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이거 공부해 봤자 돈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하다. 그냥 다른 걸 해라… 그렇게 말씀하셨지.”
20년 전에 은사(恩師)에게 들었던 말.
서민혁은 그 말을 떠올리며 차디찬 연구실에서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그때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실패한 삶이었다.
뭐 하나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은행계좌도 텅텅 비었다.
정부에서 지원해 줬던 이 연구실도 내일이면 비워 줘야 한다.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아무 실적 없는 놈한테 계속 세금을 지원해 줄 수는 없다.
“해석학 따위를 연구하는 게 아니었어.”
서민혁은 해석학자였다.
물론, 수학의 해석학도 아니고 철학의 해석학도 아니었다. 기독교의 성서해석학은 당연히 아니었다.
서민혁이 연구하는 건 마도해석학이었다.
세계 각지에 출현하기 시작한 던전 ‘무한서고(無限書庫)’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해석하는 것.
그것이 서민혁이 하는 일이었다.
“그냥 헌터가 되었어야 하는데.”
해석학자는 냉대받는 직업이었다.
20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무한서고를 탐색하는 ‘헌터’들은 까막눈 상태에서도 잘만 실적을 냈다.
무한서고 내부에 존재하는 온갖 몬스터와 함정을 돌파하고, 다양한 물건들을 가져와 떼돈을 벌었다.
“언젠가는 무한서고에서 볼 수 있는 10여 가지 언어를 모조리 해독해서,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서민혁의 책상에는 무한서고에서 가져온 마도서 하나가 놓여 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봐도 단어 몇 개만 알아볼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20년 동안 공부했는데, 영어를 배운 지 일주일 된 학생 수준의 독해 능력밖에 없다.
이게 마도해석학의 현주소이다.
“그래, 나는 샹폴리옹이 아니었던 거지.”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그는 천재적인 발상으로 로제타 석의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해 낸 인물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로제타 석에 새겨진 글자가 그냥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 문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샹폴리옹은 그것이 발음을 나타내는 표음 문자일 수도 있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해냈고, 그 결과 수천 년 동안 잊혀 있었던 이집트 상형 문자의 해독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서민혁은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언젠가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라서 온갖 마도 언어를 모조리 해석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서민혁은 샹폴리옹이 아니었다.
샹폴리옹 이전의 학자들처럼, 헛다리만 짚었다.
“젠장…….”
욕설을 퍼부으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난방도 없는데 이렇게 과음한 채 잠들어 버리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대로 잠든 채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 정도로 서민혁은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내 20년은… 대체…….”
헛수고만 한 20년을 후회하면서.
서민혁은 오래된 마도서를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 가는 서민혁 아래에서, 마도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