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로 (2)
[애벌레 식물 퇴치]
* 퀘스트 랭크: D
* 퀘스트 내용: 퀘스트 보스인 라바 플랜트를 처치하라.
* 클리어 보상: 100만 크레딧, 봉인 마도서 획득.
* 특별 보상: 5분 이내에 라바 플랜트를 처치할 경우 ‘마도사의 광휘’ 획득.
# 본 퀘스트는 탐색자에 의해 클리어된 시점에서 소멸됨.
D랭크 퀘스트이고, 클리어 보상은 고작 100만 크레딧.
이것만 보면 보스 퀘스트치고는 정말로 쉬운 편이다.
하지만 특별 보상이 문제였다.
‘5분 이내?’
서민혁은 라바 플랜트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크기는 10미터 정도이고, 딱히 맷집이 약해 보이지도 않는다.
저걸 이 고블린 대거로 5분 이내에 죽일 수 있을까?
‘어려워.’
원래 서민혁은 차근차근 체력을 깎을 계획이었다.
식물도감에 적혀 있던 라바 플랜트의 성질을 감안하여 움직이면서, 최대한 안전하고 확실하게 승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당초 서민혁이 생각하고 있었던 소요 시간은… 적어도 20분 이상.
‘맹독이 터져 주는 걸 기대하기도 어렵고.’
보스 몬스터들은 대부분 상태 이상 내성을 지니고 있다.
맹독이 터질 확률은 30%가 아니라 10% 미만이 될 것이다.
만약, 내성 랭크가 높다면 아예 안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특별 보상이라는 ‘마도사의 광휘’, 이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튜토리얼에서 입수한 탐색자의 광휘는 모든 능력치에 10포인트씩 보너스를 줬어.’
탐색자의 광휘를 라이브러리 건틀릿에 설치한 결과, 평범한 청년이었던 서민혁은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뛰어난 육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니 마도사의 광휘도 분명 서민혁에게 어마어마한 특전을 부여할 것이다.
‘특히 마도사라는 게 신경 쓰여.’
이런 이름이 붙어 있는 아이템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마도사의 광휘라는 이름인데 근력이나 체력을 올려 줄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마법과 관련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몰라.’
무한서고는 마법 문명에 의해 만들어졌고 마도서도 숨겨져 있다.
하지만 헌터 중에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수한 장비를 사용해 마법 같은 능력을 쓰는 헌터는 있지만, 게임 속 마법사처럼 맨손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헌터는 전무했다.
‘어쩌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서민혁은 머리를 흔들어 그 상상을 지워 버렸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너무 큰 기대감을 갖고 있으면 나중에 실망하기 쉽다.
‘어쨌든, 저걸 얻어 봐야 한다.’
이 보스 퀘스트는 한번 클리어하면 두 번 다시 도전할 수 없다.
그러니 저 마도사의 광휘를 얻을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서민혁은 도전해 보고 싶었다.
‘여기서 물러서고 더 강해진 다음에 재도전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다른 헌터들이 내 흔적을 따라 여기로 들어와서 보스를 토벌할지도 몰라.’
서민혁은 마음을 굳혔다.
5분 안에 보스 토벌,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쉬이이익!
라바 플랜트가 움직였다.
애벌레 같은 ‘다리’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 하지만 머리 쪽에 나 있는 촉수의 움직임이 빠르다.
“……!”
서민혁은 반사적으로 고블린 대거를 휘둘렀다.
촉수를 잘라 내려 했지만, 아까 만났던 다른 식인식물의 촉수처럼 쉽게 잘리지 않았다.
게다가.
뚝!
운 나쁘게도 고블린 대거가 한 방에 망가졌다.
반대편 손에 남은 고블린 대거로 반격하려 했지만 촉수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인벤토리에서 다음 고블린 대거를 꺼낼 여유가 없어!’
이러다가 지금 들고 있는 한 자루까지 부러지면 위험하다.
서민혁은 최대한 적에게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라바 플랜트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쉬이이익!
대여섯 개의 촉수를 동시에 날려 서민혁을 완전히 제압하려 했다.
그 순간 서민혁의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땅을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 몸을 날려 거리를 벌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특별 보상을 얻으려면… 이거다!’
서민혁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촉수가 서민혁의 다리와 몸통을 휘감아 버렸다.
“……!”
서민혁의 육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먹잇감을 포식하기 위한 잎이, 마치 맹수의 입처럼 입을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민혁은 무방비한 상태로… 그 입 안으로 떨어졌다.
스스슥!
파리지옥처럼 잎이 닫히면서 서민혁을 집어삼킨다.
서민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조여 대면서 소화액을 분비하기 시작한 그 순간.
푹!
라바 플랜트가 움찔했다.
푹! 푹! 푹!
계속해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라바 플랜트가 고통을 느끼는 듯이 몸을 떨었다.
마치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푹푹푹푹!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
스무 번 이상 반복된 그 소리가 끊긴 순간, 라바 플랜트가 닫혀 있던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소화액을 뒤집어쓴 채, 서민혁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무리 내성이 있다고 해도…….’
숨을 헐떡이면서 서민혁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쩍 벌려져 있는 라바 플랜트의 포식용 잎 안에는… 스무 개가 넘는 고블린 대거가 꽂혀 있었다.
‘스무 개가 넘는 고블린 대거가 몸에 박혀 있다면……
맹독이 터질 수 있겠지!’
포식용 잎은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한 기관이다.
당연히 촉수나 몸통에 비해 방어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블린 대거는 쑥쑥 잘 들어갔다.
‘앞으로 몇 분이나 남았지?’
시간을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서민혁은 마지막 남은 고블린 대거를 꺼내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푸욱!
포식용 잎 한가운데에 꽂혔다.
그 직후, 계속 꿈틀대던 라바 플랜트가 몸을 경직시켰다.
맹독 때문에 입은 대미지가 한계에 도달한 걸까, 아니면 마지막 한 방에 맹독이 중첩된 걸까.
마침내 라바 플랜트가 시들어 버린 화초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애벌레 식물 퇴치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100만 크레딧을 획득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봉인 마도서를 획득합니다.]
[특별 보상으로 ‘마도사의 광휘’를 획득합니다.]
윈도우가 표시되며 퀘스트 클리어를 축하해 줬다.
하지만 서민혁에게 기쁨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윽…….”
얼굴에서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몸통은 실버스미스 아머 덕분에 피해가 없었지만, 노출되어 있던 얼굴 등은 피부가 녹아내린 상태였다.
‘더는 못 버티겠어.’
서민혁은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하나 꺼냈다.
A랭크 상처 치료 포션을 10개 만든 뒤, 남은 재료로 만들어 놨던 B랭크 포션이었다.
그것을 입에 대고 원샷한 순간, 육체의 재생 능력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마치 특수 분장을 한 것 같았던 얼굴 피부가… 서서히 재생되었다.
‘식물도감에 적혀 있던 대로… 라바 플랜트가 먹잇감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다행이야.’
서민혁은 1분에서 2분 정도라면 라바 플랜트가 자신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
그사이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대거를 있는 대로 꺼내서, 포식용 잎 안쪽의 부드러운 부분에 박아 넣은 것이다.
위장에 구멍이 뚫린 셈이니 상당한 대미지가 될 것이고, 맹독이 터져 준다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결과… 목표로 했던 시간 안에 보스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온몸의 통증이 가시는 걸 느끼며 서민혁은 고개를 들었다.
클리어 보상인 100만 크레딧은 자동으로 입금되었다.
지금 서민혁의 눈앞에는… 마도서 하나와 보석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일단 마도서부터…….’
서민혁은 조심스럽게 마도서를 확인했다.
중후한 분위기의 표지에는 기초 마도어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기초 생체마법 입문…….’
마도서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회귀하기 전에도 해석학자로서 꽤 많은 숫자의 마도서를 접해 봤었다.
물론, 기초 마도어로 적혀 있는 제목을 읽을 수 있었을 뿐,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번 볼까.’
긴장감 속에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은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윽!’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적혀 있는 마도 언어가… 서민혁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정말로… 마도 언어는 힘을 지니고 있어.’
서민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했다.
마도서는 카발라 진리어라는 마도 언어로 적혀 있었다.
‘읽을 수 있다. 이해가 된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회귀하기 전에는 단어 몇 개 정도만 해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마법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서민혁은 지금 자기 힘으로 마법을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마 마도 문명 사람들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을 거야.’
마력.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힘, 에너지.
기초 생체마법 입문은 그걸 사용하는 걸 전제로 마법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마력은 어떻게 얻지?’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마도서를 읽어도 마법을 쓸 수 없는 건가.
‘아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무협 소설에서 내공을 갖추는 것처럼 마력을 얻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무한서고를 뒤지다 보면 마력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실망하기에는 이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서민혁은 마도서를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여기서 끝까지 읽을 수는 없으니, 나중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차분히 읽어 볼 생각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었지.’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보석.
특별 보상인 마도사의 광휘를 확인해야 한다.
‘어디 보자.’
서민혁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마도사의 광휘]
* 랭크: A
* 마력에 +20 보너스.
* 소모성 아이템.
마력에 +20 보너스.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
다급히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서민혁]
* 근력: +10
* 체력: +10
* 민첩: +10
* 감각: +10
마력이라는 수치는 어디에도 없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
서민혁은 침을 삼키며 마도사의 광휘를 건틀릿 액정으로 가져갔다.
[‘마도사의 광휘’를 설치합니다.]
마도사의 광휘가 적용되는 걸 확인한 뒤, 곧장 스테이터스를 다시 열어 봤다.
그리고 서민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민혁]
* 근력: +10
* 체력: +10
* 민첩: +10
* 감각: +10
* 마력: +20
마력이라는 수치가 새로 생겼다.
그리고 ‘+20의’보너스가 적용되었다.
“이거야……!”
마법 사용을 위한 필수 조건.
서민혁은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