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실전에도 써먹어 보자고 (1)
[서민혁]
근력: +25
체력: +25
민첩: +25
감각: +25
마력: +50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 서민혁은 만족감을 느꼈다.
근체민감 합계 +100, 마력까지 합치면 +150.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마력 스탯의 효과는 나중에 더 검증해 봐야겠어.’
이어서 서민혁은 새로운 전리품으로 시선을 향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보석… 정령술사의 광휘였다.
[정령술사의 광휘]
* 랭크: A
* 자연령의 영기 재료 생성.
* 소모성 아이템.
서민혁은 멈칫했다.
이번 것도 마력 같은 스탯을 올려 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자연령은 뭐고, 영기 재료는 뭐지?’
그래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정령마법하고 관계 있는 물건일 것이다.
일단 서민혁은 정령술사의 광휘를 설치하지 않고 마도서부터 펼쳐 봤다.
‘정령마법의 진리…….’
정령마법이란 세상의 ‘자연력’이 실체화된 존재를 소환하는 마법이라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자연에서 비롯된 정령을 불러내는 마법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에 의지하는 마법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자연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정령을 불러낼 수 없다는 것 같았다.
‘뭐야, 그러면…….’
여기는 화산 지대니까 불의 정령 같은 걸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기에 강한 몬스터가 많은 화산 지대에서 불의 정령을 불러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의 정령이나 얼음의 정령 같은 걸 불러낼 수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생각보다 별로 쓸모없는 마법 아닌가?’
서문에도 정령마법은 다른 마법보다 역사가 오래된 원시적 마법이라 적혀 있었다.
주위 필드에 따라 쓸 수 있는 마법이 한정되어 있다면 범용성이 떨어진다.
[정령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정령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정령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라이브러리 건틀릿에서 계속해서 알림이 떴지만, 서민혁은 신경 쓰지 않고 마도서에만 집중했다.
왠지 생체마법보다 이해가 더 잘 되는 것 같다. 원시적인 마법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두 번째로 배우는 마법이어서 그런 걸까.
‘그냥 이 자리에서 습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휴식도 취할 겸, 서민혁은 보스방에 앉은 채 마도서를 탐독했다.
그러던 도중 신경 쓰이는 항목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 정령술사의 광휘 설명에 적혀 있었던 ‘영기’에 대한 설명이었다.
‘영기…….’
영기라는 것은 곧 정령의 그릇이다.
정령은 실체가 없는 존재이므로, 한번 소환해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정령의 그릇을 마련해 주면 흩어지지 않고 계속 형체를 유지할 수 있다.
‘대충 알겠어.’
원래 정령마법은 주위 자연환경에 따라서 소환 가능한 정령이 정해져 있고, 소환해 놓은 정령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된다.
하지만 영기를 준비해 놓고 정령을 소환하면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계속 정령을 데리고 다닐 수 있으므로 주위 자연 환경과 무관하게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좋은데?’
이렇게 되면 정령마법의 단점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화산 지대에서 불의 정령을 소환하는 뻘짓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정령술사의 광휘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반쪽짜리 정령마법을 쓰게 될 뻔했군.’
퀘스트를 준 데이모스라는 존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정령마법의 마도서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고, 정령마법 사용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까지 선물해 줬으니 말이다.
‘계약자의 각성 퀘스트를 받아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민혁은 일단 짐을 챙겼다.
일단 정령마법의 기본적인 부분은 거의 다 이해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습득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냥 집에 돌아가서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공략위키 등을 확인한 뒤, 앞으로 어떤 정령을 소환해야 가장 도움이 될지 고민해 보면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도 잔뜩 벌었고, 좋은 무기도 얻었고, 정령마법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은 소득이 많다.’
만족감을 느끼며 서민혁은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동굴 밖으로 나오기 직전,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감각 강화, 청력 증폭.’
1레벨 생체마법인 감각 강화, 3레벨 생체마법인 청력 증폭을 사용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말소리도 들렸다.
‘북두성 길드!’
천지원이 이끄는 북두성 길드의 공략팀이 이 보스방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 * *
“정말 이런 곳에 보스방이 있을까?”
“해외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니까요!”
부하의 말을 듣고, 천지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해외는 해외고, 여기는 여기지.”
“어쨌든 분화구 근처에 보스방이 있었던 사례가 보고된 건 사실이니까, 한번 찾아보자고요.”
“흠…….”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보스 퀘스트가 발생하는 구역은 찾을 수 없었다.
부하 말대로 분화구 주위를 탐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다들 조심해! 용암에 발이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네, 팀장님!”
이번 화산지대 공략에 앞서, 공략팀은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다들 화염 내성이 있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고, 다른 방어구도 열기에 강한 것을 장비했다. 다들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장비들이다.
물론, 멤버들도 다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천지원은 이 공략팀이라면 41번 무한서고를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팀장님!”
“뭔데?”
“저쪽 아래에 동굴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동굴?”
정말로 보스방이 여기에 숨겨져 있던 걸까.
천지원은 다급히 그쪽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윽……!”
쿠쿠쿠쿠…….
갑자기 주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보스가 출현하려는 걸까.
다급히 주위를 둘러 봤지만, 딱히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화, 화산이 폭발하려는 것 같아요!”
“뭐, 뭐라고?!”
분화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용암이 넘실거리는 게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다들 도망쳐! 도망치라고!”
천지원은 다급히 소리쳤다.
“화산이 폭발하면 다 죽어! 다들 망토 뒤집어쓰고 있는 힘껏 도망쳐……!”
* * *
41번 무한서고 출입구 근처.
그곳에는 땀범벅이 된 북두성 길드 멤버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다들 무사하냐?”
“네, 다친 사람도 없습니다.”
“젠장, 결국 별거 아니었네.”
“그러게요. 금방 폭발할 것처럼 용암이 솟구치더니.”
저 멀리 있는 화산을 쳐다보며, 그들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런 그들의 옆을 서민혁은 미리 준비해 온 후드티 스타일 방어구를 뒤집어쓰고 지나갔다.
‘얼굴 가릴 수 있는 걸로 준비해 오길 잘했네.’
샐러맨더와 싸우다가 ‘실버스미스 아머 Ver.F’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예비 방어구를 인벤토리에 넣어 왔다.
덕분에 북두성 길드에게 들키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찍히면 좀 곤란하니까 말이야.’
북두성 길드가 점찍어 놨던 보스 퀘스트를 가로채 버렸다.
당연히 북두성 길드는 서민혁에게 원한을 갖게 된다. 지난번 39번 퀘스트에서도 그랬다는 걸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빽도 없는 서민혁 입장에서는 국내 4위 길드인 북두성 길드와 부딪히는 건 피하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다.
‘어쨌든…….’
서민혁은 살짝 지퍼를 내리고, 품 안에 숨겨 놓은 걸 확인했다.
지금 서민혁의 옷 안에는… 작은 붉은색 도마뱀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게 불의 정령… 샐러맨더란 말이지?’
샐러맨더.
아까 싸웠던 볼케이노 샐러맨더 같은 몬스터가 아니라, 정령으로서의 샐러맨더였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엄밀히는 다른 존재라 한다.
생김새는 비슷하긴 해도 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뭔가 신비한 기운도 느껴져서 확실히 몬스터하고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네.’
북두성 길드의 접근을 눈치챈 서민혁은 즉각 정령마법의 진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미 많이 읽어 둔 상태였기 때문에 금방 정령마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령술사의 광휘를 사용해 샐러맨더를 소환했다. 아까 보니 영기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면 실력이 미숙해도 정령을 쉽게 소환할 수 있다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기 재료 때문인지, 마력 +50 때문인지, 해석 능력으로 마법을 빨리 이해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화산 지대라 불의 자연력이 강했기 때문인지… 서민혁은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금방 소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샐러맨더에게 명령을 내려, 마치 지금 당장 화산이 폭발하려는 것처럼 용암을 솟구치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북두성 길드는 다급히 도망쳤고, 서민혁은 유유히 동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불의 정령을 소환하긴 했는데… 뭐 괜찮겠지.’
원래 계획은 집에 가서 마도서를 읽으며 열심히 공부한 뒤, 어떤 정령이 좋을까 면밀히 검토하여 소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소환해 버렸다.
다음 영기 재료를 얻을 때까지는 한동안 이 녀석만 써먹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필드의 자연력을 이용한 일시적 소환이라면 다른 정령도 불러낼 수 있겠지만.
‘불의 정령이니까, 파이어 볼 같은 것도 쓸 수 있겠지?’
파이어 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서민혁이었다.
* * *
샐러맨더는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별수 없이 몰래 숨겨서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예전에 키우던 햄스터용 케이지가 어디 있더라…….”
창고에서 낡아빠진 케이지를 꺼내 샐러맨더를 집어넣었다.
정령이라고는 해도 일단 지금은 실체를 지닌 생물 같았다.
먹이를 줘야 하는 건지는 정령마법 마도서를 뒤적이면서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오빠, 걔 뭐야?”
“……!”
케이지를 방으로 들고 가는 도중에 서은하한테 들켜 버렸다.
“와, 귀엽다, 이거 도마뱀이야?”
“어, 맞아.”
“이렇게 빨간색 도마뱀도 있었나? 나 좀 만져 봐도 돼?”
“안 돼. 예민한 놈이야.”
동생의 손을 쳐 낸 뒤, 서민혁은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가 집에 없을 때는 내가 먹이 줄게!”
“공부나 해!”
서민혁은 방문을 쾅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집이 아니라 사무실에 갖다 놔야 할 것 같았다.
“…나도 공부나 하자.”
책상에 앉아 정령마법의 이해를 읽기 시작했다.
정령마법은 생체마법처럼 체계적으로 1레벨에는 무슨무슨 마법, 2레벨에는 무슨무슨 마법 이렇게 나눠져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레벨이 오를수록 정령에 대한 친화력, 지배력 등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아, 정령마법은 4레벨에 도달하면 영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4레벨에 도달하면 다른 정령도 영구 소환이 가능한 모양이다.
하지만 영기라는 것은 소환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4레벨 상태여도 최대 2개까지밖에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쨌든 4레벨이 되면 한 마리 더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거군.’
물의 정령 같은 걸 추가로 소환하면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민혁은 계속 마도서를 읽었다.
‘그래, 이게 정령마법의 진리…….’
이미 볼케이노 샐러맨더의 동굴에서도 많이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카발라 진리어 특유의 감각을 느끼면서 서민혁은 점점 마도서에 빠져 들어갔다.
* * *
“후우…….”
정신없이 마도서를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샐러맨더는 아까 잠든 것 같더니 어느새 일어서서 혼자 뒹굴거리며 놀고 있다. 움직이는 게 마치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 같았다.
“좋아.”
서민혁은 의자에서 일어선 뒤, 케이지에서 샐러맨더를 꺼냈다.
‘뭐예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샐러맨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실전 연습 좀 해 보자고.”
정령마법의 본격적 활용.
비로소 마법사다운 공격마법을 써 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