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매뉴얼이 없는데 어쩌라고 (1)
[대룡방 원무정이 죽은 모양이던데]
원무정이 부하들 이끌고 어떤 놈 잡으러 갔다가 반격당해 죽은 모양임
솔직히 원무정 그놈 꼴 보기 싫었는데 속 시원하다
근데 대체 어떤 놈이 원무정 죽인 건지 모르겠네
원무정 잡은 거면 거의 S급 아님?
어쨌든 정의구현 해줘서 고맙다
└사람이 죽었는데 실명 언급하면서 이게 무슨 짓이야 글삭해라
└응 포럼첩 꺼져 원무정 죽어서 사이다야 꺼억
└나만 안 죽으면 돼~~
└근데 대체 누가 원무정을 죽인 거임? 아수라야?
└아수라는 아니라고 하던데.
└크루세이더에서 함정 파서 제거한 거 아님?
└크루세이더가 그런 짓 하겠냐?
서민혁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으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헌터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헌터넷에서도 원무정의 죽음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다들 잘 죽었다는 반응이네.’
빈사 상태인 원무정을 데려간 건 아수라의 허태웅이었지만, 아수라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부분은 허태웅이 은밀히 잘 처리한 모양이었다.
이제 한동안 대룡방은 수수께끼의 범인을 찾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헌터가 된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서민혁이 진범인이라는 걸 깨달으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 사이…… 나는 최대한 힘을 길러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그릇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가닥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은 묘하게 맛있단 말이야. 국물 맛이 달라.’
국물까지 한 모금 마셔준 뒤, 서민혁은 만족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적당히 배도 채웠으니, 다시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해야 한다.
“…….”
휴게소 식당을 나와 주차장 쪽으로 향하자, 어제 출고되어 반짝반짝한 메탈릭 색상의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의 준대형 세단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조성조가 타는 거랑 똑같은 스포츠카를 사려고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차인데 너무 비싸고 요란한 스포츠카를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마침 조성조가 타던 모델이 단종되기도 했고, 결국 해당 브랜드에서 나오는 엔트리급 준대형 세단을 계약했다.
가격은 1억원 초반대…… 일반인들에게는 비싼 차지만, 전업 헌터 기준으로 보자면 서민적인 차량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천지원은 평범한 국산차 타고 다니는데…… 돈을 별로 못 모았나.’
A급 헌터라고 해서 무조건 떼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A급에 맞는 사냥터를 다니다보면 비용도 많이 들고, 기껏 벌어들인 돈을 주식이나 도박 등으로 탕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주식이나 도박은 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민혁은 차에 올라탔다.
* * *
서민혁의 목적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근처에 있는 46번 무한서고였다.
얼마 전에 출현한 따끈따끈한 무한서고다. 아직 보스 퀘스트는 클리어되지 못한 상태지만, 사실상 북두성 길드가 독점적으로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다.
공략위키에도 북두성에서 발표한 정보들로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저기서 좀 특별한 마도서가 나왔어.’
정확히 어떤 마법의 마도서였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중급이었는지 심화였는지 그런 의미의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김민철 교수가 그 마도서를 한동안 연구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다.
‘무슨 마법의 마도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 있던 것 같은 초심자용 마도서는 아닐 거야.’
만약 ‘심화 생체마법 완성’같은 제목의 마도서라면 최고다.
기초 생체마법 입문만 읽어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생체마법 5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정령마법 마도서여도 좋다. 정령마법도 지금 4레벨이니까.
사령마법은 아직 2레벨이지만…… 언젠가는 4레벨에 도달할 테고, 미리 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내가 모르는 마법의 중급자용 마도서일 수도 있긴 한데…….’
그렇게 되면 초심자용 마도서를 또 찾아야 된다.
이러면 일거리가 더 많아진다.
‘이러이러한 마도서를 구한다고 인터넷에 올리면 더 쉽겠지만, 그러면 내가 마도서를 읽을 줄 안다고 광고하는 꼴이 되니까.’
자기가 마도 언어를 해독할 수 있다고 사기 치는 가짜 해석학자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자기가 마도서까지 읽을 줄 안다고 떠들고 다니는 놈은 없다.
그러니 마도서를 공개적으로 수배하는 건 삼가야 한다.
“어디서 오셨죠?”
최근 50번 무한서고에서의 살인 사건 때문인지, 출입구에서는 북두성 길드의 헌터가 출입자를 엄격히 체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혁이 카드를 한 장 보여주자 군말 없이 통과시켜줬다. 북두성 길드의 천지원이 특별히 발급해준 카드로, 길드원은 아니지만 길드에서 신분을 보장해주니 출입을 허가시켜주라는 의미였다.
그동안 조성조 도움을 받아서 이것저곳 숨어들어갔지만, 그렇게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천지원을 통해 정식 루트로 들어간 것이다.
‘천지원은 실적에 목말라 있어.’
서민혁은 이 46번 무한서고의 보스 퀘스트를 클리어한 뒤, 그 공적을 천지원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보스 퀘스트의 보상은 서민혁이 챙기지만, 공식적으로는 북두성 길드가 보스 퀘스트를 클리어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서민혁에게 잘 보이려 하는 천지원은 이 거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최근 북두성은 보스 퀘스트 클리어 실적이 없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최근 내가 북두성이 노리던 보스 퀘스트를 다 가로챘기 때문이지만…… 이건 비밀로 해야지.’
무한서고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바위산 필드가 펼쳐졌다.
풀 한포기 찾아보기 힘든 바위산인데, 여기저기에 산을 깎아서 만든 석굴사원이 조성되어 있다. 인도나 중국에도 유명한 석굴사원이 있지만 이곳은 그 이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살아있는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들 열심히 사냥하고 있네.’
북두성 길드 충청지부의 헌터들이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대는 주로 뼈만 남은 스켈레톤들이다. 사원에 있던 신도들이 죽어서 해골이 된 뒤 언데드가 된 것 같았다.
“…….”
마침 서민혁에게도 해골 하나가 다가왔다.
서민혁은 미리 뽑아놓은 어보미네이션 팽을 휘둘렀다.
[스켈레톤 솔져를 처치했습니다.]
[2만 크레딧을 획득했습니다.]
해골을 일격에 박살내는 서민혁의 모습을 보고, 주위의 헌터들이 박수를 보냈다.
서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뒤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점점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모습도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슬슬 시작해볼까.”
서민혁은 어보미네이션 팽을 집어넣고, 그 대신 장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S랭크 무기인 ‘성기사의 성검’…… 원무정을 쓰러뜨리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성기사의 성검]
* 랭크: S
* 공격력: 108
* 공격시 50% 확률로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
# 우수한 성기사에게 부여되는 양산형 성검. 원본이 되는 성검에는 못 미치지만 신성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악한 적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
S랭크여서 그런지 처음으로 공격력 수치가 100을 넘는 무기였다.
다만 A랭크인 어보미네이션 팽이 86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엄청 높지는 않다. 역시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가 메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양산형 성검이라…… 원본 성검은 SS랭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민혁은 눈앞에 보이는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깥에 있던 해골들하고는 다른 종류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서민혁을 가로막았다.
‘머미…… 흔히 미이라라고 부르는 놈들이지.’
머미는 스켈레톤처럼 해골만 남은 것도 아니고, 좀비처럼 썩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패하지 않게 보존 처리가 된 시신이다.
이집트 미이라처럼 붕대를 감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인 좀비보다 빠르고 강한 편이다.
“가자.”
근력 강화, 체력 강화, 민첩 강화, 감각 강화.
강화마법 4종 세트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가장 앞에서 달려들던 머미에게 성기사의 성검을 휘두르자, 칼날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음?’
딱히 검기를 만들지도 않았는데 칼날의 절단력이 강화된 걸 알 수 있었다.
원무정과 싸웠을 때는 발생하지 않았던 현상이다.
‘신성력이 언데드와 반응하면서 빛이 발생하는 거군.’
설명에 적혀있는 대로, 신성 속성 추가 대미지는 언데드 같은 사악한 몬스터와 싸울 때만 발생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장검 스타일의 무기인데도 불구하고 머미들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머미 솔져를 처치했습니다.]
[10만 크레딧을 획득했습니다.]
[머미 솔져를 처치했습니다.]
[10만 크레딧을 획득했습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머미들을 수십 마리 정도 쓰러뜨리자, 비로소 주위가 조용해졌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니 신도들의 생활공간 같은 곳이 나왔는데, 역시 여기서도 책장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책은 한 가지뿐.’
생활공간처럼 세팅해놨으면 책도 다양하게 꽂아놔야 하는 것 아닐까. 무한서고를 만든 마법 문명도 참 이상한 놈들이다.
그런데 책 제목이 특이했다. ‘해골 마법사의 분노’라는 제목이었다.
‘흔치 않은 스타일의 제목인데…….’
서민혁은 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거 소설책이잖아?’
설마 무한서고에 꽂혀있는 책 중에 소설책도 있었을 줄이야.
회귀하기 전에는 내용을 읽을 수 없으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일종의 판타지소설이었다. 해골만 남은 마법사의 사악한 음모를 막기 위해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분투하는 줄거리였다.
‘이런 내용이군.’
작가한테는 미안하지만, 정독할 시간이 없었다.
클라이맥스만 후다닥 읽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부분만 머릿속에 넣은 뒤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휴식도 했고…… 슬슬 가볼까?”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두드리자, 곤히 잠들어있던 샐러맨더가 고개를 내밀고 하품을 했다.
그리고 실프도 모습을 드러내 배시시 웃으며 내 어깨 위를 맴돌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나는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
몇 가지 함정들을 돌파하면서 전진하자, 상당히 넓은 지하공간이 나타났다.
예전에 싸웠던 고블린 샤먼의 은신처와 공통점이 있었다. 안쪽에 제단이 있었고, 마법적인 도구 같은 게 여기저기에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규모가 훨씬 컸고,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웅장한 분위기였다.
누가 봐도 보스방이었다.
“……!”
어둠 속에서 뼈다귀를 달그락거리면서 해골 마법사가 나타났다.
다른 스켈레톤과는 달리 눈구멍이 퍼렇게 빛나고 있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생체마법이나 정령마법 마도서는 안 나올 것 같은데.’
사령마법이나 다른 마법 관련 마도서가 나올 것 같았다.
적어도 생체마법이나 정령마법은 아니다. 여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무슨 자연력이 있을까.
저런 놈을 잡았는데 생체마법이나 정령마법 관련 마도서가 나오면 개연성이 엉망이 된다.
‘어쩔 수 없지.’
첫술에 배부르랴.
어차피 사령마법 중급 마도서가 나오는 거라면 나쁘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민혁은 보스 퀘스트를 알리는 윈도우를 확인했다.
[해골 마법사의 분노]
* 퀘스트 랭크: A
* 퀘스트 내용: 지하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스켈레톤 위저드를 처치하라.
* 클리어 보상: 8억2000만 크레딧, 봉인 마도서 획득.
* 특별 보상: 스켈레톤 위저드가 마법진을 완성시키는 걸 기다렸다가 처치할 경우 ‘위저드 로드’와 ‘데이모스의 소환 촉매’ 획득.
# 본 퀘스트는 탐색자에 의해 클리어된 시점에서 소멸됨.
아까 봤던 책하고 제목이 똑같았다.
그러니까 아까 살펴본 소설책에서 해골 마법사를 때려잡는 후반부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서민혁의 눈길을 끈 부분은 따로 있었다.
‘마법진을 완성시키는 걸 기다렸다가 처치한다면…… 위저드 로드와 데이모스의 소환 촉매라는 걸 준다고?’
로드라는 이름이 붙은 지팡이는 무기가 아니라 마도 보조도구다.
마도 보조도구는 이름대로 마법 사용을 보조해주는데, 이미 서민혁은 황충평한테서 빌린 서머너 로드를 사용해 원무정을 쓰러뜨린 적이 있다.
그러니 위저드 로드라는 것도 분명 유용한 장비일 것이다.
하지만 서민혁은 그 다음 아이템에 더 주목했다.
‘데이모스, 그건 분명히…….’
데이모스.
그것은 지난번에 서민혁에게 엄청난 능력치 보너스를 떠먹여주고, 정령마법의 마도서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심지어 정령술사의 광휘까지 선물해준 존재의 이름이었다.
‘이건…… 놓치면 안 된다.’
S급 헌터까지 쓰러뜨릴 수 있는 힘.
그걸 얻기 위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