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전망 [Prediction]
시국은 한동안 가만히 사단장을 바라봤다.
전시안 스킬이 사단장에 관한 정보들을 시국에게 샅샅이 찾아내 전달해 주었다.
그 어디에도 예언이니 신기니 하는 건 없었다.
그저 전투감각 스킬 등급 B급의 사수 계열 초인이라는 정보만이 그에게 전달되는 전부였다.
“디텍터 스킬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인의 스킬로는 초인의 능력과 별개인 초능력에 대해 알아낼 수 없을 것이오.”
사단장의 말에 시국은 한약 같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넘겼다.
뇌까지 뒤흔드는 그 쓴맛에 어느 정도 시국은 정신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됐다.
“정체가 뭐지?”
시국의 물음에 사단장은 커피를 호로록 마신 후 천천히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초인으로 각성하기 전부터 내게 있던 초능력이오. 나도 기원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하오. 그저 어릴 때부터 상대방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당사자의 언급 없이도 습득할 수 있게 됐을 뿐이오.”
“……무당 같은 건가?”
“무당이라……. 그 단어도 상당히 오랜만에 듣는 것 같소. 아마 그럴지도 모르오.”
“별 인간을 다 만나게 되는군.”
“아직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오.”
시국은 잠시 사단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하는 법을 아는, 자신의 무력이 한참 아래임을 알고 숙일 줄도 아는 이 강화도의 지배자에게서 시국은 알 수 없는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초인으로서의 무력을 초월한 어떤 정신적 강인함을.
“그래, 맞아. 난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야.”
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대에게서 처음부터 이질감이 느껴진다 했소. 분명 몬스터는 아니고 나와 같은 인간임에 분명한데도 강하게 느껴지던 그 이질감이란…….”
“그래서 총질을 한 건가?”
“그건 아니오. 단지 내 부하들을 두들겨 패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 뿐. 아, 그리고 그대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은데 정말로 내 부하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소.”
“……당신은 아까 이야기했었지. 부하들이 죽는다면 그 영혼이 당신에게 작별을 고하러 올 거라고. 그것도 초인의 능력과 무관한 초능력인가?”
“그렇소.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부하들과 나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묶여 있소. 그들 중 하나가 죽는다면 내가 반드시 그 죽음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도록 말이오.”
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섬의 지배자가 미스테리한 초능력의 소유자건 뭐건 시국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문제는 됐고. 그래서, 왜 나한테 그렇게 포격을 가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 거지? 뭐가 두려워서?”
그 물음에 사단장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몇 달 전부터 사람의 모습을 한 괴생명체가 섬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소. 단순하게 사람의 얼굴을 한 놈들이 아닌, 아예 외형 자체가 사람의 모습인 것들이었소.”
수 개월 전부터 강화도 일대에 인간형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들은 그저 섬 주변 해안을 날아다니며 농부들과 군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는 놈들을 경계했지만, 두세 달 정도를 그렇게 대치만 하고 있다 보니 병사들의 대비태세가 다소 소홀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소. 그리고 그때부터 놈들은 공격을 시작했고 말이오.”
병사들이 안일해지고, 농부들이 더 이상 인간형 몬스터들을 신경 쓰지 않기 시작할 무렵, 그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놈들은 아주 약아빠진 것들이었소. 무방비 상태의 농민들만 골라서 잡아가기 시작했지.”
그렇게 1개월 전부터 인간형 몬스터에 의한 납치만 다섯 건이 발발했다.
“하지만 놈들이 간과한 게 있었소. 우리가 중화기로 무장한 군사조직이라는 것 말이오.”
이후 인간형 몬스터가 나타나면 군은 대공포와 레일건을 비롯한 중화기로 그들을 요격했다.
“아마 그대가 까마귀의 등에 타고 있던 것을 감시병이 확인한 모양이오. 상식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만큼 대공포 선제공격을 한 게 아닌가 싶소.”
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것들은 요즘도 나타나나?”
“사흘 전에도 나타났었소. 다행히 우리 쪽 선제 사격으로 인해 영역 근처로는 오지 않았지만…… 최근 농업 생산량 증대 계획과 관련해 이런저런 복잡한 행정적 사안이 쌓인 상태에서 여러모로 신경질을 긁는 사안이 아닌가 싶소.”
“흐음…….”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이곳에 온 까닭은 무엇이오? 그대의 정체가 다른 세계의 인간이라면, 분명 이 세계에 왔을 때에는 목적이 있을 것인데 혹시 그 목적에 우리 사단이 포함돼 있는 것이오?”
“목적? 흐음…… 목적이라…….”
시국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목적이라…… 목적이라기보단 이유가 더 타당한 단어긴 하겠지만…… 이유…… 목적…….’
진실을 보여 주겠다던 어둠의 이야기.
그러나 시국이 이 세계에 와서 본 거라곤 몰락한 인류 문명과 그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자들, 그리고 시국이 살던 시대에는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의 존재였다.
‘세상이 망해도 인간은 어찌어찌 살아간다, 뭐 그런 건가? 그런 진실을 보여 주려고 날 이곳으로 끌고 온 건가?’
어쩌면 미래에 비슷하게 벌어질 수도 있을 일에 대한 대비를 하라는 것이 어둠의 목적일지도 몰랐다.
‘근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당장 내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시국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시커먼 어둠이 내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주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신적 존재로서의 어둠은 없었다.
시국이 침묵하자 사단장도 침묵했다.
홀로 총기로 무장한 다수의 군인을 상대하면서도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며 사단장은 그가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란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의외로 말이 통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조용히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품었다.
하지만 막상 시국이 침묵하자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한참 후, 커피가 다 식었을 무렵 시국이 다시 사단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여기에 사람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와 본 거야. 그뿐이야. 그냥…… 어디든지 지금은 마구잡이로 가 보는 거야.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머……”
사단장은 시국에게 며칠 머물다 갈 것을 권하려 했다.
비록 첫 만남이 폭력적이었다곤 해도 결과적으로 시국이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는 걸 안 시점에서, 그의 강한 무력은 충분히 탐이 나는 것이었다.
쾅-!
하지만 갑작스럽게 외부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공습! 공습입니다, 사단장님! 공습입니다!”
급하게 뛰어들어 와 소리치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관측 장교의 행동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장 먼저 시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이어 사단장이 따라 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끼요오오옷-!”
공중을 날아다니며 땅 아래로 둥근 불덩어리를 던지는 인간형 몬스터 열다섯과 그 아래에서 엉망이 된 진지를 고치다 말고 다시 총기로 무장해 발포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아무래도 외곽경비대대가 와해된 틈을 타 본부로 바로 온 모양이오.”
사단장이 권총을 꺼내 인간형 몬스터에게 발사했다.
총알은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수십 개로 산화하며 인간형 몬스터 하나를 덮쳤다.
“끼에에엑!”
인간형 몬스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놈에게 병사들의 무차별 사격이 집중됐다.
“끼요오오옷-!”
쾅-!
그사이 또 다른 한 놈이 병사들의 머리 위로 불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병사들 중 일부가 그대로 몸에 불이 붙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사단장은 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시국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그리고 사단장은 볼 수 있었다.
허공에 높이 도약한 시국이 인간형 몬스터 하나의 머리통을 깨부순 후 놈의 몸을 밟고 다른 놈에게로 도약하고 있는 모습을.
* * *
2033년 8월 14일 20시 31분.
광화문 외교부 청사.
장관실.
“일단 우리 쪽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베이징파를 따르는 건 인민해방군 중 중부전구뿐이에요. 동부전구는 상하이방을 따르고 있고, 나머지 남부전구와 서부전구 그리고 북부전구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정연의 말에 외교부 장관 한창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리커바오 주석과 당 지도부는 급하게 상하이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어요. 현재 베이징파는 베이징과 그 주변을 장악한 채 언론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허베이성 내부 정도나 겨우 장악했다는 게 중론이에요.”
“고맙습니다, 협회장님. 앞으로도 계속해서 중국 쪽 상황을 예의주시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창명의 말에 여정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창명의 시선이 이번에는 이동석에게로 향했다.
이동석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청와대 쪽에서 따로 누구와 연락을 하거나 접선하는 정황은 없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 대사와 종종 총리가 만나곤 했는데 최근에는 아예 전화 통화조차 안 되는 모양이오.”
“미 대사 쪽은 이미 우리 외교부가 손을 써 뒀습니다.”
“손을 써 두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어차피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외교 정책은 외교부를 통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적당히 미국에게 관망을 요청하니 그쪽에서도 군말 없이 수긍했습니다. 뭐, 아무래도 최근 백악관의 행보가 상당히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한창명의 말에 이동석과 여정연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그에게서 들을 것도 없이, 최근 외신 특히 영미권 언론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의 대외 정책 기조가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은 어떤 비밀도 아니었고 단순한 썰도 아닌, 기정사실이었다.
“하긴 뭐 꼭 미국만 그런 건 아니지. 아프리카 원정 이후로 전 세계의 외교부가 다 보수적으로 변해버렸으니…….”
핵심 전력이라 할 만한 헌터들이 모조리 몰살당해버린 아프리카 원정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의 던전 안보조차도 제대로 지키기 힘들 지경이 됐다.
미국조차도 C급 던전 하나 잡는데 연방군이 동원될 정도였다.
당연히 국내적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외 정책이 예전처럼 개입 일변도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베이징파가 그걸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걸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떠한 외세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었기에 여정연과 이동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문제는 우리도 외적으로 특정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 만큼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겁니다.”
이동석과 여정연이 한창명을 바라보았다.
“재벌들을 말하는 건가요?”
여정연의 물음에 한창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명이 이동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삼화 용재형 회장께서는 여전히 칩거 중이십니까?”
“일단 표면상으로는, 그렇소. 칩거 중이시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장고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소.”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용재형 회장은 한때, 이시국 사무총장이 이 나라를 장악하기 전에 이 나라를 배후에서 조종하던 거물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이시국 사무총장에게 권력을 빼앗겼다지만 삼화 그룹이 3대에 걸쳐 쌓아 놓은 영향력 자체는 여전하지 않겠습니까?”
이 또한 맞는 말이었기에 여정연과 이동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은 특별하게 삼화 그룹의 자금이 움직이는 정황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용 회장님께서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계시겠지만, 당장에 우리가 대응해야 할 일은 없다는 거죠.”
여정연의 말에 이동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맞는 말이오. 선대 회장님과는 달리 용 회장님은 이런 쪽으론 신중한 분이시지.”
두 사람의 말에 한창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넘겼다.
“하지만…… 언제고 용 회장께서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우리는 거대한 적과 싸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투에서 은근한 무언가를 느낀 이동석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기라도 할 거란 말이오?”
한창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린다면 한시름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