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그냥 해석학을 공부한 헌터입니다 (1)
“오빠,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 민혁아, 너무 비싼 것 같은데.”
반짝이는 조명.
깔끔한 인테리어.
단정한 복장의 직원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수입 탄산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어색해하는 가족들을 보고, 서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알바 하는 곳 사장님이 식사권 줬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그래…… 참 고마우신 분이네.”
“오빠, 정말 이상한 곳에서 일하는 거 아냐? 실은 호빠 다니는 거 맞지?”
사실 가족들이 의구심을 드러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곳에 온 건 서로 난생 처음이기 때문이다.
‘호텔 뷔페……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지금 서민혁은 장충동에 있는 모 유명 호텔의 뷔페 레스토랑에 와있었다.
슬슬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비싼 걸 먹여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기껏해야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갈비집 정도였지.’
많고 많은 식당 중에 호텔 뷔페를 고른 건 이유가 있다.
대체 어떤 메뉴로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우, 초밥, 프랑스 요리, 기타 등등…… 다양하게 찾아봤지만 감이 잘 안 오더라.’
회귀하기 전에 워낙 빈곤하게 살았던 탓이다.
뭘 골라야 가족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한참 고민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뷔페로 정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뷔페가 아닌…… 고급 호텔 뷔페를.
‘10만 원대 초반이라는 비싼 가격이지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뭐.’
50번 무한서고에서 서민혁은 수십억 크레딧을 회득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도 손에 넣었다.
물론 그중 절반 이상이 앞으로의 헌터 활동을 위해 재투자되겠지만…… 가족들한테 호텔 뷔페 한번 쏘는 건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빨리 먹죠. 배고파 죽겠네요.”
“아, 그래. 은하야, 어서 음식 담아오자.”
“네!”
호텔 뷔페에서 나오는 요리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다양하고 고급스러웠다.
뷔페에서 나오는 요리가 이 정도라면…… 호텔 다른 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시키면 대체 어떤 요리가 나올까.
‘다음에는 그런 곳에도 가봐야겠어.’
그때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당당하게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 * *
“형님,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뭐지?”
대룡방 길드 본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원무정은 부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졸리 로저 마스크를 쓰고 들어온 헌터들 중에, 중간에 사라진 놈이 있나 봅니다.”
“그놈이군.”
원무정은 무릎을 쳤다.
“그래서, 그놈은 대체 누구지?”
“그게…… 요새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헌터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놈하고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설마 프리랜서라는 건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요즘은 49번 무한서고에서 자주 보인다더군요.”
“49번 무한서고…… 산악지대 필드인가.”
기억을 되새기며 원무정은 턱을 쓰다듬었다.
“거기, 태산 길드 관할이었지?”
“네, 그래도 다른 헌터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막지는 않고 있습니다.”
“흑살대 애들 몇 명 보내서 대기시켜. 태산 길드에는 돈 좀 쥐어주고.”
“형님, 그러면…….”
“잡아서 족쳐야지.”
그놈은 대룡방이 노리던 먹잇감을 가로챘다.
대체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 뒤에 다른 길드가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그 다음에…… 찢어죽이면 돼.”
“알겠습니다, 형님.”
“부길드장님한테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처리하자고.”
부길드장.
원무정의 직속상관이자, 흑살대의 주인.
그가 진노하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해야했다.
* * *
49번 무한서고는 산악지대 필드다.
발을 들여놓으면 곧바로 웅장한 산맥이 펼쳐진다.
어떻게 건물 안에 이런 지형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마법의 힘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낭떠러지도 많고, 거기로 추락하면 그냥 즉사다. 시체도 찾을 수 없다.
그런 반면, 얻을 수 있는 건 적은 편이다. 웬만한 퀘스트는 태산 길드가 다 클리어해놨고, 이곳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에게서는 좋은 전리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스칼렛 바닥장미가 군데군데 피어있기 때문에, 포션 제작자들이 재료를 얻기 위해 가끔 찾아오곤 한다.
“오랜만에 재료 채취 좀 해볼까?”
주머니 속의 샐러맨더에게 말을 건네면서, 서민혁은 산을 타기 시작했다.
상당히 험준했지만 근력 보너스 +55, 체력 보너스 +40인 서민혁한테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어디 보자, 대략 저쪽에…….”
이 무한서고에서 발견되는 책인 ‘쉽게 배우는 야생화’는 조성조가 소장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해놨고, 덕분에 스칼렛 바닥장미가 어디서 많이 피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럭저럭 많네.”
서민혁은 스칼렛 바닥장미가 많이 피어있는 곳을 금방 발견했다.
39번 무한서고의 ‘올가미의 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적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되어도 많은 편이다.
“여기 있는 것들 채집하고, 다음 자리로 이동하자고.”
한참 동안 바닥장미를 채집한 뒤, 서민혁은 기지개를 폈다.
산악지대라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했다.
“좋아, 그럼 다음 장소로 가볼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발을 돌렸다.
……감각 강화, 청력 증폭을 계속 유지하면서.
* * *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군요.”
“그래, 잘 된 일이지.”
대룡방 흑살대 소속의 A급 헌터 장혁태는 후배와 귓속말을 했다.
“적당한 곳에서 포위하고 처치하자고.”
현재 이곳에 온 흑살대는 장혁태를 포함해 다섯 명.
실력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다들 A급 헌터다.
게다가 그들은 은신 기능이 있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모습을 숨긴 채 표적을 미행하거나 기습할 때는 최고의 장비로, 웬만큼 감각 스탯이 높지 않으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눈치 챌 수 없다.
‘태산 길드 놈들도 확인해줬고…… 아무래도 저놈이 맞는 것 같아.’
언제부터인가 이 무한서고에 나타나기 시작한, 마스크를 착용한 솔로 헌터.
산을 휙휙 올라가는 걸 보면 꽤 높은 스탯을 갖고 있을 텐데, 행동거지가 뭔가 수상하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잡아서 족치면 알 수 있겠지.’
상대방은 흑살대의 A급 헌터 두 명을 상대로 승리한 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섯 명이다.
녀석이 S급 헌터라면 몰라도…… A급 헌터 다섯 명한테 포위당하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산속 깊숙이 들어 왔군. 이쯤이면 되겠어.’
장혁태는 후배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후배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은신 망토를 활용하여 선행해, 상대를 완전히 포위하려는 것이었다.
“…….”
상대가 으슥한 골짜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포위망은 완성되었다.
장혁태는 후배들에게 신호를 보내 일제히 덮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슬슬 된 건가?”
발을 멈추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장소도 적당하고, 슬슬 시작하지?”
“……!”
미행을 눈치 채고 있었던 걸까.
이렇게 되면 기습은 어렵다.
결국 장혁태는 은신 망토를 벗었다. 움직일 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감각 스탯이 꽤 높은 모양이지? 60, 70쯤 되나?
“뭐 그렇지.”
그 말을 듣고, 장혁태는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헌터인지 깨달았다.
‘감각 특화 헌터로군.’
헌터들 중에는 감각 보너스를 많이 얻은 헌터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찰 등에 투입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전에서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민첩 보너스도 높다면 적의 공격을 예측해서 마구 피해버리는 회피 위주의 전법으로 큰 활약을 할 수 있다.
‘우리 A급 헌터 두 명을 처치한 걸 보면…… 이 녀석은 민첩성도 높은 회피 위주의 딜러일 거야.’
장혁태는 상대방의 전투 스타일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
장혁태는 아예 민첩성에 특화된 헌터다.
민첩 보너스를 많이 모았고, 길드에서 스피드를 올려주는 S랭크 장비까지 받았다.
저 녀석이 아무리 공격을 잘 피해도 장혁태의 공격이 더 빠를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이렇게 다섯 명이서 포위한 상태이니…… 집중 공격을 퍼부어주면 그냥 그걸로 끝난다.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장혁태가 손을 치켜들자, 나머지 네 명도 은신 망토를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만 알려주지. 우리는 전부 A급 헌터야.”
“그래서?”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장혁태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지금 혼자야! 다섯 명의 A급 헌터한테 포위된 상태라고!”
“그래, 너희가 나를 포위했다 이 말이지?”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하지만, 너희는 착각을 하고 있어.”
“뭐라고?”
“반대거든.”
반대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장혁태가 의아해하고 있었을 때,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다.
“내가 너희를 포위한 거니까.”
그 순간.
갑자기 땅이 들썩이면서, 바닥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뭐, 뭐야?!”
장혁태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땅 밑에서 튀어나온 시체가…… 자기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
한둘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시체들이 기어 나와, 장혁태와 흑살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 * *
‘준비해두길 잘 했어.’
좀비들이 흑살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서민혁은 만족감을 느꼈다.
이 좀비들은…… 서민혁이 최근 며칠간 이 자리에 묻어놨던 것이다.
‘쓸 만한 몬스터 시체를 구해서 여기 땅 밑에 숨겨놓는 거…… 꽤 피곤한 일이었지.’
이 모든 건 서민혁이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었다.
조성조를 통해 대룡방 길드 쪽에 정보를 흘려, 이곳으로 대룡방의 자객을 끌어들인 것이다.
‘놈들이 온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대비를 해둘 수 있지.’
흑살대가 습격해온다면, 이번에는 A급 헌터를 최소 네 명 이상 투입할 것이다.
A급 헌터 여러 명을 상대로 서민혁 혼자서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해둔 것이다.
으슥한 곳에 시체를 여러 개 묻어놓고, 놈들을 유인한 뒤 시체병 생성 마법을 사용했다.
‘물론 좀비들은 허를 찌르는 역할…… 그리고 몸빵 역할밖에 못 해.’
좀비의 전투력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저 녀석들은 헌터 시체도 아니고 몬스터 시체다. 금방 쓰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를 결정짓는 건 다른 것이 될 것이다.
“부탁한다.”
주머니 속의 샐러맨더에게 말을 건네자, 알겠다는 듯이 앞발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서민혁이 들고 있던 화산의 단검에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너는 오늘 이것만 해주면 돼.”
깜짝 놀랐는지 샐러맨더가 몸을 경직시키는 게 보였다.
서민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툭툭 쳤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다른 전법을 써봐야 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서민혁은 주위를 살폈다.
산간지대에는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고 있다.
이렇게 바람의 자연력이 충만한 상태라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라, 실프.”
두 번째 정령을 불러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