여 더 이상 성장을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보상들도…….”
민첩 보너스 +5.
마력 보너스 +40.
대마도사의 광휘.
단어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서민혁은 감동했다.
‘어디 보자, 민첩 보너스 +5라고?’
지난번 계약자의 기본 소양 퀘스트는 근력 보너스 +2부터 시작했다.
이어서 민첩 보너스 +2, 체력 보너스 +2, 감각 보너스 +2가 차례대로 주어지더니 마지막 퀘스트에서 각각 +13가 추가되어 최종적으로는 근체민감 합계 +60의 보너스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첩 보너스 +5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얼마나 많은 보너스를 얻게 될까?
‘각각 +20? 다 합치면 +80?’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력 보너스도 +40이라니……!’
지난번 각성 (1)은 +30이었는데 이번 각성 (2)는 +40이다.
역시 한 단계 올라서 그런지 통이 커졌다.
‘지금 내 마력 스탯이 +50이니까 순식간에 +90이 되어버려. 거의 2배야.’
지금보다 훨씬 더 마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샐러맨더와 실프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합 정령마법도 펑펑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사의 광휘라고?’
가장 관심이 가는 건 마지막에 나온 보상인 대마도사의 광휘였다.
이름을 보니 정령술사의 광휘하고는 성격이 다른 아이템 같았다.
초기에 입수한 마도사의 광휘하고 비슷한 것 아닐까.
‘마도사의 광휘는 마력 보너스 +10 효과였는데…… 그럼 이건 더 많은 양의 마력 보너스를 주는 효과일까?’
하지만 이미 +50의 마력 보너스를 직접 부여해주는데, 거기다가 마력 보너스를 주는 아이템을 추가로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전혀 다른 효과의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 좋은 아이템일 거야.’
우리 데이모스 님이 쓸모없는 걸 줄 리가 없다.
서민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믿습니다, 데이모스 님.’
저절로 신앙심이 생기기 시작한 서민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