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전망 [Outlook for]
2033년 8월 13일 토요일 새벽.
베이징으로부터 급보가 비밀리에 세계 각국 외교부로 날아들었다.
<공산당 베이징파에 의한 쿠데타 발생>
각국 정부는 서로의 시간대와 무관하게 급하게 외교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열었고,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실시간 첩보를 받아보며 대책을 논의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리커바오 주석의 파벌을 지지해 주던 류야오방이 죽고 중국 초인협회가 무력해진 이상 이미 예견된 일이야. 혹시 모를 난민 유입이나 차단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지.”
무르만스크에 나타난 B급 던전 클리어를 위해 모스크바를 비워두고 있던 이반 이바노프는 급하게 화상회의를 개최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총리와 외무장관, 국방장관, 내무장관에게 지침을 하달했다.
러시아의 결정은 관망과 러중 접경지 경계 강화였다.
이는 주변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방과 베이징파가 결국 충돌한 모양입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리커바오 주석과 지도부는 상하이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베이징 주재 대사관 및 주요 도시 소재 영사관을 통해 중국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을 체크하는 것뿐입니다.”
“미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백악관에서 지금 스미스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있다고 하니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7함대는?”
“긴급 출동 준비만 했을 뿐입니다.”
“이상하군요……. 일단 미국에서 행동을 보이면 보고하십시오.”
일본은 미국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
* * *
“대통령님. 지금 당장 태평양 함대를 대만해협 쪽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뭘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는 거요?”
“급한 일이니까, 급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기다려 보시오. 자칫 군대를 잘못 움직였다가 러시아라도 개입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 아니오?”
“러시아는 지금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할 여력이 안 됩니다.”
“확정 사안이오?”
“확정 사안입니다. 지금 러시아는 무르만스크에 나타난 던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해외에 군사 개입을 할 여력이 안 됩니다.”
국방장관의 말에 조나단 스미스는 팔짱을 꼈다.
“그럼 우리는 여력이 됩니까?”
그 말에 국방장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말을 아끼고 있던 국무장관과 CIA 국장도 흠칫하며 조나단 스미스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통령님?”
국방장관의 물음에 조나단 스미스가 다리를 꼬며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요. 지금 우리가 중국의 상황에 개입할 여력은 되냐는 거요.”
“중국과 전면전 혹은 국지전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무슨 비상 상황을 말하는 거요?”
“대만이나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 해군의 공격입니다.”
조나단 스미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전 세계가 아프리카 해방 전쟁의 여파로 흔들리고 있소. 국방장관의 말마따나 러시아가 아시아에 개입할 여력이 없듯, 우리 또한 중국에 개입할 여력이 없소. 마찬가지로 중국도 당장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대만이나 일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이유가 없소. 여력도 없을 것이고.”
“…….”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태평양 함대를 동중국해로 이동시킨다는 건 자칫 군사적 도발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소.”
“…….”
“어쩌면 쿠데타 세력과 리커바오 주석이 빠르게 손을 잡고 우리를 상대할 수도 있고 말이오.”
조나단 스미스가 물을 한 모금 쭉 들이켰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지켜보고만 있자, 그 말씀이십니까? 베이징파와 상하이방이 싸우며 중국이 자체적으로 국력을 고갈시키도록?”
국방장관의 말에 조나단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장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동안 회의실 내부에 침묵이 내렸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국방장관이 승복하자 조나단 스미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저 물을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중국의 동태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오. 섵부른 군사적 행보는 보이지 않아야 하오. 이것을 명심하고 각자 위치에서 당분간 정보 수집에만 열을 올려주시기 바라오.”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선 이상 장관급들이 계속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국방장관과 국무장관 그리고 CIA 국장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조나단 스미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회의실을 나온 조나단 스미스는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비서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그는 집무실에 자기 혼자 있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비서와 경호원은 가볍게 그에게 묵례한 후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총회장은 뭐라고 하였소?”
조나단 스미스가 눈을 감은 채 허공에다 대고 말했다.
그 순간,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총회장 비서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볍게 조나단 스미스의 커피잔을 빼앗아 들어 한 모금 들이켠 후 가볍게 인상을 쓰며 거기다 각설탕 2개를 더 넣었다.
“달게 드세요. 미합중국 대통령 자리는 당분이 많이 필요한 자리니까요.”
“…….”
“총회장께서는 중국이 조금 더 혼란스럽기를 바라세요. 그래야지 그 에너지가 그분을 강하게 하니까요.”
조나단 스미스가 가만히 다리를 교차한 채 팔짱을 끼곤 총회장 비서를 바라봤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이오. 총회장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오?”
그 물음에 총회장 비서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아주 아름답고 훌륭하시며 우리 모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뭐랄까 이상적인 메시아와 같은 분이랄까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메시아라기에는…… 세상을 너무 혼란으로 몰아가시는 것 같…… 허어억!”
조나단 스미스가 눈을 부릅뜨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잘 뛰던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추며 기능을 정지했다.
아주 짧은,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고통받기에는 충분했다.
총회장 비서가 차갑게 식은 표정을 지은 채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조나단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대통령님. 당신이 총회장님과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총회장님께서 앞으로 다가올 제국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 당신을 지명한 만큼 그에 합당한 예우를 보이시죠.”
“크허어…… 허어…… 허억…….”
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조나단 스미스는 총회장 비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차갑고도 이글거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며 조나단 스미스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은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당분간은. 조만간 때가 되면 총회장께서 알아서 조치하실 테니까요.”
“그렇게 알고 있겠소……. 조금 전의 실언은…… 사과 드리오…….”
“사과는 나중에 총회장님께 직접 하시길.”
* * *
“호오?”
저 멀리, 강화도가 눈에 들어오자 시국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까악-!
까마귀도 시국의 반응에 공명해 한 차례 짧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마을보다는 군부대에 가까운 모습이긴 한데…….”
마치 군부대처럼 모래주머니와 철사로 만든 차단벽과 그 배후의 참호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막사와 무기고, 대공포 등은 멀리서 보아도 상당히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차단벽 너머로 수 킬로미터 정도 퍼져 있는 논밭에선 군인들의 감시하에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가장 양호한 수준의 문명 집……”
쾅-! 쾅-! 쾅-!
3발의 포성이 울렸다.
진원지는 군부대 내부에 배치돼 있는 3문의 대공포였다.
까악-!
까마귀가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회피기동을 했다.
다행히 까마귀와 부대 사이의 거리가 꽤 됐기에 포탄에 피격당하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새끼들이!”
시국은 그대로 까마귀 등에서 뛰어 내렸다.
쾅-! 쾅-! 쾅-!
또다시 3발의 포성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시국의 전투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되었고, 그의 오감에 포탄의 궤적이 잡혔다.
시국은 그대로 포탄 하나를 발로 밟고 도약한 후 최대한 대공포에 가까운 위치로 수직 하강했다.
“요격! 요격!”
“낙하! 낙하!”
군인들이 소란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쿵-!
그런 그들 사이로 시국이 떨어져 내렸다.
철컥-!
순식간에 군인들이 시국을 둘러싸며 그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적외선 탐지기 On!”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흙먼지 너머를 보기 위해 적외선 탐지기를 켰다.
그리고 그 순간,
퍽-!
“끄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습격! 습격! 습격!”
지휘관이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에에에에에에엥-!
곧 부대 전체에 긴급 공습 알람이 울려 퍼졌다.
그러는 사이 대공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가 제압당해 땅에 뻗어버렸다.
“습격! 습격! 습…… 컥!”
끊임없이 습격만 외치던 지휘관의 목을 시국이 한 손으로 잡았다.
지휘관과 시국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국은 천천히 지휘관을 들어 올렸다.
지휘관의 눈이 죽음의 공포에 침식돼 갔다.
“미쳤어?”
그런 지휘관을 향해 시국이 내뱉은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크허억…… 습…… 겨어어……”
곧 지휘관은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었다.
축 늘어진 지휘관의 몸뚱아리를 그대로 바닥에 집어던진 후 시국은 주위를 둘러봤다.
점차 걷히기 시작하는 흙먼지 속에서 족히 15명은 돼 보이는 병사들이 쓰러진 모습을 보며 시국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시작부터 주먹질하게 만들고 있네.”
시국은 인상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귀로, 눈으로 바삐 움직이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와 총기 클립 소리가 들려왔다.
‘원자화.’
시국은 그대로 원자화 스킬로 모습을 감춘 후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병사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본 것은 바닥에 쓰러진 제3 대공포 소대 소대원들뿐이었다.
“생존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병사들이 지휘자에게 제3 대공포 소대 소대원들의 생존을 알리는 것을 주위에서 지켜보던 시국은 가만히 허공으로 떠올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장교로 보이는 자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후 시국은 곧장 부대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막사로 이동했다.
“까마귀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정확하게 사람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에 가까운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3 대공포 소대를 전멸시켰고?”
“네. 다행히 소대원은 전원 생존했습니다.”
“그것의 소재는?”
“현재 탐색 중입니다.”
“그래, 나가 봐. 나는 사단장님께 연락해 봐야겠어.”
젊은 장교가 늙은 장교에게 거수경례를 한 후 막사 밖으로 나갔다.
늙은 장교는 통신병을 불러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려 했다.
“사단장님한테 연…….”
하지만 늙은 장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쪽이 여기 책임자야?”
통신병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시국이 늙은 장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놈인가? 까마귀에서 떨어졌다는 것의 정체가?”
“그쪽이 여기 책임자냐고.”
“……도대체 네놈의 정체는 뭐지?”
그 순간, 시국이 통신병의 어깨를 타고 넘어와 늙은 장교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대로 시국은 늙은 장교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늙은 장교는 살짝 움찔하기만 했을 뿐, 공포에 질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시국은 피식 웃었다.
“계급장을 보아하니 중령 같은데…… 아직도 옛날 군 계급 체계가 쓰이나 보지?”
“네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나?”
시국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는 천천히 통신기를 작동시키려던 통신병과 굳은 표정의 늙은 장교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말해라. 네놈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
마치 죽음을 각오하기라도 했다는 듯, 늙은 장교가 비장한 어투로 다시 한 번 더 소리 질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시국이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니들이 다짜고짜 대공포로 때린 사람이지.”
그의 목소리는 장난기로 가득했다.
늙은 장교의 표정이 더 굳어갔다.
“자, 그래서. 그쪽이 여기 책임자야? 벌써 세 번째 물어보는 것 같은데. 네 번째인가?”
그리고 시국의 표정도 점차 싸늘하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