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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빌런의 인생2회차-176화 (176/200)

176 가공 [Big Ant]

큰 개미는 드루이드 노파의 말마따나 몬스터였다.

물론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다. 등급으로 치면 E급 정도.

사실상 고블린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약해 빠진 놈이었다.

다만 고블린과는 달리 집단행동을 한다는 점과, 특히 지하철같이 어두운 공간에서 기습적으로 노약자만 골라 공격한다는 점으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것뿐이었다.

당장 시국이 손봐 준 세 놈을 제외하고도 이미 다섯 놈이 백발의 노인, 별이의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상태였다.

“별아…… 네가 여기 어떻게?”

“아빠 사냥 갔던 거구나!”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별이의 부친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딸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별이는 눈물을 흘릴 법도 하건만,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국은 또 한 번 알 수 없는 그로테스크함을 느꼈다.

‘문명의 종말과 함께 인간의 감수성도 달라진 건가?’

뭔가 딸이 눈물을 흘려야만 할 것 같은 장면에서, 정작 당사자는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것이 영 시국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시국의 시선이 당혹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전시안.’

전시안 스킬이 발동되며 노인을 탐색했다.

‘C급 사수 계열 초인이군. 집중과 부동 스킬을 가진 걸 보니까. 근데 나이가…….’

전시안 스킬은 상대방의 정보를 샅샅이 시전자에게 알려준다.

디텍터 스킬이 상대 초인의 전투감각 스킬 등급만을 알려주는 것과는 달리, 상대 초인의 모든 스킬과 그 스킬의 세부적인 내용까지도 모두 알려 주는 게 전시안 스킬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안은 상대방의 개인적인 정보까지도 알려준다.

나이, 이름, 출신지 등등.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그런 자신의 개인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폐아나 일시적으로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경우 전시안 스킬론 그 사람의 이름이나 출신지, 나이를 알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백발의 노인은, 멸망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100살?’

시국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문명 수준이 원시인급으로 전락했는데 무슨 100세 시대가 이렇게 많아?’

그런 시국의 시선을 느꼈는지 백발의 노인은 별이를 살며시 떼어놓고 시국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손쉽게 개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지만, 시국은 백발의 노인에게서 상당한 경계심을 볼 수 있었다.

“이준구 씨.”

시국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백발의 노인, 이준구의 경계심은 한층 강해졌다.

그는 순식간에 총구를 시국의 미간에 정확하게 겨누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별이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살짝 두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이준구의 말에 시국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가에 냉소를 걸친 채 대답했다.

“총 내려놓으시지?”

“말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좋은 말 할 때 총 내려놔.”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라.”

“100년 동안 살면서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으셨나 보네.”

“뭐?”

순간, 시국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준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후방 좌측 45도.’

이준구는 즉각 앞으로 한 바퀴 굴러 거리를 둔 후 후방 좌측 사선으로 총구를 돌렸다.

탕-!

깔끔한 총성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어, 어떻게!”

그리고 총알은 정확하게 시국의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채 운동량을 잃었다.

“역장 같던 놈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문명의 퇴화가 감각의 활성화를 불러일으켰나 봐?”

시국이 땅바닥으로 총알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준구는 살짝 몸을 떨었다.

“별이를 봐서라도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어. 총 내려.”

시국이 별이의 이름까지 거론하자 결국 이준구는 총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국이 씩 웃었다.

“거봐, 어차피 내릴 거, 처음부터 내렸으면 총알 낭비도 안 하고 좋았잖아.”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어떻게 내 이름과 나이를 알고 있단 말이요? 보아하니 헌터 같은데.”

“헌터라…….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과연 지금 내가 발로 밟고 있는 이 지구에서, 나를 헌터라 해야 할까? 빌런이었던 놈이라 해야 할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국은 말을 이어갔다.

“특별한 스킬이 있거든.”

“디텍터 스킬을 말하는 거요? 내가 아는 한 디텍터 스킬로는 등급 정도나 체크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디텍터보단 좀 더 상위의 스킬이라 할 수 있지. 거기까지만 알아 둬.”

“흐음…….”

제법 문명 시대의 용어를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이준구를 바라보며 시국은 이야기를 이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뭐하러 왔지? 별이를 혼자 그 원시인들 소굴에 남겨두고 말이야. 동화 스킬이 있어서 급한 일이 있을 땐 어찌어찌 숨을 수는 있었겠지만,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거기에 놔뒀냐 이 말이야.”

마치 못난 아버지를 꾸중하는 듯한 시국의 말투에 순간 이준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그 이상 그가 꿈틀하는 일은 없었다.

“그 점은…… 내가 확실히 좀 부족하긴 했소.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소.”

“무슨 이유?”

이준구가 총구로 죽은 개미들을 가리켰다.

시국은 한 차례 개미들을 바라본 후 되물었다.

“개미?”

“그렇소.”

“개미들이 왜?”

“저놈들을 추적했소. 한두 번도 아니고 늘 때가 되면 나타나서 사람을 산 채로 반으로 갈라 들고 가는 걸 언제까지 두고만 보고 있을 순 없었소.”

“그래서 딸을 내버려 두고 왔다?”

“폴이 있었기에 믿고 맡겼던 거요.”

“폴?”

“역의 책임자요.”

“아, 그 역장? 근데 외국인인가? 눈이 푸른색이라서 뭐 좀 이상하긴 했는데.”

“아비가 미국인이요. 뭐, 사실상 한국인과 다를 바 없었지. 아니, 애초에 당신 말대로 원시인과 다를 바 없었지. 하지만 어쨌건 폴의 아비는 미국인이오. 그래서 폴이지.”

시국은 습관처럼 피식 웃었다.

“뭐, 좋아. 그건 됐고. 그래서, 뭘 좀 찾았나?”

“개미들은 지하도를 통해 여기까지 길을 만들어 뒀었소. 난 그 길을 따라갔지. 그리고 안양천 쪽에 놈들의 본거지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가려던 참이었소.”

“그러다 여기서 딱 저놈들과 마주쳤다?”

“그렇소.”

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100세 노인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인내와 체력이었다.

‘초인이라 그런 건가?’

시국이 살던 2030년대에는 아직 초인에 대해 많은 게 밝혀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중 하나가 초인의 노화였다.

혹자는 초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노화를 겪을 것이며, 늙어감에 따라 능력치가 떨어질 것이고, 종국에는 일반인과 똑같이 자연사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반대로 초인은 노화를 겪지 않을 것이며, 일반인처럼 죽을 일도 없고, 전투에서 죽거나 자살을 하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인 수명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드루이드 노파를 보면 신체 기능은 상당히 노화가 진행되지만 이 인간을 보니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 같고…… 어쨌건 초인은 자기 관리만 잘 하면 100살은 거뜬하게 산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시국은 이준구를 바라봤다.

“좋아. 그럼 가 보자고.”

“어딜 말이오?”

“어디긴 어디야? 안양천이지.”

* * *

“놈이 온다. 놈이 와.”

키에에에에엑-!

“몸놀림이 대단한 젊은 놈과 사격 실력이 일품인 늙은이야. 하지만 우리 군단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

키에에에에엑-!

“젊은 놈과 노인을 죽이고 저 어린 암컷을 찢어서 아가들에게 먹이면 되겠어. 살이 보드라운 게 아가들이 씹기 편하겠어.”

키에에에에에엑-!

* * *

“안양천에 개미가 얼마나 있지?”

선두에 이준구를 세운 채 그의 뒤를 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가며 시국이 물었다.

“육안으로 대충 세어 본 것만 500마리가 넘었소.”

“500이라. 그럼 대충 근처 지하 토굴에 그 두 배 넘는 숫자가 있다는 거겠네. 여왕개미도 있을 거고.”

“여왕개미는 바깥에 있소.”

“바깥에?”

“개미들 틈에 둘러싸인 채 수개미들과 교미를 하고 알을 낳는 게 일과지. 며칠 지켜보니 그랬소.”

“그래?”

그러는 사이 어느새 세 사람은 안양천이 보이는, 한때 아파트 단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더미 위에 올라섰다.

“……개미들이 원래 저렇게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었소.”

“근데 지금은 저러고 있네? 무슨 열병식 하는 군인들처럼?”

“……그러게 말이오.”

개미들은 안양천 바깥 육지에서 4열로 쭉 늘어서 있었다.

그 숫자가 육안으로만 봐도 족히 1500은 넘어 보였다.

비장함마저 엿보이는 그 모습에 별이는 두려움에 빠졌고, 이준구 또한 바짝 긴장했다.

오로지 시국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것들 중 여왕개미가 어떤 놈인지를 찾고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일순간 개미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러댔다.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에 이준구와 별이가 귀를 틀어막았다.

시국은 그저 살짝 인상만 찌푸렸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대단하군. 군단의 함성에도 버티다니.”

어디선가, 쇠를 손톱으로 긁는 것만 같은 기괴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국의 시선이 천천히 음성의 근원으로 향했다.

“네놈을 먹으면 다음에 태어날 새끼들이 상당히 튼튼하겠어.”

허공에서 거대한 여왕개미 한 마리가 날개를 빠르게 퍼덕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제는 여왕개미의 얼굴이었다.

다른 모든 부위는 분명 개미였지만, 그 얼굴만큼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주 표독스런 여인의 얼굴.

“이건 또 무슨 혼종이야?”

시국은 중얼거리듯 이야기했지만, 대략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여왕개미는 그것을 똑똑히 알아들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여왕개미의 입에서도 개미들의 것과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위대한 선택받은 여왕의 종족에게 혼종이라니!”

키에에에에에엑-!

여왕개미의 분노에 도열한 1500마리의 개미들 모두가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며 흉성을 뿜어 댔다.

잠시 인상을 찌푸린 후 시국은 여왕개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게 전부야? 네가 가지고 있는 개미 군단의 전부?”

“왜? 떨려?”

키에에에엑-!

“아니, 전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저게 전부야?”

“그렇다. 저들은 우리 위대한 군단의 모두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알을 지키던 자들조차도 밖으로 나왔다.”

키에에에에엑-!

“내가 어지간히 두려운가 봐?”

순간, 여왕개미의 표정이 굳었다.

“개미와 네크로맨서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뭐?”

“형식적으로는 다를지언정 실질적으로는 둘 다 소환사라는 거야.”

키에에에에에엑-!

시국으로부터 강한 마력 파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물론 여왕개미마저도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앞의 것들과는 달리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강하다! 저 인간은 너무 강하다!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가리 하나만 제압하면 게임이 끝난다는 거야. 그게 개미와 네크로맨서의 공통점이야.”

“후퇴! 모두 후퇴! 숨어라! 지하로 숨어! 지하…….”

쿵-!

그대로 시국은 콘크리트를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까악-!

그리고 거대한 까마귀가 나타나 시국에게 발판이 돼 주었다.

시국은 그대로 까마귀의 등을 밟고 한 번 더 허공에서 도약했다.

그리곤 곧장 두려움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도망가려던 여왕개미의 등에 착지했다.

“끄아아악-! 떨어져라! 떨어져라!”

키에에에에에에엑-!

여왕의 비명과 괴성에 일순간 개미 진열이 무너졌다.

그대로 시국은 여왕의 목을 팔로 감아 조이기 시작했다.

가늘기 그지없는 여왕의 목은 순식간에 시국의 팔 안에서 어마어마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끼으으…….”

허공에서 어지러이 비행하며 고통에 울부짖던 여왕개미는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국은 잠시 타이밍을 살피다 여왕개미가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그것의 등을 타고 허공에서 세 바퀴 회전한 후 안전하게 땅에 착지했다.

쿵-!

그리고 시국이 착지함과 동시에 여왕개미가 땅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키에에에에엑-!

그리고 그 순간,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던 개미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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